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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사랑합니다 (시 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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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사랑합니다 (시 122:1-9)

여러분 만일 여러분 주변에서 무엇인가 하나가 없다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일 사랑스러운 자녀가 없었다면 우리 가정은 어떠했을까?
만일 지금의 아내, 남편이 없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만일 주변에 친한 벗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와 관계 맺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 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이 땅에 교회가 없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세상 죄를 지으며 멸망과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교회가 있어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바른 신앙과 영적인 양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가? 를 알아보려면 교회에 대하여 얼마나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헌신하고 있는가? 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관심과 사랑이 깃들인 사랑의 결정체로 지금도 성령을 통해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신 이유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마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하신 말씀처럼 교회는 음부의 권세, 마귀와 죄의 세력이 덮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대하7:16 ‘내가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하신 말씀처럼 교회를 대적하고 방해하는 사람은 망하게 됩니다.

교회를 욕하면 그 욕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며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교회가 성장하는데 방해가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형통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인간의 것이나, 인간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교회의 주인은 언제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축복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와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교회에 대하여 늘 긍정적인 사고와 교회 중심적인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축복을 얻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오늘 시122편 말씀을 요약한다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면 평안과 형통함의 복을 받는다’ 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그 의미를 함께 상고하기를 원합니다.

1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같이 여호와의 집 곧 ‘교회’ 에 대한 말만 들어도 마음에 기쁨이 있는 사람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런 기쁨을 가진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편을 통해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얼마나 사랑하고 사모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도 바쁘다고 난리인데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 보면 너무나 바쁜 일이 많습니다. 
특히 다윗과 같이 왕의 자리에서 바쁜 국사에 쫓기다 보면 성전에 올라갈 여유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나 정신이 없어 성전에 대한 생각 조차도 까맣게 잊고 지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종교를 담당하고 있는 장관이 다윗에게 보고를 합니다. 
“왕이시여 예배드리러 가실 시간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다윗의 가슴은 하나님을 전으로 인해 기쁨으로 뛰기 시작합니다. 
‘예배 드린다’ 는 말은 다윗에게 최고로 반갑고 기쁜 소식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용서와 위로와 안식과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복을 받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한 마음이 항상 열려있고, 교회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교회만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입술에 찬양이 저절로 나오는 그 사람이 바로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교회에 대한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성도에게는 교회가 가장 큰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에 단풍구경을 가지고 하면 대개는 얼마나 좋아합니까?
혹은 한번도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신 분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런 세상의 것에도 기뻐한다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마음은 그보다 더 기쁘고 즐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라는 말만 들어도 교회라는 생각만 해도 기쁘다는 말은 예배가 기쁘고, 성도의 만남이 기쁘고,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드리는 것에서 기쁨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교회를 향한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성전에 있는 것입니다. 

2절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여기서 ‘예루살렘’ 이라는 것은 성전의 대명사로 예루살렘에 유일하게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곳에도 임시로 성전을 대신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신양 시대를 보게 되면 ‘회당’ 이라는 곳이 등장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자주 성전 예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도 드리고 성경 공부도 하던 곳입니다. 
회당에는 랍비가 있어서 성경도 가르치고 기도도 인도합니다. 
그러나 회당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지 회당에서 예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특히 회당에는 제단과 법궤가 없었기 때문에 번제나 속죄제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속죄가 없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년에 3차례씩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이들은 집에서 tv나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면 되지 꼭 교회를 나와서 예배드려야 하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이것은 자신의 편리를 위한 것 뿐이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발로 성전의 문지방을 밟고 성전 안에 들어가는 것을 온전한 예배로 생각하였습니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제물을 드려서 헌신을 표하고, 속죄의 제사를 드림으로 영적인 평안을 얻은 체험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한다면 그 몸과 마음이 함께 주님의 전에 있어야 합니다.
원하기는 하나님의 전을 더욱 가까이 하시고 늘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이곳에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성전을 아름답게 보는 것입니다.

3절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다윗은 성전의 정교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정말 멋지다. 참 잘 지어졌다. 아름답고 웅장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그의 아들 솔로몬 때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다윗이 보고 있는 성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꿈속에 있는 성전일 뿐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사랑에 눈이 먼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사랑하게 되면 교회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이고, 좋아만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의 구석구석이 귀하게 보이고 소중하게만 보입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가 아무리 외적으로 작고 초라하다 하더라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을 때에 교회가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영적인 평안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제단, 그런 교회를 통해서 축복의 하나님을 만나고,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고, 힘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85장에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이라는 찬송처럼 하나님의 전은 생각만 해도 좋아야 합니다. 

