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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나줌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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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줌 (눅 19:1-10) 
 
 
❚괴로운 직장인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 ‘이태백’은 중국의 유명한 시인 이름이 아니라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오정’은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 친구 이름이 아니라 “사십 오세에 정년퇴직”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오륙도’는 부산 앞바다에 있는 섬 이름이 아니라 “오십육 세까지 계속 회사에서 근무하면 도둑놈”이라는 뜻이랍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말이 아니라 직장인들의 깊은 애환을 담은 참 서글픈 말들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중년은 ‘인생의 황금기’라 했는데 이제는 황금기는커녕 ‘최대의 위기의 시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중년 직장인들은 너무 힘듭니다. 40대만 넘으면 퇴직 걱정해야 하고 50대면 벌써 정리를 해야 합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데, 애들은 커서 한창 돈 들어갈 때인데 인생의 짐이 너무 무겁고,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40대 사망률이 세계 1위입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고 사망률이 높은 세대가 40대인데, 우리나라 40대 사망률이 미국보다 3배, 일본보다 2배가 높다고 합니다. 저도 이제 40대 말을 지나 곧 50대에 접어들 텐데 걱정입니다. 생명보험이라도 몇 개 들어놔야 할까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제 중년들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4~50대 중년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제일 컸는데 최근에는 20대 직장인의 스트레스가 더 크답니다. 그러니 이태백,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말이 나오고 ‘88만원 세대’ 대학 졸업하고도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못하고 인턴으로 취직해서 첫 월급 88만원 받는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한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등록금을 마련할 길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대학생들, 취직조차 안 돼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인생을 포기하는 현실, 젊은이들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정말 큰 위기입니다.

우리 여성분들, 남편한테 잘 좀 하세요. 특히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거든 바가지 긁지 말고 좀 맘 편히 쉬게 해주세요. 남편이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잖아요? 혹시 오늘도 더럽고 치사해서 당장 때려 치고 싶다가도 가족 먹여 살릴 생각, 공부하는 자식들 생각이 나서 꾹 참고 돌아왔을지 모르지요. 지치고 힘들어 돌아온 우리 남편들, 중년은 중년대로, 젊은 가장은 그들대로 고민 많습니다. 힘듭니다. 애환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좀 잘해 주세요. 오래오래 살아야지요. 건강해야지요. 힘내야지요. 부인들 몫이 정말 큽니다.

이런 세대를 반영하듯 요즘 인터넷 상에 이런 제목의 글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직장 생존 5대 전략, 직장에서 버텨내는 필살기 8가지’ 등등... 그 중에서 ‘직장 생존 5종 세트’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①야근 :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을 회사는 원한다. 직장상사의 눈치 살피며 오래 남아 있어라. ②아첨 : <아부의 기술>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한국사회에서는 아부가 생명이다. 충신보다는 간신이 성공하고, 고고한 학보다 비겁한 하이에나가 성공하는 것이 한국사회임을 잊지 마라. 

③술통 : 회식자리의 아이템은 고기+소주+노래방이다. 수십 년 전통이 하루아침에 안 바뀐다. 술을 잘 마시는 것만이 상사를 즐겁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④바보 : 함부로 나서지 말라.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는 순간 상사는 “저 녀석이 언젠가 내 자리를 꿰차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견제할 것이다. 상사는 하늘이다. 무조건 상사가 시키는 것만 해라. 

⑤군기 : 군대는 전쟁을 배우는 곳이고, 회사는 전쟁을 하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의 전쟁은 대학 들어가는 입시전쟁이나, 졸업 후 취업전쟁과는 수준이 틀리다. 결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직장생활이 치열하며,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별 짓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직장인들, 우리 남편들, 자녀들 이래저래 참 힘드시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장인들의 생존 고민, 정년 고민, 가족 부양 고민뿐 아니라 우리 예수 믿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은 여기에 한 가지 고민을 더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양심과의 갈등입니다. 직장에서 신앙을 제대로 유지하고 신앙의 양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관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이 참 많습니다. 남들도 다 하는 일입니다. 분명히 잘못 된 일이지만 눈 한 번 질끈 감고 넘어가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안 그러면 손해 봅니다. 

