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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입술이 축복을 좌우합니다 (민 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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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축복을 좌우합니다 (민 30:1-16)

< 지혜롭게 말하십시오 >   

살다 보면 가끔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부족함부터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조금 알면 판단이 나오지만 말씀을 많이 알면 판단이 들어갑니다. 목회자의 여정을 보면 판단이 제일 많을 때는 신학생 때와 전도사 때입니다. 그렇게 판단하던 전도사들이 나중에 보면 목회할 때 제일 마음고생이 많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되로 주면 말로 받듯이 ‘판단’을 주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판단하는 마음이 들 때 입술을 절제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입술과 행동은 대개 같이 갑니다. 입술에서 얼마나 말이 빠르게 나옵니까? 책임지지 못할 말을 많을 많이 하면 나중에는 그 말을 취소할 수 없어 변명하게 되고 그러면 형편이 더 나빠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의미가 약해지는 희생이 있어도 변명과 핑계와 판단은 줄이십시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거의 침묵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입술은 사람을 죽이는 최고 무기도 되지만 사람을 살리는 최고 무기도 됩니다.   

가끔 판단하고 싶은 말이 목과 혀끝까지 차오를 때도 참고 말하지 않으면 인생에 큰 유익이 되고 강력한 인맥을 얻습니다. 결국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말을 절제하는 사람입니다. 말이 많으면 자기가 다 노출됩니다. 그처럼 자신의 실수가 노출되지 않도록 가급적 말을 줄이고 대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노출시키는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한 현자는 “열 마디를 두 마디로 줄이고 비판을 칭찬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이제 깎아내리는 말은 조금 더 줄이고 세워주는 말은 조금 더 늘리십시오. 상대의 잘못을 보면 내게도 그것이 있는가 성찰하고 상대의 좋은 점을 보면 아낌없이 칭찬해주십시오. 말로 나쁜 그물을 펼치면 결국 그 그물에 자신이 걸려 죽습니다. 남의 흉을 보면 자신이 흉잡히지만 남을 칭찬하면 자신도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죽일 놈이 있어도 죽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비판 대신에 기도만 하십시오. 

주님은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서도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이 몰라서 그렇사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그때 옆에 달린 한 강도는 “네가 정말 메시야면 이 고통을 벗어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 달린 강도는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저를 기억하소서.” 그 말 때문에 한 영혼은 영원히 저주를 받았고 한 영혼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말 한 마디가 중요합니다. 자세히 보면 입술이 구원을 좌우하고 더 나아가 축복도 좌우합니다. 
  

< 축복을 부르는 말의 원리 >   

어떻게 입술을 복된 입술로 만들까요? 본문에 나오는 서원과 관련된 말씀을 통해서 복된 입술을 만드는 몇 가지 원리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 약속한 것은 지키십시오  

본문이 있는 민수기 30장에는 서원, 특히 여자의 서원에 관한 여러 규례들이 나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여호와께 서원하는 것’은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이고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한 것’은 금식, 금주, 금욕처럼 무엇을 안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서원과 서약은 신앙과 영성 자랑을 위한 그릇된 동기에서 비롯되면 안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발적으로 서원하고 서약했으면 그 서원과 서약을 깨지 마십시오. 약속을 깨는 것은 상대방을 우롱하는 것이듯이 하나님께 한 약속을 깨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15편 4절에서 “서원한 것은 해로운 것도 지키라.”고 했습니다.  

모든 공동체는 약속으로 유지됩니다. 그것이 함께 사는 길입니다. 중앙선을 침범하지 말자는 약속을 어기면 자기 목숨이 위태해지고 남의 목숨도 위태해집니다. 그처럼 사람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더 중요합니다. 계약서를 쓴 건 아니지만 주일성수, 봉사자리, 선교후원 등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약속을 최선을 다해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기도 응답과 내일의 축복을 약속해주실 것입니다.
  

