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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 14: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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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 14:26-33)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는 중요한 몇 사람의 중심인물이 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공명 등입니다. 관우나 장비와 같은 사람은 용감한 사람으로 이러한 사람을 용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갈공명이나 조조와 같은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을 지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비와 같이 모든 사람을 덕으로 잘 다스리는 사람을 덕장이라고 합니다. 

‘용장이 지장을 못 이기고, 지장이 덕장을 못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뱃심으로 이끄는 용장과 머리로 이끄는 지장과 가슴으로 이끄는 덕장 가운데 덕장이 제일이라는 말입니다. 

근대사에서 역사적 리더들을 보십시오. 히틀러나 스탈린은 용과 지를 가지고 있어도 덕이 없었기에 역사의 반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위기의 시대에는 덕장이 더욱 필요합니다. 각박하고 황량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권력의 힘을 사용하는 용장도 아니요, 머리를 잘 사용하여 사람을 현혹하는 지장도 아닙니다. 오직 덕으로서 다스릴 덕장이 필요합니다. 

‘법보다 덕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법으로 따지고, 치리하고, 벌을 주기만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덕이 있는 리더가 어떤 리더보다 힘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더더욱 덕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율법만 있으면 덕이 없어집니다. 율법만 있으면 죄를 짓게 하고, 죽게 하고, 멸망하게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고민하던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덕이 없으면 메말라지고, 비판하고, 규정하고, 정죄하고 결국은 죽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의를 주장하는 성도도 필요하고, 이성적인 성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랑과 온유함을 겸비한 덕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어야 은혜로운 교회가 되고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15:2절에서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롬 14:21절에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이 말은 성도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하여 내가 신앙의 자유로 할 수 있는 일도 거절하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갈등과 분쟁입니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이지만 이렇게 된 원인은 성도들이 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각기 다른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은사 받은 성도들이 많다는 것은 교회의 자랑이요, 곧 영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자기가 받은 은사를 자랑하며 과대평가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는 과소평가하며 무시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성도들 간에 영적 대립으로 위화감이 쌓이고 갈등과 미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간에 사랑과 덕으로서 섬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4장 전체를 통하여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방언과 예언에 대한 은사뿐 아니라, 더 나아가 모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면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해답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6절 하반 절에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2절에도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신 은사를 통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신 목적은 받은 은사를 제대로 잘 활용하여서 교회의 유익을 도모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세우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자기 개인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과시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받은 후에 자기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사람은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귀에게 이용을 당하기가 일쑤이고, 교회의 영적 질서를 파괴시키는 장본인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정말 겸손하게 형제를 섬기는 마음으로 은사를 활용함으로써 교회 앞에 덕을 세우고, 모든 신자들에게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 남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은사, 더 나가서는 교회를 어지럽히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은사는 주님으로부터 책망감에 불과할 뿐입니다. 

‘20세기 인도의 성자’라고 추앙받는 썬다 싱은 사도 바울 만큼이나 위대한 복음전도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은사가 많았는데, 특별히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말씀의 은사와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가 뛰어 났습니다. 

어느 날, 썬다 싱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윌리엄이라는 소년으로 부터 기도부탁을 받았습니다. 썬다 싱은 그 소년을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밤새도록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다음날, 윌리엄의 병이 완쾌되어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이 소식은 곧 온 마을로 퍼지고 여기저기에서 썬다 싱을 초청하여 그의 한 일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향한 찬사와 명성을 두려워한 썬다 싱은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해도 청을 거절하기로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병을 고쳐주면 사람들은 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보다도 자기를 신격화하여 섬길 것이 뻔했습니다. 실제로 썬다 싱이 병을 고쳐도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해 하지 않았고, 복음마저도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신유의 은사가 그리스도의 덕을 세우지 못하자, 썬다 싱은 스스로 그 은사를 절제하며 숨어 다녔다고 합니다. 

