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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요 4: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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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요 4:31-42)


I. 일감

미국 어느 인디안 추장이 병들어 죽을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후계자를 뽑기위해 고심 하다가 그 부족의 모든 청년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공포했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높은 산을 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추장의 자리를 물려주겠다. 그러나 정상을 정복한 자는 꼭 증표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 산은 가파르고 매우 험난한 산이었습니다. 워낙 가파르고 험한 산인지라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등반이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등반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년들은 낙오했고 세 명만이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자 나름의 증표를 가지고 추장 앞에 섰습니다. 

첫 번째 청년은 꽃 한송이를 들고 와서 추장에게 보고합니다.

“추장님! 산 정상에 가 보니 아주 독특한 색깔의 꽃들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꽃 한 송이를 꺾어 왔습니다.” 

이때 추장은 “좋다. 나도 젊은 시절 산 정상에 올랐을때 거기서 그 꽃을 보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청년이 손에 사냥한 노루 한 마리를 들고 와서 보고합니다. “추장님! 산 정상에는 많은 사냥감들이 뛰놀고 있었습니다.” 이때 추장은 “맞다. 나도 그 정상에서 많은 사냥감 동물들을 보았노라.” 이번엔 세 번째 청년이 추장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손에는 아무 증거물이 없었습니다. “추장님! 저는 산 정상에서 산 넘어 있는 넓은 평야와 그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강을 보았습니다. 우리 부족의 희망은 산넘어 저편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발전과 번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부족의 비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때 추장은 “됐다! 내가 기다렸던 것은 산 꼭대기에 다녀왔다는 증표가 아니라 그곳에서 얻은 부족의 앞날을 위한 비전이었다!” 

이 세 번째 청년에게 추장의 자리를 넘겨 주었습니다. 

산 정상에 오른 첫 번째 청년은 세상을 꽃밭으로 보았고 두 번째 청년은 세상을 사냥터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청년은 세상을 정복해야 할 비전의 땅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여러분의 눈엔 이 세상 무엇이 보입니까?
밭에 선 농부에겐 일감이 보여야 합니다.  

일찍이 「빅토르 프랭클」은 “평생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일감을 발견해 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II. 양식

샌드위치를 아십니까? 빵조각속에 치즈나 햄 혹은 잼을 넣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빵을 샌드위치라고 합니다. 이는 옛날 샌드위치라는 백작이 있었는데 이분은 카드놀이에 미쳐서 밥먹는 시간마저도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빵조각으로 치즈 한조각을 싸서 먹어가며 카드놀이를 즐겼는데 후에 이 음식을 이름하여 샌드위치라 부르게 되었더랍니다.

누구나 마찬가지 겠습니다만 우리 주님께서도 식사하시는 것을 잊어버리면서까지 하시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우물가에 계시고 음식을 구하러 갔던 제자가 돌아와 주님께 음식을 준비해서 드립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던 제자들은 서로 바라만 보고 “누가 잡수실 것을 가져다 드렸나?”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다시 설명을 합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절)  

쉽게 말하면, 한 영혼이 주님앞에 돌아오는 것을 보니 배고픈 것 조차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일꾼들의 양식입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일꾼은 이 양식을 잘 먹어야 힘있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찬송할 수 있는 사람, 감격함으로 헌신할 수 있는 사람, 기쁨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교회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습니다. 그 양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이 예배에 오면 양식을 얻습니다. 낙심된 사람들이 새 힘을 얻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희망을 사 가지고 돌아갑니다. 절망하던 사람들이 용기를 얻습니다. 예배에 승리자가 되어야 가정생활에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사업에 성공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셀목장에 모여 주의 임재를 경험하며 말씀과 찬양 가운데 거룩한 교제를 나눌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여기서 성도들은 변화를 체험합니다. 지도자로 성장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 목장은 영적 양식을 얻는 가장 좋은 식당입니다. 아직 셀목장에 참여하지 않는 분들은 꼭 목장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 모두 소그룹의 리더 - 목자가 되는 비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셀목장안에서 공동체를 경험할 때 곧 바로 공동체 밖을 봅니다. 미래의 가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아버지의 마음으로 나의 VIP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혹 셀공동체가 불신자 한 사람을 인도하여 주의 전에 올 때 천국에서는 잔치를 벌인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도는 천국에 잔치를 배설해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잔치를 드리는 일입니다. 

