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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귀의 시험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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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시험 (마 4:1-11)


우리가 성경에서 확실하게 배운 지식이 있는데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마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힘으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해서 이 마귀의 존재가 가능했는가? 하나님이 마귀를 만들어놓으신 것인가? 그 해답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 외에 도저히 그 이상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에스겔서 28장을 비롯해서 여러 군데 하나님이 천사를 창조하셨는데 그 천사가 어찌나 아름답고 완전한지 하나님 다음으로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이 천사장이 그 아름다움의 교만으로 마침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동기로 마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똑같은 방법으로 모든 인간을 자기와 같이 지금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일 처음 죄를 범할 때 마귀는 하와에게 유혹했습니다. “네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살아야 하느냐? 

네가 하나님이 되면 더 좋다. 만약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게 되면 눈이 밝아 너도 하나님같이 될 테니 해봐라.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을 두려워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했더니 하나님의 죄 아래로 떨어지는 심판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인간의 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때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이 되고 싶은가?’ 이런 생각을 하실 터인데 창세기 에덴동산뿐만이 아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의 교주들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자기를 예수화 하고 메시야화 했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교주가 다 하나님이 되었지 않습니까? 지금 이렇게 문명이 발달한 21세기 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에도 사람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유혹은 끊임없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이단의 천국입니다.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는 현장에는 악령도 그만큼 역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교회가 활발하니까 이단도 가장 활발합니다. 

한국의 이단치고 성공 안하는 이단이 있습니까? 이단 간판을 걸었다 하면 모든 사람이 다 모여듭니다. 한국의 이단들은 세계적 규모입니다. 이런 일이 항상 있다고 예수님 시대부터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마귀의 등장은 창세기 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끊임없이 나오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역사를 내 영 가운데 망가뜨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이 땅에 하시고 싶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마귀는 그것을 날마다 방해하는 매우 힘이 강한 영적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피조물이 어떻게 조물주를 거역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우리가 또 자연히 상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마 희랍 신화 피그말리온(Pygmalion)과 갈라티아(Galatea)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피그말리온’이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대단한 기술을 가진 조각가입니다. 그는 남자이면서 여자에게 흥미가 없었습니다. 여자를 사랑하려고 쳐다보면 다 보기 싫고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마음에 꼭 드는 아름다운 여인을 자기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조각이 완성되었을 때 그것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는 자신의 조각품을 사랑하게 됩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날마다 꽃을 가져와서 갖다 바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만든 조각품을 끌어안고 외칩니다. “너는 제발 살아라. 나와 똑같은 존재가 되어라. 그래서 나와 함께 살자. 네가 원하는 것은 내가 뭐든지 다 주겠다. 

나와 똑같은 존재가 되어서 나와 사랑을 나누자. 제발 살아다오.” 마침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 조각에 생기를 집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함으로 ‘갈라티아’라는 이름으로 ‘피그말리온’과 영원히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최초의 하나님과 인간을 묘사한 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진흙으로 조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술로 해놓았기 때문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이 못 견디십니다. “내가 만든 이것이 꼭 나를 닮았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너무 좋으신 나머지 “너는 살아야 돼. 그리고 나와 사랑을 나눠야 돼.”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 너는 나와 영원히 사랑을 나눠야 돼. 알았지?” 바로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동물들은 창조의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똑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너는 나 같아야 돼. 나와 똑같아. 뭐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다 줄게. 내가 가진 것을 너는 다 가져.” 그래서 하나님을 닮아서 오늘날과 같은 찬란한 문명을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동물이 사실 눈치는 있고 마음은 있어도 양심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가장 선하고 고귀한 순결의 본심을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너도 나 같아야 돼.” 하고 주셨지 않습니까? 동물은 영원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이신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닮아서 그런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동물들은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는 능력이 자유 의지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인간은 이런 능력자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삽니다. 여러분! 여기 음악하시는 분들은 자기의 작품을 하나 만들어놓고 자기가 미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좋아할 만큼 그런 것 하나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미술가는 자기 작품 하나 만들어놓고 자기 작품에 취하기를 바랍니다. 저 같은 사람은 내가 설교한 설교 본문을 보고 내가 너무나도 감동해서 ‘어쩌면 내가 하나님과도 같이 설교할 수 있을까?’ 거기에 도달하기 바랍니다. 

