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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겸손히 배우라 (빌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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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히 배우라 (빌 2:5-11)

동영상 -『랜스 암스트롱』, 

여러분, 어떻게 보셨습니까? 우리의 인생 중에 고통과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고통과 고난 앞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캠페인 3주차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다시 질문을 해 봅니다.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 남았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의 나의 모습에서 달라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열정적으로 사십시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습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오늘 성실하게 살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가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사랑하십시다. 우리가 후회하지 않을 아름다운 인생은 얼마나 사랑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통해 복음이 빨리 퍼진 이유는 당시 성도들이 함께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고 서로를 겸손히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간, ‘온전히 사랑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셨습니까?  여러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자리에 누워서 사람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때가 오기 전에, 알아 볼 수 있을 때, 더 많은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3번째 원리, 『겸손히 배우라』는 주제로 함께 나눕니다. 여러분, 우리의 남은 생애의 삶의 방식은 예수님처럼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겸손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배우는 데는 모본이 있어야 합니다. 모본이 좋으면 학습 촉진 효과가 생깁니다. 그래서 교육의 중요한 원리는 모방의 원리입니다. 학생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교육 효과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요, 모델이 되어 주십니다. 그 예수님이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나이가 들면서 성장이 없습니까? 배워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성장합니다. - 매주 목요일이면 우리 교회 어르신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는 이것 저것 배우는 시간을 갖습니다. 열심히 배우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고, 배우는 사람의 인격은 겸손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겸손의 극치를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는 오늘 본문의 예수님을 모본으로 삼아 그분에게서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우리는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할 겸손은 무엇일까요? 

1. 겸손은 동등됨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여러분, 겸손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말에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발음이 같은데 받침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다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낫다’와 ‘낮다’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받침이 ‘ㅅ\'이냐 ’ㅈ\'이냐로 발음은 같으나 뜻이 다릅니다. “당신이 나보다 낫습니다” 할 때, 발음으로 그 뜻이 구별이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은 교묘합니다. ‘내가 당신을 존중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교만합니다. ‘나보다 낫습니다’ 하면서 속으로는 나보다 ‘낮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겸손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의 문제는 자기들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이 말은 ‘내가 조금만 괜찮아지면, 조금만 벌면, 조금만 성공하면,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난 살 수 있다,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겸손해 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연약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약한 나를’, '죄인인 나를‘ 인정해야 합니다.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시고, 부하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높일 때 주어지는 영적 상태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높여 드릴 때 내게 주어지는 영적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고, 능력이시고,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시라고 고백할 때 인간은 겸손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시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하나님을 높일 때 우리는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겸손은 그래서 예배를 통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살아야 됩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진정한 예배가 드려지지 않으면 우리는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주어지는 영적 능력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권위 앞에 내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동등됨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2. 겸손은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함을 말합니다.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즉 예수님은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삶속에, 인간으로 함께 오셨습니다. 군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이 있는 존재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겸손인 것입니다. 

겸손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겸손의 인격을 가진 사람은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을 만나면 친밀감이 있습니다. 따뜻한 인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따뜻함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불을 왜 덮습니까? 외투를 왜 입습니까? 따뜻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있는데 실력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쌀쌀맞고, 찬바람이 쌩쌩 불어요. 그것이 무슨 탁월함이겠습니까? 의사 선생님들에게는 탁월한 의술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탁월한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 여러분이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분이 나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고, 내 옆에 있는 분이 나 때문에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 때문에 두려워 벌벌 떤다면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아버지가 계시면 기쁘고 편안하면 행복한 가정입니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행복하고, 상대방이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겸손이란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함을 말합니다. 


3. 겸손은 나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여러분, 바다는 모든 시내와 강의 물과 잡동사니들을 다 받아들입니다. 바다는 온갖 흙탕물과 더러운 것을 다 받아들여도 쉽게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용량이 워낙 커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바다가 가장 낮기 때문입니다. 가장 낮기 때문에 냇물이나 강물이 다 바다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도자는 높은 자리에서 호령하기 보다 낮은 자리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마20:26~27) “...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 예수님이 이렇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보고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모세는 처음 40년 동안은 왕궁에서 왕자로 살았습니다. 40년 동안 그는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가장 낮은 곳, 광야에서 40년 동안 썩히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닥에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바닥을 경험하는 것, 낮은 자리를 경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는 사병으로 군생활을 했습니다. 사실 신학대학 1학년 때 군종장교 시험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습니다. 왜요? 시험을 잘 봤으니까... 신학대학 입학하고 두 달 만에 치르는 시험이고, 제가 공부를 잘 한편에 속했기 때문에, 그리고 정말 군종장교 시험에 떨어질 만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군종장교 시험 날, 휴교령이 떨어져서 시험을 안 보는 줄 알고, 1교시가 영어 시험이었는데, 시험 끝나기 10분 전에 와서 시험 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합격했고 나는 떨어졌습니다. 그 합격한 친구가 훗날 내가 군 생활하면서 같은 부대에서 군목으로 모신 상관이 되었습니다. 나는 비리가 있는 줄로 오해했는데, 3학년 때 결원이 생긴 인원으로 재시험 치르려고 할 때, 내가 불합격된 원인을 알았습니다. 신원조회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당시까지 저의 본적이 이북으로 되어 있어서 장교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서 사병으로 늦게 입대하게 되어 평균 저보다 6살이나 아래인 친구들이 군대 동기들이 되었는데... 군 생활을 하면서 사병으로 복무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물론 장교로 복무하는 것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지만 저는 사병으로 복무하며, 낮은 자리에 서는 것을 배운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기 전에는 저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을 하거나 웃사람 노룻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닥을 경험해 보는 것, 낮은 자리에 있어 보는 것, 이것은 중요한 경험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면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스스로를 높이면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4. 겸손은 고난 속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8절)

 “..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죽기까지 복종했다’는 것은 고난 속에서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고난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을 배우는 중요한 수단이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를 겸손하고 성숙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때로는 정으로 우리의 모난 부분을 치시고 때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요 손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만났을 때 그 고난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 사탄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고난 앞에서 망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이 고난 앞에서 불평과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차 망가지는 것이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이 오면 너무 힘 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나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고난을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약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 땅에서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 위대한 사람이 된 경우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윗이 다윗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은 다윗에게 고난이 없었으면 나올 수 없었던 고백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요셉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의 궁전으로 몰아가시는 코스였습니다.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보석인 진주가 생기는 과정은 조개에게는 고통의 시간들입니다. 이 물질이 들어와서 부드러운 속살에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속 감싸서 결국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냅니다. 

여러분, MTB 산악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좋은 길로 안 갑니다. 울퉁불퉁한 산 길로 갑니다. 험한 길을 자전거로 가면서 뭐라고 합니까? “참 코스가 너무나 좋다”고 합니다. 

고난과 고통은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성숙한 인격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자기도 아프면서 다른 병자들을 위해 치유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 육체의 가시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가시,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간다면 그 가시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하게 순종하시니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9~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겸손하게 고난을 수용하고 믿음가운데 나아갔더니 하나님께서 높여주셨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높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존재케 하는 이유는, 나를 통해, 내 삶의 변화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 내 인격이 변한 삶을 통해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에 뜻에 순종하고 겸손하게 나아가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높이시는 것입니다. 

저는 훌륭한 신앙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고, 세상에서 존경받는 분이 스스로 낮아질 줄 알고, 스스로 겸손하셔서 더욱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인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는 인생, 예수님과 같이 겸손하게 나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높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겸손함을 배워서 하나님이 높이시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 남았다는 생각으로 예수님의 겸손함을 배워나가는 그 삶 속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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