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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으로 주를 기쁘시게 할까?(2) (엡 5:8-12, 창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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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주를 기쁘시게 할까?(2) (엡 5:8-12, 창 5:21-24)

우리가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뿐만 아니라 삶의 모습과 질이 달라집니다.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부자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돈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권력 얻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높은 권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언젠가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에는 인생의 참된 행복을 맛보지도 못한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남들 보기엔 참 멋지게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쾌락 뒤에 숨어 있는 인생의 허무를 매일같이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고 계십니까? 우리가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상실했거나 목적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가야할 방향을 잃어버린 채 바다 한 가운데서 표류하고 있는 돗단배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제목의 책에 보면, 인생의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이 이끌린 삶을 살아가는 삶에 주어지는 5가지 유익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로 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우리의 삶에 귀중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상실하면 내 삶에 불어닥친 자그마한 바람이나 풍랑에도 쉽게 흔들리며, 고난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두 번째로 목적을 알면 삶이 단순해집니다. 목적을 알 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에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됩니다.
  
세 번째로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목적이 있고 삶에 초점을 찾은 사람들은 인생을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방향을 향하여 질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됩니다. 목적은 열정을 만들어내고, 그 목적을 향한 열정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목적을 앎으로서 영생을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면 세상적인 것에 연연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잠시 누리다가 금새 사라져버립니다. 그러기에 분명한 목적을 갖고 그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잠시 누리다가 사라져버리는 세상적인 것(일시적인 것)에 연연하며 살지 않습니다.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알기에 영원한 것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고, 영원한 것에 우리의 생명을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지난주 우리는 우리 인생의 최고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창조된 존재들입니다. 그렇게 믿는 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요약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가장 첫 번째 나온 질문이 이것입니다.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무엇이냐?”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창조된 첫 번째 목적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창조된 가장 중요하고 첫째 가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늘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지난주 말씀을 나눈 것처럼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빛의 열매는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빛의 열매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능력으로는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과 늘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일을 이루어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했다면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두 가지 사건을 비교해 보십시다. 하나는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큰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시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6장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있다면 그건 창세기 6장 마지막 절에 나와 있는 “노아가 그와 같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했다는 말은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께 물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거나 하나님을 무시하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면서 노아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방주를 만든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주를 만든 후에 방주 안에 짐승들을 싣는 이야기를 기록한 창세기 7장에서도 “노아가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창세기 7:5, 9, 16)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노아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였고, 하나님 가까이에서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노아 이야기가 끝난 후 창세기 11장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 인간이 번성하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또다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실까 하는 두려움, 번성한 자손들이 흩어져 살아야 할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바벨탑을 쌓기로 했습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하늘꼭대기에 닿게 할 정도로 크고 웅장한 탑을 쌓으려 했습니다. 그 탑이 완성되었다면 인류문명의 역사에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큰 역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놀라운 역사를 거부하셨습니다.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인간은 바벨탑 쌓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것과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자이가 무엇입니까? 둘 다 똑같이 어마어마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힘과 자기들의 기술을 가지고 엄청난 일을 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없이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부하십니다. 바벨탑 쌓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계획한대로 바벨탑 쌓기를 완성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것을 결코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으실 것이고 칭찬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들의 힘과 자기들의 기술로 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어마어마한 방주입니다. 길이가 무려 135m 가까이 됩니다. 폭은 23m, 높이는 약 13m입니다. 오늘날에도 목조로 그런 배를 짓는다는 것은 아주 큰일입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에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20년을 걸쳐 지었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서도 노아가 120년이나 걸쳐서 그런 어마어마한 방주를 지었다는 것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미친 영감쟁이라고 조롱을 받으면서 120년 동안 온통 방주 만드는 일에만 전념했는데도, 그가 만든 방주를 위대한 업적이라고 칭찬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수고한 노아를 수고했다고 칭찬하지도 않습니다. 