누가 전도할 수 있습니까? 잃어버린 자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가진 사람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는 게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충만하지 못하면 예수 자랑하는 복음 전도사역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은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깨닫지 못하면 전도의 열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를 알아야 전도의 열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25년전 저는 서울의 한 교회에 담임으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 교회는 교인들끼리의 오랜 분쟁으로 모두들 지쳐있었습니다. 1년 사이에 두분의 담임 목사가 사임하고 떠났습니다. 아직 교인들 사이에 갈등이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부임하자마다 영적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교우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사탄의 왕국을 정복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 -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라고 외치고 100명 남짓 모이던 교회에서 3000명을 전도하는 40일 작전을 선포했습니다. 놀랍게도 저의 전도 설교는 스폰지에 물이 빨려들듯 교인들의 영혼에 빨려들었습니다. 총동원 전도주일 당일 새가족 4000명이 몰려왔고 1000명이 결신을 했습니다. 케리그마 - 복음의 본질을 선포하는 설교가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저는 지난 주일 전도설교를 하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설교가 벽에 부딪혀 되돌아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2부 예배땐 제 심장을 보여드리며 오열을 토했습니다. 교인들이 아멘 아멘으로 응답해 주었습니다. 전도가 어렵기 이전에 전도설교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위기입니다. 저같은 설교가들이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동안 교인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만 해서 그렇습니다. 복음의 능력과 본질을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감성만 자극했지 진정한 영성과 야성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병들게 한 장본인이 우리 설교가들입니다. 현실적이고 일시적인 축복이 신앙의 목표인양 가르쳤습니다. 내가 잘못 했습니다. 

III. 희망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관이요, 가치관이요 영성입니다. 이 세상을 희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까많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회색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아닌 무색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운전학원에서 운전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나외에 운전하는 모든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언제 나한테 미친짓을 할지 모르니 항상 방어운전을 하라는 것이지요.  

생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현대 철학의 하나는 세상을 까맣게 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을 도둑놈으로 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돈 빌려주고 떼일 염려도 없고 돈 거래하다가 사기 당할 염려도 없습니다.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이요 꿈이요 그들의 관심을 의미합니다. 아니, 관심있는 것만 보입니다. 본다고 다 보이는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절)
여기 밭은 보리밭이나 채소밭이 아닙니다. 여기 밭은 본문을 잘 살펴보면, 사마리아 땅,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르키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란 좀 이상한 곳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원래 유대인이었는데 포로시대에 혼혈아가 되어 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지대가 되고 만것입니다. 이러한 회색지대를 지나가시며 예수님께서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여기 희다는 말은 깨끗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전도에 있어서 희망적이다. 저들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예수님은 세상을 언제나 희게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언제나 희망적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들어가셨다는 자체가 이미 사마리아에 희망이 선포된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다 보내신 다음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가운데 이 여인은 예수께서 메시야 되심을 깨닫고 물동이를 버려둔 채 동리로 뛰어들어가 예수님을 전합니다. 이 여인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도 명쾌했습니다. 
“와보라,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우리 사마리아에 메시아가 오셨다.”

사마리아 땅에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검게 보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위기라고 합니다. 

∙ 주가 폭락! 세계경제가 위기라고 합니다. 
∙ 안철수 신드롬! 정치위기의 표출이라고 합니다. 
∙ 한국, 일본, 중국 - 동아시아의 갈등! 태평양권의 위기라고 합니다. 
∙ 남북간의 긴장! - 한반도의 위기라고 합니다. 
∙ 전도의 문이 막히고 교인이 감소되는 한국교회의 위기라고 합니다. 
∙ 학교교육의 무능! 다음세대 교육의 위기라고 합니다. 
∙ 저출산! 한민족 미래의 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때 일수록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의 희망을 보아야 합니다. 
그 어느때 보다 긍정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기도와 시간과 은사와 물질을 집중해야 합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우리가 눈을 들어보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정마다 마을마다 가득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가운데 사로잡혀있습니까? 교회는 이때 분연히 일어날 때입니다.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복음적인 사람들은 절망가운데 낙심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여전히 미래는 희망적이다.” 희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희망을 살 때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여야 할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입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저들에게 희망을 선포해야 할때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십시오.  
일산, 파주 신도시가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20년전까지만 해도 고양 파주 이 도시는 20만명에 불과하던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고양 100만 파주 40만명의 백성들이 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10년내에 고양시, 파주시는 200만 도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눈을 들어 이 도시를 바라보십시오. 얼마나 건저낼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도시는 희망적입니다. 희어져 추수할 때입니다. 

얼마전 어느 교회 연구소에서 조사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87%가 기회만 있으면 교회를 옮기고 싶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심지어 영원히 죽는 줄 모르고 교회에 실망한 나머지 기독교를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생활이 재미없는 시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서운 영적인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복음의 본질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원래 복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인과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명자는 죄인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들어 가셨습니다. 찾아가서 저들에게 희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찾아가야 됩니다. VIP를 찾아 가야 됩니다.  

