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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짜? 가짜? (벧후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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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짜? (벧후 2:1-11)


가난하지만 행복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무엇 하나 줄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넘쳐흐르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런 그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덮쳐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된 겁니다. 
그렇게 누워있는 아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남편은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러 날을 골똘히 생각하던 남편은 마침내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남편은 이웃에게서 인삼 한 뿌리를 구해 그것을 산삼이라고, 꿈을 꾸어 산삼을 구했다고 아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남편은 말없이 잔뿌리까지 꼭꼭 다 먹는 아내를 보고 자신의 거짓말까지도 철석같이 믿어주는 아내가 너무나 고마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삼을 먹은 아내의 병세는 놀랍게도 금세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기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아내를 속였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내의 건강이 회복된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미소를 띠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는 인삼도 산삼도 먹지 않았어요. 당신의 사랑만 먹었을 뿐이에요.”
세상에는 진실보다 아름다운 거짓이 있습니다. 거짓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랑이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 거짓 선생과 선지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범적인 교회에서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아하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수온 조절이 되는 수영장을 제공했고, 도시 빈민 아이들이 탈 수 있도록 말을 제공했으며,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노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동물 보호소와 의료시설, 외래 환자 진료시설, 약물 중독 재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 목사의 탁월한 공헌을 표창했습니다. 

“그는 희망을 주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는 곤고한 사람들에게 헌신되어 있습니다. 그는 죄수들과 청소년 범죄자들을 상담했습니다. 그는 취업 센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휴식의 집과 정신 지체아들을 위한 집도 열었습니다. 그는 병원도 세웠습니다. 그는 직업 훈련 센터도 조직했습니다. 그는 무료 법률 상담도 했습니다. 그는 마을 회관도 설립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귀신을 내쫓고 기적을 행하며 병을 치유하기도 했습니다.”

고상한 말들, 강력한 영적 지도자와 그의 교회를 보여주는 듯한 긴 이력서, 그 교회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 교회는 죽었습니다. 말 그대로 죽었습니다.
1978년 11월, 캘리포니아 주 가이아나의 존스 타운에 위치한 인민사원에서는 하루아침에 780구의 시체가 생기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 내막은 이러합니다. 존스 타운은 이교 집단의 거주지로서, 사건이 있던 날 교주인 존스 목사는 신도들에게 이런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며, 죽는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것과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더욱 아름다운 만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이 놀라운 비밀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설교가 끝나자 신도들은 저마다 죽기를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곧 죽음의 의식이 치러졌는데 먼저 80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독극물이 첨가된 음료수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어른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저항 없이 그 독을 마셨습니다. 저항하는 자들은 강제로 마시게 했습니다. 
잠시 후 존스 타운은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으로 가득 찼고 얼마 안 가서 그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던 교주 존스 목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땅!”
그는 자기 머리에 총을 대고서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렇게 인민사원의 교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목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780명의 동반 자살이라는 결과로 끝이 난 이 사건의 직접적인 동기는 이렇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존스 타운의 입구에서 미 하원 의원인 레오 J. 라이안과 그의 일행이 살해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존스 타운에 수백 명이 강제로 억류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진상조사를 위해 파견된 것이었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존스 목사의 사주를 받은 테러범들에게 총 세례를 받고 만 것입니다. 
결국 존스 목사는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날 것이 두려워, 자신은 물론 아무 것도 모르는 신도들까지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종교적인 사기꾼들이 양의 탈을 쓰고 하나님의 집에 거합니다. 그들의 외모에 속지 말고 그들의 유창한 말에 압도되지 마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은 우리들을 미혹키 위해 지금도 온갖 술수를 다 꾸며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로 인해 우리의 영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또한 혹시라도 사울 왕처럼 스스로 거짓 예언자를 찾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결단코 안 될 것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와 이단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지 30년도 지나지 않아 벌써 교회 안에 이 거짓 무리들이 나타나 베드로가 이를 경고하고 나설 정도입니다. 그만큼 악한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온 힘을 다 쏟습니다.

