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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립보의 두 여인 (행 1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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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의 두 여인 (행 16:11-18) 
 
 
예루살렘 교회 형성 후 약 20년 만에 드디어 복음은 유럽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빌립보의 두 여인과 관계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정한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습니다(11). 3차 여행 때는 빌립보에서 드로아까지 닷새 길이었는데, “이틑날” 도착할 만큼 순풍에 돛단 항해였지요(20:6). 막히기만 하던 길이 이제 확 뚫려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12).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가 기원전 356년에 자기 이름을 명칭으로 정했습니다. 기원전 42년에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이 시저를 죽인 브루투스 군대를 격파한 필리피 전투(Battle of Philippi)로 유명해졌고, 기원전 31년에 퇴역 군인들이 정착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군대들에 비하면 바울 일행의 이동은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때 바울 일행의 발걸음으로 유럽과 세계의 역사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의 주목을 받느냐 못 받느냐’로 인생항로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 일행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도 사람의 눈에 주목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분의 뜻을 준행하면 주님께서 그를 통해 당신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비록 약간 경로를 변경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한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일지라도 때로는 그 선택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시지요. 법학도가 되려던 루터가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성경을 연구하게 된 일, 조용히 연구하며 지내려던 칼빈이 파렐의 권유로 개혁에 동참한 일도 그러했습니다.

며칠 쉰 후에 안식일이 되자 바울 일행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로 나갔습니다(13a). 유대인들은 10명의 남자만 있으면 회당을 설립했지만 그곳은 회당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대신 강가에 앉아 있다가 “모인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13b). 여자들에게 말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닌데,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방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항상 감사했었기 때문입니다. 종종 복음이 문화를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복음과 함께 서구의 성공주의 문화를 받아들여 영향을 받고 있고, 유교문화 역시 극복하지 못하여 교회의 직분들을 계급으로 인식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때 바리새인이기도 했던 바울은 유대교 문화를 뛰어넘었기에 여인에게도 말씀을 전했습니다(갈 3:28).

모인 여자들 중에 “루디아”는 자주색 염료 산업의 중심지였던 두아디라 성 출신의 자주색 원단 사업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하셨습니다(14). 무시하고 지나칠 뻔했던 한 여인에게 주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여인의 마음이 열리자 집도 열렸습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강권”하여 빌립보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15). 빌립보서를 보면 이 때 형성된 교회는 바울이 떠난 후에도 선교 사역을 지원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든든한 후원 교회가 되었습니다(빌 4:15-18).

한 여인의 마음을 여심으로 시작된 일이 유럽 선교의 전초기지를 형성하게 되었지요. 전도자의 말에 마음을 여는 일, 그의 말을 청종하는 일 등이 미약하고 시시해 보일지라도 성경은 그 일들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결과임을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이 말해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으면 처음 만남에서도 마음을 열고 청종하며 헌신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내가 만난 작은 모임, 무시하고 지나치기 쉬운 한 사람, 이전의 사고방식으로는 상종하기 껄끄러운 사람들 중에 루디아가 또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일수록 때를 얻든 못 얻든 더욱 전도에 힘쓰며, 작은 일과 적은 숫자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바울 일행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또 다른 여인을 만납니다.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인데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고 있었습니다(16). 그녀는 바울 일행을 쫓아다니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17)하고 소리쳤습니다. 잠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날”을 이같이 반복했습니다(18a). 유명한 점쟁이가 따라다니며 공짜로 홍보해주니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고, 그런 기회를 이용하면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바울은 “심히 괴로워”하면서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했고, 귀신은 즉시 쫓겨났습니다(18b).

