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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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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시 133:1-3)
 

1.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는 온 미국인과 전 세계인이 잊지 못할 名 演說을 했습니다.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인 노예 해방을 선언했던 링컨 대통령 기념관 앞에서 이루어진 이 연설은 흑인과 백인의 평등과 공존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창조되었다는 이념을 신봉한다’는 미국의 신념 안에 들어있는 참 뜻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닌 그들의 품성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합시다. 이 자유의 종소리가 모든 마을, 모든 촌락, 모든 주, 모든 도시에서 울리게 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대인이건 아니건, …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날을 향해 나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연설의 末尾에서 “Now is the time”, 즉 ‘지금이 그 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꿈을 꾸어왔고, 그 꿈이 이뤄질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라는 말한 것이죠. 이러한 그의 꿈은 그 이후 비약적으로 실현되어 흑과 백이 어우러져 하나가 된 미국의 모습을 앞당겼습니다.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꾸어 온 꿈입니다. 그것은 각기 다른 곳에서 나서,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배운 바 학력도 다르고, 일하는 직장이 다르고, 사는 바 경제력도 다른 사람들,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성도들이, 같은 점을 찾기가 더 어려운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꿈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더 이상 태어난 고향이 의미가 없고 예수님을 믿어 그로 말미암아 거듭 난 사실이 더 중요하고, 장차 가게 될 천국이 같다는 사실로 하나가 되는 사람들! 자란 환경이 都市든, 農村이든, 漁村이든, 山村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현재 예수 안에 있다”는 영적인 주소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 초등학교 졸업자, 중학교 졸업자, 고등학교 졸업자, 대학 졸업자, 혹은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 아니 저의 어머니처럼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세상 학벌보다 주의 말씀인 성경 배운 것이 最終이자 最高 학력인 줄로 여기는 사람들! 일하는 직장은 달라도 직장 출근하는 것보다 주일마다 교회 오는 것을 더 기뻐하는 사람들! 가난하건, 부하건, 예수님으로 인하여 자신이 정말 부자인 줄로 아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 되는 꿈이 저의 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꿈은 결코 작은 꿈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우리 교회만이라도 온전히 하나 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작아 보이지만, 우리 교회와 이 지역을 뛰어넘어,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를 넘어, 세상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 되는 꿈이요, 더 나아가 시간을 뛰어넘어 먼저 간 성도들과 장차 올 성도들까지 주 안에서 하나 되는 놀랍고 신비한 꿈입니다. 

그리고 이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 꿈입니다. 지상의 교회가 온전히 하나 된 것을 얼마나 보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목회자와 교회 리더들이 갈등하고, 교인들끼리 편이 갈라지고, 그래서 나눠지고 찢어지기를 반복해왔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불신자들이나, 심지어 이단들까지 나서서 공격할만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이 꿈은 하나님의 꿈이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 질 꿈이기도 하지요.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이 꿈,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이 크고 위대한 꿈에 관한 말씀입니다.

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입니다!

