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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크게 사모하라 (왕하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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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크게 사모하라 (왕하 2:1-14)


1. 농부에서 대선지자로

오늘도 말씀을 듣는 가운데 구원의 확신과 회복의 기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그 뒤를 엘리사 선지자가 잇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엘리사는 원래 농부였습니다. 소를 앞세워 밭을 갈고 있는데, 당대 최고의 선지자인 엘리야 선생님이 겉옷을 밭가는 엘리사에게 던졌고, 그 때부터 엘리야 선지자와 함께 다니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엘리야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한 후, 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복 있습니다. 
농부가 대선지자가 되었듯이, 오늘도 출신은 하찮아도 하나님이 쓰시는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강남에서 용이 난다고 할지 모르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강남이냐, 용산동, 두류동, 중리동이냐, 어디 출신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을 성령으로 기름부으시고, 예배를 회복하는 자에게 은혜의 장맛비, 축복의 소낙비를 부어주십니다. 

2. 끝까지 은혜를 사모하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암흑의 시대를 밝히는 등불로 쓰임받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볼 것입니다. 
먼저, 끝까지 은혜를 사모하라.
“끝까지”란, 은혜를 받을 때까지, 응답받을 때까지, 큰 기쁨이 생길 때까지, 답답한 마음이 시원하게 뚫릴 때까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데리고 가실 때입니다. 엘리야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된 줄 알고, 그동안 늘 자기와 함께 해온 제자 엘리사를 떼놓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습니다. 길갈에서 엘리사와 함께 나가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라고 하면서 스승 엘리야를 떠나지 않고 함께 갑니다. 벧엘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여기 있으라”고 하지만, 엘리사는 끈질기게 따라갑니다.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으로, 거기에서 하늘로 올라갈 때까지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엘리야는 왜 길갈에서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으로 옮겨갔을까요? 

길갈은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넌 후, 그 기념으로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따라 돌 열두개를 쌓은 돌기념비가 있는 곳입니다. 성지입니다. 
벧엘과 여리고는 오늘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엘리야의 제자들이 있는 학교, 요즘으로 치면 신학교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제자들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신의 제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만한 사람이 누구인가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엘리야와 늘 함께 생활한 엘리사가 후계자가 될 수 있을른지, 아니면 벧엘이나 여리고에 있는 다른 제자 중에서 자신의 뒤를 이을 탁월한 후계자감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함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후계자가 될 사람이 갖추어야 할 품성이 몇 가지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테스트했습니다. 그것은 열정, 충성심, 헌신성입니다. 
벧엘에 있는 엘리야의 제자들도 엘리야 선생님께서 하늘로 데려감을 당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벧엘에 있는 신학생들은 스승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줄 알면서도 따라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말만 하지, 몸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마음만 답답해하고, 불안해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말만 하면서 떠들지 말고, 조용히 따라 나서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말도 필요하지만, 말에 따른 실천, 행동이 더욱 중요합니다. 
엘리사는 말없이 묵묵히 스승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그의 마지막까지. 
여리고에 있는 신학생들도 벧엘의 신학생들처럼 엘리사 선생님이 곧 세상을 작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따라 나서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와 그를 끝까지 따라간 제자 엘리사가 여리고 옆 요단강을 겉옷으로 가르고 육지같이 건너는 모습을 멀리 서서 바라본 신학생 50명이 있었을 뿐입니다. 멀리 서서 바라 본 그들에게는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능력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엘리야와 함께 끝까지 있었던 엘리사에게 엘리야처럼 요단강을 겉옷으로 쳐서 갈라지게 하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 이후로, 멀리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본 여리고의 신학생들은 엘리사를 엘리야의 후계자로 모시고 그들의 스승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하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힘들다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이 성공으로 인도합니다. 끝까지 은혜를 사모하는 것, 이것은 열정이 있다는 증거요, 충성심이 있고, 헌신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간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에 온전히 힘썼습니다. 

열흘 째 되는 날, 오순절에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임재하셨습니다. 모인 모든 사람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할 때까지 찬양을 해보십시오. 찬양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고 은혜로 채워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질병에서 회복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은 병이 나을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기쁨을 잃어버리고 답답한 마음, 어두운 마음이 있는 분들은 기쁨을 되찾을 때까지 찬양하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다리며, 기대하며, 기도하십시오. 
끝까지 은혜를 사모하는 분들은 반드시 은혜를 받게 됩니다. 

