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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이웃의 그릇을 빌리라 (왕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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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그릇을 빌리라 (왕하 4:1-7)

빚쟁이는 '빚을 준 이'를 뜻할 때가 많지만 '빚을 진 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빚쟁이가 찾아올까 겁내는 이는 돈을 빌린 채무자요, 반면에 빚쟁이가 도망갈까 겁내는 이는 돈을 빌려준 채권자입니다. 경제 침체가 오래가다 보니 빚을 진 이도 빚을 준 이도 힘들어 합니다. 빚잔치를 해야 할 처지에 내몰리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금값이 1700선 아래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금값은 주식가격과 반대로 움직여 왔으나 최근 세계 증시와 금값이 동시에 하락세를 기록하며 금의 전성기도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환율이 급등하여 한국에서 보내는 연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분들을 답답하게 합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분들 중에 경기가 영 좋지 않다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실직수당을 타지만 언제까지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염려를 합니다. 페이먼트를 제때에 하지 못하여 차압의 위기에 있거나 아예 페이먼트를 포기한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에 집에서 빚을 졌었기에 그 고통을 어느 정도 압니다. 돈을 빌려준 아주머니가 안방에 들어와 누워 버립니다. 돈을 줄 때까지 안 나가겠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 모습을 멀건히 지켜보아야만 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내용은 다르더라도 나름대로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물만 흘리고 있어야 합니까?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을 하고 있어야 합니까? 이런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본문에도 보니 딱한 처지에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구나 남편은 큰 빚까지 남겼습니다. 빚을 준 사람은 갚으라고 계속 독촉을 하고 만일 갚지 않으면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생계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절박한 상황에서 여인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성경은 그저 옛날이야기나 교훈집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성경적인 원리는 변함이 없기에 그 원리를 알고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여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지만 말씀을 인하여 소망을 갖고 말씀을 인하여 주님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토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마태복음 28장 후반부를 설교하면서 마태복음을 마쳤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열한제자를 갈릴리로 부르십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친 곳입니다. 반면에 갈릴리는 가룟 유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의 고향입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을 처음 부르신 곳이요, 그들과 삼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많은 추억이 깃든 곳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삼일 길을 가면서 제자들은 생각이 많았을 것입니다. 

지난 한 주일 동안 너무도 많은 일이 벌어졌고 주님 앞에 설 수 면목이 없을 만큼 부끄러운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여인들이 와서 주님이 살았다고 하니 의심하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시려는 것은 그들을 책망하고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통하여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명령이 19-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Great Commission, 즉 '위대한 사명' 또는 '위대한 위임'이라 불리는 이 구절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를 삼기 위해서 가야하고, 복음을 전하고 믿게 해서 세례를 베풀어야 하고, 말씀으로 잘 가르쳐 양육해야 합니다.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주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제자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단지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관계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 사역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시대를 따라 택함을 받은 제자들의 섬김을 통하여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자도는 역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속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면 당연히 영적 전쟁이 있게 마련입니다. 싸움의 궁극적인 대상은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흘러도 늘 동일합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입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자도는 또한 전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 삼는 사역은 신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도 있었습니다. 열왕기서에 의하면 엘리야의 제자가 엘리사였고, 엘리사도 선지자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속에 만연해 있던 불신앙과 혼합주의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언약사상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데올로기였고 많은 이스라엘의 왕들이나 지도자들이 그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밖에서는 시돈과 아람이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침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외부의 적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징계하셨고, 언약에 충실할 때는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엘리야나 엘리사는 영적 전쟁을 외롭게 치러야만 하는 장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열왕기하 4장은 엘리사가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이적을 통해 해결해 주는 4가지 사건들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어떤 지위나 권력을 가진 대단한 인물들이 아니라 고난 중에 있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가정도 때로는 고난을 당합니다. 성도의 삶에도 물질적인 필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엘리사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죽은 자를 다시 살리기도 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 할 수 있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이러한 이적 속에는 주의 백성들을 항상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과부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엘리사를 찾아온 여인의 남편은 엘리사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정이 큰 빚을 지게 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제자는 엘리사가 인정할 정도로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었기에 빚을 진 것은 분명 방탕함이나 사치스러움 때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엘리야 때 임했던 가뭄, 그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던 사회적인 배경으로 인해 하나님의 선지자나 제자들조차 먹고 살기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 데다 빚쟁이에 의하여 자칫하면 두 아들마저 빼앗길 상황에 처했습니다. 사실 과부는 고대 세계에서 생존의 위협을 가장 많이 받던 계층이었기에 구약 성경에서는 그들을 돌보라는 권면이 많이 나옵니다. 

신명기 10장 18절에는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신다고 합니다. 

신명기 14장 29절에는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빚 때문에 두 아들을 매정하게 종으로 삼으려는 빚쟁이의 모습 속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히 행하던 당시 이스라엘의 불경건한 풍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명령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지만 이 가정을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과부의 위기가 해결됩니다 