교회 밖으로부터는 교회에 대한 온갖 비난과 더불어 모욕과 핍박이 계속됩니다. 하지만 교회 밖의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우리가 각오하고 있는 바입니다. 
보다 큰 문제는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이 거짓 무리들입니다.
예전에는 장막 성전이라고 하더니 여기서 분리해 나온 이만희라는 사람에 의해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소위 신천지가 지금 교회를 매우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고 아주 공격적으로 교회를 향해 그들 말대로 추수에 나서고 있습니다. 각 교회에 “신약 예언과 실상 대성회”를 연다고 선전문을 보낼 정도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는 이들은 슬그머니 교회 안으로 들어와 성도들의 환심을 끌어 모은 다음 이런 저런 목회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아 목사를 배척하게 하고 자기들이 세운 가짜 목회자를 내세워 교회를 소위 추수하는 이런 전략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소위 추수꾼을 정식 신학교에 보내어 정식 목회자로 교회에 침투시키는 전략을 쓰기까지 합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무엇보다도 이들의 정체는 멸망하게 할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목적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들을 영원한 죽음의 멸망의 구렁텅이로 이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이끌어 들이려고 할 때 “나, 너 죽이려고 왔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철저히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을 해야 됩니다. 자신의 정체를 숨깁니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은 물론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기꾼의 말이 정말 누가 들어도 그럴듯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혼을 다 빼놓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다단계가 바로 그렇지를 않습니까? 들어보면 부자가 안 될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금방 뭐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단계에 들어가 부자가 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됩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다단계에 이끌려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서울 마천동에는 이런 다단계에 발목을 잡혀 쪽방에서 생활하는 대학생들이 자그마치 5000명이나 된다는 충격적인 보고까지 나왔습니다. 그들이 다단계의 합숙 훈련을 며칠만 받고나면 다 세뇌가 돼서 누가 바른 말을 해도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력하게 부인한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교육과 설득,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자신에게도 길이 열릴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단들이 꼭 그렇습니다. 그들 속에 들어가 한번 두 번 어울리다 보면 그들이 다 천사처럼 보입니다. 그들 말만이 진짜로 여겨집니다. 소위 종교적인 세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하여 악한 영의 역사가 또 그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보면 주를 부인합니다. 결국은 예수가 아닌 자기들이 진짜 메시야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특별 계시를 받아서 그들만이 하나님의 바른 뜻을 안다고 하는 그 말이 이제는 그대로 믿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게 마련입니다. 결국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사단이 우리를 미혹케 하는 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단자들은 마치 발람과 같은 자들입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케 해서 그들이 이방여인과 부정한 관계를 맺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처음에 나귀를 통해 발람의 악한 의도를 책망하시고 꾸짖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많은 금은보화에 정신이 빼앗긴 나머지 불의의 삯을 위해 그 길을 돌이키지 않았던 것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축복하게 하니 미인계를 쓰도록 계략을 알려주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이단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미혹케 되는 것에서 겨우 빠져 나온 자들에게도 집요하게 다가가서 유혹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은 달콤한 말로 유혹하지만 결국 광풍에 안개가 밀려나게 되면 물이 없는 샘인 것이 탄로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자유가 아닙니다. 이들은 자유를 말하지만 실제는 멸망과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 마련된 곳은 바로 형벌의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단들은 처음에는 교회에서 출발합니다. 그들도 성경을 가지고 있으며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 전혀 다른 모습을 띄게 됩니다. 개가 자기가 토했던 곳에 도로 돌아가는 것처럼 이들은 이내 본색을 드러내며 복음을 속히 떠나게 되는데 나중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탐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탐심은 호색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하나님을 아예 모르는 불신자들로 남아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을 뻔했을 것입니다. 불신자로 남아 있다면 적어도 성경의 일을 훼방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을 거짓 증거하여 성도들을 올무로 끌어가는 죄는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 그리고 이단의 배후에는 악한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이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여 성령의 베푸시는 은혜 아래 성령으로 능력으로 충만하게 될 때 어떤 악한 마귀의 계략에도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위해서 우리는 더욱 말씀과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강력하게 말씀하신 그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심으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이 악한 세상을 날마다 이기고 또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그가 당하는 시험에서 건지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지만 불의한 자의 잘못된 행실은 언제든지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기로 작정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살리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실 때에도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참 의아한 느낌을 받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천사들이 소돔 성을 찾아 롯의 집에 머물기로 합니다. 그랬더니 소돔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 나그네들을 내 놓으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럴 때 롯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이렇듯 소돔 성의 음란한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약혼자가 있는 자기 딸들을 대신 내주겠다 하며 타협하고자 했던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 롯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애굽에서 돌아와 많아진 짐승 때문에 땅이 좁아 서로 다투게 될 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너 가고 싶은 곳을 먼저 정하라고 하니까 좋은 땅을 지금까지 자기를 길러주고 보호해준 삼촌에게 양보하려고 하지를 않고 먼저 자기가 그 땅을 차지한 롯을 보며 어찌 그가 의롭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소돔 성에서 벗어날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기 보다는 거기까지 가기는 너무 힘드니 가까운 소알 성으로 가게 해달라고 하는 철딱서니 롯을 어찌 의롭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그 후에는 술에 흠뻑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었던 그 모습을 보며 어찌 롯을 의롭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롯의 마음에 관해 무언가를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베드로에게 성령을 통하여 계시해주셨습니다. 소돔에 사는 동안 롯은 그가 목격하는 악으로 인해 날마다 마음속으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매일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합니다. 롯의 마음이 그러했고 그러한 롯을 하나님은 의로운 자로 기억되기를 원하셔서 이제 저를 의롭다고 칭하십니다.

