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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 참여자의 각오 (고전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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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참여자의 각오 (고전 11:23-26)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오늘은 우리 기독교회의 두 가지 성례인 세례 예식과, 성찬 예식을 거행하는 성례 주일입니다. 오늘 이 거룩하고 복된 예식을 통하여, 우리 모두 큰 은혜를 받아서, 주님의 대속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달아, 더욱 믿음으로 살고, 더욱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더욱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개신교회의 신학 체계를 세운 칼빈은 참된 교회의 표지를 “말씀의 전파와 성례의 거행”에 두었습니다. 이는 성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칼빈은 또한 말하기를 “우리들의 신앙이란, 모든 측면에서 버팀목이 놓아지고, 최선을 다하여 다림줄을 펴놓지 않고서는, 단번에 그 바탕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고 유약한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믿음을 굳세게 강화하고 확립시켜 주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점을 아시고, 친히 세례와 성찬 예식을 제정하시고, 이를 지키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성례전, 또는 성례식이라고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세례와 성찬의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가져오며, 어떠한 효능을 가져다주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어떤 각오를 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세례의 의미

세례는 1)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받았다는 진리를 나타내는 하나의 표호요 싸인 입니다. 2)세례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의한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에 대해 ‘인’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받는 세례는 효능이 있어서, 축복들이 따르며 인치는 약속들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참 신앙으로 받는 세례는 효능이 있어서, 세례를 받을 때에 사죄 받았다는 확신이 더욱 강화되고, 정화된 심령이 더욱 정화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화되고, 또 사람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고 고백하는 일도 되는 것입니다.

2. 성찬의 의미

1)성찬은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24절에 보면 주님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것’이란 물론 성찬 예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념’은 ‘회상’ ‘기억’이란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성찬 예식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구속 은총을 기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거대한 기념관 같은 것을 세워 놓고 기념하라고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떡과 잔을 나누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요 피니,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찬 예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구속사역을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성찬식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신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뜻있는 예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여러분이 처음 이 은혜를 알고 깨달았을 때에, 얼마나 큰 감격과 열정에 사로잡혔습니까?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우리의 감격과 열정을 싸늘히 식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어떠한 열정도 세월이 뒤바꾸어 놓습니다. 여러분 부부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결혼하기 전 연애할 때 서로가 얼마나 좋아하였습니까? 얼마나 보고 싶어 했으며 만나고 싶어 했습니까? 그러나 10년 20년 혹은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러한 열정적 사랑이 있습니까? 이렇게 세월은 우리의 열정적 사랑을 식게 합니다. 이것은 비단 부부간의 사랑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은 삶 가운데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며 사십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예수님을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말하고 행동하고 결단하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영향을 미칩니까?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나 겨우 기억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예수님이 성찬식을 기념해야 할 예식으로 제정하셨습니까? 세월이 가져다주는 주님께 대한 사랑의 퇴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은 식을 대로 식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에 대해 반성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나 중심의 생각을 주님 중심의 생각으로 다시 바꾸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대상이 예수님이심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 예식을 행할 때마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의식과 행동 속에 일대 반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제까지 나 위주로 나를 위해 살아오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인생으로 전환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성품,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를 바랍니다. 성찬 예식을 통해 우리 안에 예수께서 살아계시기를 바랍니다.

2)성찬은 주님께 대한 헌신과 충성의 선서입니다. 