이 세상은 결코 검고 노랗고 지저분한 세상만은 아닙니다. 그 속에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예수의 복음을 기다리는 추수밭 알곡들이 널려져 있습니다. 이 세상은 희망적입니다. 희망적으로 세상을 보십시오. 전도의 문이 닫혀졌다고요? 거짓말입니다. 언제나 전도의 문은 열려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업이 어려운 분 계십니까? 희망적으로 보십시오. 변화할 줄 모르는 여러분의 가족이 있습니까? 희망적으로 보십시오. 왜요? 예수님께서 희망적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도무지 예수 믿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나의 이 기도 제목은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희망적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오시면 곧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검은 것이 희게 될 것입니다. 주홍같은 죄악들이 흰눈같이 희어지게 될 것입니다. 진홍같이 붉은 죄들이 양털보다 더욱더 희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보라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도다!” 희망의 곡식단을 거두시길 바랍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 
씨를 뿌려 보지도 않고 흉년을 걱정하는 농부는 바보입니다. 

VI. 밭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 세상을 밭으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밭을 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농부입니다. 농부는 기회를 알고 기회를 선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씨를 뿌릴 때 뿌려야하고, 밭을 갈 때 갈아야 하고, 거름을 줄 때 거름을 주고, 곡식을 거둘 때 거두어야 농사가 됩니다.  

기회의 신은 앞머리는 풍성하게 내려져 있어서 기회가 앞으로 다가올 때는 누구나 붙들면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회의 신은 뒷머리는 깨끗한 대머리라 한 번 지나고 나면 뒤에서는 절대로 붙들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실 때에 전도지 한 장이라도 들고 나가면 의외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한 번 기회의 문, 구원의 문이 닫혀지고 나면 주님 주님 열어 주십시오! 애원해도 안되고 통곡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기회의 문이 열려질 때 우리가 함께 일어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농사 짓는 것과 마찬가지더라구요. 씨를 뿌릴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질소비료를 뿌려 무럭무럭 자라게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물씬 자라고 나면 너무 약해서 바람에 부러지고 넘어집니다. 그때는 카리비료를 주어서 살찌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지요. 쭉정이가 되면 안되니까 인산비료를 주어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섬기는 것도 교회가 자라야 될 때 자라야 됩니다. 교회가 건강해 져야할 때 건강해 져야 합니다. 믿음 생활도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어야 할 때는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만이 행복한 신앙생활이 가능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어떤 철 없는 사람들은 인생을 잔디밭으로 봅니다. 그냥 펄쩍 펄쩍 뛰어놀면 되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인생은 잔디밭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밭을 꽃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좋아하는 일만 하면 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면 선이고 내 행복의 걸림돌이 되면 악이라고 판단해 버리는 철부지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꽃밭이 아닙니다. 인생을 꽃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류계 인생들입니다. 화류촌에 가면 인생을 꽃밭으로 보지요. 내 입에 맞고 내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만 들으려 하지 마십시요. 비전과 사명에 불을 던지는 설교에도 아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아멘 바로 그럴때 하는 겁니다.

인생은 잔디밭도 꽃밭도 아닙니다. 희어져 추수할 밭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열매를 속히 거두어야 할 영혼의 추수밭입니다. 무르익은 곡식을 바라보면 농부는 추수를 하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겁니다. 오늘 세상을 추수할 밭으로 보는 사람은 바로 거기에서 묘한 충동을 느낍니다. 이런 충동을 느끼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세상의 일감을 주십니다.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 목숨이 온천하보다도 귀중하지만 이 목숨역시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만이 존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온 천하보다도 귀중하지만 사명을 감당할 때만이 삶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리빙스톤은 “나는 내 사명을 다하기 전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역으로 바꾸어 보면 “사명 끝나면 죽는다.” 
사명 잃어버리고 살아가면 살 가치없는 존재다 그 얘기 아니겠습니까?  

종은 학창시절 종로 거리나 명동거리를 거닐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밀려오고 밀려 지나갑니다. 시인 워드워즈는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뛴다고 했는데 나는 많은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뛰곤했습니다. 종은 신학교시절 광나루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주일 밤 예배를 마치고 양손에 새끼줄에 낀 연탄 두장을 들고 광나루 언덕을 오르다 멀리 잠실벌을 바라보노라면 그때 막 아파트 숲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그 아파트 숲을 바라노라면 내 가슴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 강남벌에 도시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몰려들겠지요. 저기에 교회다운 교회들이 들어서서 한국교회에 놀라운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게 하여 주시옵시고, 커다란 교회들 세계적인 교회들이 많이 늘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바위 위에 연탄을 올려놓고 아파트 숲을 향해 손을 들고 축복기도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강남들이 제 기도 때문에 부흥된 것은 알 리가 없지요. 그때 그 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를 일산 신도시로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V. 일꾼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절)
주님은 지금 곧 추수하는 작업을 개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희망적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밭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주님께서 일꾼삼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건강도 주시고 은사도 주시고 환경도 주십니다. 