오늘 믿음 안에 사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본바탕을 생각해보면 어찌 우리가 의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한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어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예수를 나의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백성 즉 성도라 불러주십니다. 우리의 속사람이나 우리의 행실 어느 하나 우리가 성도라 부름받기에 너무도 부족한 모습들입니다. 한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양자의 영 즉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를 위한 사건으로 믿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전적인 은혜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믿음으로 반응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악한 무리들은 우리들이 율법을 준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베소서 2:8~9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어디까지나 구원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요 따라서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한데 악한 마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은혜로 받은 구원을 계명으로 말미암아 다시 잃는단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입니다. 예전에 저희 때는 대학생들은 다 학교 배지를 달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잊고 배지를 달지 않고 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대학생이 아닙니까? 하지만 반대로 대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비록 배지를 달고 있어도 여전히 가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인민사원의 목사 존스처럼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해도 그건 가짜입니다. 

아무리 선해보여도 그 속에는 늑대의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여 주셔서 성도라 하나님의 자녀라 불러주시지만 그런데 우리에게는 세상을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기에 성령 하나님께서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도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씀에 굳게 서서 이 타락한 세상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중풍병자를 친구들이 침상에 메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고 그를 고쳐주셨던 것처럼 오늘 죽음의 사슬에 매여 있는 자들을 풀어 자유롭게 하는 일에 힘을 다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요청하지만 이단은 이런 가르침을 멸시합니다. 오히려 이들은 멸망 받은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처럼 육체의 더러운 정욕을 따라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거룩을 명하시는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포악하며 고집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들은 겁도 없이 영광스러운 자를 모욕하기도 합니다.

잠언 30:8은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발람처럼 탐욕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정도를 넘어서 돈에 매입니다. 그러다 보면 돈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일도 마다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가진 자를 무턱대고 욕합니다. 돈을 가지게 되면 가진 것이 적은 자를 무시합니다. 결국 그들의 심성이 그만큼 메말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 죽음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천사들은 이들을 송사하지 않습니다. 천사들이 자신을 훼방하는 이단의 무리를 주님께 송사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갚아주심을 바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가만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날 아무리 이단의 무리가 득세하고 승리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시며 분명 그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단은 겉으로 볼 땐 그럴싸해 보여도 그 속셈은 이성 없는 짐승과도 같이 포악합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진리의 말씀을 훼방하며 심지어 훼손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들은 많은 잘못을 범하는 데 결국 그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굳세지 못한 영혼을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굳세게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처럼 저주에 가득 찬 말을 이단을 향해서 하는 것은 그가 이단을 많이 경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 안에 깨어 있어 이와 같은 이단의 무리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다시 깨어 일어나십시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우리들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달아 깨어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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