돈 손해, 진급 손해, 아니면 혼자만 잘 난 체 한다고 따돌림을 당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신앙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내가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것임을 잘 알지만 손해나 따돌림을 감수하기 쉽지 않습니다. 알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니 갈등도, 고민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직장인들이 겪는 애환도 다 겪으면서 여기에 신앙인으로서의 고민과 갈등도 지고 살아야 하니 크리스천 직장인들은 이중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셈입니다.

❚세리장 삭개오

여리고라는 마을에 한 직장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삭개오인데 이 사람에 대해 성경은 그리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그의 직업이 세리장이고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고만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세 가지 정보, 즉 그의 이름, 직업, 키에서 우리는 그에 대해 아주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삭개오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 ‘청결한 사람’ 또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식 이름으로 하면 ‘김청결’, ‘박정직’이입니다. 

아마 부모가 이런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지어주었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세리장이라는 삭개오의 직업에서 그가 이름대로 살지 못했음을 금세 알아챌 수 있습니다. 세리장(稅吏長)이란 세관장을 뜻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포항시 세무서장입니다. 여리고라는 도시는 요단 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로 세관이 있었고 이 여리고 세관에서는 지방 특산물뿐 아니라 길르앗 지방에서 오는 향유 등 여러 상품에 통관세를 징수했던 모양입니다. 

삭개오는 바로 이 여리고 세관의 우두머리로서 세금징수를 지휘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사람들이 다 세리를 ‘도둑놈’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식민지의 세금 걷는 일을 직접 하지 않고 유대인 중에서 세리를 뽑아 대신 세금을 걷게 했습니다. 그런데 세리들은 일정한 세금을 로마에 바칠 뿐 아니라 정해진 세금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걷어 in my pocket, 자기 주머니를 채워 착복하고 재산을 축적했던 것이지요. 알만 하지요? 

당시 세리들에게는 ‘허가 낸 도둑놈’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산에 가면 사자가 있고, 동네에 오면 세리가 있다”는 속담까지 있었다는데 하물며 세리를 총지휘하는 세리장이라면 어땠겠습니까? 그래서 삭개오를 소개할 때 그냥 ‘세리장’이라고 하지 않고 ‘부자’라는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도둑놈 중의 상 도둑놈” 소리를 들었을 테고, 로마 놈들에게 빌붙어 먹고 사는 ‘민족반역자’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았을 것입니다. 아마 삭개오는 여리고 동네에서 제일 미움 받고 욕먹는 사람이었겠지요.

게다가 성경은 그가 키가 아주 작았다고 말씀합니다. 워낙 작아서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사람들에게 가려 볼 수 없어 나무에 올라가야만 했을 정도로 그는 신체적인 핸디캡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핸디캡이 그로 하여금 더 이를 악물고 살게 했을지 모릅니다. 키도 작은 나를 사람들이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려고, 무시 안 당하려고 그는 더 이를 악물고 출세하고, 권력을 차지하고, 재산을 모으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살았던 삭개오가 과연 마음이 편했겠냐는 것입니다. 비록 로마를 등에 업고 권력도 누렸지만, 또 강탈과 착복으로 재산도 많이 모았지만 삭개오인들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편하기는커녕 날마다가 힘들고 날마다 깊은 고민과 갈등 속에 지냈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부자나 권력자도 ‘잃은 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잃은 자’가 꼭 가난한 자, 못 가진 자, 약한 자뿐 아니라 세상에서는 힘주고 살지만, 세상에서는 온갖 것을 누리며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속에 온갖 아픔과 고민, 공허함이 가득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삭개오처럼 말입니다. 

