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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움을 막는 것들 (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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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움을 막는 것들 (전 3:11)

옛날에 박만득이라는 사람이 고깃간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양반 두 사람이 그에게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그 중 한 양반은 교만하게 “야, 만득아! 고기 한 근 다오”라고 명령하듯 말을 했습니다. 만득이는 “네” 하고 고기를 한 근 내주었습니다. 다른 양반은 “박 서방, 고기 한 근 주게”라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기는 언뜻 봐도 먼저 산 양반의 것보다 훨씬 더 커 보이였습니다. 똑같이 한 근이라고 말했는데 차이가 많아 나자 앞의 양반이 화가 나서 따졌습니다.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이 양반 것은 많고 내 것은 왜 이렇게 적으냐?” 그러자 만득은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을 합니다. “손님 것은 만득이가 자른 것이고, 저 손님 것은 박 서방이 자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 한 마디에 고기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두 번째 양반의 말은 만득이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만득이의 마음이 움직이니 고기의 양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이는 지혜로운 혀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본문 앞부분에 보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아름답습니다. 이 말씀은 창조의 역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으셨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사’라는 말인데 ‘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아름다운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무엇이든지 그 결과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창 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솜씨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먼저 재료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때의 상황이 창 1:2에 나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만지심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은 개인이든, 가문이든, 국가든 하나님이 만지시면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을 몇 번 방문하면서 신기한 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몇 년 사이에 황폐하던 이스라엘 땅이 굉장히 기름진 땅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돌아오면서 땅도 하나님께서 만지시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6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므로 땅이 황폐하게 되고 이방인들에게 삼킨바 되어 이방인의 기업이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들의 말거리와 비방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지기 시작하니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오게 되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맑은 물로 뿌려서 정결하게 되고 새 영을 받습니다. 그들 안에 굳은 마음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을 얻게 됩니다. 그 결과 땅이 회복됩니다. 곡식이 풍성하게 되고 기근이 닥치지 않습니다. 나무와 밭의 열매가 풍성해 집니다. 황폐하던 땅이 에덴동산 같이 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지금 이스라엘 땅에서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지시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믿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름답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름다워져야 정상이고, 관계도 아름다워야 정상이고, 가정도 아름다워야 정상이고, 생업도 아름다워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만지심이 우리의 영과 혼과 몸에 그리고 우리의 가정과 생업의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지시면 당연히 모든 것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런데 솔직한 고백으로 우리의 모든 영역을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설교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야 정상인 신자들의 삶의 영역이 아름답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 때가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1절에 보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분입니다. 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때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답고 싶어도 아름다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육체적으로 장성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성한 모습이 여러분이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의 모습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핏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돌봄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보니 지금처럼 장성한 모습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범사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8절을 보면 28가지 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범사에 때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때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프리카에 '비서새'가 있습니다. 이름도 이상하지만 행동도 이상한 새입니다. 이 새는 평소에는 조금 날줄 아는 새인데, 누가 자기를 노리고 있다, 사냥꾼이 자기를 노리고 있다, 다른 동물이 자기를 노리고 있다, 위험을 감지하면 조금 날던 새가 날지 못하고 기다가 붙잡히는 새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평소 이 새를 예화로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하와이에 가셨다가 동물원에서 비서새를 보셨습니다. 목사님은 평소 자주 말씀하셨던 새가 있으니 반가워서 새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한참을 노려보면서 새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노려보고 있으니 비서새가 날지를 못합니다. 그냥 걸어서 계속 왔다 갔다 하더랍니다. 칠면조와 비슷하게 생겼고 다리가 그보다 조금 긴데 계속 왔다 갔다만 하지 날지를 않더랍니다. 10분을 기다려도 날지 않으니 목사님은 ‘이 새가 나는 것을 보기는 이제 틀렸고나’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고 막 떠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후두둑 하더니 날더랍니다. 목사님이 보고 있으니까 날지 못하다가 목사님이 다른 곳을 보니까 그 때서야 날았던 것입니다. 비서새는 날아야 할 때는 못 날고 날지 않아도 될 때에는 나는 새입니다. 때를 모르는 새입니다. 때에 맞게 행동할줄 모르는 새입니다. 우리는 때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범사에 때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조급하다고 월요일 다음에 금요일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금요일이 오려면 반드시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을 통과하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후손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가 후손의 약속을 받고 바로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이 아닙니다.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하나님의 때가 차니 이삭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삭을 기다리던 아브라함은 조급했습니다. 그의 조급함 때문에 이삭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조급함 때문에 하갈을 첩으로 취하고 이스마엘을 낳는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몇 년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취하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도 별 소용없더라, 기도해도 별 소용없더라.’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할까요? 그동안 나름대로 말씀대로 선을 행하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답지 못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갈 6:9에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행한 선을 모내기에 비유해 봅시다. 봄에 모내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추수는 언제 할까요?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이 되어야 합니다. 때가 되어야 거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하는 선도 그런 것입니다. 지금 선을 행했다고 지금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선을 행했는데 열매는 내일 거둘 수도 있고, 1년 후에 거둘 수도, 10년 훈에 거둘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갈 6:7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사람을 심은 대로 거두는 존재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지금 열매가 없는 것 같아도 때가 되면 아름답게 거두게 될 것입니다. 
 

2. 아름다운 것이 오는 것을 막아서 그렇습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수돗물이 꽐꽐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수돗꼭지를 막아버렸다면 어떻게 수돗물이 나오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주시기를 원하지만 우리들에게 막힌 것이 있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것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을 막는 것 세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죄가 아름다운 것을 막습니다. 
  
 렘 5:25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좋은 것 즉 아름다운 것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죄가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막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들,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받아 누리려면 죄를 잘 처리해야 합니다.
   
