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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고의 예배를 우리 하나님께 (요 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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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예배를 우리 하나님께 (요 4:23-24) 


예수님이 12살 되시던 해 요셉과 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전통대로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저들과 함께 동행하지 않고 그냥 예루살렘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예수님이 저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1983년 영락교회 부목사 시절 영락교회에서 주일 낮 예배 설교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을 때 저는 위의 말씀을 본문으로 ‘신앙인들의 보편적인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습니다. 내용은 우리들도 종종 예수님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생활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저에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해 주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자기 일인가 하나님의 일인가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답니다. 동종업을 하는 사람이 자기 가까이에서 개업을 하였을 때 그것이 기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기쁘지 않으면 자기 일을 하는 것이랍니다. 저는 그 말이 참 일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 시절 청어람 바로 맞은 편 건물에 개척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은행 지점장을 하시다가 은퇴를 하신 분이 신학을 하시고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맞은편 건물이 잘 아시는 분의 건물이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배려해 주어 교회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우리 청어람 바로 코앞인데 괜찮겠느냐고 양해를 구하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 청어람 코앞에 술집이 들어선다면 문제가 좀 되겠지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가 들어오신다는데 좋은 일이라고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여 정말 기쁜 마음으로 동의해 드렸습니다. 그 교회가 공간이 부족하면 우리 건물도 평일에 쓰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교회는 크지 않은 교회라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나면 오후에 공간이 비곤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 주일 오후 그 예배실을 빌려 부서 모임을 잘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교회 여 집사님 중에 큐티 강의를 잘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어느 집사님 가정에서 그 집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매주일 모임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청어람에서 주중에 공개적으로 모임을 가지라고 이야기하여 매주 청어람에서 큐티 모임이 있게 되었습니다. 제법 많은 교인들이 그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집사님이 신학을 하시고 목사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으신 후에도 몇 년 동안 그냥 우리 교회 집사 노릇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교회를 개척하시게 되셨습니다. 저에게 인사를 드리려 오셨기에 우리 교인들 좀 데리고 가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냥 인사로 드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그래도 든든한 교인들이 좀 있어야 좋지 않을까 싶어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교인 여러분이 그 교회로 가셨습니다. 이제 몇 년이 지났는데 아주 좋은 교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 그 교회로 가셨던 우리 교회 교인 중에는 그 교회의 장로가 되신 분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우리 교인 가정의 결혼식에 오셨다가 거기서 만났습니다. 

안식년을 할 때 미국 뉴저지의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그 교회도 우리 교회와 같이 예산의 몇 퍼센트를 반드시 교회 밖을 위하여 쓰겠다는 것을 정관에 기록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우리 교회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예산을 일년에 일 퍼센트씩 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100년 안에 반드시 망한다.’

청년들 집회를 하다가 ‘퍼주다가 망하는 교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청년 하나가 ‘목사님 교회 망해 보실래요?’라고 장난처럼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말이 참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그것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거 참 괜찮은 생각이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퍼주다가 망하면 우리 교회는 없어지겠지만 그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더 굳건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생각과 이야기만 늘어놓은 셈이지만 그 일만 놓고 생각해 보면 저와 우리 교회는 우리 일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숭의여자대학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서울의 유명한 종합대학교 두 곳에서 우리 교회를 불러 주셨습니다. 한 곳은 정말 아무 조건 없이 자기 학교에 와서 주일날 예배를 드려 달라고 총장님과 교목실장이 제 방에 직접 오셔서 강청을 하다시피 하였습니다. 