성례전을 가리켜 sacrament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서약, 선언, 충성을 맹세 한다’는 라틴어 sacramentum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은 로마 군인들이 황제에게 충성을 다할 것과, 그의 생명을 바쳐 황제에게 봉사할 것을 다짐할 때 쓰여 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례전을 거행할 때, 날 위하여 피 흘리시고 찢기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 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놀라운 약속, 주님은 그 놀라운 약속을 하실 때에 피를 흘려서 약속했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주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깨끗이 씻겼노라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불쌍한 인생이, 주님께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이 맹세는 흔들릴 수 없습니다. 이 약속은 가장 확실하며 또 그 효력은 영원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이 위대한 약속이 우리에게서 희미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만찬 예식을 행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생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잘 희미해지며, 우리의 의지가 얼마나 약해서 쉽게 흔들리는지, 또 그 약속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얼마나 쉽게 무감각해지는지 주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약속을 우리에게 계속하여 다시 상기시킬 필요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로 보게 하시고, 떡을 먹게 하시고 포도주를 마시게 함으로써, 그가 우리를 향하신 이 빛나는 약속이 단지 생각으로만 스쳐지나 가지 않고, 우리의 목 줄기를 타고 들어가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며, 마음속 깊은 곳에 뜨거운 느낌으로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성찬 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게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상기할 때에, 나의 죄 때문에 상하고 찢기신 주님의 그 몸을 기억합니다. 한 방울 남김없이 흘리신 주님의 보혈을 생각하면서, 내가 얼마나 못된 죄인인가를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런 아픈 가슴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성찬식은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는 아픈 가슴과 뼈저린 회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벅찬 가슴으로 바라보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실 때까지!’ 이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 말씀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 마음 졸이며 살던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큰 힘과 소망과 능력이 되었습니다.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주님을 생각하며, 저들은 토굴 속에서 이 성찬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간절히 고대했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어떠한 이익도 포기할 수 있었고, 토굴 속에서 참고 견딜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성찬 예식은 어떤 고난이 있어도 참고 살았던 성도들에게, 다시 오시는 주님을 확고하게 붙잡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도 이 성찬 예식에 참여하면서,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주님을 더욱 굳세게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성찬 참여자의 각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성찬의 잔을 마실 때마다 굳게 다짐할 것이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과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나를 사랑하사 자기를 십자가에 희생하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도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요.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준엄한 명령이 있습니다. “너는 보통 값진 생명이 아니니라. 이제 네가 평생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너 대신에 죽은 예수를 전하는 것이니라.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성찬의 떡을 먹으면서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바라보고, 잔을 마시면서 나를 위하여 한 방울의 피도 물도 남김없이 다 쏟아 주신 주님을 생각하고, 그래서 내 이 짧은 생애에 내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게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어 주신 그 주님을 자랑할 것밖에 더 있겠느냐? 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그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이러한 각오와 결심이 있는 성도라야 합당하게 성찬식에 참예하는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 양육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자랑하는 것이 없는 교육뿐이면, 그것은 헛된 일임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업이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높이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고, 주님을 전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저 돈 버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직업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공을 했다고 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 특별히 나를 위해서 죽으신 주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그 성공은 실패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구원받은 목숨인데, 내가 누구 때문에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가고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 사람인데, 나의 삶 나의 직업 나의 성공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주님을 높이는 것과 연관이 되지를 않는다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삶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을 대할 때, 나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을 마음에 두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반성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시간 나의 재물 나의 직업 나의 건강 나의 생명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많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어야 하느냐? 우리가 항상 이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주님은 나의 구주다.” “주님은 나의 생명이다.” 하는 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어떻게 해서 살게 된 사람들인데 인생을 되는대로 살아요? 쓸데없는 것을 놓고 중요한 것처럼 착각을 하면서 살아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하여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높이는 것, 예수님을 전하는 것과 연관되지 아니하는 삶, 그것과 연관되지 아니하는 직업, 그것과 연관되지 아니한 재물, 그것과 연관되지 아니한 기쁨이라면, 그것들은 모두 헛된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찬에 참예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엄숙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죄인중의 괴수와 같은 나를 살리기 위해, 흠도 티도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시간이요, 그 때문에 내가 죄 용서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노라고 고백을 하는 순간이요, 내 일생에 이 좋은 예수님, 이 고마운 예수님을 증거하고 전하는 것이,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순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이와 같은 믿음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아직도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시는 분들은, 이 성찬예식에 참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찬의 떡과 잔을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참으로 내 마음을 주님께 바치기를 원하는 성도들만이, 성찬의 떡을 떼고 잔을 마셔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모두 조용히 자기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성찬에 참여할 준비가 바로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합당하게 성찬의 떡을 떼고 잔을 마실 수 있습니까? 참으로 주님이 나를 위해서 어떤 분인가를 확인했습니까? 내가 과연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나의 삶이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전하는데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습니까?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는데, 그 동안 여러 차례 성찬 예식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는커녕,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침묵하며 지내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하는 마음으로 참예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하는 나의 결심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나의 고백이,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 곧 영혼 추수주일에 전도하는 것으로 증명해 보이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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