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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봉사하려면 (벧전 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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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봉사하려면 (벧전 4:9-11)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는 병들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인들을 보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상가요, 신학자요, 음악가로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나 아프리카 미개한 흑인들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에 병원을 개설했습니다. 그의 헌신적 노력에 53세에 괴테상을 수상했고, 76세에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었으며, 77세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상금을 가지고 나환자촌을 세워 많은 이들을 도왔습니다. 90세에 세계인의 존경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슈바이처의 친한 동료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자네는 가만히 있어도 생활이 보장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아프리카로 가서 고생을 하려고 하는가?” 그러자 슈바이처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 “뭐긴 뭐야. 자네 손이지.” 그러자 “이 손은 내 손이 아니네. 이 손은 하나님의 손이야.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손 노릇을 하는 거야. 자네가 나를 동정하는 것 같은데, 절대로 동정하지 말게. 나는 행복해. 보람이 있어 기쁘다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슈바이처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저도 아프리카에서 박사님처럼 훌륭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슈바이처는 그를 받아주며 일을 시켰습니다. 땔감나무를 해오고, 물을 길어 오고,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싫증이 난 청년이 따지듯 물었습니다. “저는 박사님처럼 훌륭한 일을 하러 왔지, 이렇게 장작이나 패고 물이나 긷고 청소나 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슈바이처는 작은 일에 헌신하려는 마음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큰 봉사를 할 수 없다며 돌려보냈습니다. 혹시 교회 봉사를 하면서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큰일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작은 일을 마다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계산법은 작은 것을 크게 여기시고 보잘 것 없는 것을 귀하게 계산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성의 모습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서로 봉사하라는 것은 서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사전에 찾아보니 ‘선비 仕자’를 쓴 봉사(奉仕)로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는 ‘디아코네오’ 원어를 사용했는데 ‘수종들다, 돕다’ 의 뜻입니다. 인생은 시간만 허비하면서 자원을 갉아먹다 끝나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공헌을 하라고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과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봉사한다면 사회봉사 단체에 가입하거나 특별한 직책을 맡아서 일하는 것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봉사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봉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요 서로 대접하는 것이라고 본문은 강조합니다. 집안사람에게, 이웃에게,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대접하는 것이 바로 봉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봉사하려면,
 
첫째로 받은 바 은사대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조국 이스라엘로부터 대통령직을 제의받았습니다. “국회는 만장일치로 당신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해주시오” 아인슈타인은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 한 사람 벤구리온(David Ben Gurion)이 갑자기 이스라엘 수상직을 사임했을 때 기자들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이제 나는 키부츠 땅콩 밭으로 갑니다. 수상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땅콩농사는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교회는 나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몸은 하나이나 지체는 여럿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붙어있는 지체들이 각각의 역할을 해야 하고 연합해야 합니다. 각자가 은사를 가지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 받은바 은사대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리더는 진정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섬김 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도 섬김 받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봉사하며 섬기기 위해 지음 받았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로잘린 스티어 (Rosalind Steer)의 시 ‘작은 일에 충성하라’ 입니다. “나는 내 손이 찾아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행하기를 좋아합니다. 비록 예배 시간에 아름다운 독창을 할 수 없지만, 빈자리는 메울 수 있으며, 또 누군가가 열심히 기도할 때 간절히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기도 소리를 들을 수는 있습니다. 나는 오르간을 칠 수는 없지만 낯선 사람의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격려가 되는 말 한마디는 해 줄 수 있습니다. 누가 아는가. 그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두려움을 쫓아내고 자기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을지...나는 거창한 설교는 할 수 없지만, 헌금 시간에 나의 주님께 정직하게 내가 가진 작은 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꽃 한 다발을 가져다 하나님의 성전이 덜 밋밋하게 보이도록 꾸밀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 작은 일들이, 보기에는 너무 적고 변변치 못 할 것 같지만, 만약 내가 충성만 다 한다면 주님이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실 때 나는 이렇게 말 하리, ‘주님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에게 보여 드리리,이 모든 작은 일들에 담겨 있는 나의 충성을.” 받은 바 은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공급하시는 힘으로

