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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 (고전 12: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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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 (고전 12:20-31)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 비유하여 성도의 하나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가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으나 각종 영적인 문제, 은사문제로 서로 갈등과 시기로 심각한 혼란이 생겨 사도 바울은 몸의 비유를 통해 교회와 은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고자 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 분쟁이 있고, 성도 간에 하나 되지 못하면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이 너무나 힘듭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건강한 교회를 만들지 못하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신앙생활이 기쁘고 행복하십니까? 우리 교회 성도된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하십니까? 저는 올 한해 개인적으로 ‘행복한 교회, 기쁨 충만한 성도, 행복한 목회’가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행복한 신앙생활, 기쁨 충만한 교회생활이 소망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교회라고 하면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건물인 예배당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말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인 우리 개개인 한사람이 이렇게 모인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나 혼자서 잘 믿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회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가장 쉽게 설명을 하기 위하여 우리의 몸을 예로 들어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20절에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 했습니다. 13절을 보시면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전 11:12절에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것과 역시 다른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성령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창 2:24절에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했습니다. 부부 사이가 한 몸이라는 말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부부만이 아니라 성도들도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한 몸을 이룰지로다’ 미래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성도들은 ‘한 몸이 되었고’ 과거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앞으로 한 몸이 될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우리 교회 성도들의 관계를 부부사이와 같은 한 몸으로 생각 하십니까? 그렇게 느끼셨고 그렇게 신앙을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서로 한 몸임을 강하게 느끼지 못한다면 아직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주시며 그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이 되었다는 철저한 신앙고백을 가지면 우리는 한 몸임을 느낄 수 있고 성도들을 한 가족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한 몸이라는 의식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것은 하나 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되는 노력이 있어야 하나가 됩니다. 잠자리도 같이 해야 하고, 같이 시장도 가고, 같이 TV도 보고, 같이 생활을 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 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이미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 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될 수 있고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 몸임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습니까? 

본문 26절에서 말씀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가 고통과 영광을 함께 나누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두 개이지만 몸은 하나로 붙어 있는 기형아를 샴쌍둥이라고 합니다. 처음 샴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아기가 하나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둘인가?’로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몸에 어떤 고통이 주어졌을 때 머리가 똑 같은 반응을 보이면 그 아이는 하나다. 만약 한 쪽 머리는 고통스러워하는데 다른 한 쪽 머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면 그 아이는 둘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지체들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고통 받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가야 그것이 한 몸입니다. 기쁨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며 주님이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아내가 아프다고 남편이 버리면 그 부부가 한 몸일 수 없듯이,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나만 빠져나가는 모습은 한 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 몸은 공동 운명체가 되어야 합니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고민도, 사명도 함께 지고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현실을 돌아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서 한번 이상 실망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 나와서 환멸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회자에 대해서 그리고 항존직분자들이나 성도들에 대해서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근본적으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다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며 죄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교회는 은혜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믿고 서로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눠질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가 되려면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들을 무시하거나 필요 없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에는 지체가 많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안 하고 필요 없이 존재하는 지체는 없습니다. 모든 지체가 그 역할을 하고 있고, 지체가 그 역할을 다하기 때문에 몸이 유지되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21절에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몸에서 필요 없는 신체가 있습니까? 통계를 보면, 자동차를 만드는 데에 13,000 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747제트 여객기를 만드는 데에 3백만 개의 부속품이 필요하고, 우주 왕복선을 만드는 데에는 5백만 개의 부속품을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 인간의 몸을 만드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부품이 필요할까요? 우리 인간의 몸에는 100조 개의 세포조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세포 조직들이 있음으로 우리의 몸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많은 지체들로 구성이 되었고, 많은 지체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 혼자서 아니면 몇 사람들이 교회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세포가 적을수록 하등동물이라고 하고 세포가 많은 동물을 고등동물이라고 하는 것처럼, 지체가 적으면 적을수록 약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고 힘없는 교회, 건강하지 못한 교회, 능력 없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체가 많을수록 건강하고 힘 있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각 지체의 역할은 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체 중에 어느 것은 중요하고 어느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필요 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필요 없고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교회의 하나 됨을 파괴하고, 건강함을 파괴하고, 성장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든지 간에 교만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열등감을 느낄 것도 없습니다. 꼭 필요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각 지체는 서로 돌아보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많은 지체가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가 협력하고 서로가 격려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없으면 지체가 많은 것이 더 힘들고 복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의 지체는 그 많은 지체들이 서로 협력하고 서로 돌아보고 서로 도와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별히 약해보이는 성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2-23절에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팔과 다리는 강하고 눈은 약합니다. 그러나 눈이 더 중요합니다. 팔이 하나 없는 것이 눈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습니다. 보이는 지체보다는 보이지 않는 지체가 더 중요합니다. 심장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몸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약한 지체, 아름답지 못한 지체를 귀하게 보호해야만 몸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약한 신자들을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교회를 섬기는 이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도 약하고 덜 귀한 지체들을 더 귀하고 아름답게 꾸며주신다면 무슨 분쟁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 당시 이방 사람들은 귀한 사람들일수록 더 귀하게 여기고, 천한 사람들일수록 더 천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섬김을 받기를 좋아하셨습니까? 오히려 그분은 약한 자들을 섬기려 오셨으며,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온 인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하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더 돌보셨으며, 천국이 부자와 권력자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안에서도 먼저 된 자, 지도자가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런 정신을 버리고 세속의 풍습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세속적인 가치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사도 바울이 가르친 대로, 교회 안에서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우쭐대지 마십시오. 오히려 세상에서 높고 앞선 자가 낮고 약한 성도들을 섬기십시오. 나의 고통보다 남의 고통에 더 민감하려고 애쓰십시오. 나의 기쁨보다 남의 기쁨을 더 기뻐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하면 오늘 우리 교회는 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3.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행복한 성도가 되려면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들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본분 28-30절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고전 12:8-10절에도 다양한 은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 지식, 믿음, 신유,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등이 있습니다. 또한 롬 12:6-8절에서는 일곱 가지의 은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언, 섬김, 가르침, 권면, 구제, 다스림, 긍휼 등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러한 영적인 은사를 충만하게 받았던 축복받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된 은사가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서로 자신이 받은 은사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다른 성도들의 은사를 무시하였습니다. 각각의 다양의 은사에 의해서 오히려 서로를 차별하며, 사랑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화합과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이 당시 고린도교회가 당면하고 고통 받았던 문제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모든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차별성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인간이 서로 자랑하고 교만해지는 잘못된 것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입니다. 

대부분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다툼과 분열이 생기는 중요한 이유는 성도들 간의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학식이나 여러 가지 받은 은사가 많으면 교만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상대적으로 열등감이 생겨서 시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절대로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은사의 크고 작음을 비교하는 일에 익숙해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몸의 모든 부분이 중요하며, 각각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얼굴 가운데 "눈이 중요합니까? 귀가 중요합니까?" 당연히 둘다 중요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고전 12:17절에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들에게 주신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남을 깎아 내리고 내가 올라가는 세속적인 경쟁이 아니라, 남의 연약함을 감싸주고 세워주며 협력하며 돌보라고 권면합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는 교향악과 같은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서로 돌보아주고, 그리고 사랑으로 하나 되고 연합하여 항상 따뜻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하나임을 인식하시고, 모든 성도들을 가장 귀한 존재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각각에게 주신 은사의 다양성을 통해 서로 협력하여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시기를 바라며, 행복한 성도의 삶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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