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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시( - )를 살아가기 (시 9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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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 - )를 살아가기 (시 90:10-12)

동영상 -『버킷 리스트』,  

재작년 2월 둘째 주일 오후에 ‘영화 예배’때에 함께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죠? 종합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엄청난 부자인 에드워드(잭 니콜슨)와 자동차 정비사로 단란한 가족과 살아온 흑인 카터(모건 프리먼)가 말기암 판정을 받고 한 병실에 입원하게 됨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서로 비호감으로 싫어하다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공통된 현실 때문에 서로 이해하며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버킷 리스트)을 작성하고 함께 그 일을 시작합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살아있는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들,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 유쾌하게 그려졌으면서도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화의 주제는 ‘인생의 의미’, ‘삶의 기쁨’, ‘가족의 의미’, ‘우정’, ‘삶의 퉁찰’, 그리고 ‘죽음과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무덤은 눈 덮힌 히말라야의 산꼭대기가 됩니다. 

여러분, 인생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주어진 질문입니다. 

몇 주 전, 추석 연휴를 지내고 어머님 1주기 추도일을 맞이하여 산소에 가서 형제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묘소에 풀뿌리들이 깊이 박힌 것들이 있어서 정리하며 부모님 묘비를 다시 보았습니다. 묘비에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삶이 숫자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931.3.24.-1989.7.27.”, 
“1937.12.14.-2010.9.16.”, 

보통 묘비에 기록되어 있는 두 개의 날짜, 돌아가신 분의 출생일과 사망일, 그 날짜 사이에 표시되는 기호가 “대시(-)”입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수많은 묘비가 있는데, 그 묘비에는 성경 말씀, 명언, 또는 고인의 업적, 남겨둔 유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각각의 삶은 결국 두 날짜 사이에 일어난 일들로 압축되는 것입니다. 그 두 날짜 사이에 있는 기호, ‘대시(-)’는 그 삶의 기록입니다. 훗날 사람들이 그 묘비의 대시(-)를 보며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살았을까?’, ‘누구를 사랑했을까?’, ‘이 사람의 열정과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가장 큰 실수와 가장 큰 후회는 무엇이었을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태어날 장소, 우리의 부모, 그리고 어떤 시기와 어떤 문화 속에 살지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묘비에 기록될 날짜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름. 다음 주, 다음 해, 또는 몇 십 년 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의 삶은 그분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은 부분을 결정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시(-)’를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0편은 모세가 지은 유일한 시요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 앞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40년을 행진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자기 백성들을 이끌고 가면서 수없이 많은 자기 백성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백성들이 죽으면 그들을 모래사막 속에 파묻고, 또 걷다가 또 죽으면 누군가를 파묻고 가고, 또 죽으면 누군가를 파묻고 갑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친구들, 동족들, 사랑했던 백성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모래사막 속에 파묻고 가면서 모세는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무슨 말입니까? ‘인생은 너무나 짧다’는 말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에 비해 이 땅에서 잠간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얼마나 허무합니까? 

사람이 40고개를 넘으면 시간이 빠르다고 느낍니다. - 40 :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50 : 뛰어갑니다.  60 : 날아가는 것 같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 ‘세월이 날아간다’고 한 것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5절)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홍수처럼 한 순간에 쓸려 가는 인생입니다. 또한 ‘아침에 잠간 피었다가 저녁에는 없어져 버리는 풀’(5~6절) 로 표현하며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표현했습니다. 모세가 몇 살을 살았습니까? 오래 살았습니다. 120세. 모세 당시에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과 50년을 못살았습니다. 

100년 전 미국의 평균 수명이 50세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면, 여기 많은 분이 안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당대에 그 수준을 알면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라고 한 것은 그 당시에 오래 사는 사람을 표준삼아서 상당히 여유 있게 늘려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과학이 좀 더 발달되어서 칠십을 넘기고 팔십을 넘겨서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왔던 인생을 돌이켜보면 짤막한 인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수고와 슬픔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참 허무하지 않습니까? 