1)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

➀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첫 시작 부분에서부터 감탄 혹은 감격하고 있습니다. 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여기서 “보라”는 말은 듣는 이들의 실제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즉 주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시인이 지적하는 것으로 향하게 만드는 말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그가 “보라”고 지적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 순례자의 노래로 지어지고 불려진 이 시의 용도로 볼 때, 이 시의 상황은 성전을 향하여 순례하던 중 일어난 일을 노래한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먼저 보고서 놀라 “보라”면서 소리를 지른 것은 성전으로 예배하기 위하여 함께 가는 무리들, 혹은 성전에서 예배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무리들을 보면서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감탄, 혹은 감격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모은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는 “형제가 연합한 것”입니다. 여기서 “연합하다”는 말은 ‘모두 함께, 모두 동시에 하나 됨’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무리들이 하나가 되어 동시에 움직인다’는 것은 우선 수많은 무리들이 질서정연하게 성전으로 향하여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예배를 준비하느라 움직이는 모습이 어떤 일치감을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이 감탄한 두 번째는 “형제가 동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동거한다”는 말은 ‘머물다, 거주하다’는 뜻인데요, 아주 구체적인 ‘더불어 사는 모습’을 뜻합니다. ‘연합한다’는 것이 머리로 동의하고 감정적으로 하나임을 느끼는 차원이라고 한다면, ‘동거함’은 실제로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즉 부부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된 것이 연합이라면, 실제 삶에서 모든 것을 나누고 자신을 포기하거나 희생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등의 모습이 동거함이라는 것이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즉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는데, 그 가장 기초적인 것은 血緣, 地緣, 學緣 등입니다. 여러분, 처음 만난 사람도 김씨 이씨 박씨 등 자신과 姓이 같으면 거부감이 사라지고 더 빨리 친해지지 않든가요? 고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금방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학교 동문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하나로 연합하도록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장치들이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때로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참으로 아름답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특별히 사람들의 연합이 극치를 이루어 아름다울 때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세계적인 행사에서 볼 수 있는데, 무리들의 群舞나 관중이 동참하는 카드섹션이 이뤄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일렬로 오와 열과 높이를 같이하여 行軍하는 것도 참 보기 좋지요. 그런 것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와”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시인은 사람들이 연합하여 어떤 일치된 동작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성전으로 예배하러 가는 무리들의 모습, 예배를 준비하는 거룩한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혈통은 같을지라도, 피차 난 곳이나 자라온 배경이 다른 사람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한 方向으로, 한 目標를 가지고, 즉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시인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에서 하나가 되고, 교제에서 하나가 되고, 나아가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➁ 그런데, 여러분! 시인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할 때, 이 말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체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뜻일까요? 첫째, “선하다(토브)”는 말은 ‘좋은, 즐거운, 유쾌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비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을 의미했고(창6:2),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하란의 미인 리브가의 아리따움(창24:16)을 표현하는 말로도 쓰였으며, 그리고 다윗이 유혹되지 않을 수 없었던 밧세바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삼하11:2). 그리고 또 이 말은 ‘행복한’, 즉 영어의 ‘happy’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답다”는 말은 ‘즐거운, 유쾌한’, 또 ‘노래하는, 음악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는 말은 온 집안 식구들과 친지와 이웃들이 모인 가운데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멋있고 예쁘게 꾸민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진수성찬이 마련되어 있고, 거기서 모두가 흥에 겨워 즐거이 춤추며 잔치하는 것과 같은 장면을 뜻합니다. 

여러분, 시인의 눈에는 성전으로 향하는 자들이, 지금 하나님께 올릴 제사를 준비하는 자들이 이렇게 보였습니다! 물론 실제로 아름다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시인이 자신의 영적인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시인의 신앙과 영성에 있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보는 거룩한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시인의 눈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눈에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도들이 신랑과 신부처럼 그렇게 멋있고 예뻐 보이기를 바라며, 지금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 자리가 잔치집과도 같기를 바랍니다. 

2) 종교적이고 신비한 아름다움

나아가서 시인은 성도의 연합, 즉 교회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하여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던 두 가지를 가져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교회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비교하는 첫 번째 것은 “대제사장의 임직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왜 여기서 대제사장 임직식이 언급되는지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령하고 거룩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즉 이스라엘의 신앙, 이스라엘의 종교에 있어서 아름다움의 극치가 무엇이냐?’와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다”라는 말은 대제사장의 임직식과 그리고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그것을 대신했고,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면할 자로서의 모습, 온 백성을 대신하는 자로서의 모든 준비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때의 복장과 모든 준비는 하나님께서 미리 일러주신 대로여야 했고, 그리고 최종적인 마무리로서 그에게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그렇게 갖추고서 지성소로 나아가는 대제사장의 모습은 지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지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 거룩한 아름다움을 교회와 비교하면서 교회가 가진 아름다움이 바로 그와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 사랑으로 서로 섬기고 하나 되는 교회를 바라보는 것은 대제사장이 제사에 앞서서 깨끗이 몸단장을 하고 그의 머리에 부어진 기름이 그의 수염을 타고, 그의 옷을 타고 전신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지성소로 들어가고, 그러면 지성소와 성막 혹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서 연기가 자욱하게 되는 것 등에서 볼 수 있는 그 거룩한 아름다움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도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있기에 여러분 역시 아름답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입고 있는 대제사장의 옷은 무엇일까요? 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보혈의 옷을,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옷을 입었습니다. 기름은 무엇입니까? 예, 기름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이곳에,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임하여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 앞에 선 저와 여러분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거룩한 기름이 발려져 있는 것이죠.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 시인이 보았던 그 신령한 대제사장의 모습이 지금 여러분 모두의 모습인 줄로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임직식보다 더 거룩하고 더 신령한 아름다움이 바로 주님의 교회의 모습이고 예배하는 여러분의 모습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아름다운 자연 경관

