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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늘이 벗어져야... (행 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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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이 벗어져야... (행 9:1-19)


1. 비늘에 가려진 눈

신약성경의 절반 정도를 기록한 대사도 바울, 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전의 사울은 예수 믿는 제자들을 열심히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58을 보면,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가 순교당할 때, 사울은 스데반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맡아 보관해준 청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1에서는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하는 것을 마땅히 여겼다고 합니다. 이어서 8:3에서는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완전히 박멸하려고 집집마다 들어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고 합니다. 

이것도 부족하여,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이란 이웃나라의 도시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색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오려고 대제사장의 재가를 얻어 공문을 갖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잔인합니까? 자기 나라에서도 부족하여, 외국으로 피신해있는 기독교인들까지 잡아오려고 하니 이런 사울의 악한 열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빌립보서 3:5-6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 이스라엘 사람이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대 유대나라의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도통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몰라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도리어 박해하였으니....

언뜻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를 고대하면서도,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인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핍박하였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는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사울이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박해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늘에서 들려온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해온 일이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게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한 일이 되었다니...
사울은 이 말씀에 심적 충격을 크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오늘 말씀에 따르면, 사울의 눈에 비늘 같은 것이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비늘 같은 것이 씌어져 있으니, 사람과 사건과 사물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왜곡하여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파란 선글라스를 끼고 보면, 세상이 다 파랗게 보이듯이 말입니다. 

그 비늘은 도대체 어떤 것을 말합니까? 
사울에게 있어서 비늘은 자신이 지금까지 배워온 지식과 경험입니다. 
사울은 구약성경에 도통한 사람으로서, 율법학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온 바리새인이었기에, 자신이 살아오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옳은 것으로 철저하게 신뢰하였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의지로 완벽하게 포장한 사람, 밖에서 그 어떤 다른 것도 들어갈 여유나 공간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아마도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때, 사울도 바리새인으로서 예수님을 비난하는 그룹에 끼어있지 않았겠나 라고 추측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신뢰하면, 그것이 비늘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지식이나 경험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은 성경지식이나 경험은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지식과 경험의 비늘 외에 또 다른 비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많이 누리려 하고, 더 많이 즐기려는 물질적인 욕망과 자랑거리입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때문에 우리의 눈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왜곡되게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2. 비늘을 벗겨주시는 하나님

이제 사울의 눈에서 비늘을 벗어지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가는 중, 다메섹에 거의 이르렀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고 합니다. 사도행전26장에서 바울사도가 다시 자신의 회심 사건을 간증할 때에는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사울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메섹을 향하여 출발할 때는 의기양양하여 힘차게 걸어왔지만, 이제는 그 힘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처지, 무력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남의 손에 끌려서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홀연히”라는 이 단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사람을 변화시키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메섹에서 하나님께서 사울의 삶에 갑자기 개입하신 것 같지만, 실제는 그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사울의 마음을 조금씩, 서서히, 점진적으로 움직이셨다고 합니다. 그 중요한 출발점을 스데반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사건에서 찾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면서 스데반의 죽음의 과정에 큰 심적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이 예수의 복음을 전한 것 때문에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붙잡혀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하는데, 하나도 주눅 들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도리어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고난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과 같은 스데반의 환한 얼굴이 사울의 가슴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 최고 지도자들의 모임인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설교를 하고, 자기를 죽이려도 달려드는 사람들 앞에서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사울은 스데반의 그 말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들은 사울은 속으로 “어떻게 저런 기도가 가능할까? 그에게 뭔가 있는게 틀림없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니야. 절대 아니야.” 자신의 마음을 다시 다잡곤 했습니다. 

스데반을 통하여, 자신이 하는 행동에 의심이 들 때마다 사울은 더 광신적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였던 것입니다. 집집마다 다니며, 그것도 부족하여 외국에 도망간 유대 기독교인들까지 잡으러 가면서까지 광신적으로 박해한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울의 광신적 박해는 그의 내적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 것이다.”
이런 불안감을 갖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하늘로부터 빛을 받아 그 자리에 꼬꾸라졌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 음성을 들었을 때, 사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그 분은 다름 아닌 자기가 믿어온 주님, 하나님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 순간, 사울의 마음이 그대로 무너져내렸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행동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진리를 정리합니다. 
비늘이 벗겨지는 것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이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에는 인간은 불가항력입니다. 그대로 엎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의 개입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속에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점진적이고 부드럽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사울은 예수 믿고 난 후 바울로 바뀝니다. 
사울은 그 뜻이 “희망”이란 뜻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왕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입니다. 그는 사울왕처럼 큰 인물이 되라는 희망을 갖고 자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바울은 “작다, 단념하다”란 뜻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이제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 욕망, 교만, 자랑, 모두 단념하였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울이 하루 아침에 바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하루 아침에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의 삶이 지금도 서서히,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며, 생명조차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사울은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는 주님의 신실한 제자의 안수기도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습니다.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은 180도 바뀌어졌습니다. 사울의 박해의 대상이었던 예수 믿는 자들이 이제는 그의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울, 이제는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3. 인생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비늘이 벗어져야 사울이 바울이 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다메섹의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러 가던 사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정반대로, 도리어 예수 안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로 바뀌었습니다.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미국이민 1세대로 동양 최초의 주 상원의원이 된 신호범 장로님,
1935년 일제치하 때, 경기도 파주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어린 핏덩이를 놔둔채 살려고 머슴살이로 가버렸습니다. 신호범 어린이는 외삼촌 집에서 눈칫밥 먹어가며,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납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잘 집도 없어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서울역에서 거지생활하다가 6.25전쟁 중에 미군 하우스보이가 됩니다. 미군부대에서 장교들의 심부름을 하다가 신앙심 좋은 군의관 폴(Paull) 대위를 만납니다. 

폴 대위의 사랑을 받으며,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초등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청소년 신호범은 18세의 나이에 폴 대위에게 입양되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한국에서도 거의 한글을 배운 수준에다 학교 공부를 한 적 없는 신호범은 미국에서 학교입학이 거절되어 검정고시 공부를 하게 되었고, 합격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아 미국대학교 교수가 됩니다. 1998년에 드디어 동양인 최초로 미국 워싱톤주 상원의원에 당선됩니다. 

거지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지가 미국 주 상원의원으로, 
이렇게 축복받은 것은 바로 미국인 폴 대위의 신앙이었습니다. 
폴 대위로 하여금 한국 거지 신호범을 불쌍히 여겨 돌봐주고 사랑해주게 한 분은 바로 폴 대위 안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거지 신호범을 미국 상원의원으로 바꾸어놓은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폴대위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고, 미국에 입양되어 간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고, 동양인으로 미국사회에서 상원의원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박해자에서 복음전도자로,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한 줄로 표현하였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1:14)
오늘도 우리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도록 풍성할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드리며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눈에 비늘이 벗어지도록,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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