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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나바와 하나님의 은혜 (행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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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목사님이 어느 여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집이 참 좋아 보여서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이 참 좋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저희 남편이 아주 성실한 사람이라서 열심히 일한 덕분입니다.” 

아들이 쓰는 방을 보았더니 벽에 상장들이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들이 공부를 참 잘하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집사님은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집안의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늘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내친 김에 목사님은 한 마디 더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집사님은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도 많으십니다.” 그런데도 그 집사님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물이야 부모님을 잘 만난 덕분이지요.”

잠시 뒤에 그 집사님은 다과를 준비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함께 간 사람들도 덩달아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집사님을 보면서 목사님은 넌지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는 다과를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사는 존재랍니다. 제가 다시 물어볼 테니까 이번에는 잘 생각해서 대답해 보세요.”

그러면서 목사님은 차례차례 다시금 물어보았습니다. 집사님도 목사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바르게 대답했습니다.

“이 집이 참 좋군요.”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군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집사님은 남편도 잘 만나셨고, 아들도 잘 두셨고,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이 많으십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누구관대 몇 번이나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곁길로 나갔을 때에도 이처럼 줄기차게 은혜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을 좀더 깊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속에는 은혜로운 주님의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서나 여러 가지 사건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은혜는 우리 주님의 미들 네임(중간 이름) 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 은혜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은혜는 성도의 영적 삶에 자양분 역할을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일어나고, 믿음이 굳건해야 영적 전투에서 넘어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의 장소는 예루살렘에서 450km 떨어진 곳에 있는 안디옥입니다. 안디옥은 로마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서 스포츠와 환락의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와 데오빌로가 태어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노스)’ 이라 불려졌으며, 스데반의 순교 후 핍박을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피난해 왔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모범적인 교회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지금 까지 복음 전도는 주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에게 한정되어 있었으나, 안디옥에서는 유대인 뿐 아니라 순수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선교의 관점에서는 실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22절).

원문은 ‘듣고’ 에 해당하는 동사가 초두에 나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선교한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들은 사실 자체를 강조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비록 어려운 가운데 있었으나 여전히 모(母)교회(Mother church)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하여 젊은 안디옥 교회를 돌보도록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파송한 것은 개종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염려,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의 중요성을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23절입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크고 광대하여 아무리 연구해도 다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몇 가지 모습을 상고해 봅시다. 
1.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 받은 사람에게서 보여진다

23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

안디옥에 파송된 바나바는 그곳의 성도들에게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24절) 바나바의 눈에는 안디옥 성도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들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여기 바나바가 보았던 하나님의 은혜라 함은 성도들 위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과 효과를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그 은혜가 사람의 영혼에 만들어내는 놀라운 변화를 통하여 보여집니다. 우리 주변의 성도들 중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의 모습과 받은 후의 모습을 비교해 보십시오. 은혜 받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어두움에서 빛으로의 변화입니다. 증오와 불화의 터널을 빠져나와 사랑과 화목의 광장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죄책(罪責)과 죄의 오염으로부터 거룩과 정결함으로, 그리고 불신과 교만으로부터 확신과 겸손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탄의 모습을 닮아가던 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해갑니다. 죄로 가득찬 삶으로부터 정결한 삶으로 변화해 갑니다.

이것은 성령의 부으심과 임재 없이는 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이런 엄청난 변화의 삶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 받은 사람의 육체 위에 미치는 경건한 영향력을 통해서도 분명히 보여집니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육체는 영혼을 위한 행동 수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救贖)받는 것은 육체와 영혼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둘 다를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육체와 영혼 위에 함께 부어집니다. 우리의 온 몸의 지체는 주님의 은혜로 인해 주님께 영광돌리는 도구로 변화되어 갑니다.

우리의 눈은 주님의 사역을 찾고 주님의 말씀을 숙독합니다. 우리의 귀는 주님의 진리와 명령을 경청합니다. 우리의 혀는 주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의 발은 주님의 법도를 따라 달려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은 선행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그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은혜 받은 성도는 자신의 몸이 성전임을 알고 더욱 거룩한 몸을 유지하게 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삶 속에 나타나는 실제적인 증거들을 통하여 밝히 드러납니다. 과거엔 목이 곧은 반대자요 반역자이었으나 이제는 친구요 자녀입니다.