3.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크게 사모하라

암흑한 이 시대의 등불이 되려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크게 사모하십시오. 
엘리야 선지자는 끝까지 따라온 엘리사에게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돈을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건강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현재 처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엘리야 선생님에게 임했던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부탁의 말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보다 근본적인 것, 우선적인 것을 구하라.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쌓은 후,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물었을 때,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칭찬하시면서, “자기를 위하여 장수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네게 지혜를 줄 뿐 아니라, 네가 구하지도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주노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돈도, 지식도, 총명도, 지혜도, 건강도, 사업도, 취직도, 결혼도...
이 세상에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이더스의 손>처럼, 내가 손대는 모든 일이 잘 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행복이 아님을 신화는 말해줍니다. 먹는 음식도 황금으로 바뀌고, 사랑하는 딸도 손을 대니 황금으로 바뀌니 손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바뀌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성령 하나님만 구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것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만 내 안에서 역사하시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었습니다. 보다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것,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거룩한 소원을 가지라.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의 갑절을 구하였습니다. 여기의 “갑절”은 엘리야의 능력의 갑절이 아닙니다. 신명기 21:17에 나오는 장자가 받을 몫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장자는 아버지의 유산의 두 몫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장자의 복입니다. 엘리사가 구한 것은 다른 제자들보다 두 배의 능력을 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엘리사는 그 암흑한 시대에 엘리야의 뒤를 이어 민족의 어둠을 밝히는 지도자가 되는 거룩한 소원을 가졌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우리 믿음의 선배인 김교신 선생님은 성경말씀을 조선 백성들에게 심는 것을 생애의 사명으로 삼아 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가 김교신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그가 매월 발행한 월간지 <성서조선>에는 월간지 이름처럼, 성서와 조선, 이 둘을 동일하게 붙잡고 있었습니다. 민족사랑과 성서사랑입니다. 
“성서를 조선에”란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 싶으나 인력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 어떤 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어떤 자는 문학을 주며, 어떤 자는 의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뼈를 세우며, 그 피를 만들고자 한다. 같은 기독교로서도 어떤 자는 기도 생활의 법열의 경을 주창하며, 어떤 자는 영적 체험의 신비 세계를 역설하며, 어떤 자는 신학 지식의 조직적 체계를 애지중지하나, 우리는 성서를 배워 성서를 조선에 주고자 한다. 더 좋은 것을 조선에 주려는 자는 주라. 우리는 다만 성서를 주고자 미력을 다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조선에.”

또, “조선을 성서 위에”란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과학적 지식의 토대 위에 새 조선을 건설하려는 과학조선의 운동이 시대에 적절하지 않음이 아니요, 그 인구의 8할 이상을 차지한 농민으로 하여금 덴마아크식 농업조선을 중흥하려는 시도가 시대에 맞지 안함이 아니며, 기타 신흥도시를 위주한 상공조선이나 사조에 파도치는 공산조선 등이 다 그 진심 성의로만 나온 것일진대 해로울 것도 없겠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들은 모두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이슬과 같아서, 오늘 있었으나 내일에는 그 자취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모래 위의 건축이라 풍우를 당하여 파괴됨이 심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외형적 조선 밑에 영구한 기반을 넣어야 할 것이니 그 지하의 기초 공사가 곧 성서적 진리를 이 백성에게 서유시키는 일이다. 넓게 깊게 조선을 연구하여 영원한 새로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라. 그러므로 조선을 성서 위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직업의 현장에서 김교신 선생님과 같은 거룩한 소원을 가져보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거룩한 소원을 품으십시오. 

셋째, 크게 구하라.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 있게 해달라는 엘리사의 요구를 들은 엘리야는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어려운 일, 큰 일을 구하십시오. 엘리사는 당대의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4. 다시 삶의 현장으로

시편145:18-19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거룩한 소원을 품고 간구하는 사람들,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그분이 바로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사의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여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수아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여 건넜습니다.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와 꼭같이 성령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이 신앙의 전통은 오늘도 우리에게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우리는 곧 다시 삶의 현장으로 내려갑니다. 
우리 앞에 요단강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한계, 요단강이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끝까지,
크게, 
사모하며 구할 때,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되셔서 요단강이 성령의 능력으로 갈라지는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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