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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위로의 하나님 (고후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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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위로의 하나님 (고후 1:3~11)
  

옛날 영국에 ‘카리니’라는 유명한 코미디언이 있었습니다. 기발한 재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당했는데, 나중에는 밤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큰맘 먹고 용하다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갑니다. 여러 시간 상담을 한 후 의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은 특별히 아픈 데는 없네요. 다만 우울한 감정이 계속 쌓여 있어 그런 겁니다. 별 다른 치료법은 없고, 그저 유쾌하게 자주 웃으세요. 그러면 나아지실 겁니다.” 카리니가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그렇게 막연하게 말씀하지 마시고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의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 그 사람 있잖아요. 카리니! 그런 코미디언의 공연에 자주 가서 마음껏 웃어 보세요. 분명히 나아지실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카리니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합니다. “제가 바로 카리니인데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세상에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일일이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지만 불쑥불쑥 닥쳐오는 고난으로 괴로워합니다. 정말 그렇죠.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 질병, 실패, 불화, 갈등, 죽음 등이 우리 인생을 공격해 옵니까? 그 가운데 과연 어떻게 해야 승리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위로가 필요합니다. 인간이나 세상의 위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 힘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바로 이겁니다. 부디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 많은 세상에서 꼭 승리하며 행복한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고난 많은 세상살이 : 당당하게 맞서라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에 앞서 인생의 실상을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세상살이에는 본래 고난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당연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당당히 맞설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역시 인생에는 고난이 많기 마련임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그 중의 한 구절을 소개해 드리죠. 욥14: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full of trouble)”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란 모든 인간을 가리킵니다. 하나도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생은 짧은 생애를 살 뿐만 아니라, 걱정 즉 고난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반울은 노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행14:22 “ ...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 ”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세상 살 동안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마치 자기 혼자만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불평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왜 나만 이러나?(Why me?) 그러다 보면 엄살을 부리게 되고, 고난 앞에 쉬이 주저앉아 버립니다. 프랑스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쎄라비!(C'est la vie!) 너무 힘들고 괴로운 고난이 닥쳐올 때 하는 말인데, ‘인생이란 그런 거다!’ 라는 뜻입니다. 어떤 인생이든 예외 없이 고난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앙 이전에 이런 뱃심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세가 없으면 험한 세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고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sbs-TV에 「기적의 오디션」이란 프로가 있죠. 지난 8개월간 배우 지망생 2만 2천명이 경쟁하는 가운데 최종 우승자가 선발됐습니다. 문자 그대로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그에게는 2억 원과 승용차 1대가 상으로 주어졌고, 드라마 주연급 캐스팅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엄청난 행운입니다. 몇 주 전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가서 잠시 쉬면서 TV를 켰는데 이 프로가 나오는 겁니다. 감동을 주는 한 청년을 보고 그가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몇 번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청년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 겁니다. 손덕기라는 청년입니다. 그는 일곱 살 때 뇌종양 후유증으로 눈이 사시가 되어 초점이 맞지 않습니다. 연기가 하고 싶어 극단에 들어갔지만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원망하며 독기를 품고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 불행이 찾아온 게 아니라 내가 불행을 선택한 것이라고. 자기가 잃어버린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고. 그리고 도전합니다. 심사위원들이 그런 눈으로 어떻게 연기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지만 보란 듯이 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는 우승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같은 상처와 아픔으로 좌절하고 있을 많은 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겁니다! 이런 당당함이 없이 위로만 받으려고 하면 인생은 한없이 나약해집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인데, 마치 나만 혼자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세상의 위로라는 게 별게 아닙니다. 잠시 잠깐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해 주는 마취제와 같은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술이나 마약 같은 데 빠지는데, 근본적인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게 있어요. 최근 위로산업이 뜬다고 합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전화로 말벗을 해주는 유료 서비스도 있고, 팔베개 모양의 베개, 사람 소리에 움직이는 도리도리 인형, 강아지가 방석 위에서 잠자는 모양의 ‘슬리핑 독(sleeping dog)’ 등. 오죽 외롭고 힘들면 이런 게 인기가 있겠습니까?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진정한 위로 :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우리 인생을 고난 가운데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위로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인간에게서 오는 위로는 피상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욥이 극한 고난을 당했을 때 친지들이 찾아와 위로한답시고 한 마디씩 하는데, 오히려 욥의 심기만 건드렸습니다. 욥16: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그들은 위로하러 왔다가 도리어 염장만 질렀다는 말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한 환자가 수술대에 누웠습니다. 너무 긴장이 되어 의사 선생님에게 사정합니다. “선생님, 제가 처음 수술을 하는데요, 너무 긴장이 되어서 죽겠어요. 잘 좀 부탁합니다.” 그러자 의사가 환자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처음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위로는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위로만이 참 위로입니다. 3절.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바울이 체험적 고백을 한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 즉 어떤 상황이나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진정한 위로를 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실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바울은 3절~7절 사이에 무려 10번이나 ‘위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 큰 위로의 하나님 : 위로 받고, 위로하는 자가 되라 

① 위로 받으라 :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며 큰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위로 받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8절~9절.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심한 고난을 당했던지, 뭐라고 표현합니까?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 살 소망이 끊어졌다는 말은 죽고 싶을 정도였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큰 위로가 찾아왔습니다.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을 때 역설적으로 죽은 자(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부활의 능력)을 의지하게 됐고, 그 순간 하나님의 큰 위로를 받고 승리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 당시 바울이 당한 고난은 정말 엄청난 것들입니다. 고후11:23~27에 보면, 구체적인 예들이 나옵니다. “23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와 같은 극한 고난 가운데서라도 위로의 하나님만 의지하니까 결국 승리했다는 간증입니다. 

