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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적은 일에 충성된 자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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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일에 충성된 자 (마 25:14-30)  

 
우리나라 지난해 자살 사망자 수가 1만 5,566명입니다.
하루 평균 42.6명입니다.
이 숫자는 OECD 국가 중 단연 1위입니다.
OECD 국가 자살률 평균보다 2.5배나 높습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1897년 발표한 ‘자살론’에서 “자살은 엄연히 사회적인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또한 사회적이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인 타살’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특별히 높고, 또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회적 통합의 이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란 점에 주목해봅시다.

학업 및 입시, 취업, 결혼 등 무한경쟁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낙오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사회적 병리현상이 젊은이의 자살을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자살률이 80대 이상 초고령 노인층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사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 부양을 꺼리는 사회풍조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들에 대한 사회 정책적 지원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거지요. 
이런 사회적 이완이 80대 이상의 초고령층을 자살로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사회가 청년층과 노년층을 따뜻하게 보듬지 않는 한 자살률을 떨어뜨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을까요?

최근 OECD에 가입된 40여 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관계망’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37위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꼴지나 마찬가지지요?
‘가장 위급한 순간에 연락할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겨우 78%만 ‘그렇다’ 고 답했습니다.
은둔과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는 ‘히키코모리’가 70만 명이 넘는다는 일본보다 우리의 사회적인 관계망이 더 허술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 땅을 섬겨야 합니다.
누군가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가 예수님의 본을 받아 섬김을 훈련시킨다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긴급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2012년 사역을 위한 사역박람회를 합니다. 

사역박람회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누구의 명령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 재능, 시간, 물질을 고려하여 자발적으로 사역을 선택하자는 것입니다.
② 오래된 가족이든 새 가족이든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말고 모든 교우들에게 사역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입니다.
③ 전 교우들이 1인 1사역 이상씩을 감당하여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섬김을 체질화하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교회는 ‘다음세대’라는 목회 지침을 세웠는데, 모든 집사님들은 교회학교 교사로 지원해주길 바랍니다. 

저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분들이 여러 분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저가 고등학생일 때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쳐 주셨던 김주훈선생님이십니다.
이분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심한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는 것은 물론 입이 돌아가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옷을 벗어보면 전신에 수술자국이 있었습니다.
직업도 간판에 글씨를 쓰는 간판쟁이었습니다.
지금은 현수막을 만들 때 실사를 하지만 예전에는 손으로 글씨를 썼습니다.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선생님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면서 눈물로 회개하였고, 기도를 배웠습니다. 
그 작은 모임에서 목사가 세 사람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는 그렇게 소중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달란트 비유입니다.
고대에는 이런 습관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주어서 자유롭게 장사를 하게 한 다음, 1년에 한 번씩 주인과 함께 계산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에 주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1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 “각각 그 재능대로”

“능력에 따라서”(each according to his capacity)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각자에게 다른 몫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각자가 가진 성격, 지능, 성별, 건강 등 타고난 인격의 바탕을 말합니다. 그 바탕에 따라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난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는가?” “왜 나에게는 다른 사람과 같은 지능을 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참 불공평하시다” 
경쟁사회일수록 이 질문은 자못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질문을 하는 자들에게 롬9:20~21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는가?’ 라는 질문은 피조물인 우리가 할 말이 아니랍니다. 
아들이 아버지한테 ‘왜 키는 이렇게 작으냐?, 왜 머리는 이렇게 나쁘냐? 왜 우리 집에는 돈이 없느냐?’라고 따지니까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러면 네가 아버지해라.”
아들이 아버지가 될 수 없듯이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영역과 권한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맥스웰 몰츠라는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는『새로운 미래를 소유한 새로운 얼굴』이란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얼굴성형을 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경험담을 수록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 변화가 생기면 자신감이 생기고, 성격도 담대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몰츠 박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실제로 얼굴이 예뻐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을 못생겼다 생각하고 움츠러드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얼굴은 변했지만 마음이 변화되지 못하여 여전히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몰츠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쑥 튀어나온 턱뼈를 고친다거나, 외모를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자화상을 고침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몰츠 박사에 의하면 각 사람마다 얼굴이 있듯이 사람마다 마음의 얼굴이 있다고 합니다. 
만일 내 마음의 얼굴을 상처 난 그대로, 삐뚤어진 그대로, 찌그러진 그대로, 열등감을 가진 그대로 남겨두면 그 사람은 외모의 변화에 관계없이 어둡고 밉게 산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하여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분명한 것은 모두에게 달란트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달란트를 주지 않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천치바보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금 한 달란트란 금전 한 닢이 아닙니다. 
어떤 영어성경에는 ‘one bag of gold' 즉 금 한 자루로 번역했습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것은 엄청나고 놀라운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2. 주인의 칭찬이 있습니다.