부자나 권력자, 많이 배운 자지만 이런 공허와 아픔이 있는 사람도 성경은 잃은 자요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교회 밖에도, 또 교회 안에도 이런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누리며 사는 분인데, 잘 나가는 분인데 너무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분들입니다. 인생의 공허를 어찌 채울까 몰라 방황하는 분들입니다. 말도 안 되고 유치한 이단에 많이 배운 지식층, 박사님들이 빠지기도 합니다. 다 그들 속에 있는 공허와 고민 때문입니다. 돈이나 명예, 권력, 지식이 이 공허를 절대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삭개오가 바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또한 이런 삭개오의 모습은 오늘날 현실과 신앙양심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우리 크리스천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먹고는 살아야겠고, 가족은 부양해야 하고, 돈은 벌고 싶고, 권력도 누리고 출세도 하고 싶은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때로는 양심도 속여야 하고, 성경이 하지 말라는 짓도 해야 할 때가 있고, 유혹도 너무 많아서 늘 양심의 가책을 무겁게 느끼며 사는 사람입니다. 어찌 해야 좋을까요?

❚예수님을 만나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이런 공허하고 아파하고 갈등하는 삭개오에게 한 가지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바로 여리고에 들리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시는 길에 잠시 여리고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기에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세리장 삭개오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요? 아니면 뭔가 예수님이라는 분을 만나면 이 인생의 공허함과 갈등, 아픔을 해결해 주실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키’라는 신체적인 핸디캡이 앞을 막습니다. 지나가는 예수님을 보려 해도 사람들이 앞을 막아 도저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세리장 체면에 쉽지 않은 일인데, 자기를 보면 사람들이 또 손가락질 할 텐데, 그래도 마음 굳게 먹고 용기를 내서 여기 나왔지만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아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인 모양입니다. 

이를 악물고 돈을 번 그 의지력으로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에 기어 올라갑니다. 좀 이상하지요? 옛날에 읽던 개역성경에는 분명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했는데 이 개역개정판에는 ‘돌무화과나무’랍니다. 예, 돌무화과나무가 맞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누에고치가 먹는 뽕나무가 아니라 무화과 열매가 맺히는 과실수인데 이 나무는 가지가 넓게 퍼지고 아래로 늘어져 있어 키가 작은 삭개오도 쉽게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쉽게 오를 수 있냐가 아니라 군중들의 눈입니다. 안 그래도 키가 작은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을 보면 그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습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어? 저거 봐라? 삭개오 아니야? 세리장 삭개오. 저 도둑놈이 나무에 올라가 있네? 안 그래도 키도 쬐그만 놈이 참 웃긴다” 하고 손가락질 하고 비웃지 않겠습니까? 이만저만한 용기 아니면 절대 못 할 일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했습니다.

우리가 삭개오의 키처럼 예수님을 만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경제문제, 직장과 사업, 가정환경, 시간, 건강, 신체적 혹은 여러 가지 약점과 핸디캡, 체면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 어떤 일보다 예수님 만나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안다면 극복해야 합니다. 삭개오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좀 수군거리면 어떻고 좀 창피당하면 어떻습니까? 좀 손해 보면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장애와 방해거리를 물리치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예수님이 계신 집에 들어갈 수 없다면 지붕을 뜯어서라도 중풍병자를 달아내려 예수님 만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만나면 나음 받는데요.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데요. 뭘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물론 삭개오가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최선을 다하고 부끄러움, 손가락질도 다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노력 때문에 그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의 노력은 도움이 되었을 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초청과 만나주심이었습니다. 5절과 6절을 읽습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제아무리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해도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냥 지나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쳐다’(원어에는 ‘올려다’) 보십니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있는 삭개오를 올려다보신 것입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빨리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해야겠다.” 분명 삭개오가 먼저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얘수님이 먼저 삭개오를 올려다보고, 눈을 마주치고, 만나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노력하면 도움은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만나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보세요. 분명 삭개오가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먼저 삭개오의 집에 가겠다고 삭개오를 초청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이미 아신 것입니다. 처음 보는데 그의 이름이 삭개오인줄 어떻게 알고 “삭개오야” 하고 부르셨겠습니까? 주님은 삭개오를 이미 아셨던 것입니다. 

