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빼앗긴 이유 (대상 10:13-14)

첨부 1


빼앗긴 이유 (대상 10:13-14)

저와 여러분은 끝까지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어떤 환난이 와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다가 믿음에서 떠나고 결국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3년간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지옥을 본 최보라 목사는 지옥에 가보니 세상에서 목사, 장로, 집사, 권사의 직분을 받았던 사람들도 와있는 것을 보았다고 간증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 신앙생활 잘 못한 것을 후회하더랍니다. 아마 최보라 목사가 지옥에서 봤다는 그 직분자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 사람들일 것입니다. 전혀 주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경험했고 은혜를 맛보았지만 믿음으로 살지 못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갈 3:3에 보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끝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슨 시험이 있고, 무슨 환난이 있어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될 때는 겸손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언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의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교만에 빠집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죽음을 당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죽이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죽이신 이유를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13절에 보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연약하여 누구든지 범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인 저도 그렇고 성도인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회개라는 회복의 수단을 주셨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 중에 하나는 회개입니다. 사울은 범죄 후에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선지자가 찾아와서 죄를 지적해도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달랐습니다. 다윗은 범죄 후에 선지자에게 죄를 지적 받을 때마다 핑계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즉시 하나님께 엎드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자백을 받으시고는 즉시로 용서해주셨습니다. 

요일 1:9 말씀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마다 즉시로 용서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 체험을 시 32:5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주십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에 다양한 열매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생활의 변화, 질병의 치유, 문제 해결, 기도응답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열매가 열립니다.
   
작가 오혜령 씨는 76년엔 36살의 나이로 세계언론인 작가협회 사무총장이 되었습니다. 70년대에 희곡 작가로, 배우로, 방송인으로, 또 수필 작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는 미션 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30대 꽃다운 나이에 위암과 임파선 암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3개월 밖에 살수 없다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은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했고 혈변을 보는 고통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 동안 주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았습니다. 며칠 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써가며 아프게 회개했습니다. 밤을 새며 눈물로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왔구나.” 스스로 임종준비를 하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았습니다. 어깨를 만져보았습니다.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배를 만져보았습니다. 복수가 차올랐던 배가 완전히 꺼졌습니다. 그는 살아 계신 주님께서 자기를 만져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오혜령씨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주님을 만났고 주님과의 교통이 열리니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치유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회개를 잘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신 이유를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사울이 범한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사울이 범한 죄악 3가지를 다루겠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본보기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취해야 할 모습과 버려야 할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사울을 통해서 신앙인이 버려야 할 것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빼앗긴 이유’입니다. 사울이 어떻게 했기에 다윗에게 왕위를 빼앗겼고 나라를 빼앗겼느냐를 살펴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사울의 모습을 통해서 경계를 삼으시고 영적 신분을 빼앗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1.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13절).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의 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은 백성을 벌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안녕과 백성들의 보호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법을 어기게 되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야 질서가 유지되고 선량한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 있습니다. 세상 법은 잘못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성도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복을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 10:13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명령과 규례를 하나님의 백성들의 괴롭게 하거나 무거운 짐을 지우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행복을 위하여 법과 규례를 주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에 따르는 대가를 요구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행복하고 복을 받아 누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그에 합당한 징계와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 승리하면 모든 것을 진멸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모든 것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양이나 소를 보니 욕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약한 것들은 죽이고 튼튼한 것들은 숨겨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사울은 속였지만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이 때 사울이 회개했다면 자비하신 하나님은 사울의 죄를 용서하셨을 텐데 사울은 핑계만 하지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니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성경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께서는 성경의 저자들을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감동하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롬 8:14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생각이나 부담감 그리고 확신이나 환경 또는 사람 등을 통해서 우리를 감동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설교로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의 외침은 설교였습니다. 그들의 설교는 그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도 설교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설교한다면 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바울은 살전 2:13에서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또 믿음으로 받는다면 제가 하는 설교는 여러분 가운데 역사할 것입니다.
   
