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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사랑 (요일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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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사랑 (요일 4:7-11)

사람들은 흔히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럴까요? 내 말소리가 여러분의 귀에 들리지만,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 T.V를 틀어 놓고 다이얼(dial)을 맞추면 화면에도 나오고 소리도 들립니다. 그것은 이 안에 라디오나 T.V의 전파가 가득하게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까? 손으로 만질 수가 있습니까? 공기가 이 안에 가득하지만, 눈에 보입니까? 손으로 만질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공기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기가 없다면 우리는 10분도 안 되서 죽게 될 것입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눈에 보이는 이 몸은 머지않아 죽어서 흙이 되고 말지만,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우주 만물도 저절로 생겼다고 합니다. 지구의 직경이 8,000mile(마일)인데, 만일 지구의 직경이 10,000mile 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공기의 농도(density)가 배나 강해져서 사람이 살 수가 없고, 중력(gravity)이 배나 더 강해져서 인간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반면에 지구의 직경이 8,000mile이 아니라 6,000mile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공기의 농도가 희박해져서, 산소통을 메고 다니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구가 대폭발(Bing bang)에 의해서 아무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양복 치수에 맞추어서 만들듯이 인간이 살기에 알맞도록 지구도 태양도 달도 만드신 것입니다. 

또 지구 표면의 3/4이 물로 덮여 있는데 저는 어려서부터 생각하기를 3/4이 땅이 되고 물이 1/4쯤이면 땅을 더 넓게 사용하고 좋을 텐데 왜 지구표면이 3/4이나 물로 덮였을까 하고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1/4만 지구를 덮였다면 수증기가 조금밖에 못 올라가서 식물이나 동물이 살 수가 없어서, 지구는 사막화돼서 사람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도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양복을 재단하듯이 창조하신 것이지, Bing bang에 의해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 물이, 수소원소(hydrogen)가 2이고 산소(oxygen)가 1로 구성되지 않고, H2O가 아니라 H5O2 등, 다르게 원소가 구성되었다면, 모든 식물, 동물, 인간이 살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섬세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지구는 24시간에 한 바퀴 자전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365일 동안에 한 바퀴 공전합니다. 이 지구를 누가 끄나풀로 매어서 잡아 돌리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전하고 공전합니다. 단 5분 빠르거나 늦게 도는 것도 아닙니다. 지구는 계란처럼 타원형인데 23.5도 기울어져서 돕니다. 그 이유는 태양열을 골고루 받기 위해서입니다. 지구의 기울기가 10도만 달라져도, 사람이 살 수 없다고 과학자는 말합니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지금보다 더 멀면 얼어 죽거나 추워서 못 삽니다. 또 지금보다 더 가까우면 뜨거워서 사람과 동물이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이 살기에 알맞도록 창조하시고 질서 있게 회전하는 것이지, 대폭발(Bing bang)에 의해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산천초목, 바다와 강의 물고기와 동물들 산과 들의 짐승들, 다 우리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엄청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알지 못하고 우연히 저절로 생겨났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입니까? 이 예배당이 저절로 하룻밤 자고 났더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 섬세하게 설계해서 그 설계도면대로 건축한 것과 같습니다. 마치 큰 부자가 넓은 땅에 수백 평의 웅장한 집을 짓고 고급 가구와 고급 자동차를 사 주었는데, 그 아들이 어려서 이 집을 왜지었나, 이 가구들은 왜 들여놨나 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주 하나님이 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우연히 저절로 생겨났다고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만약 이 질서 있게 운행하는 우주의 운행과 지구와 태양의 운행이 저절로 생겨났다면, 마치 쇳조각들을 담아서 흔들다가 공중에 떨어뜨렸더니 컴퓨터가 되고, 자동차가 되어서 떨어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광대한 우주와 지구의 질서있는 운행이 저절로 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는지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보다 크십니다.


