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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이미 독수리입니다 (신 3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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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독수리입니다 (신 32:9-12)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대화가 잘 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은 듣지 못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대화하는 내용에 맞장구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재미있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볼일이 급해져서 휴게소를 찾아가 급하게 차를 주차시킨 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용변을 보았습니다. 용변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 칸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엉겁결에 “예. 안녕하세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속으로 ‘목사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중에도 사람들이 알아보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 칸에 있는 사람이 또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점심식사 하셨어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아닙니다. 볼일 보고나서 식사할 예정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잠잠해지더니 조금 후에 옆 칸에 있던 사람이 조용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이제 그만 전화 끊어야겠습니다. 어떤 이상한 사람이 자꾸 옆 칸에서 말대답을 하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레마를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기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만나신다고 하셨습니다. 9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지키십니다. 9절 뒷부분에 보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호위 하시고 보호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호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 11절에 보면 하나님은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훈련시켜서 창공을 날개 하듯이 믿음의 사람들을 훈련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홀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시고 호위하시고 보호하시고 훈련하시고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설교는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훈련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신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은 음성이 무엇입니까? 
 
1. 나는 독수리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참새나 꿩 정도로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독수리라고 생각하십니다.
   
독수리는 동물의 왕입니다. 이 동물 세계는 철저한 먹이사슬로 되어 있습니다. 힘이 조금이라도 더 강한 짐승이 약한 짐승을 잡아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를 잡아먹는 동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날아다니는 짐승이기 때문에 호랑이나 사자도 독수리 사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가 뱀이 독수리 둥지로 기어오면 그것은 오히려 독수리의 먹이감이 됩니다. 장성한 독수리는 한쪽 날개가 2m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그 멋진 날개를 펴고 멋진 폼으로 비행을 하면서 눈에 먹이가 포착되면 순식간에 낙하해서 먹이를 낚아채고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어떤 때는 물속에 다니는 물고기조차도 독수리의 밥이 됩니다. 독수리는 시력이 발달되어서 높은 창공에서도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낙하해서 강인한 발톱으로 물고기를 얼른 채 가지고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어떤 동물이든 모두 독수리의 밥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를 독수리에 비유하시는 것은 “너희도 독수리처럼 남들을 잡아먹으며 살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동물의 왕인 독수리처럼 왕 같은 존재이니 자신을 존귀하게 보아라. 그리고 담대하게 하늘을 날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 2:9) 
 

2.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신다. 
   
독수리 어미가 새끼를 양육하는 과정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독수리는 새끼를 낳을 집을 아주 높은 곳을 선택합니다. 깎아지른 절벽의 윗부분을 선택하거나 나무 중에서도 큰 나무의 가장 높은 위치에다가 둥지를 만듭니다.
   
독수리가 둥지를 만드는 재료 선택할 때 다른 동물들과 다른 재료를 씁니다. 처음에는 가시나무를 물어다가 둥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뭇잎을 물어다가 둥지를 덮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털이 있는 가죽을 깔아놓습니다. 토끼가죽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앞가슴에 있는 아주 부드러운 털을 뽑아 자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새끼를 기릅니다. 그래서 새끼는 아주 보드랍고 편안한 침대 같은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자라게 됩니다.
   
독수리는 새끼가 어느 정도 날개 형성이 되면, 새끼가 보는 앞에서 날갯짓을 많이 합니다. 날개를 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계속 보여줌으로 새끼가 그 방법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끼들도 엄마를 보면서 따라서 날개 짓을 해봅니다.
   