2. 경솔한 서원은 피하십시오

본문 3-8절 말씀은 미성년의 딸이나 결혼한 아내가 서원한 경우 아비나 남편에 의해 그 서원이 무효화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딸이나 아내의 서원을 처음에는 묵인했다가 나중에 금하면 그것은 아비나 남편이 그 서원을 깬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규례는 남성의 대표성을 인정한 말씀도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솔한 서원을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끔 심령이 뜨거울 때 어떤 약속을 했다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경솔한 서원을 피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누가 자신의 언행을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일전에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을 보면 그 밑에 ‘바보야’란 글이 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추기경님! 왜 자신을 바보라고 하세요?”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제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처럼 산 것 같아요.” 

오래 전에 가수 김도향 씨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랫말처럼 자신을 돌아보면 정말 “바보처럼 살았다!”는 느낌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언제 그런 느낌을 받습니까? “그런 말과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다.”라고 할 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잠언 12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습니다. 그래서 판단을 좋아하고 남의 말에 수시로 토를 달면 결국은 그 말이 덫이 되어 자신을 묶습니다. 말은 소통을 위해 하는데 오히려 말 때문에 소통이 막힐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때로는 말을 한 것이 말을 안 한 것만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말을 절제합니다.

가끔 보면 편견을 진리처럼 굳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 자리에 따라서 사물과 사건은 전혀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운전자 입장에서 보면 보행자가 얄밉고 보행자 입장에서 보면 운전자가 난폭합니다. 그래서 같은 입장이 되지 않으면 진정한 이해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 남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가지고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을 향해 마음의 안테나를 높게 세우고 경솔한 말을 절제할 때 축복의 가능성도 커질 것입니다.
  

3. 밸런스를 잃지 마십시오  

왜 하나님은 딸과 아내의 서원이 부모와 남편에 의해 무효화될 수 있게 했습니까? 사람은 가끔 감정이 이끄는 대로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 극단을 피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라는 뜻에서 이 규례를 주셨습니다. 왜 공동체에 갈등과 대립이 생깁니까? 대개 보면 균형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대해 말씀하면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마24:7). 지금 세상은 갈등과 대립이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그런 세상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사람마다 생각, 태도, 언어, 가정 풍속과 도덕률, 그리고 가치관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도 갈등은 계속 생기게 됩니다. 어떻게 그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 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자기 권리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권리가 있다고 권리를 다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새 소비자 권리, 사용자 권리, 노동자 권리, 알 권리, 인권, 교권 등 권리의 외침은 많지만 그 권리를 절제하는 삶이 부족하기에 분열과 갈등이 커지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 분쟁이 생깁니까? 성경을 모르고 기도를 안 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어떤 때는 성경을 보고 기도하면서 싸웁니다. 문제는 예절, 에티켓, 매너 등 남을 위한 자기 절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보면 자기 신앙을 최고라고 생각하고 자기만큼 뜨거운 사람이 없다고 오해하는 신령파 신자들을 봅니다. 그들의 최대 약점이 무엇입니까? 예의와 질서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절을 유교만의 원리인 줄 압니다. 그러나 예절의 의미가 내포된 ‘온유와 절제’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가장 마지막 2가지 열매로서 인생의 뒷문을 막아주는 골키퍼 역할을 하는 필수적인 기독교 덕목입니다.  

진리를 전할 때도 신중하고 정중하고 깍듯이 예의를 지켜야 ‘진리의 성육신’이 이뤄집니다. 옳은 말이라고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잠언 27장 14절을 말씀을 보십시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축복의 말도 때와 장소를 가려 해야 합니다. 메카의 거리에서 찬송하고 절에서 찬송하면 상대방은 자기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여깁니다. 상대방을 저주하며 전도가 되겠습니까? 그처럼 축복의 진리를 전할 때도 조심해야 하는데 하물며 책망이나 권면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교인을 권면할 때 목회자라도 아주 말을 조심합니다. 전투력과 전투성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학생 때 입에 배지 않아서 욕은 아예 못했고 말발도 약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전혀 눌려 살지 않았습니다. 속이 뒤틀리면 말 대신 주먹부터 나갔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강철 체력에 복싱과 차력술까지 연마해서 일대일 주먹싸움에서는 누구도 저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먹싸움이 흔했는데 고등학교 말까지 당시 싸움 전적에서 74전 73승 1무라고 대략 꼽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처럼 건드리면 터지는 시한폭탄인데 누가 저를 건드리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누군가와 싸움질을 하다가 일찍 죽을 줄 알았습니다. 한 용하다는 점쟁이도 제가 20대 죽을 상이라고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많이 철이 들었지만 그래도 시한폭탄의 기질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졸업을 앞둔 1984년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죄성과 전투성을 제어할 능력을 얻고 그 후로 거친 언행을 상당히 순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참된 진리와 성령의 역사는 언행을 순화시키는 절제의 능력도 줍니다.   

