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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게 하라! (렘 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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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게 하라! (렘 33:1-3)


미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 가운데 고든 맥도날드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도덕적인 실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동안의 고통스러운 참회의 시간이 지나간 후에 다시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회복되면서 책 한 권을 썼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당신의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 라는 책입니다.  한국어로는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책 서문에 보면 자기가 경험한 회복의 은총을 어린 시절의 어떤 사건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램프를 떨어뜨린 적이 있었는데 바닥에 부딪힐 때 세라믹으로 된 몸체 한 쪽에 그만 금이 가고 말았다.  그 때 방안에 혼자 있었기에 나는 램프를 다시 식탁에 올려놓고 금 간 데가 보이지 않게 슬쩍 돌려놓았다.  그것은 며칠동안 그대로 놓여 있었고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야말로 부모님이 깨진걸 발견하시고 불같이 화를 내시겠구나" 하며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그 분들이 램프에 가까이 가실 적마다 나는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깨진 곳을 발견하셨을 때에 그 분들이 보이실 반응을 나는 눈앞에 그려보았는데 대결의 순간이 지연될 수록 그 그림은 점점 지독해져 갔다.

그 날이 왔다.  어머니께서는 램프에 먼지를 털다가 금이 간 것을 발견하셨다.  "네가 그랬니?"  나는 "네" 하고 겨우 대답하고는 마음을 단단히 잡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정직하게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그것을 부엌으로 가져가셔서는 갈라진 부분을 접착제로 붙이실 뿐이었다.  램프는 다시 단단히 붙었고 몇 시간이 지나 마르자 다시 테이블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금 간 자국은 항상 보였으나 분명 다시 회복된 것이다.

