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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 나갈 때 조심해야합니다 (대하 26: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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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갈 때 조심해야합니다 (대하 26:16-23)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22 웃시야의 남은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23 웃시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는 나병환자라 하여 왕들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의 조상들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으로 두 주간동안 미국 애틀란타에 Reformed 신학교에서 공부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월요일 귀국하면서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Z국에 가서 특강과 신입생 입학식을 은혜 중에 마치고 지난 목요일 귀국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은 좋았는데 미국과 한국의 시차가 13시간이 나기에 시차적응에 좀 힘이 들었습니다. 미국 시간에 적응할만하니 돌아왔고 다시 한국 시간에 적응하려니 조금 힘들었으나 은혜로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이제 박사님이 된 것이냐 묻습니다. 아닙니다. 이제부터 논문을 써야 합니다. 박사학위는 논문 싸움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좋은 성적으로 했어도 논문이 시원찮으면 학위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논문 쓰는 시간을 최소 1년을 잡습니다. 

제가 학교 측에 “내년 5월에 졸업할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실무진들이 웃더라고요. 그때까지 논문을 다쓰실 수 있냐는 것입니다. 사실상 불가능하답니다. 논문의 천재라면 모를까.... 최소 1년 걸리고 보통 1년 반 정도 걸린답니다. 기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미국 경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도 어렵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절약하거나 아끼려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날씨가 우리 가을 날씨인데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추워서 혼났습니다. 에어컨 좀 꺼 달라 했더니 학교 규정이라 끄질 못한답니다. 옷을 두껍게 입으라는 것입니다. 다행히 가을 옷을 하나 가져갔기에 그 옷을 입고 공부를 했습니다.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아낄 줄 모르고 펑펑 쓰니 경제 위기가 어떻게 해결 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미국으로 이민 갔던 교포들이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을 온다합니다.  

전 세계 경제의 지도 국가였던 미국이 경제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부하였던 나라 미국,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 두고 봐야 합니다. 다행인 것은 경제가 위기가 닥치자 교회가 부흥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교회들이 타락했다 하지만 아직도 복음주의 교회들은 살아있고 부흥하고 있었습니다. 고난이 닥치자 교회가 부흥되고 교회가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고난이 닥칠 때, 위기가 찾아 왔을 때, 그때가 기회입니다. 고난을 잘 견디고 주님을 잘 의지하면 복이 되는 역사가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문제는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세계 최 강대국이 되었을 때 조심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교만하면 국가는 무너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역사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도 그것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웃시야 왕은 어떤 왕입니까? 
대하26:3~5절을 보세요. 

3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는 비록 16세에 왕이 되었던 왕이지만 52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왕이었습니다. 

그는 1)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4절)이었고 2)하나님이 형통케 한 왕(5절)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3)하나님이 도와주신 왕(7절)으로 그 도우심으로 국력이 강해지는 복을 누렸던 왕이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 보기에 정직히 행하고, 하나님이 도우시고 형통케 된 배경에는 그를 뒤에서 돕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누구냐면 웃시야의 영적 스승인 스가랴였습니다. 

그는 5절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 스가랴가 웃시야의 영적 스승으로 그를 지도하고 인도할 때 웃시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정직하다”는 말은 거짓말을 안했다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는 일마다 형통케 하시고 그를 도우셔서 강대국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도 영적 지도자의 도움을 입어 하나님을 찾으시고 형통함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잘나갈 때 조심하고 힘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스가랴가 죽고 그에 곁에 영적 지도자가 없어지자 그는 교만함에 빠집니다. 그리고는 변질됩니다. 여러분 바라기는 변질되지 말고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변질과 변화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타락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변질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은 변화입니다. 


A. 왜 웃시야 왕은 말년에 교만해졌나요? 

그토록 위대한 왕 웃시야가 말년이 그토록 교만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1. 힘이 생기자 교만해졌습니다.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도움을 입고 강성한 나라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더욱 겸손해져야 하는데 인간은 연약하여 그러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조금만 힘이 생기고 조금만 됐다 싶으면 교만해져 목이 뻣뻣해 집니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 힘으로 된 줄 착각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것을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해집니다.  

웃시야 뿐만이 아닙니다. 
사울왕도 그랬습니다. 처음 그가 왕으로 뽑혀 기름부음 받을 때는 얼마나 겸손했습니까? 그런데 왕이 되어 오랫동안 임금 대접을 받다 보니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도 무시하고 예배도 자기 멋대로 집례 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다윗왕도 그랬습니다. 그가 겸손할 때는 하나님이 그를 높이고 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백성의 숫자를 계수합니다. 신하가 조언을 하는데도 강행합니다. 왜 백성의 숫자를 세었나요? 자기 힘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상21:1~2을 보세요.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사탄이 다윗을 충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의 숫자를 계수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윗이 넘어간 것입니다. 

