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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약시대를 향한 오바댜의 예언 (옵 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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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시대를 향한 오바댜의 예언 (옵 1:17-21) 
 
오바댜서는 에돔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부정적인 입장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긍정적이고 영광스러운 예언으로 끝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날은 이중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심판의 날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 영광의 날,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 드러나게 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부정적인 날이 되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날, 위대한 승리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오바댜서를 한마디로 줄인 것이 말라기 1장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말 1:2-3) 

하나님께서 누구를 미워하신다는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성경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지 아니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야곱만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지 아니하셨느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둘 다 하나님께 사랑받을 공로가 없었습니다. 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부모님께 불순종했지만 야곱도 남의 것을 빼앗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사랑을 말합니다. 은혜는 누가 누구에게 줘야 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은혜를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지 않아도 될 것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은혜를 받았지만 에서는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러셨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오바댜서의 마지막 예언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첫째, 여호와의 날에 예루살렘으로 피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둘째, 남왕국 유다의 야곱 족속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요셉 족속은 통일되어 에돔 족속을 멸할 것이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은 잃어버린 땅을 모두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땅까지도 정복하게 될 것이다. 넷째,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 약속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에돔이라는 나라는 오래전에 멸망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미래에 심판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해서 지금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데 어떻게 유다와 통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천년주의자들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나라가 세워져서 성전이 다시 지어지고 그곳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통치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왕이시고 하늘에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런 분이 예루살렘에 왜 옵니까?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논현동 동장으로 온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문자적인 해석이 아니라 영적인 해석을 해야 합니다. 오바댜서의 예언을 세 단어로 표현하면 시온산, 정복, 나라입니다. 이 세 가지 단어가 오늘 예언의 핵심입니다. 

Ⅰ.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는 거룩한 무리가 되어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다 

첫째, 시온산은 교회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옵 1:17) 시온산은 예루살렘을 뜻하는데 구약의 예루살렘은 교회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히 12:22-23) 시온산과 하늘의 예루살렘 그리고 교회를 완전히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째, 시온산에서 피할 자는 “남은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구원을 주시기로 택하신 자들을 의미합니다. 야곱 족속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남은 자가 되었고 에서 족속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해서 남은 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즉, 야곱 족속은 신자의 상징이고 에서 족속은 불신자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바댜 1장 17절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모아 구원하여 교회를 이루신다는 약속입니다. 
 
셋째, 시온산은 거룩할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구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분리시켜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구별해놓은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구별해 놓으신 사람들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합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위대한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기업이라는 성경의 단어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여기서 기업은 장사해서 돈을 버는 회사(enterprise)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시는 유업(inheritance)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과 부활과 영원한 축복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불신자인 에돔 족속은 단 한명도 이것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오바댜 1장 17절을 신약의 용어로 번역해서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교회에는 구원받은 자가 있으리니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분리시켜 놓으신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는 약속하신 유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오바댜가 B.C. 840년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때에 예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약시대에 있을 위대한 교회의 탄생과 발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Ⅱ. 하나님의 교회는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될 것이다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요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며 에서 족속은 초개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의 위에 붙어서 그를 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옵 1:18) 야곱 족속과 요셉 족속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고 그들이 에서 족속을 정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남방 사람은 에서의 산을 얻을 것이며 평지 사람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또 그들이 에브라임의 들과 사마리아의 들을 얻을 것이며 베냐민은 길르앗을 얻을 것이며” (옵 1:19)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빼앗긴 것도 회복하고 이방인의 나라들까지 정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바댜 1장 18-20절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정복입니다. “구원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옵 1:21) 

구원자들은 능동태(구원하는 사람들)로 볼 수도 있고 수동태(구원받는 사람들)로 볼 수도 있습니다. 구원자들이 에서의 산을 심판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교회는 정복자가 되고 심판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우리는 이깁니다. 사업을 하다 망해도 우리는 이깁니다. 병들어서 약해져도 우리는 이깁니다. 중간에 넘어질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승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의 인생은 망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고전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한다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정복하고 판단할 사람이지 정복당할 사람이 아닙니다. 
 
