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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로였지만 (단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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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였지만 (단 1:8-21) 
 
 
본문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멸망한 후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바벨론 왕궁에서는 왕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하려고 패망한 유대인들의 자녀들 가운데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선택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소년들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우상의 제단에 올렸던 음식으로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관장에서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채식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환관장은 다니엘을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과 친구들이 채식만 했다가 그들과 함께 훈련을 받는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이 초췌하면 환관장이 왕에게 책망을 받거나 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정한 다니엘은 환관장이 반대한다고 물러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환관장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감독하게 한 사람에게 열흘만 시험해 볼 것을 요청했습니다. 열흘간 시험해 본 후에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과 비교를 해보고 판단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를 감독하는 사람이 다니엘의 말대로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난 후에 보니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고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아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왕이 정한 기한이 찬 후 환관장이 훈련 받은 소년들을 왕 앞에 세웠습니다. 왕이 그들과 말을 해보니 무리 중에서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가 뛰어났습니다. 왕이 그들과 대화를 해보니 그들의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들보다 10배나 나았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1.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멸망을 당했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갔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잘못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더럽혀졌던 것입니다.
겔 3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멸망한 유대인들의 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살펴보면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 졌다는 말씀을 4번이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더럽혀진 이름을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셔서 유대인들을 회복시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약해져서 생긴 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인격이 이상해져서 생긴 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끄럽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믿음의 사람이 잘 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 가운데 환하게 드러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시장에 있는 한 가게에서 주인과 손님이 물건 흥정을 하다가 싸움이 붙었습니다. 주인은 시장에서 장사를 오랫동안 하신분이라 보통 사나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손님에게 쌍스러운 욕을 해가면서 밀어붙였습니다. 손님 역시 만만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손님 역시 가게 주인에게 조금도 지지 않고 주인의 쌍스러운 욕에 맞받아서 욕을 해가며 버텼습니다. 

두 사람이 시장이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싸우니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싸우는데 어느 분이 싸움을 말리면서 가게 주인에게 “권사님, 왜 그러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쌍스러운 욕을 하며 손님에게 덤비던 분이 교회 권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는 어떤 분이 주인에게 조금도 지지 않았던 손님에게 “집사님이 참아”라고 하더랍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다니는 교회는 달랐지만 둘 다 교회에 나가는 권사와 집사였던 것입니다. 싸움 구경하던 사람들은 기가 막혀하며 “예수 믿는 것들이 저래”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날 욕을 먹은 것은 그 두 사람만이 아닙니다. 주님도 함께 욕을 먹은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잘못된 언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잘못 살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시각장애인인 강영우 박사님이 나와서 강연을 했습니다. 어릴 때 실명하고 고아로 자라면서 절망할 수밖에 없던 사람이 주님을 믿고 장애를 극복한 감동적인 삶을 사신 분입니다. 이분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한 걸음씩 전진했습니다. 한국에서 연세대학교를 나오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를 받았고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까지 올랐던 분입니다. 이분의 아들 크리스토퍼 강은 현재 변호사로서 미국 백악관 입법관계 특별보좌관직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강영우 박사의 강의에 감동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역경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낸 그를 보면서 박수를 보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낼 때 그 박수는 강영우 박사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간증한 하나님께서도 함께 받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잘 살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단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꿈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왕은 나라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알아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왕은 만약 그들이 왕의 꿈을 알아내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 일로 다니엘은 자기의 세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자기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밤에 환상으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보게 되었고 그 꿈의 해석도 하나님께 받게 되었습니다.
응답 받은 다니엘은 왕에게 가서 왕의 꿈을 알려주고 해석도 해주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의 이야기를 듣더니 놀라며 다니엘에게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던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에게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라고 고백합니다. 느붓갓네살 왕은 다니엘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잘 살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모든 환경을 극복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다니엘은 포로의 몸으로 바벨론에 갔습니다. 그 당시 포로라면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을 때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는 수준 이하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우리와 동일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쌍욕과 폭행을 일삼으며 아주 거칠게 대합니다. 지금도 이런데 다니엘이 살던 시대에는 어떠했겠습니까?
   
다니엘은 너무나 어려운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노예로 바벨론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환경에 눌려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환경을 극복하여 마침내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최악의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환경을 극복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종살이와 옥살이를 했지만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고 히브리민족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 도망자로 살았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고 이스라엘의 역사상 최고의 왕이 되었습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한나는 기도 응답으로 사무엘을 낳은 후에 하나님에 관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 2:8) 한나의 고백은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빈궁한 자들을 도와주셔서 그들이 처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환경을 초월하시는 분이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로 하여금 환경을 이기게 하시는 분입니다.
   
