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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자의 삶 (창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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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의 삶 (창 12:1-9)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 불, 전기, 양식, 의복, 거처할 집, 요즘은 자동차도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믿음 즉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예배당 안에 우리가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이 건물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가정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든 것은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물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넘치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맙니다. 

여기에 영원한 멸망이 있습니다. 행복 같으나 결과는 불행이 오게 됩니다. 성공 같으나 결과는 실패의 삶이 되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빛이 없는 어두움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곧 어두움의 삶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에“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가리켜 빛을 따라 가는 삶이라 하셨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삶은 곧 빛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빛을 따라가면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이 빛을 따라 살아가면 승리의 영광이 있습니다. 이 빛을 따라 살아가면 행복이 있습니다. 이 빛을 따라 살아가면 삶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그러면 이 빛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삶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을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세우신 신앙인의 모델입니다. 

1. 아브라함은 절대 하나님 우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삶에 대해 히브리서 11장 8절에 기록하기를“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이삭을 얻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에도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 산까지 가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모습이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시간배정이나, 물질사용에 있어서나, 그 밖의 매사에 있어서 언제나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받아 누리는 인간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 대해 신명기 28장 1절~6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인 존 와나메이커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과정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그는 크게 자수성가한 신앙인입니다. 자수성가(自手成家) 라기 보다 신수성가(神手成家)한 사람이라는 말이 정확할 것입니다. 그는 세계에서 백화점 사업을 최초로 착안한 사람으로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도 불립니다. 훗날 채신부장관까지 지낸 그는, 교육사업, 사회사업에 투자했고, 주일학교를 설립했으며, YMCA를 창설했습니다. 

그는 “내가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며, 헌금과 구제와 봉사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절대 의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중국에 시찰을 갔을 때 어느 시골길을 가다가 밭을 가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농부가 쟁기질을 하는데 왼편에는 소가, 오른편에는 청년이 쟁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이 이상한 광경을 본 와나메이커가 농부에게 물었습니다.“여보시오. 왜 사람을 소와 함께 밭을 갈게 합니까? 그 청년이 힘들어 어디 견디겠소?”그러자 농부가 대답을 했습니다.“저 청년은 내 아들입니다. 

내 아들은 예수를 잘 믿는 주일학교 교사인데 작년에 저기 보이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소 한 마리를 팔아 예배당에 건축헌금을 하고 소를 대신하여 밭을 갈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마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걸어가신 주님처럼 소와 함께 멍에를 메고 약속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와나메이커는 크게 감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 신학공부를 시켰습니다. 그가 훗날 중국 복음화의 기수인 성문삼 목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귀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항상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 8절에“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3장 18절에도“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는다는 것은 오늘날 예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보여 지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24절에“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대학교의 모 교수님은 학문적으로도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지신 학자이시고, 또 신앙적으로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장로님이었습니다. 이 교수님이 어느 날 주일예배를 빼먹는 실수를 했습니다. 당시 연구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마감 기일 때문에 논문을 쓰시느라고 주일 아침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을 보니까 도저히 주일예배에 갔다 와서는 논문을 완성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논문을 다 완성시켜 놓고 저녁에 설교하시기로 약속된 교회에 가서 설교는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다시 컴퓨터를 켜고 논문을 마무리 하려고 보니까 주일 한나절 내내 열심히 썼던 그 논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분명히 파일을 저장 했는데 말입니다. 그 교수는 원래 과학기술원에 계셨던 분으로 컴퓨터에 대해서는 아주 익숙한 전문가였습니다. 그러한 분이 실수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어쨌든 주일예배도 빼먹고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면서 완성해놓았던 논문인데 그냥 사라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그 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다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논문을 다시 쓰면서“장로가 되어 가지고 일 때문에 주일예배 빼먹었다고 하나님께서 슬쩍 치워버리셨군요. 하나님 참으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가장 값진 시간입니다. 예배 시간은 내 영혼이 음식을 먹고 새 힘을 얻는 귀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같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주일 예배를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주일에는 육신의 양식이 내리는 날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던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매일 이슬처럼 하늘로서 내리던 만나가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6장 26절 말씀에“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 칠일은 안식일인즉 그날에는(만나가) 없으리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에도 만나를 얻고자 광야에 나간 사람들을 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3. 아브라함은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창세기 18장 1절~8절에는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낯선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이것이 나그네에 대한 아브라함의 생활모습입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대접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삶에 대하여 히브리서 13장 2절에는“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며느리를 구하되 그 조건을 섬김에 두었습니다. 섬기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이 찾는 며느리의 조건이었습니다. 창세기 24장 11절~14절에는 아브라함이 늙은 종이 주인인 아브라함의 며느리 감을 찾고자 기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조건이 단 한 가지 섬기는 사람입니다. 예쁜 얼굴을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가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단 한 가지 섬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 약대를 성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섰다가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영혼 건강을 점검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최근 한두 달 안에 누구를 대접한 일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람의 삶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 되어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신앙 체질이 산성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땅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이 메말랐다는 증거입니다. 산성화 되어버린 땅에는 어떤 곡식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습니다. 절대 풍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산성토양의 농사는 모두가 헛수고에 끝나고 맙니다. 