세상은 우리의 발을 부르고 있습니다. 뭇사람들을 옳은데로 인도하는 사람들을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하시기 위하여. 세상은 우리의 손을 부르고 있습니다.낙심된 사람들 절망된 사람들 붙들어 일으켜 세우라고 말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입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의 복음 증거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일하셨습니다. 밤에도 일하시고 낮에도 일하시고 피곤해도 일하셨습니다. 

세상일들은 일할때가 있고 쉴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쉴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생명운동입니다. 태양이 빛 비추기를 멈추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호흡과 혈액이 멈추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명운동은 사람을 살리는 일은 멈출 수 없는 운동입니다. 이 추수때 뒷짐지고 구경이나 하는 사람, 잔꾀나 부리고 변명이나 하는 사람은 무익한 사람입니다.

∙ 시간이 나면 하고 시간 없으면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 힘들수록, 안될수록, 하기 싫을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솔제니친의 「강제수용소 보고서」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의 죽 그릇이나 핧는 사람은 먼저 죽는다. 일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고 의무실에 눕는 사람은 남보다 먼저 죽는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 꾀병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세월동안 적어도 전도하는 일에서 만큼은 어떻게 꾀병이 많았던지 하나님앞에서 꾀병을 앓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추수때는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꾀병이 치료되기를 축복합니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을 돕던 많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어느 한 친구는 나도 루터를 돕겠다. 그러나 기도가 가장 귀한일이기 때문에 기도해 주는 것만으로 루터의 팔과 발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중 중교개혁운동은 절정에 달하고 적들의 공세는 극심해졌습니다. 이 친구는 루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광활한 벌판에 곡식들이 익어서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나이가 낫을 들고 이리뛰고 저리뛰며 곡식을 거두는데 지쳐서 쓰러지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도무지 혼자서 감당할수 없는 광활한 벌판에서 홀로 외로이 미친듯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안타까운 장면이었습니다. 그 농부의 얼굴이 바로 루터였습니다. 그날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나는 루터에게로 가겠다. 이제 기도하는데서 일어나 일하러 가겠다.” 그는 종교개혁운동에 몸을 바쳤습니다. 물질을 바쳤습니다. 실로 좋은 추수꾼이 되었습니다.

∙ 여러분의 시간을 영적인 사역을 위해 쓰십시요.
∙ 여러분의 물질을 하나님 나라 복음 사역을 위해 쓰십시요. 
∙ 천국에서는 그것만 남습니다. 

VI. 결론

죽어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까? 손에 손을 잡아야 할 때입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때입니다. 민족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도시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족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때가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언젠가 교계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통령 모시고 조찬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박종순목사님이 설교를 했고 대통령이 인사말씀을 하는 것으로 예배순서가 진행이 되어졌습니다. 설교의 마지막 결론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한 토막을 읽는 것으로 마쳐졌습니다.  

미국 동부에 아주 넓디 넓은 옥수수 밭을 가꾸고 있는 젊은 농부의 부부가 있었습니다. 4살된 쟌이라는 어린아이를 잠시 재워놓고 일터로 나가 일을 했습니다. 낮잠에서 깨어난 쟌이 엄마를 부르며 옥수수 밭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엄마, 아빠, 엄마 엄마를 부르다 보니 점점 옥수수밭으로 깊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저녁무렵 돌아온 이 젊은 부부는 쟌을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온 옥수수 밭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쟌, 쟌, 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사랑하는 아들 쟌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마을에 이 소문이 들려지게 되었고 온마을 사람들이 함께 찾기로 결의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붙들고 열십자로 옥수수밭에 서서 빙글빙글돌며 쟌을 찾았습니다. 그날 오후쯤 되었습니다. 

한켠에서 웅크리고 공포에 떨다가 싸늘하게 죽어있는 쟌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다음날 아침 지방 조간신문에 이 얘기가 톱으로 실려졌습니다. 타이틀은 “너무 늦었다.” 그리고 부제는 “조금만 일찍 우리가 손에 손을 잡았더라면...”  

한국교회가 지금 신음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행여나 이 백성가운데 한국교회 한가운데서 내 주님, 촛대를 옮기실까 염려하는 뜻있는 목사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여, 이 백성을 살려 주시옵소서. 이 백성 이렇게 큰 폭풍을 만나게 된 것 나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은 나의 연고인줄로 아노라. 한국교회가 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멋없이 살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나와 새롭게 기도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이 백성에게 주는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들어야 할 때입니다. 내일을 승리로 선포해야 될 때입니다. 이 도시를 살려야 될 때입니다. 이 백성을 살려야 될 때입니다.  

주 5일 근무 수업시대가 몰려옵니다. 
구라파는 관광, 레져, 놀이문화에 관심을 가져 영적 쓰나미를 맞았고 
미국교회는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켜 말씀을 배우고 주말 예배를 만들어 새로운 부흥의 전기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위기의 시대 망하는 길을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새역사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까?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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