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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롬 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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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롬 15:1-13)


교회를 정의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이 직접 언급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어머니”라는 것도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정의의 하나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다 본질적인 교회의 정의는 “구원에로 택하심을 받은 무리의 총수”입니다. 그렇다면 원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들어가서 영원히 함께 사는 나라라고 할 때 교회는 곧 하나님의 나라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세상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교회에는 우리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거짓 신자들도 섞여있을 수 있고, 또 다 구원에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 하드라도 아직 그 믿음이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일생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능한 한 하나님나라에 가까워지려고 힘써야 하며, 그래도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믿음이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면 교회 안에는 어차피 믿음이 강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이 항상 섞여있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서로 간에 오해와 긴장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이해와 삶의 모습이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그런 차이와 그 차이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불화와 대립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나라(롬14:17)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공동체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도 그 일을 위하여 교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1절을 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한다는 말은 믿음이 약한 이들을 비판하지 않고 너그럽게 대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약한 이들의 생각이나 자세나 행동 때문에 짜증나는 일을 참는 것 이상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약점을 담당한다는 말의 구체적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의미는 바로 뒤따르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한 말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사이에 생각과 판단이 다를 때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그래서 옳다고 여기는 자기의 생각대로 행해야 기쁘겠지만 자기의 그 행위 때문에 믿음이 약한 사람이 마음에 근심하게 되고 시험에 들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기쁨보다 믿음이 약한 이의 기쁨을 택하는 것입니다. 

또 다시 반복해서 예로 드는 일이지만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음식물에 관해서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그 음식물을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며 그것을 맛있게 먹고 싶지만 그런 음식물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여 그 음식물 먹기를 삼감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믿음이 강한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한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의 행위가 남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함이 없이 자기 좋은 대로 행하지 말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언제나 교회의 평강과 희락을 저해하며 공동체의 일치를 깨뜨리는 악한 요소입니다. 

믿음이 강한 이들이 믿음이 약한 이들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들을 기쁘게 하기보다 그들을 기쁘게 하기를 힘쓰라는 것은 그러나 교회가 믿음이 약한 이들이 좌지우지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이들이 약한 이들의 약점을 담당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기를 힘쓰는 것은 믿음이 약한 이들이 옳다고 여기면 옳고 그들이 좋다고 하면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먼저 교회가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것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2절에서 쓰기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한 것은 믿음이 강한 이들이 약한 이들의 약점을 담당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기를 힘쓰는 참 목적이 무엇인지를 적시한 것입니다. 그 목적은 아직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지금 믿음이 약한 상태에서 좋게 여기는 바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참된 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추구하게 되며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덕이 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행하기에 이르게 하는 데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모두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려는 것, 그것이 믿음이 강한 이들이 약한 이들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들을 기쁘게 하기보다 그들을 기쁘게 하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남을 기쁘게 하기를 힘쓸 것을 권면한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해야 하는 당위성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습니다. 바울이 본문 3절에서 말하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자신은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라는 그 끔찍한 형틀의 고난과 죽음을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든 것은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하물며 그로 인하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 우리 또한 아주 조금이라도 그를 본받아 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꼭 같이 십자가에 달려서 혹독한 고통을 겪고 처참하게 죽으라는 것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만 신경 쓰지 말고 형제의 기쁨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인은 모두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뜻을 같이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이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용납하심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면 우리 또한 서로를 용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5-7절의 말씀을 봅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여기서 사도 바울이 원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꼭 같은 생각을 하고 꼭 같은 말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바란 것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같은 신앙공동체 안에 있다 해도 사안에 따라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럿이 함께 노래할 때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럿이 노래할 때 꼭 같은 멜로디를 제창할 수도 있습니다. 제창도 때에 따라서는 힘 있고 우렁차서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2부로 혹은 3부로 혹은 4부로 혹은 8부로 노래하며 화음을 잘 맞추면 더욱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프라노 파트를 부르는 사람이 알토나 테너나 베이스가 자기와 다르게 부른다고 화를 내고 다른 소리는 못 내게 한다면 합창이 되겠습니까? 각 성부의 합창자들이 모두 지휘자를 바라보며 그의 지시에 따라 같은 곡의 자기 파트를 악보대로 정확하게 부르면 아름다운 화음의 합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지휘자를 잘 보고 그의 지휘에 따라 노래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각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바라보고 따라가면 조화로운 소리와 아름다움이 있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5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는 것을 말하고, 6절에서는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언급하며, 7절에서는 “서로 받으라.” 합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의견, 같은 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뜻이 같고 마음이 같으며 서로 다른 상대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한 가족입니다. 한 가족 안에서도 다 같은 부모에게서 나왔는데 어쩌면 그렇게 제 각각 다른지 모르는 형제나 자매나 남매들이 있습니다. 성격도 취미도 다 다릅니다. 무슨 일에 있어서나 합의에 이르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닐 때가 흔합니다. 같이 식사를 하자 하다가도 누가 양식당에 가자 하면 꼭 중국집에 가자는 사람이 있고 중국집에 가자 하면 꼭 냉면 먹으로 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지지고 볶고 하는 집안이지만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들은 다 같아서 마지막에는 엄마 아빠 좋아하시는 데로 가자 하면 드디어 합의가 이루어지곤 합니다. 서로는 생각이 각각 다 달라도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부모를 바라보고 그들이 원하시는 바를 따르려는 뜻에서 일치함으로써 결국은 하나가 되곤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화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확실한 길은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 124주년을 맞는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교회가 우리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모습으로 서있을 수 있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기 위하여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주님의 권면을 다 같이 진지하게 가슴에 품고 힘껏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 권면이란 믿음의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서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이고, 화평의 일과 덕 세우기를 힘쓰라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보다 남을 기쁘게 하기를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또한 더욱 높이 비상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오늘을 <귀빈초청감사예배>를 드리는 주일로 준비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이 교회를 찾으신 귀빈 여러분, 또 오래간 만에 다시 이 예배에 참석하신 교우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교회는 좋은 곳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교회는 구원의 진리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구원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세상과 달리 분명하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그에게서 구원의 복음을 듣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상관도 없고 부하도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소유의 크고 적음에 따라 구분되는 좌석이 없는 곳입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일 뿐입니다. 공연장이나 비행기 안에서처럼 일등석이나 이등석의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먼저 섬기기를 기뻐하도록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아 기쁨과 감사함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가 이 좋은 교회에 나온 것은 우리 자신의 결단에 의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에로 선택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천국이 우리의 것으로 예비된 것입니다. 천국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귀한 선물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천국의 삶을 즐겨야 합니다. 교회생활은 천국의 삶의 시작이며 완성될 하나님나라 삶의 연습입니다. 이 새문안교회에서 우리 함께 그 삶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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