새끼들은 날개 짓을 하면서도 둥지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절벽 아래를 바라보면 너무나 무서워서 둥지 밖으로 날아갈 생각을 못합니다. 그러면 어미 독수리는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들어준 자기 가슴의 깃털과 부드러운 털이 달린 토끼 가죽을 없애버립니다. 그러면 둥지에는 가시나무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가시에 새끼들이 가시에 찔리게 되고 새끼들은 가시가 몸을 찌르는 고통 때문에 둥지를 떠나기 위해 필사적인 날갯짓을 합니다. 그래도 새끼가 둥지에서 나오지 않으면 어미 독수리는 사나운 발톱으로 새기를 집어서 절벽 아래로 사정없이 던져 버립니다. 새끼들은 비명을 지르며 살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날아보려고 필사의 노력을 합니다. 새끼가 거의 땅에 떨어질 무렵이면 어미 독수리는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훈련을 반복합니다. 어미 독수리의 무자비한 훈련이 결국은 새끼 독수리를 하늘의 나는 새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훈련을 통과한 아기 독수리는 동물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해서 하늘을 나는 맹수의 왕이 되게 하는 것처럼 자기 백성들을 훈련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 1:2에 기록된 대로 광야 길은 열하루 길 밖에 되지 않지만 그 길을 40년 동안이나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불신앙에 대한 형벌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애굽의 문화에 젖어 있고 노예근성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모든 죄악을 떨어내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자부심과 합당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 특수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훈련대상으로 삼으십니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대한민국의 국민을 훈련합니다. 북한 군인들이나 일본군이들을 훈련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대한민국의 군인들을 잘 훈련시켜서 강한 군대로 만드는 것이 의무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에 독수리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하나님은 우리들 역시 독수리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든지 교회에서 가장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마음 상할까봐서 교회는 온갖 신경을 쓰고 굉장히 조심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대단한 분이고, 연세가 많으실지라도 교회에 처음 나오면 영적으로 이제 막 출생한 영적인 어린아이입니다. 그래서 잘 모셔서 고이고이 잘 자라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교회에서 받는 따뜻한 사랑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어느 정도 영적으로 성장하면 하나님은 그 따뜻한 보금자리를 헤쳐 버리시고 가시 돋친 고난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교회 생활에 시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시험이 있다는 말은 ‘내가 하나님이 훈련하실 정도로 성장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때로는 목회자가 시험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 시험을 주기도 합니다. 마치 지뢰밭에 여기저기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 여기저기 시험거리들이 산적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훈련하시는 방법을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나의 부족함으로 나를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우리들에게 때로는 부족함을 허락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들이 부족함을 통해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로 나를 훈련하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거의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 자아가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내 주변에 나를 변화시키는 조교로 세워두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상황을 통해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으로 나를 훈련하십니다. 
   
여기서 연약함은 몸의 연약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적으로 약할 수도 있고, 관계적으로 약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저주라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 때문에 나를 영적인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대수술만 몇 십번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분은 육체가 연약했기에 하나님을 붙들고 언제나 주님 앞에 설 준비를 하고 사셨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에게 육신의 연약함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의 세우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 12:10에서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하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약함으로 나를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넷째, 풍족함으로 인한 훈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실 때 부족함과 약함으로만 훈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풍족함을 주셔서 우리를 훈련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풍족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집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때 있었던 일입니다. 형은 1주일 단위로 용돈을 주었는데 자기는 매일 1천 원씩 받는 것이 불만이었나 봅니다. 저에게 형처럼 1주일에 1만 원을 용돈으로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말을 듣고는 1만원을 주고 아들을 테스트 해보고 싶었습니다. 1만원을 받아든 아들은 잠시 후에 외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받은 용돈을 가지고 나가서 그 돈을 다 쓰느라고 집에 들어올 생각도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풍성하게 주셔서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눈여겨보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훈련을 잘 통과하면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때 살기 편안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이면서 경제대국이었던 애굽을 요셉이 통치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했던 땅은 고센 땅입니다. 고센 땅은 아프리카에서 제일 좋은 땅입니다. 기름진 옥토이기 때문에 목축을 업으로 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에덴동산과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육하고 불어나서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잘 살게 되니 영적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송아지 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시내산 밑에서 금 덩어리로 송아지를 만들어서 춤을 추면서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풍족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부분에서든지 다른 사람보다 더 풍족하다면 그것을 누리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것을 내게 풍족하게 주신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가진 풍족함은 하나님의 매를 부르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풍족함을 우리가 잘 사용하다면 그것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마치 달란트를 잘 활용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주인이 그가 남긴 다섯 달란트도 주고 또 한 달란트 받은 자의 것도 빼앗아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준 것처럼 축복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잘 될 때 조심하십시오. 다윗의 고백입니다. 시 30:6-7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재물이나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산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받은 복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고 다윗과 교제를 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물이 요동하지 않는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녀가, 어떤 사람들은 직장이 요동하지 않는 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주의 얼굴을 가리시게 하면 안 됩니다. 좋을 때 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3.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시 103:5에 보면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처럼 새롭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좋은 말씀이지만 독수리가 새로워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두려운 말씀입니다.
   