무너진 세계는 언제나 금 간 자국을 가지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어머니가 램프에 사용하셨던 접착제 같은 것이어서 다시 붙은 부분은 원래 부분보다 더 튼튼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이 아무리 절망 가운데 무너졌다고 할지라도 나에게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신다면, 내 인생에는 다시금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면 무너진 내 꿈의 세계가 전보다 더 확실하고 튼튼한 모습으로 회복되어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다시 회복되어지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찬란한 내일의 환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꿈이 있는 사람은 행동이 달라집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이 자기 얼굴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지금 내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 시간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그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영혼마다, 하나님께 나아와 그의 자녀됨을 고백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뜨겁고 놀라운 은혜가 회복되어지는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역사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믿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꿈이 무너진 자는 꿈이 회복될 것입니다.  좌절의 늪에서 방황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감과 같은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된다면 우리는 찬란한 소망의 날개를 펼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겁니다.  무너진 꿈을 회복하고자 이 교회에 오신 겁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회복되기를 소망하면서 이곳에 오신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앞뒤를 돌아보시면서 "참 잘 오셨습니다"라고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함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회복의 은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을 다같이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에서 크고 은밀한 일은 회복의 약속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그 당시에 유대 나라가 몰락해 가는 운명을 바라보면서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뜻밖에도 하나님이 그의 민족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거의 죽은 줄 알았던 자기 민족이 다시 부활하는 찬란한 회복의 비전을 그는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위기 앞에서 두 가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하나는 비관적인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은 위기 앞에서 "안 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절망해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위기는 곧 기회라는 명제를 생각하면서 다시 일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어떤 반응을 선택해야 합니까?  우리는 "안 된다"고 하는 비관적인 생각보다는 그래도 '된다', '할 수 있다'고 하는 낙관적인 반응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서 낙관적인 반응은 단순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성경적인 반응을 말합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사건들에는 항상 동전의 양면과 같이 긍정과 부정이 존재합니다.  비관적인 반응과 낙관적인 반응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물론 우리가 비관적인 반응에서 나오는 경고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비관적인 반응이 오히려 우리에게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반응은 필요하지만 비관주의에 빠지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비관주의에 빠져버리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희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비관주의가 강하게 되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없습니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낙관적인 기대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어지는 기대를 가지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면 우리는 닫혀진 마음의 문이 열려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면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약속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비전이 회복되는 순서를 가리켜 주셨습니다.  또 비전이 회복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전 회복은 어떠한 순서로 이루어질 것입니까?  그리고 이 비전이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이 회복되어지는 순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그 순서를 세 가지의 단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영적 회복의 단계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회복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영적 회복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의 침공을 받으면서 민족이 몰락할 운명 앞에 놓여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성경은 그것이 죄 때문이었다 라고 말합니다.  죄가 민족을 무너지게 만든 것입니다.  죄가 민족을 흔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민족이 다시금 회복될 수가 있겠습니까?  죄가 민족을 무너뜨리게 만든 것이라면 당연히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회개라고 말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바로 그 용서가 하나님이 은혜가 그들의 민족에게 회복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약속하시면서 첫 번째로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  7절과 8절입니다.  예레미아 33장 7절과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들의 지금까지의 모든 죄에서 정결케 하고 용서해 주시겠다.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회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민족이 정말로 회복의 은혜를 누리려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나 개인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 소원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내 삶의 발걸음이 비틀거리고 방황하고 있었다면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냉정하게 우리의 지나간 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오와 잘못과 죄를 진지하게 대면하고 그것을 주 앞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죄를 포기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용서를 믿고 일어서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회복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먼저 영적인 회복을 강조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 회복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는 두 번째 단계는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면서 첫째는 영적 회복을 말씀하셨고, 두 번째로는 자존감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자존감입니다.  건강한 자존감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기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미래를 향해서 부딪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없습니다.  "뭐 나 같은 사람이 별 볼일 있겠어?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지…."  그렇게 자기를 포기한 사람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건강한 자기에 대한 확신, 내 인생의 의미와 소명에 대한 확신, 이런 것들이 만들어 가는 자존감이 없이 우리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우리는 선민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  이 선민의 자존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존감이 무너져 갑니다.  바벨론에서 짓밟힘을 당하면서 이런 모든 자존감이 상처받고 무너져 간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스라엘 민족의 자랑이었던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있어서 자존심의 상징이었습니다.  평화의 도성, 하나님의 도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그들의 자부심이었고 자존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아주 초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황폐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무너져간 것입니다.  더 이상 그들은 자랑할 거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존심이 짓밟힘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님은 황폐화되어 가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그 성이 다시 한 번 옛날의 영광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회복을 약속합니다.  그것이 9절의 말씀입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이 성읍이, 예루살렘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또 한 번 기쁨의 이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찬송의 도시, 영광의 도시로 다시 한 번 회복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존심의 회복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람에게서 자존심이 회복되지 않으면 이웃과의 관계도 건강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열등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존감의 회복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세계의 열방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민족의 자존감의 회복을 여기서 약속한 것입니다.  정체감의 회복인 것입니다.

영적인 회복에 이어서 하나님은 자존감의 회복을 약속합니다.  너희들은 다시 한 번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약속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이 힘을 얻고 당당히 일어날 수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먼저 영적 회복이 이루어지고, 다음으로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 인생의 남은 날을 살아갈 수 있는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또 한 번 나를 쓰실 수가 있다.  우리가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질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달려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세 번째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물질적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저는 이 순서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적 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자존감의 회복을 말씀하시고, 마지막으로 물질적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9절 후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여기에 보면 모든 복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모든 복들, 이것은 주로 물질적 축복을 말합니다.  물질적인 축복과 번영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성 안에 다시 한 번 물질적 번영의 때가 회복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순서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순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영적 회복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다른 어떠한 회복도 기대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인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풍성한 물질의 복을 받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삼서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여기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신앙이 바로 되어야 범사가 잘되는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영적 회복, 이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세 번째는 물질적인 회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순서가 왜 중요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제대로 관계가 맺어지고 그 다음에 자존감이 회복되면 이웃들을 향해서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열등감이 많으면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를 못합니다.  상처가 많으면 이웃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를 못합니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은 이웃들 앞에서 억지로 튀는 행동을 하고 남을 속이게 됩니다.  없으면서도 교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을 깔본다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속에는 열등감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이웃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한 자존감을 갖게 되면 이웃들과의 관계가 좋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웃들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고,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순서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산상수훈의 정신과도 그대로 일치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아라,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바로 이 말씀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너희는 이런 것을 먼저 걱정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하고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제대로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너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 먹을 것과 입을 것, 물질적인 것의 축복이 다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여 주시리라.  그러니까 "하나님, 나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주셔서 잘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먼저 기도하시면 안됩니다.