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1) 주인이 그 종을 칭찬하는 말은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忠誠이란 말은 결과만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 한 말입니다.
특히 ‘적은 일에 충성했다’는 것은 삶의 작은 부분들을, 삶의 한 순간 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각오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여 설교를 준비하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새벽기도회에조차도 대충 생각나는 대로 설교하지 않습니다.
30년 목회했으면 그 경력으로라도 한 시간 정도는 때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힘은 들지만 설교 원고를 정리하여 들고 나옵니다.
저는 이런 태도를 설교자의 충성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께 질문을 드립니다.
만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열심히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주인에게 아무것도 못 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하나님을 위한 일에는 실패가 없지만)
주인이 책망하셨을까요? 아니면 책망하지 않았을까요?
주인은 책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님, 다 아시잖아요. 내가 얼마나 애썼다는 것을......”
주인은 이익을 남겼기 때문에 칭찬하고 이익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책망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삶을 충성스럽게 살았느냐, 아니면 그럭저럭 살았느냐에 따라서 칭찬과 책망을 하십니다.

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충성스러웠던 종들은 주님이 오시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주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는 종들의 떳떳함’이 20, 24절에 나옵니다.
“보소서”- ‘보십시오(Behold)' 얼마나 자랑스럽고 떳떳한 말입니까?
시험을 잘 보았으면 통지표 받는 날이 얼마나 기다려집니까? 
그러나 시험을 못 보았으면 통지표 받는 날이 얼마나 죽을 맛입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 오심이 기다려지는 종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인생에는 하나님의 평가와 칭찬이 있습니다.

3. 주인의 책망이 있습니다.

24~25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책망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책망 받은 것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처럼 재산을 낭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무자비한 종처럼 1만 달란트란 거액을 빚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그는 자기 달란트를 썩혔다는 것 때문에 책망을 들었습니다.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나이다.’

이 종을 책망하는 단어를 잘 살펴보겠습니다. 
26절 ‘악하고 게으른 종아’( You lazy servant)
30절 ‘이 무익한 종을’(useless servant)
즉, 게을러서 있으나마나 한 종이란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서는 흉악한 죄인이나 게을러 있으나마나한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있으나마나한 인생, 이것이 책망 받은 이유입니다.

한국의 쉬바이쳐 박사라고 칭송받았던 고 장기려 박사를 아시지요? 
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송도고보와 경성의전을 졸업하였습니다. 
외과의사 백인제 박사의 제자로서 수련하였습니다. 
1940년 나고야제국대학교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평양의과대학, 김일성종합대학교수를 지냈습니다. 
1950년 12월 처자를 두고 차남 장가용과 함께 월남하여 1951년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무료진료소 "복음병원"을 세워 의료봉사로 사회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봉사를 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봉사였습니다.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는 아름다운 일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어느 해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박사 곁에서 자고 일어난 제자가 잠자리를 정돈하고 세배를 올렸다.
장기려 박사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금년엔 날 좀 닮아라."
스승의 큰 사랑에 어리광을 부리던 제자가 재롱삼아 말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닮아 살면 바보 되라고요?"
그러자 장기려 박사는 껄껄껄 웃으며 다음과 같이 토를 달았다고 합니다.
"그렇지,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
혹여 세상 사람들은 늘 불쌍한 환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던 장기려 박사를 '저 사람 바보가 아냐?' 하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장기려 박사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보로 살기'로 작정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따라 바보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어느 원로 장로님이 간증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바쳤더니 내게 영생을 약속하셨고,
물질을 드렸더니 내가 사는 동안 물질을 보장하셨고,
힘으로 봉사했더니 내게 영육간의 강건함을 주셨다.”
이 간증이 여러분의 간증이 되길 축원합니다.
오늘 사역박람회 현장에서 이 간증이 여러분의 귀에 큰 울림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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