노아를 칭찬한 것이 있다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에녹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에녹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자세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엄청난 일을 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가 한 일이라곤 단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자녀를 낳았다는 것과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죽음을 통과하지도 않고 그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창세기 5:24절에 나오는 “동행한다”는 말은 ‘함께 걷는다,’ ‘함께 산책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즐겁게 이야기하며 산책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동행하는 두 존재 사이에는 그 어떤 거리감도 없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그 어떤 거리감이나 서먹서먹함 없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격적인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300년 동안이나 그런 깊은 교제를 나누는 거룩한 동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 에녹의 모습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저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11:5)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위대한 일은 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에 그를 죽음도 보지 않고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큰일을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빠의 손을 붙잡고 길을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고 인생길을 걸어가면,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품 안에 있음을 느끼며 사십시다. 평안할 때나 힘들 때나 늘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으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내 손을 꼭 붙잡아 주시고 우리의 삶을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옛날 프랑스에 ‘샤르’라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샤르 황제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시인으로 굉장히 명성이 높은 ‘따소’라고 하는 사람을 불러놓고, “내가 한 가지 고민이 있어서 그러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오?”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시인 ‘따소’는 망설이지도 않고 “그거야 하나님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화가 났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하나님을 물었나?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 보시오.” 이번에도 시인 따소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가장 행복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그리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샤르황제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이제 평생 하나님과 동행해야겠구나. 하나님과 가까이 하며 살아야겠구나.’하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우리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전부가 되신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우리에게 뭔들 걱정이 되겠습니까?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내 손을 꼭 잡고 나와 함께 가시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인생을 살다가 돈 좀 없다고 죽을 상을 하고, 일이 좀 안 풀린다고 원망하고, 그럴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이것은 목동으로 살았던 자신의 삶을 통해 배운 다윗의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양이 목자와 함께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목자 곁에만 있으면 아무리 험한 길을 갈지라도 두렵지 않고, 먹을 것이 없어 보여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다 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험난한 인생살이를 살아가야 한다 하더라도 주님의 손에 이끌림 받아 주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세상 모든 걱정을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으시고, 그 손에 이끌리어 주님과 동행하심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제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가 된 우리가 다시금 옛날로 돌아가서 어둠에 속하여 살 때와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신앙인다워야 합니다. 신앙인이 신앙인답지 못할 때 세상은 우리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게 되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둠에 속해 있는 우리를 빛의 자녀로 불러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둠에 속한 자처럼 살지 말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이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신앙인답게 살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것이 빛의 자녀가 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빛을 비추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참 빛이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결코 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4: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로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아름다운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첫 번째 집사를 선택할 때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가운데서 7명을 택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일할 일꾼들은 반드시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덕스럽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의 일꾼이 될 때에는 하나님과 교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교회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2:4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니까 교회가 날로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여러분, 우리 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법을 답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의 자녀로 부르신 것은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곧 아직도 어둠의 권세 아래 머물러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책망하고 버려야 할 어둠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하루 속히 어둠의 일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빛이요 빛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께 맞추며 사십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를 늘 생각하며 사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는 당신의 기쁨 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와 복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모른 척 외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왜 책임져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는 돈을 버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목적을 두고 산 사람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주일을 지키며 예배드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비록 돈이 그 인생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만도 무려 4,928개였고, 시카고 대학을 비롯해서 24개의 대학을 세웠습니다. 우리나라 서울 소공동에 있는 YMCA건물도 록펠러가 기증한 돈을 세워졌습니다. 

그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오늘날의 시세로 한다면 한 때 세계 최고의 갑부로 꼽혔던 빌 게이츠보다도 3배 정도 많은 재산을 소유했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돈에 목적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산 그에게 하나님께서 그런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는 오래 살려고 몸부림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목적을 둔,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사십시다.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앞날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록펠러처럼 갑부가 되게 하진 않으실지라도 지금 여러분이 기대하고 꿈꾸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값진 인생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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