왜죠? 사단이 다윗의 마음속에 교만을 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힘을 과시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강대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백성의 숫자나 다윗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위대한 왕도 잘나갈 때 조심하지 않으니 사탄이 충동질 하는 역사에 넘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잘나갈 때 조심합시다./ 
옆 사람에게도 말해주세요. /잘나갈 때 조심합시다./ 

이 말이 기분 나쁘면 여러분도 조심해야 합니다. 사탄의 선물인 교만이 문 앞에 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배생활을 등한히 함으로 교만해 졌습니다. 

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웃시야가 스가랴의 도움을 받아 신앙생활을 했으므로 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찾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에 성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5절에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는” 이란 말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했는데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는 형통치 못했다는 암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잘 예배 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할 때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왜 그가 하나님을 찾지 못했을까요? 한마디로 너무 잘 나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너무 잘나갈 때가 문제입니다. 잘되면 잘 될수록 더욱 낮아지고 더욱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잘나가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요? 너무 잘 나가므로 너무 바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바쁘다 보니 하나님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 났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예배할 시간이 없으니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도우심을 망각하게 되고, 마치 자기 힘으로도 얼마든지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웃시야 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도 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너무 잘나가다 보니 예배를 등한시 합니다. 

좀 살만하고 좀 여유가 있게 되다보니 하나님의 도우심 없어도 살만하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후예배쯤은 빠져도 되고 주일 낮 예배만 나가주면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가 정신없이 바쁜 시대인데 굳이 새벽기도까지 나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없이도 살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귀있는 분은 들고 돌이키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영적 스승의 조언이 없게 됨으로 망하였습니다. 

잠10:17절에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했습니다. 웃시야 왕이 복을 누린 배경 중에 가장 큰 역할은 스가랴 선지자였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사는 날 동안에는 늘 그의 지도를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습니다. 그때부터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왕이 교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교만을 지적해 주는 스승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사장이 제제를 하는데도 이미 웃시야는 교만의 도를 넘었습니다. 결국 악을 행하여도 그를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영적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이 복중에 복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영적 스승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교만해질 때 그것이 죄악임을 지적해주고 길을 막고 책망해 줄 스승이 있습니까? 그러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에게는 스가랴 선지자가 죽자 그를 대신할 스승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있었습니다. 나단 선자자가 다윗이 범죄하자 그에게 나타나 담대하게 죄를 지적하고 책망합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은 그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킵니다. 결국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만큼 영적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부족한 저를 영적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통해 여러분을 이끌어가고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를 통해 책망을 들었거든 복으로 여기기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여러분에게 세우신 것은 여러분의 기분을 맞추고 아부하라고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못된 길로 가면 책망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도록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목사를 멀리하지 마시고 목사에게 숨기려 하지 마시고 가까이 지내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B. 교만한자는 어떤 짓을 합니까? 

교만의 특징은 “무시”입니다. 교만은 절대가치를 무시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릇된 행동을 하게 합니다. 그런 모습은 우리 속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무시할까요? 

1) 예배를 무시했습니다. 

웃시야가 교만함으로 그가 저지른 죄악은 제사장이나 선지자만의 영역을 침해한 것입니다. 이른바 제사권 침해입니다. 당대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분향은 오로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업무였습니다. 그런데 웃시야가 교만하여 집례하려 합니다. 

16절을 보세요.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을 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할 일입니다. 그런데 왕이 자기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사장이 제제를 하고 나섭니다. 

17절~18절을 보세요. 

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아사랴라는 제사장이 담대히 지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면 곧바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하는데 웃시야는 그러지 못합니다. 화를 내며 계속하려 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치십니다. 그 즉시 이마에 문등 병이 생겼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은 역할이 있습니다. 아무나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직분과 책임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하면 그 영역을 침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냥 두질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진노케하는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2)책망을 무시했습니다. 

아사랴 제사장이 담대히 웃시야를 책망하는데 문제는 그 왕이 그 책망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세요. 

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책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흔한 방법은 세우신 종들 통해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한 사람이면 그 책망을 듣고 돌이켰을 텐데 웃시야는 교만하여 그 책망을 무시하고 계속합니다. 오히려 화를 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냥 넘어가질 않습니다. 그 즉석에서 그를 징계하십니다. 문등병, 즉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당대에 나병이 들었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버림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웃시야는 왕위에서 곧바로 쫓겨납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왕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설교를 들을 때 제발 사람의 소리로 듣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경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러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배를 무시하고 책망을 무시한 웃시야 왕의 결과를 보세요. 

1)나병 환자가 됩니다. 2)왕권이 박탈됩니다. 3)별궁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건강을 잃었습니다. 권력도 잃었습니다. 인간관계도 단절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배드릴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교만하면 결국 다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겸손”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겸손이 능력입니다.  

잠 18:12절을 보세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약 4:6절을 보세요.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벧전 5:5절입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우리 주님은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나 내게 배우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을 벗어 버리고 겸손을 소유한 복 있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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