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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은혜는 칭송을 받는 것입니다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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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칭송을 받는 것입니다 (행 2:43-47)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0월 31일이 종교개혁일입니다. 일찍이 욕먹고 부패한 로마케토릭교회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않되겠다고 생각한 종교개혁자들이 떨치고 일어나 종교개혁을 한 것을 기념하고 그 개혁정신을 이어가려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칭찬받는 사람이 있고 욕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업도 그렇습니다. 사업자도 그렇습니다. 칭찬받는 기업, 칭찬받는 사업자가 있는가하면 반대로 욕만 먹는 기업이 있고, 욕만 먹는 사업자가 있습니다. 지도자도 그렇습니다. 칭찬받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욕먹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칭찬받기는 어럽고 욕먹기는 참 쉽습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칭찬받는 교회와 성도가 있고 욕을 먹는 교회와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칭찬받는 것은 어렵고 욕먹기는 참 쉬운 것이 교회요 성도들입니다. 칭찬받을 일을 하면 당연한 일을 했다하고 하고서는 외면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욕먹을 일을 하면 벌떼들처럼 일어나서 교회가 그런다고 욕하고 성도가 그런다고 욕합니다.  

이 세상에는 "늘 나쁜 놈이다가 어쩌다 좋은 일 한번 하면 칭찬이 바가지고, 대개 좋은 사람이다가 어쩌다 한번 실수하면 몹쓸 놈으로 손가락질 받는 그 유명한 '좋은 사람 나쁜 놈 현상'이란게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늘 이런 현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열번 잘하다가 한번 잘못해도, 아홉사람이 잘했으나 한 사람이 잘못해도 욕을 바가지로 하고 그 작은 부분을 마치 전부인양해서 오도를 하고, 비웃음거리를 삼고 악의 집단처럼 매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이 항상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 공동체의 짐이고 고통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칭찬 한번 바가지로 얻어먹을려고 늘 나쁜놈으로 살다가 어쩌다 한번 좋은 일 하는 그런 교회나 성도들이 되어서야 쓰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 칭찬받아본적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아득한 어렷을적 어느 때였다고 추억하시는 분은 아니 계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칭찬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욕먹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전에도 그랬기를 바래고 지금도 여전히 칭찬받고 칭송받고 격려받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초대교회와 성도들은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모델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와 성도들은 어떤교회였고 어떤 성도였습니까? 바로 칭찬받는 교회와 성도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47절 말씀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칭송'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칭송'이 바로 '카리스' 즉 '은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은혜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은혜 위의 은혜'라는 대 전제하에 '은혜는 곧 아름다움이며' "은혜는 주님의 마음을 받는 것"임을 살펴본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 하나를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칭송을 받은 것"이 곧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백성들에게 초대교회와 성도들은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칭송을 받은 것을 은혜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곧 주님께로부터 칭송과 격려와 위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 격려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이만한 은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회로부터 칭송받는 교회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성도들이 사회인들로부터 칭송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칭송을 받아야 합니다. 식물도 동물도 칭찬 받으면 움직이고 성장한다고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대 우리 사회에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어찌 동식물뿐이겠습니까? 칭송받은 교회가 성장합니다. 칭찬받는 성도가 성숙합니다. 

경멸하는 비웃음은 비록 열의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에 찬물을 끼얹음으로써 부당하게 그 열의를 식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칭찬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고 작은 것이더라도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선한 생각을 어찌나 따뜻하게 해주고 선의와 열정을 불붙게 하며 격려해주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고 깨닫는 것은 칭찬을 하면 칭찬 받을 일을 하고 비난을 하면 비난받을 짓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칭찬밖에 없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얼마간은 진실입니다. 

초대교회와 성도들은 칭송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로서는 말할나위도 없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믿는자가 더해진 것입니다. 칭찬 받는 곳에 사람이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이왕이면 칭찬받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고 칭찬받는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정서이고 심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두 렙돈의 적은 헌금을 바쳤던 과부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금화를 보란 듯이 헌금함 속에 던져 넣을 때, 그 가난한 과부는 동전 두닢의 지극히 적은 돈을 부끄럽게 넣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 여인이야말로 누구보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칭송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그 여인에게는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를 입은 과부가 그 이후로 얼마나 자신에 찬 삶을 살았을지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만한 믿음을 이스라엘 중에서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큰 칭송을 해주셨습니다. 

또 순전한 나드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를 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린 여인을 칭송해 주셨습니다. 

초대교회와 성도들은 어떻게 했기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는 대로 초대교회에는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이들이 한 일은 물건을 서로 통용했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고, 떡과 음식을 기쁨과 순전함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42절에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와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특징과 장점은 나누기를 즐겨하고 그것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는 곳에서 물질을 나누는 것은 대단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보다도 비용은 작게 들고 영향력은 더 큰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칭찬하는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물질을 나누는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칭찬은 1원도 들이지 않고 선물보다 더 큰 감동을 주게 됩니다. 옛말에 "기가 살아야 운도 산다."고 했습니다  기를 살리는 유일한 처방전은 칭찬입니다. 병원 처방전은 돈이 들지만 칭찬 처방전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 아낌없이 칭찬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칭송은 주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칭송을 받는 것을 의미하기에, 정말 은혜를 받은 자는 자기 열등감에 빠지질 않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내 상황이 열악해도, 주께서는 네가 최고라며 언제나 나를 격려하시기에, 그분 안에서 오히려 나를 진리로 더욱 가꾸어 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칭찬을 받아도 사람들은 신이 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칭찬, 격려,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칭송을 받는 자는 어떻겠습니까? 그가 더욱 진리의 삶을 살아가리라는 건 자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수난 속에서도 우리 한국 교회를 축복해 주셔서 짧은 기간동안, 세계 교회가 깜짝놀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세상을 본받기 시작했고 칭송받던 교회가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작아지고 인간들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이제 교회와 성도들은 불필요한 변명을 나열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변명하는 것조차도 지치고 힘에 겹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들 입달린 사람들은 한마디씩 할정도가 되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할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일은 과소평가되고 나쁜 일은 과대 평가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억울한 측면도 분명있습니다. 초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좋은 사람 나쁜 놈 현상처럼" 늘 잘 하다가 어쩌다 나쁜 일 한번 하고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꼴 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망하지 맙시다. 
오히려 한가지 잘못이라도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킵시다. 나쁜 놈 소리 듣는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지 맙시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가 주님의 칭찬의 은혜를 받고 세상으로부터의 이런 아품을 치유하고 의기소침한 교회와 성도들이 새 힘을 내야하겠습니다.  
요즘 개혁의 바람이 거셉니다. 개혁은 뼈를 깎는 방식도 있지만, 칭찬을 하면서 추진할 때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칭찬을 듣고 격려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송을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니 또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은혜를 베풀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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