“정복”(Conquering)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를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신 1:21)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서 그 땅을 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들을 다 멸하고 쫓아내서 그 땅을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보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12명 중 2명(여호수아, 갈렙)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우리에게 주신 것이니 정복하자고 했습니다. 나머지 10명은 그들이 거인들이라 우리는 그들에게 메뚜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더 따라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밤새도록 우니까 하나님께서 화가 나셔서 모세에게 백성을 다 죽이고 너로 새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엎드려서 그렇게 하면 이방 나라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끌고 왔다고 말할 것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러면 40일을 정탐했으니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불신앙의 사람들은 한 명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정복하라고 명하셨으면 우리의 능력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정복해야 될 대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음으로 영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재와 축복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과일까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재와 모든 축복들은 계속해서 찾아와야 됩니다. 정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온 저주, 가난, 질병, 슬픔, 소외, 외로움, 쓸쓸함 이런 것들은 다 물리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패배의식을 갖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우리가 정복해야 될 대상은 에돔을 포함한 이방세계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해야 됩니다. 선교를 해도 공격적인 선교를 해야 됩니다. 광야에 만나도 있고 물도 있고 장막도 있어서 살만하니까 주저앉아 있으면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광야가 아무리 좋아도 앉아있지 말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주에 캄보디아를 다녀온 이・미용 의료 선교팀도 선교지에 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만 받아주었는데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선교도 공격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리고 예배당도 공격적으로 지어야 합니다. 예배당이 지금은 좋아보여도 10년 뒤에도 좋겠습니까? 우리 후손들이 쓰도록 깨끗한 예배당을 물려줘야지 헌 것만 물려줘서 매번 고치게 만들면 언제 일을 합니까? 

물론 여러분 중에는 예배당을 지어도 내가 여기 몇 년이나 더 있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 왕이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너는 피를 많이 흘려서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대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을 것이라고 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가로되 내 아들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전은 극히 장려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대상 22:5) 다윗은 성전을 자기가 짓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지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쉽게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준비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만 잘 믿고 천국에 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은 정복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우리는 정복할 사람들이지 정복당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생의 모든 어려운 것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Ⅲ. 인류역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한 나라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진리이다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옵 1:21) 
이 간단한 말씀은 인류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역사는 도전과 응전을 계속하면서 순환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역사가 순환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불교적인 사고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역사관은 한 목적을 향해서 직선으로 나아가는 직선적인 역사관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해도 결국은 다 사라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한 나라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이 나라는 세상 많은 나라들 가운데 작은 겨자씨처럼 조그만 씨앗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자라서 큰 나무와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밀가루 덩어리 같이 시작되지만 누룩이 들어가서 부풀게 되는 큰 빵과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성장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영히 다스리며 의가 있고 희락이 있고 평강이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한 나라를 향해서 인류역사는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 2:8)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열방을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영한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나라의 시민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나라의 시민권이 없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망한 인생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만이 영생을 누리고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두 가지를 가진 사람이 들어갑니다. 첫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시라고 믿음을 가진 사람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진 사람만 이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약 2:5)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살전 2:12) 

하나님의 나라는 영광스러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디로 갑니까?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3) 마귀가 있는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지옥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영원하다. 둘째, 벌을 받는 곳이다. 이것을 합쳐서 지옥을 영벌의 장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벌의 장소로 들어가지 마시고 영생의 장소로 들어가 기업을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이런 이야기는 성경과 교회 그리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하는 것이지 대학이나 신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위대한 미래의 기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또한 현재도 모든 저주를 정복할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내게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으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저주는 다 물러가고 질병도 물러가고 가난도 물러갈지어다! 내가 너를 정복하노라!” 우리는 이방세계를 믿음으로 정복해야 될 권세가 있고 사명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최후 승리의 그 날까지 좌절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정복해 나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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