복음이 얼마나 귀한 진리입니까? 그런데 빽빽한 지하철 안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하고 외치면 얼마나 무례한 일입니까?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그 말을 축복인 아닌 저주처럼 여기고 더 반발합니다. 성경을 보면 사도들은 진리를 전달할 때 무례하게 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열정이 대단했던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서를 보면 얼마나 정중하고 신중하게 복음을 전하는지 모릅니다. 옳은 말도 신중하고 예의 바르게 하십시오. 그처럼 말과 행동에서 밸런스를 잃지 않을 때 오해나 상처는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4. 축복의 말을 해주십시오  

민수기 30장 말씀은 전체가 입술의 서약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중시했습니다. 그 진리는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말은 그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자녀에게도 잔소리보다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잔소리로 과부하를 걸면 자녀는 더 나빠지지만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면 자녀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큽니다.

배터리 충전도 오래 하면 좋을 것 같지만 100% 충전하고도 계속 충전지를 꼽고 있으면 과부하로 충전지의 수명이 크게 단축됩니다. 그처럼 자녀들에게 많은 말을 집어넣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 말이 오히려 자녀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자녀의 행복을 막습니다. 그저 짤막하게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성도는 축복을 주려고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부르심대로 사십시오. 가장 복된 삶은 누군가의 축복을 위해 애쓰는 삶입니다. 그 멋진 소명을 이행함으로 하늘의 복을 나르는 거룩한 수레가 되십시오. 기도할 때도 입술에 축복의 말을 많이 담아달라고 기도하고 날마다 가족과 친구와 교우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면 축복의 말을 하는 사람도 축복받고 축복의 말을 받는 사람도 축복받습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 입술이 약간 비뚤어진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웃으면 입술 때문에 약간 이상한 얼굴이 되어서 아무도 그녀와 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극도로 위축된 상태에서 항상 외롭게 지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학교에서 듣기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 테스트는 선생님이 한 명씩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하면 그 학생이 그 선생님의 말을 크게 따라 말하는 테스트였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하늘은 파랗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을 들은 아이도 “하늘은 파랗다!”라고 똑같이 따라서 말하면 합격하는 테스트였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대개 이런 간단한 말로 테스트했습니다. “하늘은 파랗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저 꽃이 아름답다.”  

그 테스트에서 그 어린 소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때 선생님이 주신 축복의 말을 따라하면서 그 어린 소녀에게는 어떤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매우 반짝이는 코를 가졌던 루돌프 사슴’처럼 자존감이 크게 높아졌고 그 축복의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으면서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반 친구들은 그녀의 친구가 되기를 원했고, 점심식사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어 했고, 방과 후에도 그녀를 자기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선생님의 축복의 말 한 마디로 그 어린 소녀는 공동체의 왕따에서 공동체의 주인공이 되었고 ‘슬픈 단조의 삶’이 ‘기쁜 장조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처럼 축복의 말은 큰 효과를 낳습니다. 이제 기회가 생기는 대로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축복의 말은 영혼을 크게 격려해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축복을 불러내는 가장 위대한 씨앗이 됩니다.  