미국 200년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 1위에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을 꼽았습니다. 그는 9살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무능력해서 집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9살 때 어머니가 “부자나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어릴 때부터 열심히 성경을 읽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 링컨은 자신의 모든 불행한 환경을 극복하고 미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힘을 내십시오. 절망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환경을 극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3. 경건한 생활을 하려면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8절에 보면 다니엘이 훈련을 받을 때 공급되었던 양식은 왕의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이 음식은 우상의 제단에 올려진 제물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신앙생활하는 우리들은 자기의 믿음의 수준과 타인의 덕을 생각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우상의 제물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는 자신의 경건 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다니엘 역시 유대인이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경건함을 지키기 위해서 환관장에게 채소와 물만 먹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환관장은 다니엘이 채소만 먹었다고 초췌하면 자신에게 해가 돌아올 수 있기 때문 다니엘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다니엘은 환관장이 거절하니 이번에는 자기를 감독하는 사람에게 10일간만 시험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 다니엘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채소만 먹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경건한 생활은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경건한 생활을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쳐줍니다. 딤전 4:5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생활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듣고 읽고 묵상하고 고백하는 수고와 기도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일반적인 마음을 먹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를 악물고 오직 믿음으로 살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울은 특별한 은혜를 받았으니 별 노력 없이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경건한 생활과 풍성한 사역을 위하여 자신과 싸우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바울은 고전 15:31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합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하며 자기를 죽이는 수고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경건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으로 얻은 것입니다.
   
바울이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흔적을 고전 9: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바울은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몸이 경건에 반하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바울의 노력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니엘처럼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경건하게 살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경건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육체와 싸우며 힘쓰고 애써서 노력해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경건하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펜실베니아에는 초대 총독 윌리엄 펜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벽에 그 동상 밑에 수백 마리의 새가 떨어져 죽어 있었습니다. 조류 학자가 그것은 새들이 너무 낮게 날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동상 위로 날아야 되는데 이 새들이 떼를 지어 낮게 날다가 동상에 부딪혀 수백 마리가 그냥 죽은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아들이 저공비행을 즐기며 너무 낮게 날다가 전깃줄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 삶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낮게 납니다. 육신을 다라서 땅의일만 추구하며 삽니다. 그렇게 살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하늘의 일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살고, 정직하게,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높이 날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던 것처럼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4. 우리의 노력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질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 127:1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노력하는 자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모리스 장드롱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입니다. 그분이 피카소를 만나서 “피카소 선생님, 제게는 첼로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선생님의 솜씨로 첼로 하나만 그려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피카소가 그렇게 하겠노라고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피카소는 그림을 주지 않았습니다. 가끔 만나도 첼로 그림에 대한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장드롱은 ‘지나가는 말인 줄 알고 잊어버리셨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났습니다. 

그런데 10년쯤 지난 어느 날, 피카소가 첼로 그림을 가지고 장드롱을 찾아왔습니다. “아니, 선생님. 그림을 어찌 이렇게 늦게 주시는 겁니까? 저는 10년 전에 이 그림을 부탁드렸는데요.” “내가 날마다 날마다 첼로를 그렸지요. 그러나 내 마음에 드는 첼로를 그릴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내 마음에 드는 첼로를 그려서 드리는 것입니다.” 프로는 완벽합니다. 아마추어는 대충 하지만 프로는 완벽하지 않으면 자기 작품을 내놓지 않습니다. 피카소는 미술의 천재입니다. 하지만 자기 천재성만 믿고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엄청난 노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화가가 된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몇 년 전 타임지에서 세계에 영향을 끼친,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을 선정했는데 그 중에 골프 선수 미셀 위가 포함되었습니다. 그 때 미셸 위의 나이는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 후 미셀위가 한국을 잠간 방문했는데 며칠 동안에 35억을 벌어서 불우 이웃을 위해 5억을 내놓고 갔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런 사람들이 나오도록 기도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나올 줄로 믿습니다.
   
제가 피카소나 미셀위 이야기를 한 것은 노력이 중요함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적인 사람들은 천재성만 믿고 살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시 127:1에서 받아야 할 두 번째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입니다. 파수꾼이 경성하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집을 세우는 자가 수고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자기를 지킬 수 있었고,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노력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9절에 보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이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하려고 결심했지만 환관장이나 감독이 계속 허락하지 않았다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10일간 시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건 상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다른 소년들은 좋은 음식을 먹었고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는 물과 채식만 했는데 어떻게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 아름답고 살이 더 윤택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17절에 보니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소년들과 같이 공부를 했는데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이 더 뛰어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학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서적을 깨닫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에 하나님의 은헤가 더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 수준으로만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때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특별한 은혜가 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깨닫고 그들처럼 살아서 그들에게 임한 특별한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특별한 은혜를 받은 비결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왕의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채식을 하면서라도 하나님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를 원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져도 기도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이 낫지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풀무불에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져도 우상에게 절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차라리 풀무불 속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를 간절하게 원하십시오.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하면 그 간절함을 채워주십니다. 잠 8:17에서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목마른 사람은 물을 간절하게 찾습니다. 간절히 물을 원하는 사람은 물을 마실 때 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오직 물 생각 밖에 없습니다. 간절히 물을 원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물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물, 물, 물 좀 주세요, 물”
   
우리는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 목말라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는 만족이 없어야 합니다. “물, 물, 물 좀 주세요, 물”이 아니라 “하나님, 오 하나님, 내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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