어떤 경우도 귀신은 하나님의 사역을 돕지 않습니다. 잘 헤아려보면 귀신은 여종을 통해 교묘하게 진리를 왜곡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라 하면 성도는 성경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 말을 듣는 헬라 주민들은 자연스레 신들 중에 가장 높은 제우스를 떠올리게 됩니다. “구원”도 성도에게는 죄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지만, 그들에게는 옥타비아누스와 같은 제왕을 통해 정치나 경제가 해방되는 것을 뜻했습니다. “길” 앞에 정관사를 빼서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를 여러 길들 중 하나로 살짝 바꿔놓은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얼핏 교회를 지지하는 선언 같지만, 듣는 자로 성경의 하나님과 구원을 전혀 생각할 수 없도록 한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믿지 않는 자의 도움을 받거나 그들과 협력하는 일에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설령 점치는 여종이 복음 전파에 일시적으로 도움 되었다 할지라도, 그녀와의 협력에 의한 성공은 하나님의 영광을 점치는 귀신과 나뉘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창 14:23)고 거절한 일이 있습니다. 승리한 아브라함은 전리품을 차지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이 조금이나마 소돔 왕에게 나누어지지 않도록 단호하게 거절했지요.

용한 점쟁이가 지지하니 옳은 말이라고 인정한다면, 최종 권위는 점쟁이에게 있게 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과학적 관찰이나 고고학적 증거나 철학적 사고를 근거로 성경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일 역시 성경의 ‘최종권위성’을 무너뜨립니다. 복음은 세속적인 권위로 옹호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이론을 파하고 모든 대적하는 생각을 사로잡아 복종시키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고후 10:4-5). 말씀의 강력한 역사를 보조하려고 감성적 분위기를 조장하거나 심리적인 수단을 사용하면 당장엔 도움이 될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순전한 복음을 오염시킵니다.

복음서를 보면, 귀신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정체를 알지 못할 때조차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주님께서는 “꾸짖어” 잠잠하라고 명하셨고, 저희의 말함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눅 4:34-35, 41). 대신에 당신님이 누구신지를 선포할 특권을 오직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누구시며, 그분께서 임하게 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그분의 자녀요 그분의 백성인 교회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교회만이 이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과 터입니다(딤전 3:15). 하나님의 백성이 세속의 어떤 것과 연합하여 이 특권을 나누는 순간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390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삼자 우상 숭배자들은 범법자가 된 반면 기독교인은 각종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무늬만 신자이고 내용은 이교도인 사람들을 마구 받아들였습니다. 이와 함께 이교도 풍속이 섞였습니다. 황제도 참석하는 예배인지라 예배당 건물은 화려해지고 웅장해졌습니다. 황제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 향불이나 몸짓들이 예배의식에 도입되었습니다. 직분자들의 복장도 궁전의 권력자들처럼 화려해졌습니다. 중세 시대에 교회는 유럽 땅의 40%를 차지했으며 세속의 권력 위에 앉았습니다. 온 유럽이 교회였는데, 달리 표현하면 온 교회가 세상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세속이 연합하여 구분이 없던 시대, 세속의 권세가 진리의 기둥노릇 하던 그 시대를 암흑기라 부릅니다.

사도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했습니다(고후 6:14-16). 불신자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불신자와 분명한 구별됨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종교 형식이나 활동에 따른 구별이 아니라 가치관으로 구별되어야 하겠지요. 한 사람이 가진 가치관들은 주로 배우자 선택이나 진로 선택 등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이 때 성경적 가치관과 세속적 가치관이 함께 작용할 수는 없습니다. 두 가지 가치관을 사안에 따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면 이미 오염된 것이지요.

빌립보의 두 여인 모두 바울 일행의 전도 사역을 도우려 했습니다. 한 여인은 주께서 마음을 여신 결과로 강권했고, 한 여인은 귀신이 조종한 결과로 열정적이었습니다. 이때 사도는 어떤 도움을 받고 어떤 도움은 거절할지 잘 선택했습니다. 가만히 있었다면 한통속으로 보였을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므로 분명히 구별했습니다. 분명한 거부 의사를 통해 우리 주님의 권세와 영광을 증시했습니다. 만일 급하게 성과를 얻고자 하거나 좀 더 쉽게 사역하려는 욕망이 작용했다면, 성공 주의적 가치관을 가졌었다면 분별하기 힘들었을 유혹을 잘 분별하여 물리친 것이지요.

사도행전에는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더불어 사단의 훼방하는 모습이 줄기차게 등장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단의 전술전략을 극복하면서 전진했습니다. 끊임없이 역사하는 사단의 훼방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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