독수리가 새로워지는 과정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아픔이 있습니다.
독수리는 가장 오래 사는 조류에 속합니다. 보통 40년을 사는데 70세까지 사는 독수리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70세까지 살기 위해서는 40세 정도가 되었을 때 신중하고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합니다. 40세 정도가 되면 독수리의 발톱이 안으로 굽어진 채 굳어져서 먹이를 잡기조차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길고 휘어진 부리는 독수리의 가슴 쪽으로 구부러지고 날개는 약해질 뿐 아니라 무거워집니다. 날개와 깃털은 날아다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짐이 되고 맙니다. 이때 독수리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죽든지 아니면 고통스럽지만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겪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만족하고 현재의 비참한 모습을 비관하면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새로운 제 2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기로 결심한 독수리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절벽 끝에 둥지를 틀고 150일이라는 아주 긴 시간을 그 안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날 수 없습니다. 

독수리는 자신의 부리가 없어질 때까지 바위에 대고 칩니다. 그리고 새로운 부리가 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때 독수리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잠잠히 기다릴 뿐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에 새로 난 부리를 가지고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고 합니다. 새로운 발톱이 다 자라나면 이제는 낡은 깃털을 뽑아냅니다. 이제 새로운 깃털이 자라기를 기다립니다. 그렇게 5개월 동안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게 되면 독수리는 30년의 생명을 연장 받습니다. 독수리처럼 새롭게 라는 말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독수리처럼 새롭게 되려면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고난을 두려워하면 절대로 독수리처럼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병원에서 수술 받기가 너무 어려워서 고통스러워서 통곡을 하고 있는 소녀에게 의사가 말을 했습니다. “그래, 분명히 너는 아플 것이다. 나는 너를 아프게 해야만 되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내가 주는 이 잠깐의 아픔을 통해서 너는 평생 아파야 되는 것을 고칠 것이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이냐?”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처럼 새롭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욥 23:10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아이들 이발 하는 모습을 보면 가만히 앉아서 무리 없이 머리를 잘 자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엄마는 붙들고 아이는 이발을 안 하겠다고 “으앙” 하며 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는 가위를 들고 가까이 오는 미용사가 무섭게 보일지 모르나 미용사가 가위로 아이를 죽이거나 머리를 못쓰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잘 참고 견디면 이발사는 아이를 깔끔하고 예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롬 5:3,4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누가 더 기도를 많이 드리는 영적인 사람이 됩니까? 아픔이 있는 사람입니다. 고난이 있는 사람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건강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시편 기자는 “고난 받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지구 안에 수많은 나라들이 있는데 이상한 것은 자연 조건이 좋은 지역과 열대 지방은 발전이 안 됩니다. 오히려 자연 환경이 그저 그런 나라들이 더 잘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난이 답입니다.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투쟁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구상에 모든 인종 가운데 가장 강인한 종족이 어느 종족입니까? 유태인입니다. 왜 그렇게 강인한 종족이 되었습니까?? 가장 고난을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보십시오. 어떤 물고기가 맛이 좋습니까? 양식장에서 기른 물고기 입니까? 물고기가 자라기에 가장 좋은 온도를 유지해 주고 때를 따라 사료를 공급해 준 양식 물고기가 맛이 더 있습니까? 아닙니다.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스스로 환경을 이겨내고 적응해야 하는 자연산 물고기가 맛이 더 좋은 것입니다.
   
벧전 1:6,7에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미국의 원주민들이었던 인디언들을 보십시오. 인디언들은 자연과 싸우며 자연의 혜택을 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세계 모든 인종 가운데 신체적 조건이 가장 우수하고 건강한 종족들이었습니다. 특별히 미국 인디언들은 얼마나 신체적으로 건강한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체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디언이 가장 많던 미국에서 인디언이 멸종위기입니다. 이제 멸종 위기가 되어서 다 없어지지 말라고 ‘인디언 보호구역’이 생겨서 거기 가야만 인디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신체적 조건이 제일 좋은 사람들인데 왜 멸종 위기에 놓였습니까? 미국 정부의 보호정책 때문입니다. 그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정부에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알코올 중독자가 많고 거의가 멸종했습니다. 차라리 미국 정부가 그들의 안전 정도만 보장해 주고 스스로 자급자족하게 두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고난이 복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헤쳐 버리고 가시나무에 찔려 피가 흐르도록 하십니다. 때로는 절벽 아래 집어던져서 비명을 지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를 날게 하시는 것입니다. 
 