2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삼으신 사랑

우주 만물을 우리 위해 창조하신 사랑보다 더 크고 놀라운 사랑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심판받고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섬기고 사랑하시다가 인간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propitiation)로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으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시고 운명하시고,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떤 죄인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으면 어떤 죄라도 용서받고, 지옥의 형벌 대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① 먼저 공의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그냥 용서하시지 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는가? 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justice)와 정의(righteousness)의 하나님이시므로, 죄의 값을 누군가가 치르지 않으면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가능하시지만, 할 수 없는 것 한가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公義)와 정의(正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89편 14절에 “의와 공의(righteousness, justice)가 주의 보좌의 기초(foundation)라 인자함과 진실(love faithfulness)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97편 2절에도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의와 공평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언약을 안 지킬 수가 없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의롭고 공평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늘 소중하게 메고 다니는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는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모셨습니다. 그 언약궤는 아카시아 나무로 되었고, 그 안팎은 황금으로 감쌌습니다. 그 안에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가 담긴 항아리와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이 있습니다. 그 법궤의 뚜껑 위에는 그룹천사(Cherubim) 둘이 서로 마주 서서 아래 뚜껑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곳을 바로 그 뚜껑을 “속죄소”(Mercy Seat)라고 하는데 “속죄”(atonement)라는 말은 “덮는다”(to cover)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일 년 일차씩, 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그 속죄소에 다 뿌리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피 없이 들어가면 즉사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옷자락 끝에는 방울이 달렸는데, 이는 살아서 움직이는지 죽었는지 알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또 줄을 길게 달고 들어가는데, 이는 대제사장이 죽으면 끌어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좌우간 이 언약궤에 그룹천사가 내려다보는 뚜껑은, 대제사장이 일 년 일차씩 피를 뿌리며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 “지극히 거룩한 곳” 지성소라고 합니다.

② 피가 없이는 죄 사함도 없고 하나님도 만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죽음을 의미하고, 피는 생명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죄를 덮기 위해서 양이나 염소가 죽어서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속한다”(贖)는 말은 죗값을 치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는데, 그 뜻은 “죄의 값을 다 치루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도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지옥 대신에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똑같으신 분인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을,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서 본 사람이 없습니다. 보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은 그 육신으로 하나님 본체의 영광을 가리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태양을 가까이에서 보면, 눈이 멀거나 타 죽고 말기 때문입니다. 햇빛이 강할 때 선글라스를 쓰는 것과 같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다 가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4성 장군이 별들을 다 떼어버리고,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부하들의 생활을 체크하려고 소대 근무하다가 다시 별들을 달고 원위치로 돌아간 것과 같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죄의 타락한 피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사 7:14), 유일하게 죄 없는 피를 가진 분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에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약”이란 “약속”이란 뜻인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중대한 약속을 하셨는데, 곧 “예수님만 믿으면 그 피로 어떤 죄도 용서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며, 자기를 낮추신 하나님의 겸손입니까?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대속의 피를 다 쏟아 주시고,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을 받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어야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착한일 많이 해야 구원받는 것도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봉사 많이 하고 착한일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한 것은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습니다.

미국 어느 농장에 부인은 예수님을 잘 믿는데, 남편은 예수님을 안 믿었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농장에 목사님도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족제비가 닭장에 들어가서 암탉의 목을 물어뜯어서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농장 주인이 목사님한테 알려서 닭장으로 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가 보았더니, 암탉이 피를 흘리고 죽었는데, 그 주인이 암탉을 툭 쳤더니 죽은 채 옆으로 쓰러지는데, 그 암탉의 품에서 병아리들이 삐약하면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암탉은 족제비를 피하면 살 수가 있었는데, 병아리들을 살리려고 품에 안은 채 족제비에게 물려 피를 다 흘리고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조롱하는 사람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했으나, 예수님은 열두 사단 더 되는 천군, 천사를 보내어 다 진멸시킬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세상 죄인들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고통을 참고 피를 다 쏟고 운명하셨습니다.


3 구원받고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한길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의 뒷문을 열어 놓고 내가 눈감아 줄 테니 안 보는 동안에 뒷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실 분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했고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영생이냐 영멸이냐를 결정하는 것이요,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장 10절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고, 5장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get sinness), 구원을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영생, 천국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겸손히 받아들이면 영생, 천국이 이제부터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거절하면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엄청난 선물을 거절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미국에서,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는데 도박에 손을 댔다가 돈을 다 잃고, 홧김에 총으로 사람을 쏴 죽였습니다. 그 청년이 사형을 받게 되었을 때, 그 도시의 주민이 주지사에게 “부디 용서하고 살려달라”고 진정서를 많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주지사가 살려주기로 하고 “사면장”을 가지고 감옥으로 들어가 면회를 청했으나, 목사나 신부인 줄 알고, “꼴도 보기 싫으니 어서 나가시오”라고 완강히 면회를 거절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면서 살려 주려고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글쎄 나가라고 하지 않소!” 그만 사면장을 가지고 왔던 주지사는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조금 후에 간수가 “조금 전에 주지사님이 사면장을 가지고 왔다가 거절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에 잘못했다고 사과의 편지를 보냈으나 쓰레기통에 넣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천국 문턱까지 왔다가 지옥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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