큰 위기를 만난 여인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풉니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찾아가 딱한 사정을 호소합니다. 엘리사는 과부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무엇인가 돈이 될 만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자기 집에 작은 기름 한 병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름은 보통 유대인들의 가정에서 음식과 연료로 사용하는 올리브기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절박한 상황에 있는 이 여인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가지고 있는 기름 한 병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엘리사가 과부에게 이르기를 이웃집에 가서 빈 그릇을 빌려 오되 되도록 많이 빌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두 아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고 합니다. 과부는 엘리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엘리사가 시킨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동네에서 빌릴 수 있는 그릇은 다 빌려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문을 닫고 과부는 아들들이 들이대는 그릇마다 기름을 따라 붓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기름이 한 병 밖에 없었는데 부어도 부어도 기름은 계속 나옵니다. 마침내 빌린 모든 그릇에 기름이 가득 채워집니다. 과부가 아들들에게 그릇을 더 가져오라고 하지만 그들은 남은 그릇이 더 이상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흐르던 기름이 곧 멈춥니다. 과부는 즉시 엘리사에게 찾아가 이 모든 일들을 고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당시 기름은 생활필수품이었기에 내다 팔기에 용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인이 빚을 모두 갚고도 살 길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풍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기름을 붓던 그 방안에 엘리사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합니다. 이 스토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믿음이 이적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파산 상태에 빠진 여인에게 살 길을 제공하십니다.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엘리사의 개인적인 능력보다 신실한 백성을 곤경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빈 그릇들을 빌려와 집에 있는 한 병의 기름으로 채우라고 엘리사가 지시하였을 때, 여인과 두 아들은 남아 있던 한 병의 기름이 자기들을 구원할 도구가 되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왔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지식적으로 알 만큼 아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자신들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줄 능력의 근원임을 깨닫지 못하기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선반 위에 있는 그릇과 같이 버려져 있습니다. 물론 기름병 그 자체로는 여인의 가정을 구원하는 능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여인의 믿음이 더해져야 했습니다. 만약에 여인이 엘리사의 말을 듣고도 빈 그릇을 가져와 무엇을 하겠느냐고 불평만 하며 팔짱만 끼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쓸데없는 일만 시킨다고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요, 여인은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을 것이요 그의 두 아들은 종으로 팔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집집마다 다니며 빈 그릇을 열심히 빌렸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한 병의 기름을 그릇마다 부었습니다. 그 결과 그릇마다 기름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기름을 부으면서 여인은 한편으로는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 이적은 물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그와 더불어 여인의 무조건적인 순종이 하나님의 능력의 씨앗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빈 그릇을 준비해서 거기에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에 순종한 이 여인의 모습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항아리에 물을 부어 포도주를 원하는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한 하인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능력을 베푸십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 똑똑한 척 하면서 불순종하지는 않습니까? 여인의 믿음은 빌려온 그릇의 크기와 숫자에 비례합니다. 우리의 작은 믿음이 하나님의 부요함을 제한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믿음이 클수록 우리의 삶도 더 부요해질 것입니다. 믿음의 크기만큼 하나님의 복이 우리가 가진 기름병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 주시는 분입니다. 

남편을 잃고 빚더미에 눌린 상황에서 여인이 찾은 것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고 나왔을 때 하나님은 그 여인의 짐을 다 덜어주셨습니다. 엘리사를 통해 여인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어떤 짐을 가지고 나옵니까? 

시편 68편 19절을 보면,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다윗은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의인들에게는 즐거움을 주십니다. 광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고아, 과부, 외로운 자, 갇힌 자들과 같이 약자의 편이 되어 그들을 돌아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짐을 져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기에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건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다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마 11:28). 

아무리 무거운 짐을 많이 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로만 오면 참된 안식과 자유와 평강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점잔을 빼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울며 애통할 때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주님을 섬길 때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2) 우리의 필요를 풍성하게 채우시는 분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광야에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때를 따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셨습니다. 40년이라고 하는 긴 광야 생활에서도 그들은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 34편 10절은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었음에도 그들이 불평을 한 것은 무엇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감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그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가져도 절대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누가 부족함이 없습니까? 모든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만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 부족함이 없습니까? 주님이 넘치는 자비와 사랑을 양들에게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얼마 동안 부족함이 없습니까? 일평생 주님과 더불어 사는 동안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를 찾고 계십니다. 

엘리사는 여인이 가지고 있던 약간의 기름을 가지고 기적을 베풀어 빚을 갚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여인이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을 때 기름을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었다는 시인의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의 없는 것이, 부족한 것이, 약한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없음' 속에서도 우리의 부족함과 약함 속에서도 '있음'과 '기회'를 찾아내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여겨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빈들에서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막 6:38)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기름을 붓는 대로 기름이 늘어나 빚을 다 갚고도 남는 기적은 예수님이 빈들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000명을 먹이고도 남긴 이적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을 통해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넘치도록 후하게 공급해주시는 원리를 보면서 우리의 삶의 필요를 나누어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빌 4:19)을 전심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드리는 모든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풍성히 공급하시고 만족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을 당하거나 생활의 어려움이 계속 될 때 판단능력을 잃기 쉽습니다. 때로는 그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난의 이유를 묻기보다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순간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세우시고 인격을 변화시키는 기회로 삼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난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점입니다. 고난이 인생의 여정가운데 위기이기도 하지만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가 됩니다. 시련의 날에 성도의 바른 자세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시련이 왔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지혜를 주시도록 간구하지 않고 계속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은 바다 물결과 같다고 합니다. 바다 물결은 계속 열심히 출렁거립니다. 많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맴돌 뿐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그는 이미 그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이상으로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리라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여 하나님의 복에 동참할 것을 권고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호소하여 응답을 받은 여인의 믿음을 본받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적인 뜻에 따른 것이지만 또한 성도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여인의 참된 믿음이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나는 이적의 역사를 이루어 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우십니까? 힘드십니까?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기쁨보다는 근심과 불평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과부의 재정적인 '약함'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 12장 10절에서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단의 가시로 이해하는 한편 그 약점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약함의 자랑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연약함을 자랑하는 신자를 겸손하고 능력 있고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약한 것들을 자랑하고 주를 위한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하고 크게 기뻐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고난당할 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조용히 귀를 기울일 때‘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놀라운 말씀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약함이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고난이 없을 수는 없지만 다윗과 같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실감하며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드리시는 주님의 참된 제자요 증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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