두 번째로 시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라고 말합니다. 시인이 성도의 연합, 교회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하여 두 번째로 비교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自然景觀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自然景觀을 보고 아찔했던 경험,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이 자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自然景觀으로, 현기증이 나고 입을 다물 수 없었던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소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헐몬산의 이슬이 그 주변 산들과 땅으로 흩날리는 것”이었습니다. 

헐몬산은 높고 장엄하며 사시사철 눈으로 덮여있는 산입니다. 이 헐몬산의 만년설이 아침부터 햇빛을 받아 하루 종일 녹다가, 저녁이 되면 위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이슬이 되어 그 아래의 산들과 아래 있는 지역으로 흩날립니다. 그 장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헐몬산 봉우리는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백색의 왕관처럼 보였고, 그것이 석양에 빛나면 황금색 왕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햇살을 받으면서 흩날리는 이슬들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신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이 헐몬산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성도가 하나 된 모습, 성도가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헐몬산과 그 이슬이 하늘 아래 산 아래로 흩날리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다시 가보고 싶은 세계적인 명승지들,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가보았으면 하는 세계적인 絶景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여러분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이고, 예배하는 이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교회는 지상의 그 어떤 자연 절경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교회가 이렇게 연합하여 동거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시마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온(에서) …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의(시24:5)와 생명(시133:3)과 번영(삼하7:29)과 구원(시3:8)과 영생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이 땅의 기름진 것들입니다. 시인은 이 복이 시온의 산들, 즉 시온에서 내린다고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복은 우리 시대 우리의 시온인 몸 된 교회를 통하여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은 교회를 아름답게 하셨을 뿐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복을 명하시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디서 이 최고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으며, 어디서 이 놀라운 복을 받겠습니까? 아름다움과 복이 있는 이 이중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곳은 오직 교회뿐입니다. 

3. 함께 이 꿈을 꾸고, 함께 이루어가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전교인 체육대회, 즉 <2011년 신광 가족 한마당>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시편 133편을 본문으로 오늘 설교를 준비했고, 여러분이 들으신 대로 오늘 설교의 주제는 “꿈”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강열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설교를 다 준비하고 나서야, 지난 2007년 9월 30일에 이 본문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도 10월 3일 전교인 체육대회를 앞둔 주일이었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그러다가,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 확신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시편 133편의 공동체처럼 되는 것을 소망하고 그것을 이루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죠.

시편 133편을 통하여 알게 된 우리의 꿈, 성도의 강열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첫 대제사장 아론이 임직식을 하는 신령한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교회, 헐몬산의 만년설이 저녁 햇살을 받으면서 바람에 흩날리면서 산 아래에 쏟아지는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바램입니다. 따라서 저의 꿈이 되고 여러분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도 이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되도록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소망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교회의 아름다움이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리는 예배의 자리입니다. 성도는 예배로 하나 되고, 그리고 예배하면서 더 깊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 이루지는 또 다른 자리는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치루는 행사들입니다. 이를테면 전 교인 체육대회 같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지상의 교회가 아름답고 선한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내일 신광 가족 한마당에서도 그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애에서 교회의 아름다움을 목격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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