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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금 (마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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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마 5: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있어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나는 어느 부류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말씀은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아니라 꼭 있어야할 사람이되라는 뜻입니다. 소금처럼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 소금은 식탁의 필수품이다. 

소금은 모든 음식에 안 들어가는 곳이 없습니다. 모든 음식에 소금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고기가 있고 신선한 생선이 있어도 소금이 없이는 맛을 내지 못합니다.
  
성경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욥6:6)고 했습니다. 채소를 먹든 육식을 하든 소금은 필요합니다. 싱거운 것들을 맛있게 하고 맛없는 것을 맛있게 하는 조미료 중의 조미료입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이나 내는 조미료가 아니라 몸에 꼭 흡수해야 할 물질입니다. 소금이 음식물을 분해하고 노폐물을 배설하는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인체내의 신진 대사를 주도하는 것이 소금입니다. 몸의 건강을 해치는 최대의 원인은 신진대사에 이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포 안의 낡은 것은 밀어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신진대사가 원활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안될 때 혈액이 산성화되고, 면역성이 약화되어 병이 생길 위험이 높아집니다. 소금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합니다. 
  
젊음이란 신진대사가 활발한 것입니다. 어린이는 상처가 나도 금방 아물어 버립니다. 외과 수술 전후에 염분을 섭취하면 상처의 회복이 빨라진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입니다. 
  
소금을 따로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은 모든 음식물에 소금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 부패한 음식을 먹었을 때도 소금을 먹으면 불순물을 소화시키며 살균 작용을 합니다. 소금에는 해독력이 있고 살균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라” 남을 돕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소금이 음식에 들어가 맛을 나게 하듯이 겸손한 자세로 돕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음식에 들어간 소금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떡국이나 국수에 고명을 넣습니다. 고명은 모양을 내기 위해서 넣는다면 소금은 맛을 내기 위해 넣습니다. 고명은 없어도 먹지만 소금이 안 들어가면 싱거워서 먹을 수 없습니다. 소금은 녹아서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맛을 냅니다. 고기를 재어 하룻밤을 지나면 소금 맛 양념 맛이 고기에 침투하여 그 맛을 더해줍니다. 
  
바닷물에 3%의 염분이 바다를 썩지 않게 보존하듯이 기독교 신자가 있어서 세상이 썩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 멸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 사람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창18:22).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 말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라! 너희 때문에 세상이 존재케 하라고 하십니다. 

  
󰊲 말을 소금으로 맛을 내듯 하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이 말씀은 소금으로 맛을 내듯이 말을 맛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 형편 사정에 딱 맞는 말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매일 맞고 사는 아내에게, 남편께서 무병장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하라는 말은 듣는 사람이 맛있는 음식처럼 받아들일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는 것은 말에 소금을 치라는 것입니다. 음식물에 간장이나 소금을 쳐서 맛을 내듯이 말을 맛있게 요리하라는 것입니다.  말을 적절하게 하고 신선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옛날 헬라인들은 재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고 말에 소금을 넣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입은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부패한 말이 나오면 안됩니다. 듣는 자에게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가 되는 말은 진리의 말 참 말입니다. 소금은 맛이 담백합니다. 진리를 나타내는 말은 간결합니다. “소금이 쉬냐?”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소금은 스스로 부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신랄해야 합니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분석이나 비평이 매우 날카로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극을 주고 맛깔 나는 말입니다. 날카로운 말에 고상한 재치가 들어 있고, 점잖은 익살이 들어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익살과 재치가 번득이는 말이 균형 잡힌 이해력과 결합될 때, 그 말의 결과는 명하여 보낸 일을 형통케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말은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실제적인 말이란 질의하는 자에게 정확하게 핵심적인 말로 답변하는 말입니다. 분명하지 못하고 어중간한 대답이 아닙니다. 주의 깊게 생각하고, 감정을 가라앉게 하고 상대의 말에 꼭 맞는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평범하지만 반박할 수 없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화술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큽니다. 
  
우리가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듣는 것이 잘못된 말의 치료법입니다. 그것이 은혜로운 말의 비결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2) 분노를 쉬게 하는 대답, 격양된 감정을 가라앉히는 기술을 연마하시기 바랍니다.
  
소금이 많이 들어가면 짜게 되고, 소금이 적게 들어가면 싱겁게 됩니다. 적당한 분량의 소금을 치는 것이 기술입니다.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15:23) 감탄을 일으키는 말의 지혜가 있기 바랍니다. 

  
󰊳 소금을 쳐서 화목 하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막9:50) 
  
예수님은 음식물 속의 소금은 사람들 사이의 화목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 소금을 화목의 재료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 속에 소금이 없어 불화 한다. 음식에 소금이 필요하듯이 사람들 속에는 화목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푸성귀에 소금을 뿌리면 숨을 죽입니다. 빳빳한 기운을 죽여 부드럽게 됩니다. 
한편에게만 화목할 것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둘 다 자기 안에 소금을 뿌려야 합니다. 자기 주장을 하며 논쟁을 벌이지 않도록 소금을 치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꼴사나운 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언제나 어디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하고 쟁론하였음이라”(막9:33-34)
  
제자들의 다툼은 서로 자기가 잘났다는 자존심 싸움이었습니다.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나 가지고 다니는 물건입니다.
  
화목은 소금과 같고 소금은 화목과 같습니다. 화목은 소금처럼 선량합니다. 선량함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내면의 성격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이 말에 ‘아니요’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 생활에 주된 필요는 물과 불과 철과 소금이라고 합니다. 
  
화목은 좋은 것입니다. 화목이 없으면 불행합니다. 
진수성찬에도 소금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도 소금을 쳐서 번제로 드렸습니다(렘43:24). 소금은 부정한 것을 정하게 합니다. 엘리사는 물이 나빠 토산의 열매가 결실치 못하던 여리고 성에서 물의 근원에 소금을 뿌려 물을 고쳐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일이 없게 했습니다(왕하2:20-21).
  
1930년 3월 12일 인도에서는 소금 행렬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치하에 있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인 인도에서 소금을 직접 만들 수 없게 했습니다. 소금은 무조건 사 먹어야 한다는 소금법을 선포했습니다. 
  
간디는 “소금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우리는 단지 해안에 있는 소금을 가지러 간다.” 하고 비폭력 무언의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사바르마티에서 단디까지 322km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70여명이 간디의 뒤를 따라 나섰으나 갈수록 사람이 늘어 나중에는 수천명이 그 행렬에 합류했습니다. 결국 영국은 인도에 소금 생산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행진을 “간디의 소금 행진”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화목의 행진을 해야 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어도 화목하는 것이 제 육이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잠17:1).

소금은 순수합니다. 자기 욕심이 없습니다. 자신을 녹여 맛을 냅니다. 자기 희생으로  남을 썩지 않게 합니다. 소금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남을 위해 존재합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맛을 내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말에 소금을 쳐서 은혜가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습니다. 듣기 싫은 거친 말은 듣지 않습니다. 맛있는 말, 은혜의 말을 조리하시기 바랍니다.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세상의 사표가 되라! 
  
세상의 필요한 존재가 되라! 
소금은 화목의 재료입니다. 애플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극과 극을 절묘하게 융합시켰습니다. 공학과 인문학을 하나로, 기술과 예술을 하나로, 상상과 현실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소금은 화목의 상징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통하게 하는 화목의 재료 세상의 소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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