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막의 역할 (출 40:34-38)

첨부 1


성막의 역할 (출 40:34-38)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구약 성경의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벗어나는 과정과 광야 생활의 모습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직 하나의 국가로서 모습을 갖추기 전, 먼 타국에서 종살이 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비로소 하나의 독립된 공동체를 이루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에덴동산 이후 하나님께서는 아담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을 만나시되 가정 단위로 관계를 맺으셨지만, 이제 하나님은 한 민족의 개념으로 이스라엘을 상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은 율법을 받는 사건과 성막을 건축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이스라엘과 율법의 언약을 맺으심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선민(選民)으로 삼으셨고, 성막을 짓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분명히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완성된 성막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건립된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막을 인정하신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구속사(救贖史)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 백성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간 하나님께 제사 드린 곳입니다. 후일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성막은 성전으로 바뀌었고, 신약시대에는 다시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성막과 성전, 그리고 교회 -- 이 세 가지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이 시간 본문에 나타난 성막의 역할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1.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 장소임 (= 교회, 하나님의 임재)

34-35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본문은 성막이 건립된 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모습입니다. 본서 40장 이전까지에서 백성들은 성막의 모든 기구를 마련하였고, 40장에 와서는 성막을 조립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조립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의 영광’ 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 본절 초두에 “그후에” 라고 번역한 말(개역성경)은 모세의 성막 건립 역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성막 위로 구름이 덮였음을 보여주는 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성막 건축 사역을 온전하게 마친 것에 대하여 매우 기쁘게 여기시며 즉각 응답하사 성막 위에 임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자기 백성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 한 복판에 놓여진 성막, 여기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 백성의 삶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을 통치하심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역사 속에서 구원과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 ‘성막’ 은 오늘의 교회를 상징하며, ‘구름’ 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백성들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성막을 ‘회막(會幕, 오헬 모에드, the Tent of Meeting)’ 이라 한 것도 이곳이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는 처소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지만 이제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을 뜻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가운데서 무엇이 가장 소중합니까?

교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성막에 임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신정국가를 이루었을 때에 하나님은 성전에 임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십니다.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십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찾아오신 하나님, 이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을 통해 자기 백성을 다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막도 교회도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곳은 하나님과 성도가 만나는 가장 귀한 곳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귀한 곳입니까?

성막의 재료는 모두 값진 것들입니다. 지성소나 등대는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섬유류는 청색, 자색, 홍색의 고급실을 사용했습니다. 촛대나 불똥을 담는 그릇, 불똥 집게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재료들이 가장 귀하고 값진 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성막의 보배성을 가리킵니다. 교회의 보배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막은 가장 귀한 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에 성막은 무엇보다 귀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막이 성막 되고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은 그것의 재료가 귀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것도, 아무리 고귀한 장소라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거니신다고 했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계2:1).

교회를 금 촛대라고 한 것은 교회의 보배로움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거하시는 교회는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누구든지 만나 주십니다. 어떤 흉악한 죄인도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친히 만나주십니다. 어떤 실패자도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친히 만나주십니다. 어떤 병자도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소명 장면을 아십니까? 그는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훌륭한 왕이 죽고 나라가 쇠퇴하여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고민하던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죄 용서를 받고 새힘을 받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 선지자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자기 민족을 위해 용기와 힘을 얻고 다시 민족에게 나아가는 선지자의 모습입니다. 이로써 이사야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는 남은 생애동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아니,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능력을 받게 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서현교회에 임재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출발점이요 종착점입니다.

구약의 성전에 이방인은 감히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교회를 통해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 깊은 친교를 나누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막 위에 구름과 불기둥이 함께 함 (= 교회, 하나님의 보호)

38절=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광야의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을 뿐 아니라 성막 위에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기둥이 있어 백성들이 이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지금 교회 위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의 손길을 펴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38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본절은 광야 생활의 무서운 것들로부터 항상 이스라엘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돋보이는 말씀입니다.

낮에는 살인적인 더위가 백성들을 위협했습니다.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하여 온기가 필요했습니다. 광야에는 각종 맹수들이 들끓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 모든 것들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방법입니다. 이것들은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구름으로 해를 가려주셨고, 밤에는 빛과 열을 내뿜는 불을 구름 가운데 두셔서 불기둥으로 삼으시고 온기를 제공하셨습니다. 

중근동 지역에서는 낮에 달구어진 바위들이 밤에 갑자기 식으면서 그 온도차를 이기지 못해 이곳 저곳에서 갈라지는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은 구름과 불기둥으로 자기 백성들을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형편을 일일이 살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를 통하여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줍니다. 이 땅의 성도들에게는 더위· 추위· 맹수와 같은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많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성도들의 영적, 육적 모든 현재의 삶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성도들의 현재 문제를 해결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안식처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피난처입니다.

