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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짜 지혜는 무엇입니까? (약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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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혜는 무엇입니까? (약 3:13-18)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시대적 반향을 일으킨 도서가운데 미래 학자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을 지적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는 제1의 물결로 인류가 시작된 이래 가장 오래 시간에 걸쳐 경험해온 약 1만년에 걸친 ‘농업화의 물결’을 지적했습니다. 제2의 물결로는 근대 산업혁명을 계기로 일어난 ‘산업화의 물결’을 말했습니다. 

산업화의 시간은 농업화의 시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류의 삶의 패턴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은 지금 우리 시대의 주역들이 경험하고 있는 변화로서 더욱 짧은 시기에 일어난 가장 최근의 물결이지만 인류의 삶에 더욱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중입니다. 소위 지식을 기반으로 한 ‘정보화의 물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정보화의 시대 혹은 지식화의 시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informaion) 혹은 지식(knowledg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정보보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바로 야고보서가 말하는 지혜입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지식과 지혜를 구별해 왔습니다. 일찍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지혜는 지식을 적절하고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증가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 혹은 올바른 것과 틀린 것을 분별하는 지혜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플베리가 전달하는 정보에 의하면 인류에 의해 소유된 지식의 총계는 1900-1950년까지 배로 증가되었고, 그후 10년마다 2배씩 증가하다가 2020년이 되면 매 73일마다 지식의 양은 배로 증가될 것이라고 예언한바가 있습니다. 

이런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 지식의 함정인 것입니다. 왜냐구요? 성경에 의하면 지식은 많아지지만 참된 지혜가 증가하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지혜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구원의 길과 멸망의 길이 존재하고,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존재하고, 양과 염소가 존재하듯,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가 존재하듯 가짜 지혜와 진짜 지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진짜 지혜-무엇일까요?

1.위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본문 17절은 위로부터 난 지혜의 특성을 열거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위로부터 난 지혜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14절이 그것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다음 15절은 이런 행동의 배후에 도사린 지혜의 정체를 밝힙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다시말하면 위로부터 나지 아니한 지혜는 땅(세상)에 속한 지혜요 정욕(육체)에 뿌리박은 지혜요, 마귀적 지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가지 세력으로 세상과 육체와 마귀를 들고 있는데 위로부터 나지 아니한 모든 지혜의 근원은 세상이든가, 내속에 자리잡은 정욕이든가, 아니면 마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지식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얻을수 있지만 참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미 그 지혜를 얻는 방편을 약1:5에서 가르친바 있습니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솔로몬이 그 지혜를 구하여 얻지 않았습니까? 기도가 지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부족하지만 제가 담임 목사로 재직하며 이룰 수 있었던 감사했던 모든 사역은 기도로 얻어진 지혜의 결론이었습니다. 반면 후회스러운 모든 것은 기도 없이 충동적으로 벌린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전설적인 믿음의 사람 조지 뮬러의 삶의 비밀은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였습니다.


2. 인간관계를 세우는 지혜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솟아난 지혜가 위로부터 난 지혜인지 아니면 땅에 속한 혹은 마귀에 속한 지혜인가를 분별하는 지침이 무엇입니까? 그 지혜를 사용한 결과로 이웃들이 결속되는지 나누어 파당을 이루게 되는 지를 주목하시는 일입니다. 

15절에 나타난 귀신의 원어 daimon은 "영들"이라는 뜻으로 마귀의 지배를 받는 영들입니다. 마귀의 원어는 “디아볼로”(dia+ballow) 곧 “사이를 가르다”는 뜻입니다. 마귀의 역사를 극복하지 못하면 부부가 분리되고, 부모와 자식이 등을 지고, 목사와 교우들이 반목합니다. 노사가 대립하고, 인간관계가 파열음을 일으키는 모든 현장이 바로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 현장들에서 일하는 대표적인 귀신들이 바로 시기와 다툼의 영들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그러나 위로부터 내리는 진짜 지혜를 의지하는 곳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7절이 그 결과입니다. 지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성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화평합니다. 관용합니다. 양순합니다. 서로를 긍휼히 여깁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편견과 거짓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지혜가 갈망되지 않으십니까? 

나는 우리 공동체에 속한 모든 이들이 이런 지혜를 구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근 출간된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보면 십자군 전쟁당시 그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정당한 전쟁의 명분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소위 십자군 지도자들 사이에 얼마나 치기어린 시기와 다툼의 영이 가득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면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 공동체였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들의 “평화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소서/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우리는 줌으로써 받고/용서함으로 용서받고/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도가 오늘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한국 교회에 아니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습니까? 진정한 지혜를 구하는 기도의 사람들 말입니다.


3. 선함의 열매를 거두는 지혜입니다.

우리 주님은 일찍 산상수훈에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명료한 지침으로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진짜 지혜를 구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결과의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 13절은 참된 지혜는 선한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미 생각한 약3:1-12사이에서는 참된 지혜의 사람은 착한 혀로 축복의 말을 할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착한 말만이 아닌 착한 행실이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희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마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7절에서 다시 야고보는 선한 열매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본문은 이제 18절로 결론을 맺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그렇습니다. 진짜 지혜는 착함과 의로움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물론 이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최근 이어령 선생의 따님 이민아 님이 <땅끝의 아이들>이란 제목의 간증집을 펴내셨습니다. 유명한 아버지의 딸이란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성장한 그녀는 오직 아버지의 체면 때문에 공부하고 사회적 성취의 길을 갔다고 고백합니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가서 검사, 변호사가 되고그렇지만 이혼을 경험하고 네 아이를 키우면서 첫째 장남이 세상을 떠나고 둘째는 자폐증을 앓고 자신도 네 차례에 걸친 암의 재발을 경험하면서 만만치 않은 세상의 고통을 겪는 와중에서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기도를 배우고 성령을 체험하고 목사가 되어 자신의 아이들 뿐 아니라, 방황하는 미국과 한국의 벼랑 끝에 선 모든 아이들을 자신의 품에 안는 치유 사역자가 되고 아버지를 주님께로 인도하고 둘째 아이의 기적적인 치유와 자신의 치유를 경험합니다. 

이 책에서 그녀가 고백한 내용을 읽습니다. “내가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때 진정한 기도가 시작되는 것이에요.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능력이 있다해도 내가 할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할수 없는 것들안에서 하나님만이 할수 있는 것들 안에서 우리는 내가 할수 없는 것들을 하시는 하나님,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세상의 지혜가 바닥난 곳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고백은 계속됩니다. “저는 기도의 힘이 없이는 자신이 그리고 그가 돕는 아이들이 변화될 수 없었다는 것을 믿는다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기도의 힘을 믿게 되었다고. 너무나 불가능한 상황까지 갔었을 때 모든 것이 순식간에 회복되는 것이 저희들이 함께 기도하기 시작할 때 이루어졌다고~그래서 주님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성령의 열매는 회복이라고.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고. 성령의 열매는 희락이라고. 성령의 열매는 평강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분문에서 야고보도 같은 지혜, 하늘에서 임한 그 지혜의 능력과 열매를 증언한 것입니다. 그 지혜, 그 능력, 그 열매가 바로 우리의 지혜, 우리의 능력, 우리의 열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엎드려 지혜의 참 근원이신 분에게 지혜를 진지하게 구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기도하시겠습니까? 야고보처럼, 솔로몬처럼, 이민아 자매처럼 말입니다. 진짜 지혜를 그리고 그 지혜의 능력과 열매를 구하시겠습니까?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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