가끔 교회에서 보면 일을 잘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가 막히게 일을 잘 하시는 봉사의 은사가 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잘 하고 못하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일을 통하여 얼마나 교회를 세우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덕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열심이 바른 열심이어야 합니다. 나를 세우는 열심히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열심히 되어야 하고, 나를 자랑하는 사역이 아니라 항상 교회를 화평하게 세우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무명의 용사들이 많아야 합니다. 남을 세우고 남을 칭찬하고 남을 용기를 주면서 사람을 세워가는 것이 결국 덕 있는 사람이요, 그러므로 교회가 질서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간적인 유혹과 시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하려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은사와 직분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것입니다. 고전 12:11절 말씀처럼 은사는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져야 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우리는 주신 은사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신 은사를 통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려면 은사가 아무리 풍성해도 모든 것을 적당하게 질서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9-40절 말씀을 보세요.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은사론의 결론입니다. 동시에 모든 교회 공동체 원리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방언을 하든지 예언을 하든지 다 좋습니다. 방언의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금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언은 유익한 것이니 적극적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다만 모든 것을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품위 있게’라는 말은 개혁성경에서는 ‘적당하게’라고 번역했습니다. “적당하게”라는 말이나 ‘품위 있게’ 라는 말의 뜻은 비슷합니다. “예절 있게, 타당하게, 은혜스럽게, 모양이 좋다”라는 뜻입니다. 알맞게 잘 균형이 잡혀서 보기에 좋다는 뜻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잘 섬기는 부자가 있었는데 아들을 낳아 잔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잔치는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회에 동네 사람들을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이번 잔치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초청해 상석에 앉혀 대접하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번 잔치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를 다 초청해  가난한 사람은 골방에서 대접을 하고, 부자는 상석에 자리를 마련하여 대접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잔치에 잘 먹으러 오는 것이다. 그래서 골방에 자리를 마련하여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먹게 해야 하고, 부자가 잔치에 오는 것은 대우 받으러 오는 것이기에 보이는 상석에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돌아 갈 때는 둘 다 만족할 것이다.” 이 말은 모두에게 적당하게 대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타당성이 있어야 하고, 일하는 태도가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절 바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은혜스러워야 합니다. 아무리 옳고, 바르다 할지라도 예의를 벗어나거나, 은혜스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 일은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은사를 주셨고, 그 은사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역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에서 다양성 있는 사역을 하면서 통일성 있는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 있는 교회의 모습은 바로 질서 있는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보면 얼마나 질서 있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질서 있게 모든 것을 통치하여 가십니다. 자연에는 자연의 질서가 있습니다. 만일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질서를 무시하고, 뜨지 않거나 일찍 져버린다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회에도 법을 통한 질서가 있어서 사회가 유지가 됩니다. 만일 법이 없다면 금방 무질서하고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가끔 신호들이 고장 난 거리에서 차들이 뒤엉켜 무질서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정에는 가정의 질서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간에, 친척 간에 질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도 질서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온전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사랑의 법으로 서로 교제하고 봉사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느 곳보다 질서가 요구되어집니다. 질서는 아름답고 편안하게 해줍니다. 질서는 자기를 편안하게 해주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름답게 보이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질서는 교회에서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면 질서가 무엇입니까? 질서란 제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예쁜 그림액자를 아무데나 걸어둔다고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꼭 있어야할 자리에 있어야합니다. 꽃병도 제 자리가 있어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눈이 여기 있어야 하는데 다른데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각각의 위치에 있는 것이 질서입니다. 

개혁이 무엇입니까. 제자리로 돌아가 제자리를 지키라는 운동이 개혁운동입니다. 교회는 각자의 위치와 자리가 있습니다. 모든 직분 자들은 자기 위치를 잘 지켜야 합니다. 자기 위치를 떠나면 혼란이 옵니다. 위치와 자리를 지키며 봉사하고, 충성할 때 은혜스러운 봉사와 충성이 됩니다.  

그리고 질서란 제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딤후 2:20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여러 그릇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 그릇이 쓰이는 것도 각각 다 다릅니다. 또한 고전 12:4절을 보면 몸은 한 지체 뿐 아니요 여럿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많은 지체가 제 역할을 다할 때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집니다. 

오케스트라의 그 많은 악기들이 각각 제 역할을 다할 때 아름다운 하모니가 울려 퍼져 청중이 즐거워하듯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제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질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서란 제 색깔과 제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사거리에 서있는 신호 등이 제 색깔을 잃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끔찍한 사건이 순간적으로 그리고 연쇄적으로 일어나 혼란해 질 것입니다. 또한 도둑을 지키는 개가 제소리를 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도둑이 판을 칠 것입니다. 

계 3:15절에 하나님은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기를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하셨습니다. 교회가 구원과 사랑, 화해와 평화의 교회다운 모습이 나타지 않거나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교회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교회처럼 자유는 있는데 질서 없이 자기중심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질서한 고린도교회는 교회로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안에서 내게 주어진 위치에 따라 품위 있게 적당하게, 그리고 질서를 지키면 은사와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1절에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은 덕을 세우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일이 비록 보잘 것 없다고 하더라도 덕을 세우면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가 위대한 리더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나의 작은 자리에서 모든 이에게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되면 교회에는 유익하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에 덕을 세우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덕을 세우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작은 은사를 통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드러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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