(12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 말씀은 우리의 남은 날(연수)을 계수하는 인생이 지혜로운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젊은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젊은 분들은 많이 남았습니까? 여러분, 지혜로워야 합니다. 젊었다고 하는 것은 살 날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산 날이 얼마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우리가 앞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내 인생이 마지막으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내 생애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 생애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두렵습니까? 걱정과 염려가 앞섭니까? 이 질문은 두려움과 염려를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인생을 아름다운 인생으로 살라고 안내해 줄 것입니다. ‘내 생애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꾸 이 질문을 진지하게 해 보면 우리는 내 삶에 가치있는 일에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 여러분, 이 캠페인을 통해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경험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가정을 하고 우리의 삶의 원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30일 전에, 당신에게 30일의 삶이 남았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살 수 있는 날이 30일 남았음을 알았을 때 무엇을 하셨을까요?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삶에서 4가지의 보편적 원리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4가지 보편적인 원리들은 무엇일까요?

1. 열정적으로 살라 

예수님은 열정적으로 사셨습니다. (요10:10)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은 여러분이 더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더 풍성한 삶을 살 때 비로소 주님께서 바라시는 바로 그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요일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는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캠페인이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 가장 큰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가장 큰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좋아하는 단어는, ‘오늘’, ‘지금’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좋아하는 단어는, ‘나중’, ‘내일’, ‘언젠가’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오늘이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날입니다. 오늘, 바로 이것이 여러분의 삶입니다. 삶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갑니다. 여러분이 알기도 전에 훌쩍 가버립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하고 거룩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금방 30세가 되고, 40세를 넘어 50세에 도달하고, 60세까지 나이를 먹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굉장한 속력으로 달려갑니다. 이제 여러분은 70세에 이르고, 금방 80대로 갑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금방 점심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됩니다. 잠 잘 시간에 이릅니다. 우리는 곧 90대로 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은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세월은 마치 날아가듯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월이 귀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라는 시간은 귀중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온전히 사랑하라 

두 번째 원리는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사랑하셨습니다. (마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다른 사람을 너희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종반부에는 통장 잔고가 얼마나 남아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마지막에 후회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시간을 가졌어야 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함께 했어야 하는데’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임종을 맞이하는 많은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이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기 원합니다. 

제 아버님이 마지막 시기를 보낼 때, 저희 4남매 중, 저와 막내 동생, 형제 둘은 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10일 전에, 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마친 동생은 사격에서 일등을 해서 포상휴가를 나왔습니다. 저는 불과 몇 일 전에 병장 휴가를 나왔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몇 일 간격으로 두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 두 아들의 학교 졸업 반지를 양손가락에 끼시고는 빼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입관할 때 그 반지를 보았습니다. 아버님의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힘들어 하시면서도 손자녀들을 보고 싶어하셨습니다. 

제 아내에게 ‘당신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될 수 있으면 만나겠다고 합니다. 그래야 장례식에 많은 사람이 올거라고... 장례식에서 좋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요즘 점점 커가는 자녀들을 보며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귀하게 생각합니다. 내 가족, 내 교회 식구들, 내 친구들, 내 동료 선후배들.... 

사랑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언제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하십시오. 장례식에서 사용하는 꽃들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요즘은 장례식에서 국화를 놓아도 일본식으로 거꾸로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놓느냐고 하면 칼자루를 상대쪽으로 주는 것이 예의라나... 일본 사람들만 그렇게 합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화꽃을 영정 쪽으로 놓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장례식에서 아무리 정성껏 꽃을 놓아도, 죽은 사람에게 정성껏 예의를 차려도,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못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그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처럼 온전히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3. 겸손히 배우라 

세 번째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배우셨습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종의 본성을 취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겸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내면의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므로 우리가 내적으로 풍성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으로 살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여러분이 천국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성품입니다. 여러분은 천국까지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오직 성품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더 많이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하고, 영원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품을 세우시는 준비 장소입니다. 


4. 담대히 떠나라 

예수님은 열정적으로 사셨고, 온전히 사랑하셨고, 겸손하게 배우셨을 뿐만 아니라, 담대하게 떠나셨습니다. 이 땅에서 그분의 사명은 확고했습니다. (고후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만일 여러분이 한 달만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목적을 확고히 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에너지를 소비하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없어지지 않을 유산을 남길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을 준비할 것입니다. 이 땅은 여러분의 집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영원을 위해 존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영원을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한번 상상해 봅니다. 오늘 밤에 우리가 마지막 눈을 감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내일 아침 우리는 다시 눈을 뜰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천국에서 눈을 떠야 하고, 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땅에서 죽어서 다시 눈을 떴는데,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원을 남기는 삶을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습니까? 

저는 제가 죽었을 때, 제 묘비에 이렇게 쓰여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 잠든 안정균”...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이 한 달이 여러분의 인생이 변화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한 달이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다운 인생으로 변화되시는 기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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