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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비유 (마 13: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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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비유 (마 13:47-50)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신다. 마13:34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이는 마13:35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기 때문이다. 비유는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가르침이다. 비유는 일상 생활의 이야기를 통해 천국의 가치에 대해, 천국의 특징에 대해, 천국의 영향력에 대해 나타내려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은 비유의 창고라고 한다. 왜냐하면 비유 이야기가 7개가 연이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개의 비유는 친히 비유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7개의 비유와 2개의 비유 해설로 채워져 있다. 글자 그대로 비유의 창고다.  

오늘 본문은 7개의 비유 가운데 마지막에 기록된 비유인데 천국은 무엇과 같은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라고 하였다. 천국은 ‘그물’이라는 것이다. 무슨 그물인가?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비유의 제목은 ‘그물 비유’인 것이다. 어부는 그물을 칠 때 오로지 고기를 그물로 집어넣으려고 물고기를 몬다. 물고기를 몰아 그물에 가득 채워지도록 하여 그물을 다시 물 안에서 물가로 끌어내어 고기를 골라서 선택하게 된다. 이런 내용으로 구성된 그물 비유가 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1. 천국은 열방의 민족 중에 믿는 자를 모으는 곳이다. (마13:47)

마13:47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바다는 이 세상이다. 그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이 각종 물고기다. 물고기의 종류가 수백, 수천 종이듯 이 세상 열방의 나라와 족속의 수가 수백, 수천이다. 천국은 바로 이 열방의 민족을 모은다.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의 사람들을 모은다. 

그런데 물고기는 바다의 고기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 족속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물고기란 단어인 익투스란 헬라어 이니셜은 ἰχθύς인데 Ιησουσ(Jesus-예수), Χριστοσ(Christ-그리스도), Θεου(God-하나님), Υιοσ(Son-아들), Σωτηρ(Savior-구세주)란 다섯 마디 단어의 첫 이니셜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것이 물고기란 단어다. 그래서 박해 시대 크리스챤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암호로 표현했다. 그것이 땅에다 물고기를 그리는 것이었다. 물고기를 그리면 익투스, 즉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고 고백을 하는 크리스챤으로 알고 마음의 소통을 한 것이다. 

고기를 모은다는 것은 크리스챤을 모은다는 뜻이다. 천국은 이 세상 모든 족속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각종 신도를 모으는 곳이다. 그러므로 마28:19의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것이 주 예수의 지상 명령이고 겔47:9에서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 나갈 때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겔47: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의 환상은 그물로 모여드는 각종 고기, 모든 족속이 모여드는 곳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천국은 열방의 민족이 모여드는 곳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열방 민족의 신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교회는 천국의 지점이다. 따라서 교회는 믿는 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출신, 신분, 혈통, 문화, 취미, 가치, 지위 등 모든 것을 뛰어넘어 천국의 지점으로 모이는 것이다. 천국이 열방의 민족을 모으는 곳이기에 교회는 이 모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주일은 그 모이는 일의 연습인 것이다. 그물에 가득할 때까지 계속하여 모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롬11:25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구원의 수가 채워질 때까지 모으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방인이 구원의 수가 채워질 때 유대인도 시기가 나서 구원을 얻게 되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까지 그물을 치고 몰아야 하는 것이다.
  

2. 천국은 분명한 구별이 있는 곳이다.

마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천국은 모으는 곳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득할 때까지 기다리고는 마침내 그물을 끌어낸다. 그 물 속에 모여든 고기의 좋은 것과 못된 것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좋은 것은 그물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린다. 그 구별은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하다. 함께 놔두질 않는다. 천국은 이처럼 구별이 있다. 열방 민족의 신자들이 다 모여 들었어도 그냥 두지를 않는다. 앉아서 버려질 이들과 담겨져야 할 이들을 정확하게 구별한다. 이 구별이 바로 천국에 들어갈 이와 버려질 이에 대한 심판이다. 

마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심판의 주관자는 천사들이다. 의인과 악인을 같이 둘 수 없어서 구별하는 것이다. 구별한다는 것은 가라지 비유의 내용과도 똑같다. 좋은 씨가 뿌려져서 자라는데 가라지가 뿌려지고 가라지가 좋은 씨와 함께 섞여 있다. 그러나 마13:40을 보면 추수꾼으로 설명되는 천사가 가라지를 다 거두어 불에 사른다. 결코 세상 끝의 심판 날에 그냥 두지 않는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기에 이 두 부류를 같이 둘 수 없어 구별을 한다.

천국은 다른 곳이 아니다. 분명한 구별이 있는 곳이다. 이것이 심판이다. 롬2:7~8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심판의 날에 분명히 나뉜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로,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 평강이 있다. 지금은 같이 있다. 같이 그물 속에 섞여 있다. 너나, 나나 다르지 않다. 어떻게 살아가든지 나눠짐이 없다. 그러나 마침내 그 날이 온다. 분명한 구별이 있는 곳이 천국인데 그물에 가득한 체 두지 않는다. 나누어지는 것이다.
  

3. 천국은 나의 기대와 다른 곳이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나눌 때 마13: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라고 하였다. 왜 울며 이를 가는가? 분해서 그렇다. 기대에 어긋나서 그렇다. 자신이 그물 속에 들어와 있는 신자이기에, 교회에 아니고 있는 사람이기에 자신이 좋은 고기인 줄 알았다. 자신이 의인에 속한 줄 알았다. 그런데 천사의 구별은 오류가 없다. 그 천사가 자신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게 되어 엇갈린다. 의인이 아니고 악인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이를 가는 것이다. 기회를 놓친 것, 영적 생활에 태만했던 것, 그물 속에 있으면 천국의 그릇에 담겨진다고 생각했던 것 그것이 아닌 것이다. 천국의 문턱에서 내버려지는 자신이 된 것이다. 어찌 울며 이를 갈지 않겠는가?

가라지 비유도 똑같다. 마13: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심판 받는 악인에 대한 묘사다. 못된 것, 모은 이를 넘어지게 하는 것,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풀무 불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마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천국은 기대에 어긋난 곳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해같이 빛나게 될 의인으로 서는가 하면 울며 이를 가는 악인으로 서는 것이다. 천국은 기대와 다른 곳이기에 세 번 놀란다고 한다. 한 번은 나같은 죄인이 구원 받아 천국에 왔다고 하는 것에 놀란다. 

또 한 번은 천국에 오기로 한 이들이 없다고 하는데 놀란다. 또 한 번은 반드시 지옥불에 떨어졌으리라 생각한 이가 천국에 있다는 것에 놀란다. 이렇게 천국은 이 땅의 교회 생활을 하면서 내가 천국에 대해 생각하는 기대와 완전히 어긋나는 곳이다. 창녀, 도둑, 살인자, 사기꾼이어서 천국에서 미끄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보혈로 새 사람이 되어 버려지지 않는 고기가 된 것이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이 그물 비유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보자. 믿는 자로서 교회 안에 머물고 있다고 해서 신앙이 이만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물 비유를 듣는 여러분이, 듣는 귀가 있어 심판으로 이를 갈지 않는 상급의 복을 받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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