과거에 믿음의 선배들은 회개를 잘했습니다. 작은 죄 하나만 범해도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심지어 며칠씩 금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고, 회개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죄를 이길 수 없을 때는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새벽마다 나와서 부르짖으며 주님에게 이길 힘을 구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철야하면서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구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회개를 잘했습니다.
   
이 시대의 교인들의 약점이 회개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을 받았고 요일 1:9 말씀대로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에 관한 믿음 때문이기는 하지만 회개가 너무나 가볍습니다.
   
진정한 마음의 돌이킴이 없이 가볍게 잘못했다고 한 마디 하고는 모든 것을 용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죄를 사해주시는 분이시지 입술로 가볍게 용서를 구한다고 죄 없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용서 하지 않으셨는데 자기는 용서 받았다고 확신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한 용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안에 아직도 죄가 쌓여있는데 자기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한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착각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처리 되지 못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은 똥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해결되지 못한 죄악은 똥과 같습니다. 파리 몇 마리 잡으면 파리가 없어지는 것 같지만 문제의 근본인 똥을 치우지 않으면 반드시 똥파리가 다시 날아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다 해결된 것 같지만 근본적인 죄가 처리되지 못하면 계속적으로 같은 문제가 일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형식주의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과거 믿음의 선배들과 별 다를 바 없이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처럼 성령의 역사가 없습니다. 그 때처럼 감격적인 신앙생활을 못합니다. 그 때처럼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그 때처럼 은혜를 못 받습니다. 이유는 중심이 없이 껍데기뿐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말 중심을 다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종교생활을 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의 형식은 갖추었지만 마음에 통회함이 없습니다. 정말 죄로 인하여 마음 아파하며 하나님 앞에 고통스럽게 부르짖는 회개가 없습니다. 부디 회개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2) 악한 영들이 아름다운 것을 막습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에게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고통의 배후에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타락의 배후에 악령이 역사했습니다. 가룟유다의 배교의 배후에도 악령이 역사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환자들의 배후에도 악한 귀신들이 역사했습니다.
   
막 9장에 보면 귀신들려서 고통당하는 아이가 나옵니다. 그 아이는 귀신의 역사로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도 원하시고 아버지도 원하고 자기도 원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고통을 당하고 또 고통당하다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는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치료되어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이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귀신이 나가자 그 아이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 사건에서 주님은 아름다운 것을 막고 있는 귀신을 물리치는 비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 말은 “오직 기도만이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을 받아 누리지 못하면서 “나는 충분히 기도생활을 하고 있다”라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어느 정도 기도해야 충분한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1시간이요? 2시간이요? 5시간이요? 아닙니다. 당신에게 역사하는 마귀의 역사가 떠나갈 만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리기를 원하시는 아름다운 상태가 회복될 만큼입니다. 그것이 안 되고 있다면 지금 보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기도든지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때가 되면 응답이 됩니다.
   
어느 어머니의 간증입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대머리로 태어났습니다. 나이가 들어 대머리가 되면 괜찮습니다. 지성미가 있어 보이고, 우스개 소리이지만 ‘머리털보다 더 많은 내 죄’라는 찬송 가사에 따르면 머리털이 적으니 죄도 적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하도 사랑스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셔서 대머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대머리도 좋습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대머리는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어머니가 새벽마다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와서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의 어머니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매일 아이를 데리고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아마 스트레스를 무척 받았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머리카락 하나 나지 않더니 중학교 3학년이 되니 머리카락이 다 나서 머리가 시커멓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도 끈질기고 목사님도 끈질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으로 악한 영들의 역사를 물리쳐주시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것을 주십니다. 
 
  
3) 불순종이 아름다운 것을 막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화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버리시면서 동시에 에덴 동쪽에 천사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서 생명나무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아름다운 곳에 들어가는 길을 막아버리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에덴에 들어가는 길을 막아버리셨고, 생명나무의 열매에 나아가는 길을 막으셨습니까? 답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의 결과가 그렇게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받아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성경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손해가 되어도 순종하시고, 이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십시오. 그래야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계산을 해서 답이 나와야만 순종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도행전적인 삶이 불가능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보니 교회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인 저만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교우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조차 없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어도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받아 누리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입양을 위해 고아원을 찾았습니다. 고아원에서는 두 아이 중의 한 아이를 택하라고 해서 아이들을 보러 갔더니 마침 두 아이가 2층 침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양부모될 사람은 그 아이들을 향해 손을 벌리고 “뛰어내려볼래.”라고 하자 한 아이는 겁 없이 뛰어내렸지만 한 아이는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뛰어내린 아이가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부모가 보기에 효자도 자녀이고 불효자도 자녀이지만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효자는 더욱 사랑 받고 축복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효자 성도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제 멋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순종으로 받습니다.
   
신 11:14, 15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에 농사를 지었고 목축업을 했던 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그대로만 된다면 농사도, 목축도 아름다운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의 약속에 조건이 있습니다. 신 11:13입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4.5와 5는 친하게 지냈지만 4.5는 언제나 5에게 고개를 숙이고 살았습니다. 4.5보다는 5가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4.5가 5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5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5가 말했습니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4.5가 말합니다. “나 점 뗐다.” 4.5가 점을 떼니 45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5가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점을 떼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점을 뗍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4.5가 5를 올려봤던 것처럼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올려보기만 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이 주시고자 했던 아름다움이 회복되어 점을 떼시고 더 높고 더 풍성한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신 28:12이 실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면 땅에서 아름다운 모습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전제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받아서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갈 6:9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벧전 5:6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의롭고 의리가 넘치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에게 큰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때를 따라 아름다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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