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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워하지 말라 (마 10: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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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말라 (마 10:24-33)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제일 방해가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중요한 일, 무슨 뜻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 일이 잘 될까, 이 일이 성공할까 하는 두려움,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 결과에 대한 두려움,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습니다. 이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 마땅히 할 말을 하지 못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에 몇 번이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가 조사해 보았더니 무려 366번이나 있답니다. 그러니 윤달있는 해까지 하루에 한번씩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셈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26절에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28절에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또 31절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전도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전에 이미,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하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셨고, 전도하러 갈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끝까지 견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전도하러 나갈 때 가장 큰 문제가 두려워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딤후 1:7,8에 보면 사도 바울이 목회자였던 디모데에게 전도에 대해 이런 말을 합니다. 

"(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8)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주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두려워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들이 추수감사절 새생명 전도축제를 앞에 놓고, 또 한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애 동안에,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성도들이 되기 위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하는 일은 떳떳한 일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떳떳치 못한 일을 하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우리들이 거짓말을 한다거나 남의 것을 도둑질한다거나 남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하면서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떳떳한 일을 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26절, 27절을 보세요. 

"(26)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께로부터 들은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고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담대하게 증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는데, 그들이 전하는 것은 아무리 드러나고 알려져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이렇게 떳떳한 일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전도하다가 남에게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남의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남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남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일 없지만, 잡히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떳떳한 일이며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언젠가는 다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도리를 알고, 예수님의 구원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받고 보면 예수믿는 일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이 때부터 친구들에게 예수님 믿자고 말할 수 있고 당당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지 못하는 까닭은 전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판이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 이것으로 인해 자신이 받을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 할 필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떳떳한 일, 너무나도 좋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단종파나 사이비종파를 전하는 것입니까? 그들은 잘못된 진리를 전하면서도 얼굴에 무엇을 깔았는지 집 문을 두드리고 자신들의 믿음을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이 참된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 결과를 알지 못하고 전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떳떳지 못한 것을 전하면서도 자신있게 전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진 우리 믿는 성도들은 왜 움츠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참 진리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참 좋은 소식을 전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입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증거하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떳떳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28절, 29절입니다.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당당히 전하지 못하는 것은 그 후 우리가 당할 불이익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핍박과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핍박이라고 해야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정도입니다. 옛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붙잡히고 매맞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요한만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로 그들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예수님 믿기가 매우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사는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죽고 사는 일은 사람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찮은 가치를 가진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데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람들이 우리를 죽일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령 사람들이 우리를 죽인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죽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몸 뿐이요 우리의 영혼까지는 손대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자의 몸과 영을 다 멸할 수 있는 분이시니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오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 잘 보이려고 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보면 자연히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해야 할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28-29절)

이것은 죽음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문제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성공과 실패, 건강한 것과 병드는 것, 사업이 실패하든지 잘되든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우리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몸과 영혼을 다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왕의 금 신상 앞에서 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풀무 불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풀무 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고 그들보고 금 신상 앞에 절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사람으로서 두려울 수밖에 없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혹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죽게 하신다 해도 그들의 몸만 타는 것이요 그들의 영혼은 죽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니 무엇이 두려웠겠습니까? 결국 그들은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풀무 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극렬한 풀무불도 그들을 사르지 못했습니다. 머리털 하나도 그을리지 않았다고 성경은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살아나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증거했습니다. 

4세기에 크리소스톰이라는 위대한 설교가가 있었습니다. 황금의 입을 가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설교를 잘 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정부에 의해서 그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설교도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핍박을 당했을 때 이렇게 자문자답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일까? 그러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고 죽음까지도 유익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귀양가는 것일까? 두렵기는 하다. 그러나 이 지구와 지구상의 어디에 가도 주님은 거기 계시지 않는가? 재물을 잃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세상에 빈손으로 왔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에서 무섭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다. 또 세상의 좋은 것도 나는 그저 웃어넘길 것뿐이다. 나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재물을 사모하지 않으며 죽음에 위축되지도 않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크리소스톰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홀로 우리의 생명을 주장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영원까지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잃는 것은 이 세상의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어차피 우리가 다 이 세상에 내어놓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0절에 "우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섬세하게 우리를 보살피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보통 때도 이렇게 우리를 보살피시겠거든 하물며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어려움을 겪고 핍박을 받는데 보살피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일찍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곡식을 창고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천부께서 먹이시지 않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도 아니하되 저 꽃이 입은 영광이 솔로몬의 영광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너희를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때에도 이렇게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으로 살고,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건강하게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여러분이 받은 달란트만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간다면 역시 하나님의 섬세한 보살핌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그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스데반이 보니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서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왜 이때는 서 계셨을까요? 어떤 주석가는 말하기를 순교 당하는 스데반이 너무나도 장해서, 그가 그 고난을 뚫고 잘 승리하기를 응원하시느라고 그렇게 서 계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들이 고난 받는 현장을 다 보고 계십니다. 보실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는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시고 계십니다. 어느 정도로 세밀하게 돌보시는가 하니, 우리의 머리털을 다 세실 정도로 세밀하게 돌보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창공은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고 여행으로 마음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도중 비행기가 갑자기 불안정한 기류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는 비행기가 갑자기 떨어지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며 마치 비행기가 추락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내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어떤 이는 십자가를 붙잡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두려움으로 회개기도를 드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소녀는 아무 두려움이 없이 오히려 무척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면서 태연히 앉아 있었습니다. 다른 승객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얼마 후 비행기가 안정을 찾은 후 손님들이 소녀에게 이상스럽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비행기가 진동하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질 때 무섭지 않더냐?" 

“아뇨,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는 모두 두려웠는데 너는 왜 무섭지 않았지?” “그건요, 우리 아빠가 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거든요.” 

여러분, 유능한 아빠가 조종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행기가 요동할 때에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창조주시며 그분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나 핍박이 있다고 해도 주님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부인합니까?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입술로 주님을 부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지요? 마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입술로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입술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로는, 침묵으로 주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격언에 보면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에 가만히 침묵하고 있으면 거기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침묵함으로 기회주의자가 될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으로 주님을 부인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시인해야 합니다. 


셋째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행위로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시인하지요. 또 말할 때 침묵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을 들어보면 그럴 듯한데 행동을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 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주님을 부인하지 말라고 하셨고 시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시인하는 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대해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 나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내가 그것을 인하여 어떤 손해를 받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을 잘 해결해야 전도하는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까? 우리가 하는 것이 떳떳한 것임을 알 때,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것을 알 때, 하나님이 보살피시고 계심을 알 때 그렇습니다. 이 세 가지를 잘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증인으로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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