교회는 가나안 땅의 도피성과도 같습니다. 민수기 35장에 보면 가나안 땅 전역에 6곳의 도피성을 만들고, 불의의 사고로 살인한 자가 이곳으로 도망하면 살려주도록 은혜의 제도를 세워주셨습니다.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신약 교회의 모형이 됩니다.
 
우리의 원수 사탄은 우는 사자같이 성도를 넘어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을 공격해오고, 성도들의 건강과 물질을 노리며, 성도들의 가정을 파탄시키려고 광분(狂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호의 손길이 교회를 통해 주어집니다. 교회는 도피성이요 피난처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지키실 수 있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일시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질· 권력· 건강· 가문 같은 것들이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건강으로는 100년씩 살 것 같지만 순간에 무너집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누구든지 교회로 들어온 자는 주님이 지켜주십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 구름 기둥 불기둥이 보이지 않지만, 이곳은 주님이 지켜주시는 복된 처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의 방법으로 교회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성막을 주시고 가나안 땅에서 성전을 주어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 것처럼, 신약시대의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성막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성막은 백성의 진(陳) 한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을 때만 구름과 불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자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막이 움직이면 함께 움직였고, 성막이 자리를 잡으면 그곳에서 한달이든 1년이든 성막과 함께 거했습니다.

무디 선생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혼자 마음 속으로도 그리스도 신자가 될 수 있는데 왜 교회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까?” 

무디는 아무 말 없이 난로 속에 불붙는 석탄 한 덩어리를 끄집어내어 보여 주었습니다. 얼마 아니 되어 그 석탄덩이는 불이 꺼져 새까맣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그 질문자는 “신자가 교회에서 분리되면 심령이 식어져 냉냉 해지는 것이구나” 하고, 이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 있어야 죽지 않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 중심의 삶을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의 손길을 날마다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성막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필수적임 (= 교회, 하나님의 동행)

36-37=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고 보호의 현장이며, 따라서 가나안으로 가는 이스라엘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귀한 장소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사인(sign)은 성막위에 떠오르는 구름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막과 함께하시던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떠오르면, 이것은 가나안 땅을 향해 앞으로 떠나라는 신호였습니다.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성막 없이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었고,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가나안 땅은 천국의 예표입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진하는 것은 천국을 향하여 가는 것을 예표합니다. 본문에 보이는 이스라엘의 행군 모습은 오늘 교회를 통해 천국을 향하여 행진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미래의 천국 문제를 해결 받는 곳입니다. 우리의 온전한 구원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교회 세우실 것을 말씀하시고, 교회에 위대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 16:18-19=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주님은 교회에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원’ 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통해 천국 들어가는 열쇠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교회가 무서운 도전을 받고 있는 마지막 시대입니다. 교회 안에서부터 ‘에큐메니칼’ 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타종교들과의 일치를 위해 문호를 열어젖히고 주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무리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번 호주에서 열렸던 ‘세계질서 지구 정상회의’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수백명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하였는데, 그들은 이슬람, 카톨릭, 불교, 성공회 등 거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모임의 결론은 모든 종교가 절대적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를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이벤트 중에 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 종교간 벽 허물기 행사 등은 성경이 말하는 말세의 특징 중 하나임을 알아야겠습니다.

계 17:1-2=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여기 ‘많은 물’은 많은 사상, 종교 등 혼합 사상에 젖은 큰 단체를 의미합니다. ‘큰 음녀’는 적그리스도적인 단일 종교를 가리킵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들을 반드시 심판할 것입니다. 이것은 종말의 최대 징조 중 하나입니다. 

살후 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배교’ 는 혼합 종교, 즉 종교 다원주의자들과 같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외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일이 나타나면 우리 주님이 강림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는 자다가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성막과 함께 가나안으로 행군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교회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필수적인 기관입니다.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인도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20세기의 최대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그의 교회관을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히틀러가 무서운 독재자로 등장하여 독일 민족을 엄청난 길로 몰고 나갈 때 아인슈타인은 누가 히틀러의 미친 길을 가로막을 것인가? 전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독일 민중의 존경받는 대학 교수들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지성인들은 쉽사리 히틀러의 독재정치에 굴복했습니다. 그 다음 그는 민중의 목탁인 신문기자에게 바른 말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독일 신문들은 붓을 모아 “히틀러 만세”를 불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완전히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뜻하지 않은 항거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가 평소에 무시하던 교회로부터였습니다. 독일 교회는 히틀러의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났고, 수 백 명의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감옥으로 직송되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교회는 거인처럼 일어나 지식과 진리와 자유를 수호하였다. 나는 처음 교회를 경멸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없는 존경으로 이를 바라본다.” 

교회관이 흔들리면 모든 신앙의 체계가 흔들리게 됩니다. 올바른 교회관을 정립한 성도는 일사분란하게 언약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나안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육적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언약의 대열 속에서 천국까지 인도함을 받습니다.

38절=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