나의 작품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고 너무 좋아서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내가 만든 이것을 사랑할 수 있는 경지에 빠질 수 있는 이것이 하나님의 작품인데 그 최고의 작품이 인간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나를 똑같이 닮은 너! 여러분! 저는 지금 성경 다음으로 과학 서적을 많이 읽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 과학이 가는 길이 뭔지 아십니까? 마지막에는 인간의 기술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거의 왔습니다. 인간과 똑같이 사고를 할 수 있고 자기 능력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을 똑같이 닮은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학이 지금 하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할 대상으로 인간을 지으셨고 자신이 만들어놓으신 인간을 볼 때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좋아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한대의 능력을 그 인간에게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것이 싫습니다. “인간도 나같이 되어야 돼. 나도 그랬어. 너희들도 나같이 되어야 해.”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자기편을 만드는 영적 세력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고민이요 갈등입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는 성경에 나타난 많은 마귀의 등장 가운데 가장 관심이 큰 예수님에게 나타났던 마귀의 성격을 알아보기로 합시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광야로 기도하러 가실 때 성령에 이끌리어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에 기초한다면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교회 나오신 것은 성령께서 영 가운데 역사했기 때문에 나오신 것입니다. 만약 내가 기도하러 기도원에 간다고 합시다. 갔다 오는 것만 해도 큰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나를 기도원으로 인도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드린다든지 예배를 드린다든지 하는 이 모든 하나님을 위한 영적인 행위는 성령의 이끌리어 성령이 인도하셨기 때문에 되는 일입니다. 광야로 가셔서 40일 밤낮으로 금식하시면서 기도를 하셨는데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40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다면 얼마나 큰 영적 능력이 그 자리에 생겨나야 합니까? 예수님 주변에는 마귀 같은 존재는 근처에 무서워서 오지도 못해야 되는데 기도하자마자 제일 먼저 예수님 곁에 나타난 존재가 마귀입니다. 마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는 현장에도 마귀의 역사는 바로 곁에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현실적으로 날마다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면서, 또 알면서 거기에 대처해야 합니다. 시작은 성령에 이끌려서 했지만 마귀의 말에 나중에 순종하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바울도 말했지 않습니까? “네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신으로 끝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마귀 자체는 아니지만 때로는 마귀의 종노릇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존재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그때부터 그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어서 그의 명령에 철저한 순종을 하는 자로 나타나 버렸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저주스러운 말씀을 하신 기록이 마태복음 16장에 나와 있는데 제자 가운데 가장 신임하던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1대 1로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사탄인가? 사람이 때로 사탄의 종노릇을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사탄은 아니지만 지금 잠시 동안 사탄이 주는 말을 했기 때문에 갈 길을 방해하고자 하는 사탄의 무서운 방해를 예수님이 저주하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어느 길을 가려고 선언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겠다고 최초로 선언을 하셨더니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귀가 베드로의 입을 빌려서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은 결코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셨을 때 성경에는 “내 뒤로”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도 지금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마음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신임하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그 사탄의 말을 들을 것 같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너는 내 뒤로 보이지 않게 물러가라.” 예수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데는 적어도 베드로를 동원해야 된다고 마귀는 판단한 것입니다. 마귀는 머리가 아주 비상합니다. 아는 것도 많습니다. 믿음도 있습니다. 사람의 육안의 시력으로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거리에 예수님이 지나가는데 아무도 몰라봅니다. 

그런데 마귀는 멀리서도 예수이신 줄 알아봅니다. 영적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거 예수야!” 아무리 봐도 거리상 도저히 얼굴을 구별할 수 없는데 예수가 지나간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가까이 왔을 때 마귀가 뭐라고 합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그 신앙 고백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사실 교회 오랫동안 10년이나 다니면서도 아직도 세례를 못 받는 사람은 그 고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고백하지 않습니까? 예수의 영적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고백합니다. 성경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성경을 줄줄이 외웁니다. 능력도 인정합니다. “당신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 왜 그러고 있어?” 

여러분! 인류는 왜 전쟁 역사를 살아왔습니까? 옛날 임금들에게 주어진 제1차적인 책임은 영토 확장이었습니다. 자기가 임금으로 있을 때 국가의 땅을 한 평이라도 넓혀야 위대하다는 평을 받아서 임금님마다 그렇게 전쟁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왜 국토를 넓힙니까? “농사를 지어서 자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어야 임금이지!” 이런 경제 논리 때문에 전쟁을 많이 한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지 똑같습니다. GNP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거 못하면 아무리 실력 있어도 평가를 못 받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슈퍼맨같이 발이 상하지 않게 해봐! 그러면 인기인이 되잖아! 만약 네가 그런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줘 봐. 너는 비틀즈보다도 더 유명해져. 케이팝보다 더 유명해질 거야. 어서 해봐! 인기 있고 좋잖아! 천하의 권세를 다 차지할 그럴 마음은 없어? 네 마음대로 세상이 다 움직이는데? 가는 데마다 환영받고 온 세상 다 네 것이고 권세와 인기와 경제를 가지고 살면 얼마나 좋겠니? 왜 그 구차스러운 십자가를 지려고 해? 하지 마!” 얼마나 매력이 있는 유혹입니까? 우리 기독교 역사에는 잘못 판단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중세 기독교, 십자군 전쟁…. 이런 것이 다 그런 겁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역사 현장에 나타나서 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그런 부분에 대해서 “그리 마옵소서. 그런 일을 하지 마옵소서.” 이렇게 유혹을 하고, 만약 한다면 망쳐질 방법으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게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배불리 먹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요 그 자체를 종교라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였던 것이 칼 마르크스 논리의 공산주의였습니다. 