윌로우 클릭 교회(Willowcreek Church) 에 방문하여 특이한 사실을 발견한 어느 목사의 글입니다. 교회 지하 화장실에 갔는데 중학생 또래의 어린 학생들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으니까 정해진 시간에 나와서 화장실을 청소하고 방향제를 뿌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 구성원들은, 수 만 명이 되지만 각자가 해야 할 사역이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뒷정리는 다른 사람이 하고 봉사와 수고도 다른 사람이 다하고 예배만 참석하고 돌아가는 교인들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필요한 사역을 정해 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떠합니까? 불과 10%만 봉사하고 나머지 90%는 주일날 왔다 갔다 하는 교인들입니다. 교회 봉사는 자신의 힘으로는 여전히 불가능하며 힘든 봉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아니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봉사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여기의 ‘공급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공급해 주시는 것을 염두에 두고 힘껏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봉사는 내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이 많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가 무엇입니까? 희생을 통해 다른 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희생적 봉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는 봉사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이 없다면 어떤 봉사도 불가능합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잘린 것처럼 말라져 버립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만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의 힘이 공급되어질 때 봉사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나 혼자 봉사한다고 생각해도 결코 안 됩니다. 교회의 봉사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봉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영광으로

4대째 선교사인 스티브 린튼(Stephen Linton)박사는 자신의 삶을 나귀의 모습에 비유합니다. 선교사의 삶은 주인이 실어주는 짐을 싣고, 주인이 원하는 곳에 가서 그 짐을 그 곳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나귀와 같다고 말합니다. 린튼 박사는 수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사랑의 구호품을 싣고 북한으로 가서 그 곳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나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쓰시는 충실한 나귀로 만들어지는 데 100여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1895년 4월, 스티브의 외고조부 유진 벨(Eugene Bell) 목사 부부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부부는 평생을 목포, 광주 지역에서 선교하다가 한국에 묻혔습니다. 벨 선교사 부부의 딸 사로트는 윌리암 린튼 선교사와 결혼하여 일생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선교사 부부에게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티브의 부친 휴 린튼 (Hugh M. Linton)이었습니다. 스티브의 어머니 로이스는 순천 기독 결핵 재활원 원장으로 평생 결핵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로이스(Lois F. Linton)는 호암상을 수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코 선교사가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받고 따른 것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 질그릇일 뿐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무리 봉사를 잘 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자만하거나 자기가 드러나고 있다면 이는 잘못된 봉사입니다. 봉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기에 마땅히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봉사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니 봉사할 수 있습니다. 건강이 있으니 봉사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있으니 봉사할 장소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봉사가 가능합니다. 봉사는 나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봉사를 하였다 해도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였다면 하지 않음만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가 아닌 하나님만 높여 드리는 봉사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메릴랜드(Maryland)의 허름한 집에 서적 외판원 청년이 방문했습니다. 소녀는 가난하여 책을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청년이 우유 한잔을 부탁합니다. 소녀는 시원한 우유 두 잔을 내왔습니다. 단숨에 우유 잔을 비운 청년은 친절에 감동을 느끼고 소녀의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메릴랜드 병원에 여성 중환자가 실려 왔습니다. 병원장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박사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려냈습니다. 퇴원할 때 여인은 만 달러가 넘는 청구서를 받아들고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청구서 뒤에 병원장의 메모가 붙어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저에게 대접한 우유 두 잔이 치료비입니다.” 아름다운 봉사의 결실이었습니다.

금주에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사랑 돌봄 바자회’ 를 개최합니다. 어느 때보다 자발적 봉사가 필요한 행사입니다. 누구든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행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펼쳐지는 봉사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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