지금 세계적인 경제 위기 앞에서 우리들의 최대 관심은 경제 회복입니다.  언제 경제가 회복될 것인가?  그러나 경제 회복 이전에 우리가 먼저 가져야 할 관심은 영적 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그 다음에 자존감이 회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준비가 제대로 돼 있으면, 네가 하나님과 이웃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도록 내가 이 민족에게 축복하마.  그 때 우리 민족 가운데 물질적 번영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순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면, 그리고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순수하고 거룩한 열망을 갖는다면 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회복의 역사를 허락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 꿈이 성취하도록 우리를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분명한 신앙적 자세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예레미야의 입술을 통해서 축복하셨던 그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축복이 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저의 짧지 않은 목회 생활을 통해서 깨달은 분명한 진리는 교회가 축복을 받으면 교인들이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시련을 당하고 시험을 받으면 교인들이 똑같이 시련을 당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교회 지체가 된 모든 성도들의 개개인 가정과 그들의 생업과 직장 가운데 동일한 하나님의 축복이 경험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축복하시는 회복의 순서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우리 교회에, 내 가정과 직장과 사업에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와 가정과 일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이 꿈을 주셨다면 이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또한 도와주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여러분과 제가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을 정말 믿을 수 있습니까?

본문에 보면 예레미아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습니까?  예레미아 33장 2절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이것이 예레미아가 경험한 하나님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일을 시작만 하시고 그냥 그대로 방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일을 만들어서 마침내 그것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그것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원색적인 우리말로 바꾸어 하면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끝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끝내 주시는 하나님.

일을 시작하시면 반드시 그것을 완성하시는 하나님, 그렇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신 하나님, 약속하셨으면 그것을 반드시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또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이 도우실 줄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 이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된 은혜가 회복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야곱에게도 약속하시고, 다윗과도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예레미아에게도 약속을 합니다.  "내가 너희 민족에 대해서도 내가 약속하겠다"

본문 10절과 11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시 이 땅에 아름다운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축제 소리가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와 저와 여러분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하시는 일들마다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역사가 크고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 앞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붙잡으십시오.  오늘 선포된 이 말씀이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붙들고 나아가면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바로 나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고 한 걸음 더 나가서 하나님의 약속을 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구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서 성취하시는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도가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방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사실은 축복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기도할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을 향한 놀라운 계획과 위대한 꿈을 약속하신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할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그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법은 두 가지 유형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역경을 만났을 때, 시련을 만났을 때 상처를 받았을 때, 삶이 어려워 질 때,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 종류는, 그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 종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계속 원망하고 좌절해 버리고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 그래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 두 가지 종류의 사람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살아가노라면 어려워질 때도 있습니다.  시련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럴 때에 좌절하고 원망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그럴 때에 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소개했던 고든 맥도날드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영국의 어떤 목장지대의 시골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청년 두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혔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아서 4년 감옥 생활을 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오면서 또 하나의 형벌을 주었는데 그것은 도둑질했던 청년의 이마에다가 법원에서 S자로 문신을 새겼습니다.  S자, 그것은 Stealing의 약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도둑놈이었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조심하도록, 다시는 도둑질을 못하도록 S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나는 이런 낙인을 받고 여기서 살 수가 없다.  그는 그 사회를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하면서 그 마을에서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그 낙인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벌이 마땅하다.  나는 여기서 다시 재기하겠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인생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착하게 살았습니다.  또 이웃들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 사람의 과거를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신은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자기도 스스로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서 어느 날 이 사람이 길에 지나가는데 어린 소년 두 사람이 지나가는 이 사람을 보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저기 우리가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지나가신다.  그런데 너, 저 할아버지 이마에 있는 S자가 뭘 의미하고 있는 줄 아니?"  이 때 옆에 있던 꼬마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 S자가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미루어봐서 저 'S' 자는 Saint, 아마도 성자의 첫 번째 글자 일거야"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얼마나 완벽한 회복입니까?  이것은 얼마나 완벽한 재기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회복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넘쳐나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지나간 날들의 시련과 역경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은총의 축복을 경험하며, 놀라운 축복을 감당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에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게서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 믿습니다.  그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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