로마 한인교회는 몇 백 명이 모이는데 거의가 한국에서 성악을 배우러 온 성악가들입니다. 그래서 전교인이 다 성가대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성악을 전공하는 한국 자매님이 출석했습니다. 이분이 실력도 있고 곧 세계를 향하여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눈이 쌍꺼풀이 아니고 외꺼풀인 것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쌍꺼풀수술을 하려고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이 "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꾸 고치냐? 그대로 살아라. 꼭 그래야 만이 행복한 건 아니다. 그래야 만이 미인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살아라."라고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이 분이 그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만하면 은혜가 감사하다.’고 하면서 수술을 포기 했습니다. 유명한 성악가나 오페라 가수가 되려면 목소리도 좋아야 하지만, 얼굴은 간판이나 다름없으니 수술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목사님이 자기 사정도 모르시는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감동이 왔고, 이분이 그 감동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마침 유럽에서 ‘나비부인’이라는 오페라를 하게 위해 동양인 가수를 찾게 되었답니다. ‘나비부인’이라고 하는 오페라는 무대가 일본입니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할 때 해군 중위하고 나비라고 하는 아가씨가 서로 사랑하는 내용이 줄거리입니다. 그러므로 ‘나비부인’의 주인공은 동양인 여자 성악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때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성악가 중에 한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뽑힌 성악가가 놀랍게도 쌍꺼풀 수술 안 한 이 아가씨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력이 비슷한 분들이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다 쌍꺼풀이 되어 있어서 동양적인 맛이 나지 않았는데 이 분은 쌍꺼풀이 아니라 가장 동양적으로 보여서 뽑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주인공을 맡았는데, 이 ‘나비부인’이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둠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 설교시간에 말씀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결과 이런 좋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요즘 하나님은 나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무슨 감동을 주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명령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영적인 부담감은 무엇입니까?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저에게 설교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감동주시고, 성경의 어떤 부분에 여러분의 눈이 머물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이 불순종하므로 성령이 떠나시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던 것처럼 우리가 불순종하면 그에 합당한 대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행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2. 사울은 신접한 자를 찾아갔습니다. 
   
삼상 28장에 보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게 되니 전쟁이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서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무당은 죽여야 했습니다. 레 20:27에 보면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에 보면 무당을 찾아가는 자를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시켜버립니다. 레 20:6에 보면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울은 무당을 찾아가므로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빼앗겼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인들 중에도 무당을 찾아가거나 점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에 단군교의 교주를 했던 박해경 이라는 사람이 점을 잘 치기로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계기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분이 변화 된 후에 전국을 다니면서 간증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문이 복음 방송국에 까지 알려지면서 복음방송에 나가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는 사람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습니다. 박해경씨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해마다 자기에게 점을 보러 오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회자는 기독교인으로 기독교 계통의 방송국에서 일을 하면서도 해마다 점을 봤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이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표를 던져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건을 새롭게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율법에서 신접한 여인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울이 버림을 받은 것은 우상숭배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사울의 그런 행동은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귀신을 섬겼던 것입니다.
   
이 두 번째 대지의 적용은 욕심입니다. 바울은 골 3:5에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 속에 욕심이 들어가면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컵 안에 물이 들어가면 그만큼 공기는 빠져 나오게 되듯이 욕심이 들어가면 하나님을 우리들의 마음의 왕좌에서 밀어내는 것입니다.
   
함경북도 성진시 앞바다에는 자석광구가 있다고 합니다. 자석광구에서 나오는 자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가던 배가 자꾸 침몰하거나 큰 위험을 겪는다고 합니다. 항해하던 배가 그 근방에 오면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아 방향을 잡을 수 없게 되고, 방향을 잃고 배회하다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나침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침반이 욕심을 만나게 되면 제대로 작동을 못합니다. 그래서 배가 침몰하듯이 시험에 들고 멸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심이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빠지기 쉬운 욕심 세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째는 소유욕입니다. 
   
희한하게 성경에서 물질의 욕심을 부린 사람들은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아간은 돌아 맞아 죽었고, 게하시는 나병이 걸려서 살이 썩어버렸고, 가룟유다는 목매달아죽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독소입니다. 딤전 6:10에서 바울 사도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 하나 때문에 1만 가지의 악을 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돈 사랑 하는 것 때문에 사단에게 미혹을 받아서 신앙이 넘어지고 믿음에서 떠납니다. 돈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 그 근심이 가시처럼 자기를 찌르는 것입니다.
   