원하기는 이와 같이 교회를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네 번째로 교회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6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다른 말씀도 모두 귀하지만 저는 이 말씀을 참 귀하게 생각합니다.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교회에 늘 관심을 가지고 어려움은 없는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힘을 씁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가 있는 교회는 평안하며 평안한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개척교회란 어려운 것이 일반적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일군이 부족하고 물질이 부족합니다. 
어느덧 우리 교회도 다음 달이면 4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잘 표시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재정적으로도 항상 수입보다 꼭 지출되어야 할 것이 더 많다보니 항상 마이너스였는데 이것이 쌓이고 싸여 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목자에게도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사님 가정에서 교회의 어려움을 알고 물질로 헌신하려고 모아둔 것을 헌금하였습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분이 몇 개월의 수입을 모두 모아야 하는 적지 않은 액수를 드리면서 저에게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는 말은 너무나 큰 감동이었습니다.

여러분 함께하는교회는 저 개인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또 앞으로 구원 받을 영혼들을 위해 세우신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수고하고, 헌신을 아끼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평안은 우리가 인생을 형통하게 살아가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교회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평안해야 우리 영혼이 평안하고, 영혼이 평안해야 인생이 평안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시는데 교회를 통해서 주십니다. 
교회가 은혜롭고, 평안하면 모든 것이 은혜롭고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래서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의 평안을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평안을 기도하고,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복이 주어집니다. 
 

6-7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의 평안을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평안과 형통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노력과 수고는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여야 비로소 복이 임하고, 형통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성공하려면 당연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라고 한 말씀처럼 노력하지 않고 요행만을 바라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도와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히 노력해야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귀히 여기고 기꺼이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을 형통하게 사는 더 근본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940년대 말 우리나라에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하는 악질 전염병이 돌았는데 삽시간에 대구, 경북지방을 휩쓸면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염병은 다른 어떤 병원에서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았는데 유독 대구 서현교회 정규만 장로님이 운영하는 활신당 약만 지어 먹으면 신기하게도 낫는 겁니다. 
이러한 소문이 전국에 퍼짐으로 인해 종일토록 활신당 앞에서 환자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은 정규만 장로님은 대구 시내에서 가장 큰 집을 사서 교회의 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많은 부흥강사님들과 목회자들이 쉬어가도록 했으며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물질의 축복은 교회건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성전건축이 시작되자마자 정규만 장로님은 죽을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데 이때 정규만의 장로님은 ‘하나님, 생명을 한 번만 살려주시옵소서. 이 한 목숨 다하여 또한 종의 전 재산을 다 바쳐 성전건축에 헌신을 다 하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간절히 드렸습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님과 온 성도들이 합심으로 기도한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정규만 장로님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한약방으로 모아진 돈은 자루로, 포대에 담겨 건축헌금으로 드려졌고 석재 등 가장 좋은 건축자재를 직접 구입하여 성전건축 현장에 공급하였습니다. 

정규만 장로님은 일부러 돈을 세어보지도 않고 가난한 성도의 명의로, 혹은 담임목사의 명의로, 무명으로 드리기도 해서 지금까지 그 헌금의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정규만 장로님으로 인해 건축된 교회는 그 당시 동양 최대의 석조 예배당으로 지금의 대구 서현교회인데 정규만 장로의 선행은 이 밖에도 끝이 없습니다. 

정규만 장로님 댁의 가훈은 ‘첫째 주일을 성수하여 건강의 복 받고 둘째 십일조를 철저히 구별하여 드림으로 물질의 복 받고 셋째로 목회자를 선대하여 자녀 잘되는 복 받자’ 는 것이었습니다. 

정규만 장로님은 그 가훈대로 살아서 큰 복을 받았는데 얼마나 복된 삶이었는지 장로님의 장례식에 20만 명이나 되는 조문객이 몰려 대구시가 생긴 이래 최고로 조문객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숙하고 아름다운 교회는 헌금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일 것이고 성숙한 성도는 스스로 은혜를 깨닫고 헌금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교회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내 가정과 일터와 사업장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 하고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84: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라고 하였으며 시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 하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이 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하며 교회를 향한 사랑은 그 자체가 하나님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원하기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우신 교회를 더욱 귀히 여기고 주님을 향한 그 사랑을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더욱 아름답게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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