바울은 그 위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증거합니다. 4절~5절.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flow)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overflows)” 한 마디로, ‘환난보다 더 큰 위로’입니다. 우리 삶 속에 고난이 넘치는데(flow), 하나님의 위로는 더욱 더 넘친다(overflow)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위로가 이렇게 크고도 놀라운 것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도 능력이지만, 예수님을 통한 체휼하심 때문입니다. 

히2:18 “그(=예수 그리스도)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인생고를 체험해 보셨습니다. 낮고 천하게 태어나셨고, 온갖 고초를 다 당해보셨습니다. 마지막 잔인한 십자가 사형 틀에 매달려 대속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애환을 속속들이 잘 아시고 동정하십니다. 주님의 능력과 체휼하는 사랑 때문에 우리는 큰 위로를 받고 그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몇 달 전 라디오에서 「새롭게 하소서」프로에서 구세군사관학교 황선엽 교장님(신학대학 총장에 해당)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 분이 평소 열심히 사역을 하셨는데, 갑자기 병에 걸렸습니다. 급성 백혈병이었는데, 2~3주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됩니다. 청천벽력이었겠죠. 응급실 병상에 누워 있는데 얼마나 황망한지! 그런데 바로 옆 병상이 분명히 비어있는 줄 알았는데, 새까만 사람이 누워 있는 환상이 보였습니다.

잘 보니까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잠시 후에 또 보니까 예수님이 누워계신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환상을 경험하고 마음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 예수님이 내 대신 고통을 당해 주시는구나!’ 그 순간 하나님의 큰 위로가 임했습니다. 유언까지 할 정도로 심각했지만, 그 위로의 힘으로 평안 얻었고, 6개월 동안 고통스런 치료 과정을 거뜬히 이겨내고 결국 완치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의 위로 때문에 앞으로 남은 생에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10절.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위로하시고 건져주신 하나님이 미래에도 반드시 건져주실 것을 확신하며 축원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딤후4:18에도 나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위로가 극대화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큰 위로가 있지만, 세상의 환난도 계속 우리에게 엄습해 오죠. 그 싸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세상의 환난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완전한 위로만이 있게 됩니다. 계21:3~4 “3 ...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천국은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모든 눈물이 씻어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많은 세상에 살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큰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영원한 천국의 완전한 위로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② 위로하는 자가 되라 :

그런데 우리는 이제 위로를 받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더 나아가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절.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목적이 있다는 겁니다. 단지 우리만 위로받는 것으로 끝내시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로로써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임을 부여하십니다.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성경 말씀을 요약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위로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로하신다.”

이와 같은 위로의 역사는 마치 릴레이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위로받은 자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또 위로받은 자가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 이런 사이클이 계속 이어지게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하나님의 큰 위로로 가득하게 하는 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재미교포 강영우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중학생 때 중도 실명한 분으로 장애인의 차별이 심하던 시절 연세대를 졸업하고, 그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갑니다.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교수 생활을 합니다. 최근 부시 행정부에서 장애인국가인권위원회 차관보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분이 오래 전 한국을 방문했다가 TV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자살하려던 세 식구가 그 방송을 보고 하나님 믿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일이 있습니다. 

사연인즉슨 이랬습니다. 대학 교수였던 남편과 사별한 부인이 가정교사를 하며 가정 살림을 꾸려나갔습니다. 시어머니 모시고 외딸을 양육하며 힘겹게 살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외딸은 열병으로 정신 이상자가 됐고, 시어머니는 골반암으로 몸져눕게 됐습니다. 살 소망이 모두 끊어진 겁니다. 그래서 밤 12시에 연탄불을 피우고 자다가 죽을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시각장애인이 고난 가운데 성공한 스토리를 소개한다고 예고 방송을 본 겁니다. 죽을 때는 죽더라도 저 방송이나 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방송을 들었는데, 특별히 어려서 맹학교 다니던 시절 이야기가 그 부인의 마음을 때렸습니다. 

맹학교 시절 기숙사에 있는데, 방학 때는 방을 비워야 합니다. 천애 고아였던 그에게는 정말 딱한 일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평택의 친구 집으로 물어물어 갑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잘못 내렸어요. 앞도 못 보는데다 밤늦게 인적이 드문 벌판에서 그 집을 찾으려니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배를 곯으며 고생 고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기는 형편이 훨씬 나은 겁니다. 집도 있고, 넉넉지 않지만 먹을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그 후 신학교에 들어가서 복음 사역자로 헌신하게 됐다는 사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해도 결코 손해 보는 게 아닙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로 승리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게 됩니다. 상처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큰 위로로 본인도 치유되고 회복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줍니다. 말하자면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인 셈입니다. 이로써 온 세상이 하나님의 위로로 가득 채워지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환난 많은 이 세상에 살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일시적인 위로나 받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좌절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오직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큰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무쪼록 위로의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큰 위로 받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환난 많은 세상에서 휘청거리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의 하나님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위로로 가득 채우는 귀한 일에 함께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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