예수님이 팔복을 가르치니까 마귀도 팔복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심령이 강퍅한 자는 복이 있나니 나의 가장 믿을만한 일꾼이 될 것이요 원망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영원한 내 친구가 될 것이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내 나라를 차지할 것이요 이간질 잘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툼과 분쟁을 일으킬 것이요 교회 나가기 게을리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내가 부리는 충실한 내 제자가 될 것이며 신자를 괴롭히고 교회를 핍박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침내 그는 내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일에 인색한 자는 복이 있나니 내 나라에서 상이 큼이라 하나님 말씀 듣기 싫어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곧 내 말씀에 충실하게 될 것이라.” 다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의 권세는 어느 정도인가?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그의 권세는 가능하도록 제한적 권세입니다. 욥기서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마귀가 하나님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줄 아십니까? 먹을 것을 많이 주고 순종하는 자식을 주고 존경받고 건강하고 좋은 것을 다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다 빼앗아보십시오.” “그래? 그러면 그 권한을 네게 주겠다.” 그래서 다 빼앗잖아요?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의 생명에는 손대지 말라. 그것은 네 권한이 아니다.” 제한적 권한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아니한 것을 보고” 그러지 않습니까? 시간의 제한, 능력의 제한입니다. 그러면 마귀를 대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이미 그 권세는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항복한 권세입니다. 마귀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고 무덤과 사망 안에 그를 가두어 더 이상의 활동을 금지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됐다! 이제는 예수 활동은 그만이야! 죽었어!”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마귀가 그렇게 마지막 권세를 붙잡고 있는 사망 권세를 깨뜨려 버렸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네 권세가 마지막으로 다 깨졌어.” 무력하게 마귀를 만들어버린 그 십자가의 능력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마귀의 권세는 이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무능해져버립니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마귀는 쫓긴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우리 앞에 누가 서리요” 성경 많이 읽고 찬송 부르고 기도드리면 마귀는 물러가도록 그렇게 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가 약해보이면 마귀가 덤벼듭니다. 여러분! 예배를 빠지지 말고 다니십시오. 공식적인 예배 항상 참석하십시오. 영적인 힘이 나도 모르게 생깁니다. 평생 기도 안하는 사람을 보고 마귀가 물러가겠습니까? 

성경책 평생 한 번도 안 읽는 사람을 보고 마귀가 그 사람 무서워하겠습니까? 평생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칭찬하실 일 하나도 안하는 사람을 마귀가 물러서겠습니까? 마귀가 가지고 있는 믿음만도 못할 때 마귀는 그 사람을 붙잡아 종으로 부린단 말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종이 되어서 역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러면 무엇으로 마귀를 대적할 것인가? 

에베소서 6장 14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오늘 예수님은 세 번의 마귀의 유혹을 무엇으로 물리쳤습니까?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말씀은 영적 무기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마귀는 절대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만 내 속에 영 가운데 가지고 있으면 절대 승리가 약속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의 권세가 아무리 강하여도 이미 항복한 권세이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저는 신학교 입학을 했더니 교무 과장이 “학생들! 이 신학교의 교육방침입니다. 이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늘부터 성경을 50번 읽지 않으면 졸업을 안 시키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가버렸습니다. 큰일 난 겁니다. “어휴! 성경 50번을 졸업할 때까지 어떻게 읽지?” 이렇게 또 말했습니다. “자기가 다 읽은 다음에는 다 읽었다고 사인할 것! 거짓말로 하는 사람은 목사 못된다.” “이거 어떡하나?” 그래서 아무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 성경책에 빨간 줄만 쳐가면서 계속 읽어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 교수에게 지금도 감사합니다. 그때 제가 기억력이 좋았고 컴퓨터가 고장이 안 났을 때 성경 말씀 신학교 다니면서 50번 읽었기 때문에 일평생 나에게는 영적 무장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겁날 것이 없었습니다. 말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평생 내 목회에 도움을 주었고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는 마귀의 권세가 다 물러가느니라.” 방법론에 대해서 완벽하게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오늘 말씀으로 마귀를 쫓은 것과 똑같이 오늘의 말씀이 여러분 주변에 기회를 엿보고 있는 마귀를 영원한 무저갱으로 쫓아버리는 영적인 힘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마귀의 권세는 엄청나게 크지만 그 힘은 이미 십자가 앞에 항복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권위와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검, 말씀의 능력을 가진 자는 마귀의 권세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저희들은 믿기 때문에 오늘도 강하고 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가지고 세상을 이겨가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말씀과 함께 하는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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