그의 속에 있는 주님을 만나려는 열정과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짐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비록 키는 작지만 이 자그마한 삭개오 속에 있는 커다란 거인을 보신 것입니다. 이 죄인 삭개오가 변화되면 얼마나 큰 사람이 될지 미리 아셔서 예수님이 먼저 삭개오를 만나주시고 먼저 초청하신 것입니다.

❚삭개오의 변화, 우리의 변화

이제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정말 변화됩니다. 물론 그 전에도 세리장을 하며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은 느꼈겠지요.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게 죄지만, 이러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얻은 권력이고, 어떻게 오른 자리고,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삭개오가 예수님의 초청을 받자마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주님을 영접합니다(6절). 그리고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을 만나주시자 말자 이렇게 고백합니다. 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답니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요. 이를 악물고 욕 먹어가며 모은 재산인데 말입니다. 또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로 갚겠답니다. 레위기에 나온 속건제 규정에서 이런 경우는 원금에 5분의 1, 즉 20%만 더 주면 되는데(레 6:5) 네 갑절이라면 규정보다 16배로 갚는 셈입니다. 왜 이런 짓을 할까요? 바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돈보다 귀한 가치, 권력이나 지위나,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참된 가치인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삶의 가치와 방향이 바뀌니 그냥 일반적인 세리, 남들처럼 사는 세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세리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삭개오가 예수님 만난 후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합니다. 삭개오가 같은 세리였던 마태처럼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직업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마 9:9) 말이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예수님 만난 후에도 여전히 세리장 직을 유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전의 세리가 아닙니다. 크리스천 세리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예수장이 세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세리가 있습니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착복하고 못되게 사는 ‘도둑놈 세리’가 있고, 남들처럼 안 사는 ‘정직한 세리’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남들처럼 사는 직장인, 남들처럼 사는 사업가, 의사, 공무원이 있고, 남들처럼 안 사는 정직하고 양심적인,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크리스천 직장인, 사업가, 의사, 공무원’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따르려면 무조건 직장 그만두고 다 포기하고 따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열두 제자처럼 모든 것을 포기할 사람도 필요하고 신학교 올 사람도 필요하지만, 주님은 여전히 세상에 살며, 직장생활 하며, 내가 있는 그곳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크리스천도 꼭 필요로 하십니다.

물론 7절에서 주님이 삭개오네 집에 가시는 것을 보고 수군거린 사람들처럼 우리가 직장에서,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바로 살려고 할 때 여전히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따돌릴 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같이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뭐가 그렇게 잘났어?” 하고 수군거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절대 실망하지 마십시오. 절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어떤 수치나 부끄러움도, 그 어떤 수군거림도, 그 어떤 손해나 따돌림도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변에 끼칠 선하고 위대한 영향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삭개오처럼 작은 거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리장 삭개오는 우리 크리스천 직장인, 사회인의 위대한 모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직장에서, 사업에서, 가정에서 힘드시지요? 특히 우리 가장 여러분, 인생의 짐이 무겁지요? 고민도 많지요? 힘내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을 도우시려고 예수님이 친히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아무개야, 내 아들아, 내 딸아” 친히 우리의 이름을 불러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 분이 내 안에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상황 속에서 삭개오처럼 위대한 거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범죄하였습니다.
죄악 된 구조 속에서 일하며 직장에서 죄를 지었습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너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냐? 뭐가 그리 특별하고 잘났냐며 죄를 스스럼없이 지었습니다.
때론 부끄럽기도 하고 예수 믿는 내가 이러서야 되겠냐는 죄책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손해 보며 살 수는 없지, 진급이나 물질적인 손해는 볼 수 없지 하며 애써 위로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만나 내가 먼저 변화되고 변화된 나를 통해 내 일터가, 직장이, 사업이 변화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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