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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사 5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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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사 58:6-12)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알아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도 잘 하고 있습니다. 헌금도 잘 드리고 있습니다. 전도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별로 알아주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셔도 괜찮을 텐데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심하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옛날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성전 재건 사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날마다의 삶 자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사 58:2) 겉으로 볼 때 전혀 부족한 점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투정을 좀 부려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사 58:3 상반절) 실제로 그들은 마음을 괴롭게 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고 금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진정성을 도저히 인정하실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사 58:3 하반절~4 상반절)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겉치레뿐인 종교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주실 것인가 하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그 대답이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 6절과 7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바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은 우리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멍에의 줄을 끌러 주어야 합니다.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멍에를 꺾어야 합니다. 내가 아닙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이 그 대상입니다. 내가 평안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못 본 척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묶인 것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거처할 곳이 없는 사람을 기꺼이 집에 맞아들여야 합니다. 헐벗은 사람을 만나면 옷을 입혀 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가 심하게 책망했던 그들의 삶이 결코 비종교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종교적인 규례를 준수하는 일에 있어서 외형적으로만 볼 것 같으면 넘치는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금식이란 것이 단순히 외형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들의 삶에 그런 금식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금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런 금식이란 매우 잘못된 동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그런 금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또한 삶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목회 현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목사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많이 취하는 방법이 바로 금식 기도입니다. 저도 그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금식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생각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십 일 금식 기도한 후에 고집을 꺾고 양보함으로써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목사를 지금까지 저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결국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형식적인 금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금식을 해야 합니다. 참 금식이란 한 마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헌신과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가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헌신과 봉사가 구체적으로 실행될 것 같으면 굳이 우리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간구하지 않아도 모든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될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9 상반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더 이상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일찍이 주님도 물질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히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물질을 이 땅에 쌓아 두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질은 하늘에 쌓아 두어야 안전합니다. 잃어버릴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물질이 있는 곳에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마음이 늘 하늘을 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하늘을 향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늘 하늘을 향하게 하는 방법은 물질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을 하늘에 쌓아 둔다는 것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더 이상 소나 양과 같은 짐승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5~1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찬송과 더불어 이웃을 구체적으로 돌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의 믿음을 알아주시지 않는 것 같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헌신과 봉사를 알아주시지 않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합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믿음이 극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는 것까지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때문에 먼저 겸손히 그리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직 하나님의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울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헐벗고 굶주린 이웃과 더불어 아낌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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