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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심이 바로 선 사람 (삼상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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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이 바로 선 사람 (삼상 16:1-13)

1. 하나님께 잘 보여야 쓰임받는다

홍수 속에서 마실 물을 찾기가 쉽지 않듯이, 사람은 많지만 좋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장관 자리가 비면, 청문회를 통과할 깨끗한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대기업에서도 인재 채용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신입사원의 1년내 이직률이 21%에 이릅니다. 실컷 교육시켜놓으면 회사를 떠나니 손실이 말이 아닙니다. 우수인력이 들어와야 회사가 발전하니 인력채용에 초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취직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바늘구멍인데, 회사입장에서는 좋은 인재 찾기가 보통 어려움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요즘은 하나님도 구인난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제대로 일할 일꾼을 찾기가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세우셔서 쓰시고 싶어도 그릇이 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의 15장 35절 하반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고 했습니다. 사울왕은 초반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후반에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1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하나님께서 시골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 중에서 앞으로 이스라엘 왕이 될 사람을 “보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 대신에 왕이 될 사람을 이미 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누구를 세워서 이 교회를 부흥시킬까, 누구를 통하여 고통당하는 이 땅의 사람들을 치유할까? 누구를 세워 이 나라를 다스리게 할까? 누구를 통하여 대구의 많은 불신자들을 청산교회로 인도하게 할까?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 어떤 자리에 오르느냐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인 계획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서 에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야곱은 하나님께 쓰임받았습니다. 버림받는 사람이 아니라,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우리 쪽에서 볼 때에는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하나님께 잘 보여야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쓸만한 사람, 하나님께 잘 보이는 사람들이 되셔서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중심이 바로 선 사람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 누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인물인가 면접을 봅니다. 첫째 아들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왔습니다. 키가 커고 몸집도 크고 잘 생겼습니다. 왕이 될 감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마음속으로 “이 아이가 왕이 될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람은 육체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마음이 바른지,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중심이 바로 선 사람. 

잘 생기고 못 생기고는 잣대가 아닙니다. 키가 컬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잣대는 마음입니다. 정신입니다. 영혼입니다. 건강한 마음, 정신, 영혼을 가진 사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사울왕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 보다는 자기 욕심이 앞섰습니다. 

다윗이 완벽해서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다윗도 연약한 사람입니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실수가 있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인간의 특징이고, 실수가 인간의 전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두 가지입니다. 성실성, 그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입니다. 
다윗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께서 이새의 집에 오셨을 때, 형들 일곱은 다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제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막내 다윗은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맡은 양떼를 치는 일을 잘 감당한 다윗, 성실한 사람의 전형입니다. 그 뿐입니까?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있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주라고 심부름을 보냈을 때도 다윗은 군말없이 그 위험한 전쟁터를 다녀왔습니다. 사울왕이 악령에 시달릴 때, 다윗은 왕을 위하여 악기를 연주하는 궁중 악사로 왕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다윗의 인기가 자기보다 높아지자, 다윗을 시기하여 창을 던져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것도 수 차례나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맡은 궁중악사의 일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다윗은 무슨 일이든지 맡겨주기만하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실성,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환경이 우리를 흔들어대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만 두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성실하게 맡은 일을 감당하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중심이 바로 선 사람입니다. 

중심이 바로 선 사람, 그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사도행전13:2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 영어성경번역본에서는 “after my heart” 즉 하나님의 마음을 좇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은 항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실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며 삽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돈 버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자녀교육을 잘 시키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내 마음이 휘둘리면 안됩니다. 돈벌이가 잘 안 된다고, 자식이 부모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기에 우리 마음이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우리 마음이 사로잡혀야 합니다. 하나님께 올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몰입해야 합니다. 돈벌이 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적인 아이템을 주실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고 지혜롭게 하셔서 자녀를 잘 양육하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만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군대와 불레셋 군대의 전쟁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의 형들은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드리러 갔습니다. 불레셋의 골리앗이라는 거구의 장군 앞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사시나무 떨 듯이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어린 다윗은 “이 할례받지 않은 불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26절)하며 분노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왕 사울에게 나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삼상17: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불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사람보다, 그 어떤 두려운 것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의 두 가지 특징인 성실성, 그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 이 두 가지 특징이 여러분의 삶의 특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는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다 사무엘에게 면접을 봤는데, 퇴짜를 받았습니다. 
11절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다윗은 아버지에게도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한 아들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자기 집에 오시는 것은 아주 특별한 기회요, 은혜받을 기회입니다. 일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에게 아들들을 다 불러 모으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아버지 이새는 막내둥이 다윗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부르지 않았습니다. 막내 다윗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아들만 불렀습니다. 

“막내”란 단어의 히브리어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란 뜻이 들어있습니다. 다윗은 집안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아버지에게는 그리고 그 형들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우리가 가족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사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막내와 같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이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의 무명의 시골 목동이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을 이끄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바울사도께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12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영문도 모르고 헐레벌떡 달려온 다윗, 얼굴은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옷은 깨째째하고 여기저기 헤어져있고 냄새나는 모습으로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깨끗하게 목욕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은 일곱 형들과는 대조적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이는 그니”- 영어로 This is he. 이 사람이 바로 내가 보아온 사람이다. 내가 찾은 사람이다. 이스라엘왕으로 세우기로 계획한 아들이다.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이는 그니” 라고 말씀하시는 은혜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란 주제로 오늘 두 번째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의 생기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마른 뼈도 살아납니다. 회복의 축복이 임합니다. 누구에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합니까? 중심이 바로 선 사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중심이 바로 선 사람, 인격적으로는 성실하고, 영적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이 되셔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복이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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