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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복을 입었는가? (마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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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을 입었는가?  (마 22:1-14)

오늘 본문말씀은 천국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말씀들 중의 하나입니다(1-2).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천국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천국은 하나님께서 차리신 완벽한 잔치자리와도 같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처음 이 천국에로 청한 백성은 천국보다 개인적인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졌거나 그 천국에 대해 적대적이기까지 했으므로 천국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로 판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5-6절을 보면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다"고 하셨으며, 8절에서는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다" 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청함을 받고도 이에 응하지 않은 백성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고 하셨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처음 청하심에 무관심과 무응답을 보인 백성 대신 다른 모든 백성들을 천국에로 청하셨다는 것입니다. 9-10절에 보면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했습니다. 

다섯째는 아무리 천국에로 청함을 받았다 하드라도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14절이 그것을 말합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여기서 우리는 본래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던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함을 받았다고 해서 아무나 무조건 다 천국에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천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은 과연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예복을 입었는가 하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으며, 이에 앞서 그 예복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옛 근동지방에서는 왕을 알현하려는 사람은 왕이 보내준 예복을 입어야만 왕 앞에 설 수 있었다는 역사적인 증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말씀을 하시면서 왕이 청하는 혼인잔치이니만큼 잔치에 들어오려는 모든 사람이 왕궁입구에서 예복을 받았을 것을 상정하고 이 비유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그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의미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언급하셨겠습니까? 아마도 자기 자신의 옷을 잠시 들여다보고는 먼지나 좀 털고 옷매무새를 바로 하면 왕궁에서 내주는 예복보다 자기 옷이 더 좋아보였기 때문에 예복을 걸쳐 입지 않았던 것이라는 의미로 그 한 사람을 언급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1-12절에서 보듯이 임금이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기를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가 아무 말로도 대답을 못했다는 것은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거나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는 변명을 할 여지가 없었음을 가리킵니다. 오직 자신의 교만과 임금에 대한 경홀함이 그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임금은 사환들에게 말하기를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13) 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는 진정한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단지 청함을 받은 자가 아니라 택함을 받은 자로 확증시켜주는 그 예복이 비유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신구약성경 속에서 옷이 어떤 상징적 의미로 언급되곤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욥29:14에는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했습니다. 

시132:9에서도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했습니다. 사11:5에서는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했습니다. 띠는 옷의 일부입니다. 같은 이사야서 61:10에서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합니다. 

롬13:14에서 사도 바울이 한 말은 아마도 이 예복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일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도 바울은 갈3:27에서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또 엡4:22-24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고 골3:8-14에서는 택함을 받은 이들이 입을 옷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옷을 입기 위해 벗을 옷이 무엇인지를 보다 길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계19:7-8에서는 그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이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먼저는 우리가 본래 하나님나라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죄인들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는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늘나라의 잔치자리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치장하고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던 이 세상의 옷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과 하나님나라의 삶은 스스로의 힘과 지혜와 행실과 자랑거리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옷을 부끄럽게 여겨 벗어던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고자 하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깨끗해지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고 세상적인 삶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함 위에 사랑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없으면 진정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청함을 받은 데 그친 사람은 결국은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져져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문안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이 곧 천국백성 됨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새문안교회의 예배에 출석하는 5000명이 넘는 사람들, 이 교회에 속한 8000명에 가까운 세례교인, 12000명 이상의 등록교인 모두가 단지 청함을 받은 이들이 아니라 택함을 입은 이들이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행하는 성찬식에서 누구든지 그저 떡이나 잔을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살피고"(28) "주의 몸을 분별하여"(29) "합당하게 먹고 마셔야" 하듯이, 우리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그저 새문안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등록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한 사람들이 모두 주님의 참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떡그릇에 손을 넣었지만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스스로를 죽음에로 내던진 불쌍한 인생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예복을 입었는가?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은혜의 옷 예수 그리스도를 입었는가? 그리고 그 옷을 입은 이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과연 의의 옷을 입고 있는가? 나의 허리에 공의와 성실의 띠는 띠어져 있는가? 아직도 나는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례는 받았으면서도 아직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아직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심령은 아직도 새롭게 되지 못하고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을 일삼으며, 무정함과 교만과 강퍅함과 참을 줄 모름과 불만 속에서 남을 용납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랑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예복을 입었는가?" 하는 이 물음을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고 진실하게 응답하며 하나님나라 백성임을 확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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