< 입술이 축복을 좌우합니다 >   

이제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상처가 됩니다!”라는 불평의 말보다 “잘 될 겁니다! 인물이 될 겁니다! 역사가 일어날 겁니다!”라는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그 축복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한 말입니다. 이제 열심히 축복해주십시오. 자녀들에게도 이렇게 축복하십시오. “얘야! 네가 자랑스럽다! 너는 최고가 될 거야! 너는 특별해!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인물이 될 거야!” 그렇게 축복의 말의 씨앗을 심으면 하나님이 그 씨앗을 멋지게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은 그들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너희는 어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썩어져가는 세상의 소금이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의 선포대로 되었습니다.  

축복의 말은 길 잃은 영혼이 새 길을 찾게 만들고, 믿음을 촉발시켜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고, 창조성과 가능성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축복의 말은 인생을 최고의 인생으로 조각하는 지상최대의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인정받을 행동을 할 때 인정하는 말을 하지 말고 인정하는 말을 해서 인정받을 행동을 하게 하십시오. 축복의 말은 삶과 환경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결국 입술이 축복을 좌우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는 말씀을 통해 축복의 말을 주시고 있습니다. “아무개야! 너는 특별한 존재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한 찬란한 계획이 있다. 너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이 음성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내일의 축복을 향해 위대한 발걸음을 하십시오.   

또한 축복의 말만큼 중요한 것이 축복 기도입니다. 저는 교회 성도들과 온라인 새벽기도 핵심 성원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가며 매일 축복기도를 해줍니다. 그처럼 서로 축복기도를 해주고,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제일 가치인 선교 마인드를 항상 마음에 품고 복음의 최전방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또한 온라인 새벽기도를 포함한 저희 문서선교 사역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또한 목회자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목회자가 행복한 마음으로 설교하면 교인들도 같이 행복해집니다. 교회는 아말렉과 전쟁하는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그때 아론과 훌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전쟁할 때 말을 많이 하면 더 힘들어집니다. 그저 모세를 평평한 돌에 앉히고 모세의 양팔을 아론과 훌이 붙잡아주어서 아말렉을 물리쳤습니다. 복된 교회가 되려면 모세의 팔을 붙잡아준 아론과 훌처럼 되십시오.  

지금도 마귀는 호시탐탐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 목적을 이루려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입술입니다. 입술에 말이 넘치면 교회는 어려워집니다. 그처럼 있는 말, 없는 말, 될 말, 안 될 말 등 많은 말을 통해 싸움을 붙이는 것이 사단의 전술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오히려 입을 다물고 기도만 하십시오. 그처럼 입을 마귀가 사용하지 못하게 꼭 다물고 있으면 마침내 하나님이 최선의 해결책을 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한 교회에서 어떤 집사가 이성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목사님은 장로님들을 모아놓고 그 집사에게 최종 소명기회를 줬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가 뻣뻣하게 나와서 결국 치리한 후에 목사님이 장로님들에게 신신당부하며 말했습니다. “장로님! 이 소문이 나면 교회에 안 좋으니까 아내들에게조차 절대 말씀하지 마세요.” 그 뒤 43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비밀이 지켜져서 결국 하나님이 그 교회에 큰 은혜를 주시고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로 만드셨습니다.   

장로님들이 입 관리를 잘하니까 몇 만 명의 교회가 잘 굴러갑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기도만 하니까 전혀 문제가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해결합니까? 하나님이 해결해주면서 교회가 안정을 찾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는 오히려 모임과 말을 절제하십시오. 모여서 “이랬데. 저랬데.”라고 다 말해놓고 “기도합시다!”라고 하면 소문이 퍼지고 문제가 커집니다. 그때는 입을 꼭 다물고 그저 기도만 하십시오.   

그처럼 문제가 있어도 대개 묵묵히 기도하니까 각 교회마다 담임목사만 알고 새나가지 않는 성도의 비밀이 산더미같이 있습니다. 그처럼 선한 마음으로 비밀을 지켜주면 사생활도 침해되지 않고 문제도 커지지 않습니다. 혹시 과거의 어떤 허물을 알아도 과거를 묻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그처럼 문제를 파헤치지 않고 입을 꼭 다물고 기도만 하면 마귀가 결코 그 영혼을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항상 입술에 축복의 말과 축복의 기도를 넘치게 채워서 풍성한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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