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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때를 위함입니다 (에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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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를 위함입니다 (에 4:13-17)
 

옛날 어느 궁궐에 아들은 없고 외동딸이 하나 있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공주는 아름다운 성품과 외모로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궁궐 앞에 ‘누구든지 공주를 살리는 사람은 사위로 맞이할 뿐 아니라, 왕의 자리까지 넘겨주겠다.’ 는 글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삼형제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었는데 첫째는 산 너머 멀리 떨어져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신비한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둘째는 사람들을 태우고 날아갈 수 있는 신비한 양탄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셋째는 어떤 병이든지 고칠 수 있는 신비한 약효가 있는 사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신비한 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첫째가 궁궐 앞에 붙은 글을 보고 다른 두 동생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둘째가 가지고 있는 양탄자를 타고 공주가 죽기 전에 궁궐까지 단숨에 날아갔습니다. 
삼형제가 궁궐에 도착해서 보니 공주가 곧 죽게 생겼습니다. 

셋째 막내는 신비한 약효가 있는 사과를 공주에게 주었더니, 공주가 먹고 병이 깨끗하게 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도대체 누가 공주의 남편이 되느냐?' 하는 다툼이 삼형제 사이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신비한 망원경을 가진 첫째는 자신의 신비한 망원경이 없었으면 그 글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자신이 공주와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둘째도 이에 질세라 형제들에게 자신의 양탄자가 없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겠었느냐? 그러니 자신이 공주와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두 형들의 이야기를 듣던 셋째도 자신이 신비한 약효가 있는 사과를 주었기 때문에 살아났으니 자신이 공주와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임금이라면 누구의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임금은 첫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가진 그 신비한 망원경 때문에 이렇게 공로가 크다면 그 망원경이 지금 어디 있나?” 그러자 첫째가 “여기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임금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손해 본 것이 하나도 없군.”

이 말에 첫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임금은 둘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때문에 형제들이 빨리 와서 내 딸을 살려줬지? 그런데 자네 양탄자는 지금 있나?” 그러자 둘째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돌아갈 때에도 이 양탄자를 타고 갈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임금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자네도 손해 본 것 하나도 없군.” 그러자 둘째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임금이 셋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가지고 온 사과가 지금 어디 있나?” 그러자 셋째는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임금님은 다시 “그럼 어떻게 했나?” 그러자 셋째는 임금에게 말하기를 “공주님이 다 드셨습니다.”

이 말은 듣고 임금은 셋째에게 “자네만이 모든 것을 손해 본 사람이군” 이라고 말하며 공주의 남편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대개 ‘손해 보는 것’ 보다 ‘상 받는 것’ 을 좋아하며 ‘희생하는 것’ 보다 ‘축복 받는 것’ 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받으려고 하기보다, 먼저 주어야 하며 거두려고 하기보다, 먼저 심어야 하며 우리가 살려고 하기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살리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길이며 우리가 축복을 누리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포로된 신분으로 살아갈 때에 바사제국의 네번째 왕인 아하수에로 왕때 일어난 한 사건입니다. 

아하수에로는 왕위에 오르고 자기와 바사제국의 위대함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모든 방백들과 각 도에 흩어져 있던 귀족과 장군들을 모은 후 180일 간에 걸친 잔치를 배설하였고 그 잔치의 마지막 날 술에 취한 왕은 자신의 왕비 ‘와스디’ 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왕비를 불렀지만 왕비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잔치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하수에로 왕은 와스디를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대신하여 왕비를 뽑도록 신하들에게 명했는데 그 때 왕비로 뽑힌 여인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에스더였습니다. 

원래 에스더는 바벨론 포로 때 잡혀온 유대 출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 때 고아가 되었지만 대궐 문에서 문지기로 일하던 사촌 오빠 ‘모르드개’ 의 손에 의해 양육되어 바사제국의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하만이 총리대신에 오르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만은 교만한 사람으로 자신의 권력 앞에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어 절을 하는데 신앙을 이유로 문지기인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하만은 모르드개가 유대인임을 알고 모르드개와 바사제국 내에 포로로 끌려와서 살고 있는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계획에 따라 자신의 왕비 에스더가 유대인인 것을 알지 못하고, 12월13일 하루 동안 유대인을 학살하고 그들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로인해 하루 아침에 유대인들은 풍전등화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입고 입던 옷을 찢어버리고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재를 뒤집어 쓴 채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궁궐 안에 있는 에스더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닥이라는 내시를 통해 궁궐 안에 있는 에스더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하만의 꾀임에 넘어간 아하수에로 왕이 전국 각지에 내린 ‘모든 유대인을 진멸하라’ 는 조서의 초본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유대민족이 말살되지 않도록 왕에게 간절히 요청하라’ 는 부탁을 합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전하기를 ‘모든 사람들이 다 알다시피 왕이 부르지 않으면 아무도 왕 앞에 나갈 수 없을뿐더러 왕 앞에 나아갔다가 왕이 금홀, 즉 금지팡이를 내밀지 않으면 죽임일 당할 뿐입니다. 왕비인 저도 왕을 만난지 30일이나 지났습니다.’ 라고 전했습니다.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자신에 대한 아하수에로 왕의 사랑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왕비이기는 하지만, 다른 후궁들처럼 왕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신세이며 아무리 동족이 멸망당할 위험이 처해 있다 할지라도 지금의 상황으로는 자신도 왕이 부르기 전까지는 왕 앞에 나갈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에스더의 소식을 받고 다시 모르드개가 하닥을 통해서 전한 말씀이 오늘 13절의 말씀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말씀은 쉽게 말해 ‘에스더야 네가 왕궁에 있다고 홀로 죽음을 피할 줄로 생각하지 마라 유대인이 모두 죽으면 너도 죽게 될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모르드개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의 ‘용기’ 입니다. 

