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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의 헤아림을 받기 위해 (시 5:1-12)  

유명한 설교가인 찰스 스윈들 목사님이 예배 설교를 마치고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예배당 문을 나서는 사람들 중에 한 분이 다가와 손을 덥석 잡고는 은혜를 받아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때 찰스 스윈들 목사는 눈에서 눈물 방울이 맺히게 되었다. 깜짝 놀란 교우가 “아니 목사님, 갑자기 왜 눈물을 보이세요?”라고 하니 그 때 목사님은 “예, 저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예요.”라고 하였다. 끊임없이 퍼주고 나눠주고 말씀을 준비하는 스윈들 목사는 은혜를 받았다는 말, 고맙다는 그 말에 자기 심정이 동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내 삶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내 가진 심정을 누군가가 알아줄 때 위로를 받는다. 아무도 나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고독하고 외롭고 지친 심정이 될 것이다. 요사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명예가 공격을 받고 루머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왜 그럴까? 자신의 심정을 왜곡당한 분노에서 온 것이다. 누구인가 내 심정을 알아주고 누구인가 내 본심을 이해하고 누구인가 내 심정을 소통할 수 있다면 아무 일 없는 듯 털고 일어설 수 있다. 

오늘 본문의 시편을 노래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기 심정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헤아림을 받으려 한다. 시5:1을 보라.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이 땅 위에 사는 사람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 앞에 이해받지 못하고 그 심정을 오해받는다 해도 오직 하나님이 헤아려 준다면 위로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오해 받고 나쁜 놈, 몸쓸 놈 등 온갖 구설수에 올라가 있어도 내 억울한 말에 하나님이라도 귀를 기울여 주시고 그 답답한 심정을 하나님이 헤아려 준다면 삶의 희망이 생긴다. 사람은 거짓되고 옳지 않고 유행따라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헤아림이란 소통이다. 신실하 하나님과 소통이 된다면 분노도, 억울함도 가라앉는 것이다. 그 하나님과 통하고 헤아림 받기를 원해서 개인적으로 취한 방법이 무엇인가?

1.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 (시5:2~3)

시5:2을 보면 다윗은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 하였다. 왕이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시5:3에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하였다. 다윗은 기도에 의존한다. 자신의 심정이 하나님에게 헤아림을 받도록 기도하고 바란다. 그런데 그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요, 아침에 드리는 기도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해산할 때 고통을 느끼면서 내는 신음 소리다. 나의 심정이 하나님께 알려지지 못했기에 고통스러움을 목소리로 부르짖는 것이다. 부르짖는 기도는 근심을 찬송으로 바꾼다.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인다. 사사기 15장에서 삼손은 블레셋과 싸운 이후 목마름으로 기진하였다. 그때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이 샘물을 솟아나게 하셨다. 그 물을 먹고 정신을 차린 삼손은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 즉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고 하였다. 

부르짖는 기도, 심정을 토하는 기도요 억눌린 심정을 폭발하는 기도다.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을 때 부르짖음만이 회복희 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다윗은 또한 아침 기도를 드린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드리는 아침 기도는 삶의 조율이다. 근심과 고통, 환란으로 얽혀 있는 삶을 하나님과 먼저 조율하고 나서 대하려는 하나님과의 상담이다. 왕이신 하나님은 해결자가 되어주시려 아침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리고 그 기도를 도와주신다. 다윗은 이 기도의 비밀을 알기에 아침에 기도하고 바란다. 우리도 하나님이 내 말을 들어주시고 하나님과 소통이라도 되기를 갈망한다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 
  

2. 하나님께 예배드린다. (시5:7)

시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하나님께 심정을 아뢰이고 심정의 헤아림을 받기 원한다면 주의 집에 들어가 예배해야 한다. 다윗이 고백하는 말씀 그대로 주를 경외함으로 예배해야 한다. 예배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타내야 할 당연한 반응이다. 마음의 모든 생각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바란다면 예배는 더 없는 좋은 통로다. 

예배가 너무 형식화되었다고 한다. 예배가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한다. 그러나 예배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지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생명의 떡이 되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사신 명절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경험이 예배다. 내가 죽는 예배의 예배자는 그 예배 속에 거룩해진다. 그 예배 속에서 통회하고 예배 속에서 악을 버린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은혜의 삶이다. 감정은 정화되고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 만나게 된다. 내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감격한다. 그래서 존귀와 영광, 능력과 권세, 모든 가치를 그분께 돌려드린다. 이 예배 행위를 통해 눈물을 그치고 체념을 떨쳐버린다. 예배의 순간에 위로와 힘이 솟아나고 감동과 결단이 생겨나며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 하나 헤아려졌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더욱 경외함으로 예배해야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러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나를 찾으시고 나를 헤아려 주신다. 
  

3. 하나님께 삶의 역전을 기대한다. (시5:8)

삶이란 언젠가 좋아질 것이다. 지금은 수세요, 지금은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반드시 뒤집힐 것이요 역전이 될 것이다. 나의 억울한 삶이 끝이 나고 진정한 내 모습으로 헤아림을 받으려면 역전의 희망은 진정한 내 모습으로 역전됨을 기대해야 한다. 

시5: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이런 기대가 또 어디에 있을까? 다윗은 원수들로 말미암아 버림받는 인생이 아니고 오히려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곧게 하소서.”라고 한다. 원수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것이지만 오히려 역전되는 삶, 원수로 말미암아 인도함 받는 삶을 기대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심정의 헤아림을 받기 원한다면 삶을 긍정하라. 원수들에게 고통 받고 원수들에게 쫓기고 원수들에게 결박당할 수 있으나 원수는 마침표에 이른다고 믿으라. 

시5:9~10에 기록된대로 원수들의 입은 신실함이 없다. 그들의 심중은 심히 악하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는 아첨이다. 하지만 원수들로 인해 삶은 더욱 반듯하게 된다. 주의 길은 내 목전에 곧게 하실 것이기에 삶은 비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신다. (시5:5)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한다. (시5:4)

여호와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신다. (시5:6)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을 믿고 이런 하나님에게 삶의 역전을 기대할진대 원수의 종국은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원수가 세고 끈질기게 보이더라도 악의 종국은 잠깐만에 온다. 삶의 역전은 곧 온다. 전반전에는 힘들었어도 역전의 후반전은 곧 온다. 이 역전의 삶을 기대하며 희망을 품고 살아야 나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한나는 성소에 나가 기도하다가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주신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통곡하며 아들 없는 심정을 아뢰이다가 하나님이 아이를 허락하셨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심정의 헤아림을 받은 한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한다. (삼하2:1)

여호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다. (삼하2:2)

여호와는 역전시키는 하나님이시다. (삼하2:3)

즉,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우리는 내 심정을 헤아림 받고 위로를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삶을 바꿔놓는 역전의 삶을 기대하라.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토옥 동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이들을 물리치지 않고 상 주시기 때문이다. 

동서남북 다 막혀 있고 어디를 보아도 원수들이 비웃고 조롱할 때 하나님이 내 말을 들어주신다는 희망을 품으라. 그 분과의 소통이 주어지면 아무 일 없는 듯 얼굴을 고치고 걸음걸이를 고치고 새 옷을 입고 문을 나설 수 있다. 그리고 내 심정의 깊은 것까지 다 헤아려 준다면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삶의 승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헤아림을 받는 위로와 소통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왕이신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왕따 중의 왕따를 당해도 고개를 들고 개선 장군처럼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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