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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신도들 - 어떻게 했는가? (행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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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들 - 어떻게 했는가? (행 8:1-8)  

사도행전은 사도의 이야기가 주도적으로 시작된다. 베드로의 사역이 큰 축을 이루면서 7~8장에는 평신도의 사역으로 다시 그 흐름이 전환된다. 스데반과 빌립이라는 두 집사, 즉 제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사역이 소개된다. 즉, 교회의 왕성한 성장과 활력의 그 밑바닥에는 성령 충만한 평신도, 지혜 충만한 평신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가 아는대로 초대 교회의 최초 순교자는 사도 그룹이 아니다.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이다. 스데반은 마지막 임종 시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아뢰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똑같이 닮은 모습으로 순교하였다. 너무도 놀라운 평신도 신앙이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숨을 거두는 그 모습은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다. 그런데 초대 교회 평신도들은 모두 다 비슷한 신앙 수준이었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유지해 가는, 아니 신앙을 전하고 나누는 일에 절대 게으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예루살렘교회를 둘러싼 사람들의 박해는 점점 더 거세어져 갔다. 그리스도인들의 색깔이 분명해질수록 유대교와 다른 모임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8:1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라고 하였고 행8:3을 보면 사울은 이 박해하는 일에 앞장 서서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고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의 사람들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집으로 쫓아 들어와 사람들을 옥에 넘기는 도전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섰다. 빌립과 박해로 인해 흩어진 사람들은 환경에 굴복하지 않았다. 어떻게 했는가?  

1. 위기 속에서도 복음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에서 머물며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 그들은 박해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다. 박해가 있을 때 박해를 피하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다. 박해를 앉아서 받아들이는 것만이 참신앙이 아니다. 피할 길이 있을 때 피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다. 

그런데 행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은 복음의 열정과 확신이 박해 때문에 식지 않았다는 말이다.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라는 지경으로 나아가게 될 때 새로운 사람, 새로운 동네, 새로운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시간과 기회를 선용하는 것이다. 

바울은 옥 중에 갇혀 있을 때 빌1:12에서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다. 생명력을 지닌 그리스도인은 위기를 낙심의 기회로 삼지 않는다. 위기가 오더라도 그 속에서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의 기회로 삼는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을 복음을 위해 사용할 줄 알고 환경을 복음을 위해 사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복음의 기회로 주어진 자리를 수용하는가?
  

2. 위기 속에서도 구원자 되신 예수가 삶의 전부인 사람들이다.

행8:4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8:5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8:1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쫓겨가서 흩어지는 어수선함 속에서도 여기 빌립과 흩어진 사람들은 복음을 이야기한다. 그리스도를 말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한다. 그리스도, 즉 구원자가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옛날 최권능 목사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갔다. 거리를 두루 다니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니 순사의 말이 놀라 뛰는 바람에 괘씸죄로 걸렸다. 구치소에서 심문을 하며 말의 채찍으로 때리니 최권능 목사가 “예수 천당!”이라고 외쳤다. “너는 아프다고 하며 신음 소리를 내지 않고 ‘예수 천당’이 무슨 말인가?”하고 화를 더욱 내니 최권능 목사가 말했다. “물동이에 물이 가득찼는데 이리 저리 흔들면 물 밖에 더 흘러나오겠는가? 내 안에는 예수로 충만해서 나온 것이 예수 천당 밖에 없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여기 예루살렘교회의 박해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였다. 그러므로 각 처에 흩어진 그 낯선 땅에서도 구원자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시대를 산다. 그런데 이런 자유로운 나라에 살면서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 복음, 그리스도, 하나님이란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숨기려 하는데 더 전문가이다. 박주영 선수는 골을 넣으면 골 세리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것이다. 구원자, 나의 인생의 전부가 주님이라는 고백인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고백을 못하는 것이다.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서도 고백을 목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정말 영적 권위가 평신도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고백하고 전하는 일에 프로들이었다.
  

3. 위기 속에서도 능력과 표적이 따르는 사람들이다.

많은 무리들이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았다. 행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라고 하였다. 평신도 지도자인 빌립 집사는 부활의 주님의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는 자였다.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자였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16:18下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빌립은 주님의 약속하심 그대로 능력과 표적을 행하였다. 이는 빌립이 주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고 100% 믿고 100% 순종했다는 말이다. 능력과 표적이 따르는 것은 믿고 의심하지 아니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평신도들의 영적 수준은 100% 내어맡기는 믿음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크리스챤의 숫자는 많아졌는데 영적 권세가 없고 능력과 표적에 대해 고개를 흔들고 과학의 시대에 무슨 낯선 이야기냐며 능력을 거부하는 것은 지성적 신앙 같으나 믿음 없음의 모습인 것이다. 믿음은 역사를 일으킨다. 역사를 일으키지 않는 믿음은 인내 없는 소망과 같고 수고하지 않는 사랑과도 같다. 짝퉁은 아니지만 반신불수 중풍에 고생하는 병든 믿음이다. 소망이 있다면 인내가 가능하고 사랑이 있다면 수고가 가능하다. 따라서 믿음이 있다면 큰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평신도로서 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람들과 빌립 집사는 표적과 능력이 교회의 상식이었다. 당연히 일어나는 신앙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평신도의 신앙과 영적 수준은 도성을 변화시켰다. 

행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작은 기쁨이 아닌 큰 기쁨이다. 이방인들의 문화권 속에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들어갔을 때 도성이 영향을 받았다. 놀랄 수 밖에 없는 표적과 능력 안에서 사마리아 도성은 회복되고 치유되며 밝아졌다.  

초대 교회 평신도들이 위기 속에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며 한 지역을 기쁨의 도성으로 바꾸어 놓는 이 힘은 무엇인가?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는가? 막연히 성령 충만, 지혜 충만한 사람이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다른 말로 한다면 이 힘은 부활의 신앙이다. 부활을 믿는 자가 지닌 소망의 힘, 사랑의 힘이다. 그러므로 히10:34~35은 그 소망을 풀어 말한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우리 시대의 성도들은 여기가 다 인줄 안다.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 받는 후사임을 모르기에(마25:34) 짝퉁 교인이 된 것이다. 내세를 알면, 영생을 알면, 더 낫고 영구한 소유를 알면 요동치 않는다. 이 땅의 안일함에 이 땅의 좋은 것에 도취하지 않는다. 땅에 속한 것은 잠깐이기에 아니 아무 것도 아니기에 실패가 문제될 것이 없다. 또 믿음을 빼앗기려는 박해가 문제될 수도 없다. 욕 먹는 것, 누명 쓰는 것이 문제될 수가 없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장래에 받을 상임을 알면 흩어진 사람들과 빌립 집사처럼 살아간다. 이 소망을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 소망을 받을 자격을 주신 이가 예수님이시다. 이 소망의 나라를 가르쳐 주신 분이 성령님이시다. 초대 교회의 힘, 평신도들의 힘, 전도에 대한 확신과 구원의 예수, 표적과 능력 행함의 힘이 이 소망의 신앙에서 나왔다. 

초대 교회의 평신도들은 위대하다. 주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부활 신앙이 교회를 세계의 교회로 확산시켜 나갔다. 어떤 박해도 솜방망이에 불과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진짜 삶을 요구한다. 평신도가 일어나야 한다. 교회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목사의 책임이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부활 신앙, 소망 신앙을 가지면 교회의 영광을 영광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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