옛것은 지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믿음과 순종과 사랑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느 교회 젊은 집사님이 담배를 끊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집사라는 사람이 담배도 끊지를 못한대서야 체면이 서질 않는다고 생각한 끝에 고심하다가 여름 휴가를 기해 보따리를 꾸려가지고 철원에 있는 모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자기 생각엔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담배를 끊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남들 다 받았다고 좋아하는 성령도 못 받고 담배는 여전히 피고 싶어서 숲속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 담배를 피우곤 했습니다. 피우긴 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처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왕에 결심하고 올라온 걸음이니 도중에 내려갈 수도 없고 해서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내버려라 내버려라” 는 음성이 들려 오더라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뭘 내버리라는 걸까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져보니 바지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더랍니다. 그는 마음으로는 변화를 원했지만 옛것을 버리지 않고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꺼내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위 위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한탄강 물과 함께 떠내려간 담배갑과 라이터처럼 그의 희미하고 흔들렸던 지난날의 신앙생활도 함께 떠내려갔습니다. 새로운 삶이 그에게 찾아 왔고, 그는 찬송하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날부터 담배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은혜 받은 자는 성질과 말과 행동이 완전히 새롭게 변합니다. 주위에서 이 사람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에게서 이런 은혜의 증거들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서도 이런 은혜의 증거들이 현저히 드러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에게 특별한 기쁨의 원천이 된다

23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그곳의 성도들에게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들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 생활 하고 있는 성도에게 특별한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는 복음이 확산되는 것을 듣고 안디옥을 방문했고, 안디옥 성도들의 모임과 삶 속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들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바나바의 기대는 충족되었습니다. 

그는 안디옥 성도들의 기쁨의 교제 안에 참여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 생활 하고 있는 성도에게 특별한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바나바는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인(오이코스)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수혜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바램이 없습니다.

굶주린 사람이 배부르게 먹는 것을 보는 기쁨이 있고, 노예가 자유함을 받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이것들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일을 사람들의 영혼에 역사합니다. 죄에서 거룩으로, 위험에서 안전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우리의 영혼을 옮깁니다. 성도가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이 불못의 형벌로부터 건짐 받는 것을 보는 기쁨은 경험한 사람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헌신적이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시온의 번영을 기도하며 기뻐합니다.

예배 자리와 구역의 모임에 새로운 영혼들이 줄을 이어 찾아오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일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교회 사역의 영역이 세상을 향하여 확장되는 것을 보는 것은 성도의 제일의 기쁨입니다.

바나바는 예수님을 인하여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몸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초콜릿과 음료수를 배낭에 챙겨 들고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한참을 걸었을 때 소년은 길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지치고 배도 고파 보였습니다. 그래서 초콜릿을 꺼내 할머니에게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고맙게 받아 드시고 소년에게 웃음을 지어보이셨습니다. 

할머니의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기에 이번에는 음료수를 건네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또다시 웃어 보이셨습니다. 할머니와 소년은 가끔씩 서로를 바라볼 뿐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소년은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몇 걸음 걸어가다 말고 달려가 할머니를 꼭 껴안아드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년의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흘렀다.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소년에게 물었다. “오늘 무엇을 했기에 그렇게 행복해 보이니?” “오늘 하나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 엄마도 아세요? 하나님은 내가 여태껏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셨어요.” 

할머니의 아들 역시 할머니의 얼굴에 나타난 평화로운 표정을 보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어머니, 오늘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그렇게 행복해 보이세요?”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오늘 공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초콜릿을 먹었단다. 너도 아니? 그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더구나.” 

성도 여러분! 마더 테레사는 하루에 다섯 번만이라도 미소를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바뀔 것이고 쉽게 하나님을 뵐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서로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은혜는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는 자’ 에게 부어진다

23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안디옥 교회를 찾은 바나바가 그들에게 권면한 주제는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는 자’ 위에 부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우리의 주의를 끄는 달콤한 유혹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세상 문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세속으로 끌고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굳건한 마음’ 을 가지고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영접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유일한 안내자입니다.
주님의 성령님과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분이며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주님의 백성과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천성 가는 길에 우리의 동반자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 붙어 있는 방법을 “굳건한 마음으로”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음에 분명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또는 ‘온 마음으로(with all their hearts)’ 라는 뜻입니다. 주님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는 거룩한 열심, 굳은 결심, 변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주님께 확고부동하게 늘 헌신하고 있으라는 권면입니다.

왜 이런 권면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새가족에게 많은 박해와 시험들이 있을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분명한 목적을 정하여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이 권면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 어디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확실히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남녀노소,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평신도나 지도자나 예외가 없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요!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하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깊고 보배로운지요! 그리고 이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복된 자인지요!

하나님의 은혜는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는 자’ 에게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굳건한 마음으로 붙어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이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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