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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 (마 13:31-32,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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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마 13:31-32,17:20)

골리앗은 키가 아주 컸습니다. 성경은 그의 신장은 여섯 규빗 하고도 한 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삼상17:4). 1규빗이 약45cm입니다. 6규빗만 해도 270cm입니다. 누구든지 그 앞에서면 어린 아이와 어른이 서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내가 그래도 보통 키는 되지만, 나보다 1m이상 크니까 정말 큰 것입니다. 골리앗에 비하면 다윗은 어린 아이같습니다. 하지만 이긴 것은 다윗입니다. 큰 사람이 아니라 작은 사람입니다. 
 
씨 중에 가장 작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겨자씨는 작은 것의 상징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로 비유하셨고, 산을 옮기는 믿음도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창립 35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가 겨자씨 같은 교회가 되고,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 겨자씨가 이루는 천국

예수님은 천국의 원리를 겨자씨로 비유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생명이 있어 점점 자라서 나무가 되고 새들이 와서 깃들이게 된다. 천국은 항상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점점 커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라”(마13:31-32)
  
크다고 귀한 것도 아니고, 작다고 하찮은 것도 아닙니다. 바위가 크지만 작은 다이아몬드에 비기지 못합니다. 크고 잘 생긴 무보다 작고 못생긴 인삼의 값은 비교가 안됩니다. 
크기로 대들면 질로 맛서야 합니다. 무게로 누르려하면 속도로 치고 빠지면 됩니다. 
  
겨자씨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작은데 있지 않고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입니다. 자기가 보나 남이 보나 작은 것은 사실입니다. 큰 자와 자기를 비교하게 됩니다. 비교하면 열등감을 느낍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가져야 합니다. 다섯 사람 중에 네 사람은 어느 정도 열등감이 있답니다. 하지만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나는 열등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업신여겨 다른 사람에게도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씨앗은 나무와 비교가 안되지만 씨앗이 나무의 모태입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앗을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겨자씨의 잠재력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니고 있는 위대한 능력을 나타냅니다. 말씀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결과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 길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 네 명을 교회로 인도하여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믿음도 같이 자랐습니다. 30년 세월이 지난 후 선생님의 생일에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네 사람에게서 생일축하카드가 왔습니다. 
  
그 중에는 미국 대통령이 된 허버드 클라크 후버의 전보가 왔습니다. 대통령 비서관도 보냈고, 중국 선교사도 있고, 연방정부 은행 총재도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한 사람이 어린이에게 성경을 가르쳤을 뿐인데 큰 인물로 자라게 된 것입니다. 링컨에게 제일의 책은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은 자신의 존재를 있는 대로 바라보게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성경이 사람을 만듭니다. 감추인 보호를 찾아내듯 인간 내부의 잠재력을 끄집어냅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차별 받는 흑인이었습니다. 한때는 알콜과 마약에 빠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나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칼리지에서 콜롬비아 대학에 편입하면서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마약을 끊고 공부에 열중할 때는 마치 수도승 같았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에 붙은 “버락 Barack”은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 나라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됩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다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2) 그 작은 자란 작은 자 중의 작은 자요, 그 약한 자란 약한 자 중의 약한 자를 말합니다. 그 작은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다.”(욥8:7 새번역)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현재는 하찮아도 두고 봐야합니다. 겨자씨는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고 생명입니다. 외모가 아니고 중심입니다. 지식이 아니고 믿음입니다. 현재가 아니고 비전입니다. 
  
기드온은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어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하리라” 하셨습니다(삿6:15-16). 기드온은 작지만 작지 않습니다. 약하지만 약하지 않습니다. 왜요? 크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 겨자씨만한 믿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무릎을 끓고 말했습니다.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간질병으로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불 속에 쓰러지고 물에 빠지기도 합니다. 제 아이를 데리고 선생님의 제자들을 찾아갔으나 그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 오라” 아이를 데려오니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순식간에 나았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따로 예수께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오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예수님은 꾸짖음으로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그의 꾸짖음은 용광로에서 나온 불같은 호령이었습니다. 귀신을 꾸짖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마가복음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예수님은 새벽 미명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권능으로 귀신을 추방하신 것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어떤 수로도 귀신을 쫓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16:17) 더 많은 기도시간을 투자해야 능력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마21:13). 성전은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영국에 존 월튼이라는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26세가 되기 까지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인생을 고민하던 어느 날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 날 목사님의 설교가 겨자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겨자씨 한 알을 투명한 비닐 봉지에 넣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겨자씨 만한 믿음”을 구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겨자씨를 꺼내보며 목사님의 설교를 떠올렸습니다. 
  
이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나는 할 수 있다. 훗날 어떤 기자가 “방황하던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변하고, 어떻게 성공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힘들 때마다 겨자씨를 보며 겨자씨 만한 믿음을 구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겨자씨를 지니고 살았던 죤처럼 항상 믿음을 지니고 사시기 바랍니다. 
  
“나 주의 믿음 갖고 홀로 걸어도/ 나주의 믿음 갖고 노래부르네 
 폭풍구름 몰아치고 하늘 덮어도/ 나주의 믿음 갖고 실망치 않네 
 주는 내 친구 진실한 친구/ 세상 끝까지 주를 믿으리...”
  
예수께서 멀쩡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날 오후 그 길로 다시 돌아오는데 무화과나무가 말라 비틀어 죽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선생님이 저주하신 저 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막11:20-22). 
 
여리고성을 정복하는 방법을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군사들이 엿새동안 성을 매일 한번 돌고 이레 되는 날은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너희에게 주셨느니라” 백성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수6:20). 외치는 소리가 성벽이 무너뜨렸습니다. 그 소리는 믿음에서 나온 외침입니다.

여호수아 콤플렉스complex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모세와 비교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이었고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영웅입니다. 
  
기드온 콤플렉스, 나는 농부다. 나는 아는게 없다. 나는 해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호박씨가 아니고 나는 겨자씨입니다. 나는 글렀다! 머리가 나빠서, 배운게 적어서, 말을 잘 못해서... 몸이 약하다. 마음이 약하다 ...이게 모두 열등감입니다. 겨자씨의 뱃장을 가져라! 열등감의 반대는 자신감이고, 용기입니다. 누가 더 크나 두고보자!  때가 되면 나를 보고 놀랠걸! 이것이 겨자씨의 속셈입니다. 풀이 아무리 커도 겨자만큼 못 큽니다. 
  
교회는 자라야 합니다.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에 있습니다. 산을 옮기느냐! 머리카락에 얽혀서 자빠지고 끌려가느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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