명색이 미션스쿨인데 예배가 살지 않아서 학교 분위가 영 썰렁하고 힘든데 우리 교회와 같이 청년들이 많은 교회가 와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게 되면 학교의 영적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학교도 우리가 부탁을 드린 것이 아니라 그 학교가 먼저 우리 교회에게 들어와 예배하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두 학교 다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두 학교 다 주변의 교회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학교는 주위의 큰 교회 목사님들이 연대하여 총장을 찾아가 우리 교회가 그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였고, 다른 학교는 우리 교단의 총회장님을 역임하시고 그 학교의 이사장으로 계셨던 목사님이 반대하셔서 결국은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뜻 정의교회가 정의여자 중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들어갈 때 주변의 교회의 반대가 없었습니다. 주변의 교회들이 우리 높은 뜻 정의교회를 환영해 주셨습니다. 정의교회가 들어간 첫 해 그 지역 부활절 연합예배를 우리 높은 뜻 정의교회에서 드리도록 결정하여 지역의 교회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높은 뜻 정의 교회만 빼놓고 이제까지 우리 교회는 그런 환영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수 천 명의 교인들이 예배당이 없어서 길바닥에 나 앉게 생겼는데 잘못하면 그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게 생겼는데도 교단의 총회장까지 지내셨던 분이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고 반대를 하셨다는 것이 저는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교회를 반대하는 곳이 교회라는 것을 저는 정말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집사님의 기준대로 말하자면 동종업을 하는 사람이 가까이 올 때 그것이 기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는 것이라는데 정말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하나님의 일로 목회하지 않고 자기의 일로 목회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주일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 일 저 일을 하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드려 선교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자기 교회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교회가 정작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보다 자기 교회, 자기 교회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히 여기고 자기 교회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교회와 목회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을 케치프레이즈로 걸고 적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예배당 건축할 돈으로 재단을 세우고 탈북자들과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하여 공장을 세우고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하고 그럽니다. 올해부터는 그 사역을 넓혀 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베트남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일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재단을 세우려고 할 때 주위의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벌써 욕심을 가지고 제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은퇴 한 후 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꿈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서, 재단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일이 정신없이 커져나가면서 저는 그 분들의 우려가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정말로 제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심하지 않으면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도 아니고, 높은 뜻 교회의 일도 아니고 제 일이 되기 쉽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재단의 일은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하여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원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은 먼저 우리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것이 좋고, 얼마든지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보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하려고 정말로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아니하고 재단의 사역을 해 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 교회와, 우리 재단과 한 걸음 더 나아가 저 자신도 제가 83년도에 영락교회에서 설교하였던 그 신앙인들의 보편적인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잃어 버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옳은 일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착한 일입니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옳은 일이라고, 착한 일이라고, 좋은 일이라고 그 일에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우리는 얼마든지 옳은 일도 할 수 있고,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착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옳고, 좋고, 착한 일을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제가 최근에 깨달은 제일 중요한 생각과 깨달음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착한 일을 하는 일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살아있는 예배를 하나님께 날마다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여 설교 중에 자주 인용하는 시가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의 ‘밤기도’라는 시입니다.

<하루의 분주한 일들 차례로 악수해 보내고 밤 이슥히 먼데서 오는 듯만 싶은 주님과 나만의 기도시간. 주님. 단지 이 한 마디에 천지도 아득한 눈물. 날마다 끝 순서에 이 눈물 예비하옵느니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렇게만 살아지이다. 깊은 밤에 눈물 한 주름을 주께 바치며 살아지이다.>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시입니다. 

우리 교회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교회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보이는 성전을 짓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것도 성전입니다. 성전의 중요한 목표와 목적은 제사와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하여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예배가 없다면, 제사가 없다면, 그 예배와 제사를 통하여 받는 은혜와 축복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해도,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또 그 일을 크게 잘 한다고 하여도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자기 집을 짓는 것입니다.

재단의 일이 커졌습니다. 많아졌습니다. 우리 재단은 벌써 제법 유명한 재단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이룬 성공을 이번에 손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까지 이루게 된다면 우리 재단은 정말 유명한 재단이 될 것입니다. 그 동안은 하나님의 우리 재단의 힘이셨지만 몇 년 만 지내면 우리 재단의 성공적인 사역과 일들이 힘이 되어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기 쉽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정말 그러면 끝입니다.

성공하면 할수록, 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힘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힘과 성공의 힘이 재단에 역사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힘과 능력과 은혜만이 역사하는 재단이 되기 위하여, 사역이 되기 위하여 우리 교회는 끝까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여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감동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재단과 재단의 사역의 중심에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도록 생명을 걸고 신령과 진정으로 우리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가 죽으면 사역도 죽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가 죽으면 성공적인 재단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되지 않고 우리의 일이 될 겁니다. 하나님을 빙자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쌓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여기에 중요한 단어는 ‘우리 이름을 내고’입니다. 아무리 일을 크게 해도, 성공적으로 해도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하여 한다면 그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시작한 일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교회라고 하는 바벨탑을 쌓은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자기 교회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교회라고 하는 바벨탑을 쌓아 온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만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의 힘으로 사회적 기업도 세우고,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도 하고, 밀레니엄 빌리지 사역도 하고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교회의 사역도 역시 바벨탑이 되어 결국은 무너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실패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신령과 진정으로 자신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배를 통하여 얻게 되는 은혜와 지혜와 능력으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늘 최고의 예배를 우리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 높은 뜻 교회와 교인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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