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이오와 같은 일꾼 (요삼 1:1-8)

첨부 1


가이오와 같은 일꾼 (요삼 1:1-8)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퀴즈대회를 했습니다. 사회자가 사자성어 문제를 냈습니다.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을 뭐라고 할까요’ 학생들이 맞히지를 못했습니다. 사회자는 “네 글자이고 끝이 ‘가’로 끝납니다.” 라고 힌트를 줬습니다. 정답은 ‘고성방가’ 였습니다. 한 학생이 ‘고음불가’ 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학생은 ‘이럴수가’ 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학생은 ‘미친건가’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한 학생의 답을 듣고 모든 사회자와 모든 방청객들은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학생이 말한 답은 ‘아빠인가’ 였습니다.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좋은 멘토를 만나 성숙한 삶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귀중한 복입니다. 가정에서는 좋은 부모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자녀는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숙한 선배를 만나 그를 통해 사회를 배우는 것은 큰 복입니다.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좋은 신앙의 선배를 만나 신앙의 좋은 습관을 배울 수 있는 것은 큰 복 중의 복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도 요한은 초대교회 가운데 몇 개의 교회를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들 중의 어느 한 교회에 가이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이오는 교회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는 일꾼이었습니다. 교회에서 그와 함께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이 사도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가 얼마나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리고 겸손하게 섬김으로 교회를 화목하게 만들고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가이오의 신실함에 대해 전해 들은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3절에서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라고 말합니다. 가이오는 교회 안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잘 돌봤습니다. 교회에 순회 목회자들이 오면 그들을 잘 섬겼습니다. 교회에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아무 말없이 묵묵히 그 일들을 감당하며 교회에 덕을 세웠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런 가이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 3서입니다. 요한은 편지를 쓰면서 ‘나의 사랑하는 가이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가이오, 사랑하는 가이오, 사랑하는 가이오’라고 사랑한다고 네 번씩이나 표현할 정도로 가이오에게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를 향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맘껏 축복했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이 2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축복의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받고 싶어하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명심할 것은 여기에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축복의 내용이 아니라 축복의 기도를 받는 가이오의 신실한 믿음의 삶입니다. 축복을 받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가이오처럼 축복을 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지 않고 축복 받기만을 받기 바라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신입니다. 미신에서 추구하는 중심 내용은 축복입니다. 어떤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복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복을 받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목적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추구하는 것은  복을 받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더 신실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복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저는 교회를 영적으로 이끌어 가는 목사로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가이오가 받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복에 앞서 가이오가 가지고 있었던 신실한 믿음을 먼저 점검하는 건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오늘 안수집사로, 권사로, 명예권사로 취임하고 임직을 받는 모든 일꾼들이 가이오처럼 교회와 목회자에게,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신실한 믿음의 일꾼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섬길 때 주의할 점을 11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리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교회에서 일꾼으로 섬길 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말하면서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먼저는 교회 일꾼으로서 본받지 말아야 할 악한 일꾼으로 디오드레베를 소개합니다. 사도 요한을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에 대해 9,10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디오드레베는 교회를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쁜 방향으로 이끄는 선동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행위들 속에 가리워진 속셈은 교회에서 첫 번째, 즉 으뜸이 되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과 교회를 이끌어 가는 사역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며 순회하는 사역자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악한 말로 중상모략 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어리석은 말로 요한 사도와 그의 동역자들을 비방했습니다. 또한 디오드레베는 교회내의 다른 사람들에게 사도의 말보다는 자기를 따르라고 했고 그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교회 안에서 보복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형제들을 맞이 않고 맞이하는 자들 마저 쫓아내었습니다. 

디오드레베가 교회 안에서 하는 역할을 보면 그가 교회의 중직자였음이 분명합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대단했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영향력이었지 교회에 덕을 세우는 영향력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교회와 목회자를 힘들게 하는 악한 영향력이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요. 교회를 사랑하는 자 같아도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는 일꾼인 가이오에게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마라’고 말합니다. 즉 교회에서 섬길 때 자신을 높이려고 교회에서 못된 짓을 하는 디오드레베를 본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는 섬기는 직분자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에게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하면서 소개하는 사람이 12절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입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하였고, 어떻게 섬겼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는 말씀을 통해 교회의 모든 성도들로부터 그의 신실한 신앙과 섬김이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초대교회를 이끌어가는 사도들이 보아도 신실한 교회의 일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믿음의 멘토로 소개를 받는 가이오도 데메드리오가 신실한 교회의 일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과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인정하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을 소개하는데 이상하게도 아주 짧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찌보면 디오드레베가 으뜸이 되기 좋아해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했다면 데메드리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섬기는 일꾼임을 우리에게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교회에서 신앙과 섬김의 본이 되었으면 사도 요한의 마음을 감동시킬 만큼 신실한 가이오에게 본받을 신앙의 멘토로 데메드리오를 소개했겠습니까? 

데메드리오는 교회에서 꼭 필요한 좋은 일꾼 이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교회 아에서 주님을 섬기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디오드레베도 나름대로 조직적으로 자기가 으뜸인 것을 지키려고 힘을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를 섬기는 일을 못하도록 방해를 했습니다. 교회 밖에서 핍박을 받는 것은 은혜로 참기 쉬운데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에게 훼방과 조롱을 받으면 그것은 너무 실망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혼란해지고 사단에게 이용당하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데메드리오같은 사람이 많으면 교회는 부흥하고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되고, 사단이 틈을 탈 수 없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가 데메드리오처럼 이렇다 하고 내놓을 것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참되고 진실하며 교회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되면 그는 매우 축복된 사람입니다. 또한 그를 통해 하나님은 그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디오드레베와 같은 신앙생활을 모방하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것이 성공적인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권력이 아닌 섬김의 도구인데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이 교회 속에도 들어와 교회의 직분을 개인의 명예와 교회의 권력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신앙과 교회를 병들게 하는 원인입니다. 교회의 직분을 맡으면 함부로 말하고 교역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자신의 힘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더 큰 일꾼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일꾼은 직분을 맡으면 맡을수록 더 겸손하며 교역자를 존중히 여기고 교회의 질서를 존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회에서 안수집사, 권사로 세움을 받는 모든 일꾼들이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와 같은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지기 전보다 일꾼으로 세워진 이후의 교회가 더 밝고 힘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워진 직분자들로 인해 교회 구석구석이 더 시끄럽고 혼란해 지는 것이 아니라 더 화목하고 평화스러운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목회자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일꾼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성도들에게 항존직분자로서 데메드리오와 같은 믿음의 귀한 멘토가 되어 신앙의 좋은 일꾼들을 세워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축복을 받는 신실한 일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