물질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물질은 많고 적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돈은 구두와 같습니다. 구두는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발에 맞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돈도 나에게 알맞은 양이 좋은 것이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 히 13:5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주실 때 일용할 양식과 심을 씨앗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고후 9:10에서 바울은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심을 것을 주셔서 심는 자들을 풍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게 하실 때 심으십시오. 그 때가 가장 적기입니다. 
   
교인이 약 10만 명 정도 되는 교회 목사님이 어느 날 설교를 하시다가 “이상하게, 성경에 나오는 것은 아닌데, 이번에 하나님께서 성도들 중에 한 사람을 크게 축복하셔서 엄청난 사업가로 만드실 것 같은 마음이 옵니다. 이건 성경에 없는 것인데, 제가 방석을 강단에서 던지는데 그 방석이 어깨에 닿는 사람을 그렇게 축복하실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내 마음에 그런 감동이 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먼저 천만 원을 헌금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한 후 성가대 쪽에 방석을 던졌습니다. 

성가대원들이 천만 원 헌금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다 피합니다. 다시 성도들을 향해서 방석을 던집니다. 성도들 역시 천만 원 때문에 다 피합니다. 다시 다른 쪽으로 던졌는데 역시 다 피합니다. 목사님이 마지막 방석을 던지면서 하나님이 재벌 수준의 복을 받는 사람이 나오게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던졌는데 이번에는 복도에 떨어졌습니다. 

목사님이 “오늘 여러분 중에 방석에 맞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방석이 내 어깨에 닿으면 천만 원 헌금하려고 했던 사람이 있으면 내일 새벽에 드리세요”라고 하고는 끝났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 교장선생님 부인 권사님이 강단에 천만 원을 올렸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사업을 할 것도 아니지만 감동을 따라 천만 원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교장선생님 아들의 사업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시작해서 지금은 엄청난 기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선교하고자하는 감동, 헌금하고자 하는 감동, 남을 돕고자 하는 감동, 기부하고자 하는 감동을 주십니다. 소유욕을 내려놓으시고 담대하게 심으십시오. 
   
둘째는 명예욕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기독교 진리는 역설적인 진리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명예와 관련된 것입니다.
   
마 23:12에서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주님께서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 3가지를 말씀합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주님은 거기에서도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사람에게 보여서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하늘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을 피하려고 은밀하게 하면 오히려 하늘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벧전 5:6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사단이 주는 마음인줄로 아시고 물리치십시오. 그리고 겸손히 섬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높여주실 것입니다. 
   
셋째는 육신의 정욕입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소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혼의 소욕이고 또 하나는 육신의 소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소욕은 죽이고 영의 소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롬 8:6-8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12-14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평안이고 승리이고 행복이고 하나님과 화목입니다. 마귀의 인도를 따라가면 불안하고 패배하고 불행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소욕을 따라가면 평안이고 승리이고 행복이고 하나님과 화목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을 따라가면 불안하고 패배하고 불행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므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빼앗겼고 결국 멸망했습니다. 우리는 소유욕, 명예욕, 육신의 정욕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빼앗기고 결국 멸망합니다. 탐심을 물리치기를 바랍니다. 
 

3.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응답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사울은 다윗과 달랐습니다. 하나님께 묻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잠 3:6에 보면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씀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인정하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머리가 좋습니까 여러분의 머리가 좋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 묻고 행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 겸손이고 묻지 않는 것은 교만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없이 살수 없다는 것이고 교만은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살리지만 교만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성경 잠 18:12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잠 29:23에서는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약 4:6에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높은 자리에 나를 세워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대영제국 시절이었습니다. 영국왕은 온 세계를 호령하였습니다. 영토를 크게 넓혀 나가던 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왕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어느 날 신하들이 호화스러운 왕관을 씌워주며 말했습니다. “이제 왕의 명령을 거역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런 신하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파도여! 잠잠하라.” 그러나 파도는 계속 일렁거렸습니다. 파도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 때 왕은 말했습니다. “보아라. 내 명령을 듣지 않는 만물이 이 땅에는 얼마나 많으냐? 이 땅에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다.” 이 왕은 절대권력자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인정한 왕입니다. 이 왕이 영국 왕 가누트입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섬깁시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합시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묻고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의 길이 아니라 다윗의 길을 가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므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