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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1) (사 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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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1) (사 42:1-9)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에 대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 구원자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종, 여호와의 종이란 표현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은 포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총칭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범죄한 유다를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5장 9절에 『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들과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영감 받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Ⅰ. 그는 하나님이 붙드시는 종입니다. 

본문 42장 1절에 『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 『 붙들다 』는 말은 타계에 힘이 붙잡는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 성취되도록 하기 위해 견고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성취하시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는 종입니다. 

그렇다고 피조물을 붙드시는 구원에 따르는 윤리적 붙드심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을 대표하는 성부와 택자를 대표하는 성자와 맺은 약속성취를 위해 언약적 붙드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기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눅 22:42).
이때 누가복음 22장 43절에 『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고 했습니다. 

1) 내 마음에 기뻐하는 종이라고 했습니다(42: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만족입니다. 

2) 나의 택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42:1).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당사자이십니다. 이 언약을 우리는 구속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했습니다(엡 1:4-14).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마침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했습니다. 
이제 그는 구원사역에 적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롬 3:24-25).

3)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42:1).
여기 "신을 주다"는 말은 신을 "두다", "놓다"라는 뜻입니다. 신을 준다는 말은 "성령을 준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과 능력과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입니다. 

4) 그는 이방에 공의를 베푼다고 했습니다(42:1).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는 이방에 공의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인들에게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화의 담을 헐고 누구든지 복음을 받고 믿으면 구원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기 『 공의 』(미쉬파트, )는 "정의", "심판"(justice), "진리"(truth)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구원과 심판이 이미 선언된 것을 말합니다(요 12:48). 

(1) 그는 허영주의자가 아니라 겸손했습니다. 
본문 42장 2절에 『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2) 그는 약한 자와 가난한 자들의 친구였습니다. 
본문 42장 3절에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3) 그는 하나님의 택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십니다. 
본문 42장 4절에 『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Ⅱ. 창조주 하나님의 종입니다. 

본문 42장 5절에 『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 창조 』에 해당하는 단어가 세 종류 있습니다. 
"바라"( )는 무에서 창조한 신적 창조를 가리킵니다(창 1:1; 사 43:1). 
"아사"( ), 이것은 이미 창조된 물질로 더 나은 물체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창 1:16; 25-26). 
"야찰"( )은 아사와 대동소이(大同小異) 하나 기존 사물을 새롭게, 완벽하게 조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창 2:7, 9).

여기 하나님이 만물창조의 능력을 기록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위대하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창조"에 대한 "바라"( )가 이사야 40장에서부터 66장에 이르기까지 약 200번이나 언급된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십니다(사 45:7-9). 
하나님은 언약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십니다(사 43:1).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분이십니다(사 65:17). 
인류 구원의 주권자이십니다(사 49:5-6). 

이외에도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는 새 창조의 근원이십니다. 
시편 51편 10절에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신다 』는 말은 "생명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1)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본문 42장 6절에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택한 백성의 구주로 세우신 일이 하나님의 의에서 나왔고 마침내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3장 26절에 『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성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이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롬 1:16). 
복음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의가 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의는 없지만 한없이 풍성한 의 가운데서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했다고 했습니다.
본문 42장 6절에 『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단독사역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체의 원리에서 행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이십니다. 그 능력과 위엄에서도 동일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잡지도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20절에 『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장소에서 행해진 것입니다.

3)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본문 42장 6절에 『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구원 계약은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과 유대인과 맺은 언약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국한된 계약은 아닙니다.
여기 『 백성 』이라는 말은 유대 백성을 말합니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유대인에게 주어졌던 옛 계약의 성취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계약을 성립시켰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에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5절에 『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계약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났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2절에 『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운동이 이방으로 전개되어 나아감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나타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이방의 빛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32절에 『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라고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유대인의 충만한 수)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롬 11:25-26). 이 숫자가 구원 얻는 총 수 십사만 사천입니다(계 7:4). 

4) 영적으로 소경된 자의 눈을 밝힌다고 했습니다.
본문 42장 7절에 『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라고 했습니다. 

5) 죄 중에 갇힌 자를 영적으로 해방시킨다고 했습니다.
본문 42장 7절에 『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에 『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라고 했습니다. 

Ⅲ. 하나님의 영광의 종입니다.

본문 42장 8절에 『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스스로 있는 자, 초월자를 말합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시며 언약의 주체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 없으시며 무시무종(無始無終)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I am who I am).
하나님은 절대 완전하시고 독립적이시며 우주에 모든 존재의 기초가 되시며 변치 않으신 분이십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구약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인 법궤입니다. 그 법궤는 곧 신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요 1:14).
예수의 영광은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것은 곧 성부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누가복음 24장 26절에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절정은 택자구원 완성입니다.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약속을 성취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절대로 우상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48장 11절에 『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찬송 또한 반드시 받고야 만다는 하나님 자신의 의지 표명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2장 20절에 『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0절에 『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입니다(고전 10:31; 롬 14:7-8). 하나님을 존귀히 높이는 것입니다(빌 1:20).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갈 6:14).
신행일치의 삶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 편에서 사고해야 합니다. 곧 계시의존사색을 삶의 궤도로 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곧 성경 중심의 삶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곧 하나님이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중심의 삶입니다. 이 모두는 등식관계에 있습니다.
교회 중심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의 삶입니다. 이 지상 교회운동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입니다(골 1:24).
우리는 그리스도와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롬 8: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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