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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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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롬 9:1-5)

(롬9:1-5)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1. 성도 여러분의 삶에 가장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항상 자기와 함께 하시며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모두 아시는 ‘성령의 이름으로’ 증거한다면서(고전 2:10)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성령의 이름으로’, 다시 말해 자기 마음의 진실성을 입증하며 원하는 바가 동족들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사명은 동족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베드로였고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갈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나 자기 동족에 대한 깊은 애정은 여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가 “형제 곧 골육의 친척”, 즉 동족 구원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자신의 동족이 구원받는 것이라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지옥에 들어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동족 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실제로 자기 동족 구원을 위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한 것인가? ‘저주’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짐’(아나테마,anathema), 다시 말해 ‘하나님과 단절됨’이 바로 저주입니다.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것은 곧 죽음이요 영원한 불행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로 자기 형제 곧 골육지친을 구원하는데 어떤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짐도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일찍이 모세가 가졌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시내산에 올라가 사십일을 지내며 성막과 그 안에 설치할 모든 기구들, 그리고 그 성막에서 행할 모든 예배에 관한 법을 지시받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칠 율법, 즉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돌판에 새기신 증거판 곧 십계명을 받아 내려올 즈음이었습니다. 시내산 아래에서 모세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모세가 죽었네, 살았네 하면서 웅성거리더니 결국은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을 인도해갈 우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출32:1-35) 

모세가 부재 중일 때는 그 형제 아론과 훌이 백성의 지도자 대행이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우상을 만들라고 협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마다 애굽에서 나올 때 가져온 금고리들을 가져오게 해서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우상을 두고 아론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흥청거리며 뛰놀았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32:7-8)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출32:9-10)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다 쉽게 표현하면, “나는 이 백성을 살펴보았노라.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라. 내가 노하였느라.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노라.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노라.” 

이 말씀은 어마어마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모세만 남기고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처럼 노아의 가족들 외에는 모두 심판해서 없애버리시고 모세와 그 자손들로 하여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분노에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애원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주신 주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노하십니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이 ‘주가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이끌어 내어, 산에서 죽게 하고, 땅 위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려 하십니까? 제발, 진노를 거두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주의 백성에게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시며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서, 영원한 유산으로 삼게 하겠다.’ 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간곡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주의 백성에게 내리시겠다던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우상숭배하며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들을 처단하기 위해 “하나님 편에 설 사람은 나오라.” 고 외치자 레위 자손이 모두 그에게로 모였습니다. 

이들에게 모세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허리에 칼을 차고, 진의 이 문에서 저 문을 오가며, 저마다 자기의 친척과 친구와 이웃을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라’ 하시느니라.” 며 명령합니다. 이 명령에 따라 죽임을 당한 사람이 무려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모세는 백성들을 모으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크나큰 죄를 지었느니라. 그러나 이제 내가 주께 올라가서, 너희를 용서하여 달라고 빌겠노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32:31-32)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우상숭배의 큰 죄악을 용서해 주시지 않으려면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려도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처음에는 진노하셔서 전멸시켜버리시겠다고 하셨지만, 모세의 두 번째 기도, ‘주의 백성을 용서해주시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도 좋습니다.’는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출32:33)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누구든지 오직 죄를 범한 사람만 때가 되면, 내가 그들에게 반드시 죄를 물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드린 기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여기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린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저주”, 하나님에게서 끊어짐을 말합니다. 그만큼 모세가 자기 백성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뜨거운 마음과 열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모세와 같이 자기 구원을 포기할 만큼 동족을 사랑하여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와 바울과 같은 뜨거운 동족애의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2. 그러면 사도 바울이 이처럼 자기 동족을 사랑하여 구원받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 중 이삭, 이삭의 자손 중 야곱, 이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결코 놓지 않겠다며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과 의지를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 야곱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창32:13-32)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자기 동족을 사랑하여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을 하나님께서 쉽게 버리시겠습니까? 여인이 젖먹는 자식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49:14-18입니다.

(사49:14-18)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손바닥에 새길만큼, 신부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양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4:22에서는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장자” 라고 하셨습니다.

(출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장자라

신명기 14:1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습니다.

(신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섭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신명기32:6.63:16,64:8에서는 하나님께서 낳으신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3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사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호세아11:1에서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아들’로 부르셨습니다.

(호11:1)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가 한 아버지를 가졌느니라’고 증언했습니다.
(말2: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이처럼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데 사도 바울이 어찌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대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이 예수 믿음으로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증거하십니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갈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사람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장차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기 때문에 다시 죽을 수도 없는 ‘부활의 자녀’라 부릅니다.

(눅 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육신의 자녀’, 다시 말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오직 약속의 자녀, 곧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약속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롬 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갈 4: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녀이신 여러분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세 번째로 바울이 자기 동족을 사랑하는 이유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십계명)을 받기위해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이 맹렬한 불같이 임했습니다.

(출24:16-17)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 중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들을 인도했습니다.

(출40:34-38)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숱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도 하나님을 배척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여러 가지 이적과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렀던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망했었습니다.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여 그 열매를 맺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합니다.

(살전 2: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쓰임받으면 그 직분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십니다.

(고후 3: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창세 전에 택하시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 다시 말해 썩지 아니하고, 늙지 아니하고 병들지 아니하고 영원히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의 금세와 내세에 모든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십니다. 영광스러운 성도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고 사도 바울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네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며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출34:28) 모세가 여호와와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흘리신 피와 찢기신 몸은 성찬예식을 상징하는데, 이는 나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곧 예수 십자가는 ‘새 언약’이며 예수 믿음은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히 8:8)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새 언약의 백성들’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고 사도 바울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다섯 번째 이유는 “율법을 세우신 것과”,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소유한 백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모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들이 범죄했으면 그들은 모르고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 범죄한 것이었습니다. 알고서 지은 죄는 모든 죄악 중 가장 큰 죄악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모독죄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고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율법을 소유했던 백성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1,14을 보겠습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고 사도 바울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섯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를 드리는 백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배(제사)를 통해서 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번제단의 희생제물을 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사함을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셔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0:19-22을 보겠습니다.

(히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음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을 가까이 하여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시고 기뻐하십니다.(요4:20-26)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고 사도 바울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등이 그들의 조상이었다는 것과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취하실 때 이들의 혈통을 택하셨다, 이들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믿음의 혈통을 통해서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를 그들은 배척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거절당하신 것입니다.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처럼 많은 특권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주역이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저주를 받는다 해도’ 저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것입니다. 

진정 골육의 친척들과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다면 바울이 가진 동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희생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가슴에 안고 이 땅에 예수를 줄기차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분단된 조국을 통일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저 북녘 땅,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화가 이루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뜻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고 했습니다. 

역사의 종말과 완성은 이 천국 복음을 통한 세계 복음화로 성취됩니다. ‘골육의 친척’, 성도 여러분의 골육의 친척들과 이 나라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도와 나라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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