잠언 11장 24절~25절에는“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복을 주시는 사람은 한결같이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을 얻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삶의 승리를 얻을까요? 사람을 얻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모든 삶은 인간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존귀하게 됩니다. 으뜸이 됩니다. 마가복음 10장 44절에“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하셨습니다. 섬김은 신앙생활의 꽃입니다. 

4. 아브라함은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그의 아내 사라가 90세 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소망에 대하여 로마서 4장 18~19에 기록하시기를“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기전 먼저 소망을 주셨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라, 바닷가의 모래를 보라 이처럼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귀한 것을 주시기전 먼저 소망을 주십니다. 소망을 주신 후 그 소망을 위해 사모하게 하시고, 기도하도록 하신 후 그 소망을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어떠한 경우도 낙심하면 안 됩니다. 낙심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철강 왕 카네기의 사무실 벽에 걸린 볼 폼 없는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림 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나룻배에 노 하나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초라한 그림이었습니다. 그 배는 썰물에 밀려 황량한 모래 사장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카네기는 이 그림을 더없는 보물로 여겼습니다. 그는 춥고 배고팠던 청년 시절에 이 그림을 만났습니다. 

청년 카네기는 나룻배 밑에 작가가 적어 놓은 글을 읽고 희망을 품었습니다.“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카네기는 이 글을 읽고 눈을 번쩍 떴다고 합니다. “그렇다. 지금은 비록 춥고 배고픈 역경의 나날이지만 밀물이 밀려오는 그 날을 기다려야지”하고 마음의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글귀는 카네기에게 시련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부호가 된 카네기는 훗날 자신에게 소망과 용기를 심어준 나룻배 그림을 고가에 매입하여 자신의 사무실 벽에 걸어놓았던 것입니다.

동일한 환경이지만 한 부류의 사람들은 썰물에 밀린 처참한 배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또 한 부류의 사람은 밀물이 밀려오는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추어진 소망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와 인내로 나아가면 반드시 그 소망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사회의 가장 암흑기는 월남 전쟁 때였습니다. 물론 전쟁 중에도 국론이 분열되어 갑론을박 하였으나 월남전에 패하게 되자 그 이후에는 미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학원 소요는 극에 달했으며 더러운 옷을 입고 그리고 장발 맨발로 거리를 헤매는 비행 청소년들과 히피들이 어디에나 득실득실 거렸습니다. 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꿈과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꿈을 잃은 미국 국민은 3류 국가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도날드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난 이후로 미국은 급속도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레이건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미국 국민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 줄 수 있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항상“미국은 강하다.”라고 국민들에게 선언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반복해서 새롭고 강한 미국, 희망찬 미국, 부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 주었고 그 꿈이 급속도로 미국인들과 미국사회를 변화시켜 활기차고 생기에 넘치며 자신감에 찬 미국인들로 회복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처럼 꿈을 꾸는 백성은 어떠한 위기와 절망에서도 절대로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25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소망은 현실이 되어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을 절대 우선순위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되 절대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되 철저한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섬김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인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남다른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지금도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삶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복된 신앙이 우리들의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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