4. 하늘을 날아오르라.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Robin Krugman) 교수는[불황경제학]이라는 그의 책에서 불황에서 성공하기 위한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불행이 다가오거든 그는 말하기를 첫째, 모험정신, 개척정신을 가져라. 피하지 말고 어려움이 다가오면 모험정신, 개척정신을 가지고 대결하라. 둘째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져라. 과거에 내가 잘살았는데 과거에 내가 잘했는데... 과거를 보지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노력을 하라. 우리 삶에 폭풍이 몰아칠 때 두려움으로 웅크리고 주저앉으면 폭풍에 휘말려서 뒹굴러갈 따름인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폭풍을 뚫고 정면 돌파할 때 더 높은 창공으로 날라 올라가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불어오면 닭은 어떻게 합니까? 닭은 날개 밑에 머리를 집어넣고 폭풍우를 피해서 나무 밑이나 담벼락 밑이나 지붕 밑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폭풍우가 다가오면 절대로 날개 밑에 머리를 숨기고 담 밑에나 지붕 밑에 숨어 피난가지 않습니다. 정면으로 폭풍우를 대면해 나가서 날개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람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폭풍우가 다가오면 원망, 불평, 탄식하고, 뒤로 물러가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정면으로 대결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고난을 만나고 문제를 만났을 때 기도해야 합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산꼭대기에서 독수리 알을 하나 주어서 달걀과 함께 놓아주었습니다. 독수리 알을 달걀로 착각한 늙은 암탉 하나가 그 알을 품게 되었고, 몇 일후에 독수리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암탉은 독수리 새끼도 자기 새끼인줄 알고 기르기 시작했고, 이 독수리도 자기가 닭인 줄 알고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새끼 독수리가 문득 하늘을 쳐다보자 높은 곳을 날고 있는 독수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보자 부러운 생각이 들어 “나도 저렇게 날 수 있을까?”라며 탄식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닭들이 새끼 독수리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기 하늘을 나는 멋진 새는 독수리고 너는 닭이야. 닭 중에서도 덩치가 크고 못생긴 닭이지. 그렇기 때문에 너는 결코 하늘을 날 수 없어.” 다른 닭들의 핀잔을 들은 새끼 독수리는 결국 자기가 평생 닭인 줄 알고 살다가 달걀도 하나 못 낳아보고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닭이 아닙니다. 아무리 새끼라고 할지라도 독수리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갓 구원 받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독수리입니다. 그러므로 때론 우리의 보금자리가 어지럽혀지더라도 날개 짓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날개, 기도의 날개, 도전의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자신을 보면서 ‘나는 참새지 독수리가 아니야, 내 주제에 무슨 독수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너는 내 자녀다.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난의 자녀다. 너는 창공을 나는 독수리처럼 힘 있게 날아오를 수 있다. 힘을 내라 내가 너로 하여금 하늘을 날게 할 것이다”
   
나폴레옹의 말이 도망쳤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날쌘 병사가 자기 말을 타고 가서 나폴레옹의 말을 잡아와서 말고삐를 나폴레옹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 때 나폴레옹이 병사에게 “고맙네, 대위”라고 하였습니다. 이 병사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병사는 “감사합니다. 장군님”하고는 즉시 막사로 가서 짐을 챙겨서 장교 숙소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병참병에게 대위의 군복을 받았습니다. 나폴레옹의 말 한마디에 장교로 바뀐 것입니다. 이 병사는 따지지도, 사양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말을 기꺼이 받아 들였습니다. 나폴레옹의 말을 믿어버린 병사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으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영적으로 환경적으로 날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면 우리는 창공을 날개 될 것입니다.
   
참새와 독수리의 다른 점 중에 하나가 나는 것입니다. 참새도 날고 독수리도 날지만 참새와 독수리가 나는 것은 다릅니다. 참새는 자기의 힘으로 날아다닙니다. 자기의 날개의 힘만으로 날기 때문에 참새는 창공을 날 수 없습니다. 10m, 20m 정도 날아가면 내려앉아야 합니다. 50m나 100m를 날아가면 숨이 차서 헉헉 거리고 가슴이 터지려고 합니다. 그것은 왜냐, 자기 힘으로 날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독수리는 바람을 탈줄 압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2시간, 3시간 공중에 떠있을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기류를 타고 다니지 자기 힘만으로 날지 않습니다. 바람의 힘으로 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보통 날개를 펴서 하늘 날아 5천 미터까지 올라간답니다. 만약 참새 보고 5천 미터를 올라가라고 하면 올라가기도 전에 죽어 버릴 것입니다.
   
진짜 신앙생활은 독수리가 창공을 날듯이 하는 것입니다. 내 힘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셔서 신앙의 창공을 날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독수리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힘으로 창공을 날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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