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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하나님의 의 (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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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 (롬 1:17)
 
 
종교개혁주간을 맞이하여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루터와 함께 고민하며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힘겨울 때면 ‘내가 고통당하는 동안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집니다. 하나님께 따지는 태도는 아닐지라도, 이런 질문 속에는 하나님은 당연히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과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도움이 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 섞인 불평이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 이전에 ‘죄 많은 우리네 인생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감히 은혜를 요청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처럼 무거운 주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피하겠지만 16세기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던 루터는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온 힘을 다해 풀어보려고 애썼던 인물이었습니다.

루터가 살았던 시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애써 ‘지옥’에 대한 공포심을 심었습니다.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연옥’으로 두려움을 희석시켰고, 연옥에 의지해 삶이 나태해지면 연단 받는 기간이 엄청 길다는 것으로 다시 긴장시켰습니다. 긴장감이 지나치게 사람들의 숨통을 조이면 면죄부 같은 것을 통해 숨 쉴 틈을 마련해주었지요.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부담되는 분이었습니다. 긴장을 늦추고 있으면 언제 다시 벌컥 화내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마리아나 성인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다가가야만 했지요. 루터에게도 이 하나님은 너무나 무서운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언약궤 앞에서 두려워 떨어야만 했던 사무엘상 5장의 블레셋 사람들처럼, 조금만 실수해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지성소의 대제사장처럼, 루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음을 생각할 때마다 밀려드는 신앙적 공포를 떨칠 수 없었습니다. 수도사로서 첫 미사를 집례 할 때 약간의 복장 위반이 로마 가톨릭이 가르쳤던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악들보다 더 두려웠었다고 간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순결하기 원했으나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능하신 그분 앞을 피할 수도 전지 하신 그분께 숨길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해져서 하나님 앞에서 평안을 누리기 원했습니다.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이 제안했던 구원의 모든 방법을 철저히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시도한 것은 율법적인 노력입니다. 루터는 그가 소속되었던 수도회의 규율들을 엄격히 지켰습니다. 새벽 1-2시에 일어나 자학한다 싶을 정도로 금식하며 하루 일곱 번의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어느 날은 담요를 덮지 않아서 얼어 죽을 뻔했을 만큼 고행도 했습니다. 만일 수도원의 규칙을 지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있다면 루터일 것이라고 자타가 공인할 만큼 지독히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헌신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없었던 루터는 타인의 공로에 의존해 보기로 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많은 성인들이 자신의 구원에 필요한 이상의 선을 행했기 때문에 그들의 남은 공로를 교황이 베풀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황 레오 1세는 성인들의 거룩한 뼈 하나를 볼 때마다 연옥 형벌 기간이 4천년씩 감소된다고 정해 두었습니다. 로마에는 40명의 교황과 7만 6천 명의 순교자가 묻혀 있었고, 모세의 떨기나무 가지, 바울의 쇠사슬,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잘랐던 가위, 유다가 목맨 대들보 등의 성물들이 가득했습니다. 루터는 로마를 방문하여 ‘스칼라 상타’(거룩한 계단)를 한 계단씩 오르며 주기도문을 열심히 외웠습니다. 하지만 방탕한 사제들과 부패가 가득한 도시에서의 그런 행위들이 정말 죄를 사해 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노력들과 동시에 루터가 사용했던 세 번째 방법은 고해성사였습니다. 중세 후기 스콜라 철학에 의하면 고백한 자범죄만 용서받을 수 있었기에, 루터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고해성사를 행했습니다. 어떤 때는 삶을 돌아보며 자기 생각과 행동을 샅샅이 뒤져서 6시간 동안 죄를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고해를 받아주는 사제가 더 이상 못 참고 시시한 죄로는 찾아오지 말라며 화를 낼만큼 루터는 진지하게 회개 의식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고백에서 빠뜨렸을 죄로 인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고해를 마치고 나오다가 ‘아차’하며 다시 고해를 위해 돌아서야 할 만큼 조바심이 생겼고 절망스러웠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된 루터는 낱낱이 죄를 고백하는 율법적 노력 대신에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신비주의에 한동안 젖어 들었습니다. 격렬한 몸부림 대신 깊은 바다 속에 떨어진 한 방울 물같이 하나님의 존재에 잠기는 신과의 연합을 추구했습니다. 잠깐 평안했으나 이러한 방식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신분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신비주의 가르침대로 단순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사랑하려 할수록 공의의 하나님을 향해 증오하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죄는 연약함이 아닌 적극적인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깊이 반항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루터에게 불안과 공포는 되살아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고 성경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루터가 1515년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17a)라는 말씀을 대했을 때 다시 절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헬라인들의 관점처럼 그분의 공의로우신 성품과 관련해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자를 반드시 처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생각할수록, 루터는 도무지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보아도 죄 때문에 자기 아들을 저렇게까지 하시는 무서운 하나님만 생각났습니다. 그러므로 루터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복음을 계시하지 않으셨기를 바랐습니다. 그에게 이 복음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 슬픔을 더하는 소식이며 공포를 느낄 만큼 위협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519년에 이 구절을 다시 연구하면서 구약성경이 의미하는 바대로 “의”가 관계적 의미라는 것, 즉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의를 뜻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워서 죄인이 그분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은 그때까지 로마 가톨릭이 가르쳐 왔던 것처럼 인간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능동적으로 행해서 공로를 쌓는 방법으로 될 수 없었습니다. 복음에 계시된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제공된 ‘수동적 의’이며, 인간의 밖에서 오는 ‘낯선 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을 만족시키는 의를 제공하셨다는 사실이 바로 복음의 계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후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시며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저주를 다 해결하셨지요. 죄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모든 죄 값을 지불 완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택하신 자들에게 ‘전가’해 주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의 공의로움을 유지하시면서도 택하신 죄인들을 의롭다고 칭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 되었다는 것, 곧 우리 것으로 간주되고 우리 것으로 계산되었다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17b)합니다. 인간의 행위로 시작해서 행위로 끝나는 인간의 공로에 근거한 의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신뢰하는 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7c; 합 2:4)고 외쳤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루터는 비로소 모든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활짝 열린 문들을 통해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전에 그토록 증오스러웠던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이 이제는 가장 사랑스러운 표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었고 너무나 자비로운 하나님이셨습니다. 

루터는 복음에 계시된 이 하나님의 의를 지키기 위해 천 년 동안 군림해온 로마 가톨릭에 저항했습니다. 혁신적인 변화를 꿈꾸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영광스러움이 훼손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교회 대다수가 반대하는 속에서도 교황과 황제가 권위로 위협 속에서도 복음에 굳게 서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말씀대로 잘 살았기 때문도 내 존재나 삶 자체가 그분께 만족스럽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담대히 그분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분의 도우심을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히 그분의 나라를 상속받을 소망 가운데 살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도 죄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인이기도 합니다. 재림의 그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의인입니다.

루터는 이런 상황을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죄인이고 부분적으로는 의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항상 의인인 동시에 죄인’(semper iustus et peccator)을 뜻합니다. 힘든 현실 속에서 불평하거나 서운해 하는 우리네 모습에서 역시나 죄인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 불평의 순간조차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은혜를 생각합니다. 우리네 삶에 닥치는 슬픔과 고통의 이유를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런 중에도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공포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깊이 깨달았던 루터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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