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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단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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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단 3:13-18)


1941년 7월말, 나치 치하 당시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던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4호 감방에 수감된 포로 한 사람이 탈출을 하였습니다. 수용소 규칙에 포로가 탈출하면 그 감방의 동료 10명을 굶겨 죽이는 법이 있었습니다. 14호 감방의 10명이 죽어야 했습니다. 수용소장은 포로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포로들에게 손가락으로 지적합니다. “너, 너, 너...” 이 때 지적당한 가조우니첵크 중사가 몸부림을 치며 “나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처자식이 있습니다. 

처자식들을 어쩌란 말입니까?’ 라며 절규합니다. 그 때 포로 중 한 사람이 나섭니다. “내가 저 사람 대신 죽겠소. 나는 처자식도 없는 신부요. 허락해주시오.” 그는 바로 막시밀리안 콜베 (Maximilian Kolbe) 신부였습니다. 중사와 전혀 안면이 없는 콜베 신부가 대신 죽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예수처럼 살겠다고 수천 번 다짐했기에, 처자식을 둔 저 사람보다 내가 죽어야지. 이게 바로 예수를 따르는 길이야” 라고 콜베 신부는 생각했습니다. 

콜베 신부는 9명과 같이 갇혔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위로하며, 결코 하나님은 당신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콜베 신부는 계속해서 남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콜베의 신앙은 고난 속에서 도움을 받지 못할지라도, 고난을 당하여 목숨을 잃게 될지라도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 그 자체였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조건을 붙이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성서에도 이와 같은 믿음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로 그들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백성들에게 절하게 하였습니다. 법령을 어기는 사람은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태워 죽인다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세 친구는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으로 절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불러 다구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절대 절명의 위기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느부갓네살이여,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여기의 ‘그렇게 하지 아니 하실지라도’ 믿음의 동기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가치를 믿기에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에 한을 품고 무섭게 일했습니다. 야심찬 사업가로 변신한 그의 인생철학은 ‘나를 위해, 돈을 위해' 였습니다. 청년은 미국 석유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적 대부호로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심하게 착취했습니다. 사람들은 존경심이 아닌 돈 때문에 그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나이 쉰 셋, 몸과 마음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습니다. 노이로제와 소화불량, 무력감과 악몽, 주치의는 죽음을 준비할 것을 그에게 선언했습니다. 그 때 그는 신앙의 눈을 뜨고 절대적 가치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대부호는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로 인생관을 바꾸었습니다. 거액을 헌납하여 시카고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도 건축하였습니다. 여생을 교육과 선교와 사랑실천에 쏟았습니다. 그가 절대적인 가치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자 그 밖의 나머지 일들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베푸는 삶을 통해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그는 바로 98세까지 장수한 록펠러(John D. Rockefeller)입니다. 하나님의 가치를 믿는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을 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느부갓네살이여’ 라고 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즉 왕의 금 신상에게 절하는 우상 숭배의 행위에 대하여 달리 할 말이 없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절대적 가치이시고 유일한 분이시기에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도,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것을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꺼낼 필요가 없는 절대가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가치는 진선미와 애의 근원이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절대적 가치이신 하나님께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절대 가치이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문제로 힘들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으면 나머지는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이 그 해답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혹여 더하시겠다고 한 문제 때문에 목숨을 걸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이 일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하나님의 절대적 가치를 믿고 나아가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에 

시드니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자 다이빙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의 로라 윌킨슨(Laura Wilkinson) 선수가 많이 울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내내 울었고, 시상식에서도 울었습니다. 이유는 올림픽이 시작되기 6개월 전이었습니다. 다이빙 종목 국가대표로 뽑히고 연습을 하던 중 다리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그 상태로는 도저히 올림픽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코치는 출전 불가를 선언했으며 주위사람들도 불가능하다고 말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승 후보로 꼽히는 중국 선수가 워낙 기량이 뛰어나 중국선수가 우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로라가 당당히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래서 감격에 겨워 울었던 것입니다. 

로라는 우승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리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올림픽에 참여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을 때, 주위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말릴 때,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성경 말씀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말씀을 외울 때마다 하나님은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마가복음 9 장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세 친구의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왕이 풀무불 속에 넣는다고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가까스로가 아니라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수 있다는 확실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습니다. 능히 하십니다. 갇혀 계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있는 것도 없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하였습니다. 만사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세 친구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구하였습니다. 못하실 일이 없으신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악조건을 넘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믿기에 

찰스 E. 카우만 (Charles E. Cowman)의 저서 ‘사막의 샘’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정원에 대나무를 심었습니다. 매일 아침 대나무에 물을 주었습니다. 때때로 시든 잎이나 벌레 먹은 잎이 보이면 따주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대나무는 가장 아름다운 식물로 자라났습니다. 대나무는 주인의 은혜에 감격하여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대나무 곁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합니다. ‘사랑하는 대나무야, 이제 널 사용하려고 하는데 네가 원할는지 모르겠구나’ 대나무가 재빨리 대답하였습니다. ‘주인님, 저도 당신이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는데, 어찌 원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널 사용하기 전에 땅에서 찍어내어야 되는데’ 그러자 대나무는 주인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황급히 말하였습니다. ‘아, 주인님! 그건 어렵겠는데요. 여태까지 정원에서 제가 가장 높고 귀했습니다. 모든 식물보다 크게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인님이 나를 찍어버려 땅에 가로놓이고 그들 밑에 구부리면, 다시는 곤경에서 헤어나는 날이 없을 것입니다. 주인님! 오직 이 일만은 안 됩니다.’ 다시 주인이 말합니다. ‘그러나 너를 찍어내어 땅에 눕히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단다. 

너는 내가 너를 재배한 목적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냐?' 결국 대나무는 주인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을 참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주인님 뜻대로 이뤄지기 원합니다.‘ 주인은 날카로운 도끼로 대나무를 찍어서 땅에 눕혔습니다. 찍을 때의 그 아픔은 비할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나무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기꺼이 참고 견디었습니다. 그리고 대나무는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믿는 세 친구의 믿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내지 아니하실지라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풀무 불에 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타서 재가 되겠다는 순교적 신앙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어야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믿는 태도입니다. 불에 타 죽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죽겠다는 믿음입니다. 결국 세 친구는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달군 풀무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았고 결박했던 밧줄만 탔습니다. 물론 풀무불에 타 죽었다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스펄전 (C. H. Spurgeon)의 말입니다. “당신의 의무는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이 감당할 일입니다. 비록 하늘이 무너져도 옳은 일을 행하고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당신과 나의 할 일입니다. 당신은 결과에 신경을 쓰십니까? 그것이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늘이 무너져 내려도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주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진리에 충성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결과는 하나님의 일이지 당신의 일이 아닙니다.”

부디 하나님의 절대적 가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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