에스더는 과거에 자신의 손으로 키운 딸과 같은 조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에스더는 조카가 아니라 세계를 호령하는 바사제국의 왕비가 아닙니까? 

그리고 왕비가 한 번 거절한 것을 협박 하다시피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를 가지고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14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에스더 네가 나의 요청을 거절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겠지만 너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 지금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문지기 모르드개가 왕비 에스더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보면 마치 사람을 협박하는 말투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보통 용기가 아니면 왕비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모르드개는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민족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땅과 수많은 가축과 유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딸의 배우자를 찾기 위한 파티를 열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젊고 유능한 청년들을 파티에 초청하였습니다.

파티가 한참 진행되던 중에 그는 젊은이들을 모두 야외에 있는 풀장 곁으로 불러 모아 일렬로 세워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풀장에는 온갖 뱀과 악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소. 누구든지 이 물속에 뛰어들어 반대편 끝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내 소유의 땅 절반이나 내 딸과 결혼할 수 있는 행운 중에 원하는 것 하나를 주겠소.”

그러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첨벙’ 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쏜살같이 물을 가르며 헤엄쳐 나가는데 순식간에 맞은편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부자는 청년의 용기에 너무나 감동하여 달려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내 땅의 절반을 갖기 원하는가?” 그러자 청년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부자는 다시 “그렇다면 내 딸과 결혼 하기 원하는구만” 그러자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그것도 원치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해진 부자가 그렇다면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자 그 청년이 대답하기를 “제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누가 나를 물속에 밀어 빠뜨렸는지 알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청년이 용기가 있어 물 속에 뛰어 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밀었기 때문에 그가 물 속에 빠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주변에 두려워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용기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르드개는 자기 민족의 위기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편안 길로 갈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손해 보는 것’ 보다 ‘상 받는 것’ 을 좋아하는 이 시대에 의를 위하여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는 모르드개와 같은 용기 있는 사람들을 찾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그러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궁궐에 있던 에스더는 처음에는 왕에게 나아갈 수 없다고 하였지만 그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15절-16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왕의 규례를 어겼다는 죄목으로 죽는 한이 있어도 왕에게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정을 낱낱이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도 삼일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기도할 텐데 모든 유대 사람들도 삼일 동안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에스더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에스더는 기도의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심만 하면 일이 되는 줄 압니다. 목숨 걸면 모든 일이 저절로 다 이루어지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로다’ 결단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로다’ 라는 에스더의 결단을 높이 사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에스더가 목숨을 건 결단을 하고 난 이후에 어떻게 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삼일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이 한 눈에 반할 정도의 외모와 용기가 있었지만 그보다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녀는 기도의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기에 왕의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가면 왕의 진노를 사서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일이 용기만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약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인간적인 용기를 가지고 모험을 해서 망할 수밖에 없는 유대민족을 구원했다고 생각하면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들은 무엇을 사용하였습니까? 바로 기도의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의 무기는 세상에 있는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하고 확실한 무기입니다.
믿으십니까?

이 기도의 무기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되어서 렘33:2-3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마치 우리가 수도를 틀면 물이 쏟아지고 전기 스위치를 켜면 전기가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면 하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트는 것이며 전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전기 스위치를 켜는 일인 것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이며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14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오늘 이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라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여기 ‘왕후’ 라는 단어에 여러분들의 직업이나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자리를 넣어도 좋을 것입니다.

만약 모르드개가 어떤 사업장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분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혹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난다면 “네가 지금 이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은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혹은 가정주부에게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네가 주부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또 “네가 이러한 것을 누리고 이러한 것을 소유한 것도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얼마든지 물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지금의 자리에까지 인도하시고 우리를 존재하게 하심에는 그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건강을 주셨고, 물질도 주셨고, 재능도 주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저마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어떤 분들은 ‘정말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다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직장이 있고 사업장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고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교회가 있고 교회에서 직분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그냥 가지고 있다가 썩히라고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직업이나 기술이나 신분이나 건강이나 물질이나 재능 등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중에 필요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필요하셨기 때문에 이곳 당진으로 다양한 모습과 환경으로 부르시고 함께하는교회의 한 권속이 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부르신 목적을 기억하고 늘 이를 위해 쓰임받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들도 그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 가운데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조차도 모두 그 목적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르드개와 에스더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시고 세우신 목적과 사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나아갈 때에 하루 아침에 오히려 하만과 그의 추종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유대인들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만의 음모로부터 구원받은 날을 ‘부림절’ 이라고 해서 지금도 철저히 지킵니다.  

여려분 오늘 이 시간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을 깨닫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모르드개를 통해서 주신 말씀처럼 “네가 그 자리를 얻은 것이, 네가 그것을 얻은 것이, 네가 그것을 하게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라는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들으시고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그 목적과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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